7년차 뱀파이어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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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설
작품등록일 :
2024.05.08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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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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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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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알레르기

DUMMY

끝나고 가는 길, 빛이 조금씩 바래져 가고 주위가 어둑해진다. 아직 어둠이 내려오지 않은 길에 조명이 하나둘씩 켜지고, 교외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은 벌써 잔뜩 막히기 시작한다. 앞의 차들의 붉은 등이 잔뜩 켜져,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섰다 갔다 가기를 반복한다. 꼬리를 물고 있다.


잔뜩 지친 현준이 눈을 감고 있다.

“오늘 방송 수고했어. 분량 많이 나올 거 같더라.”

“그러게.”

현준이 감은 눈 밑으로, 군데군데 알레르기처럼 피부가 붉은 부분들이 돋아나 있다.


“처음이라고 너무 긴장한 것 같지도 않던데”

아침부터 예민했던 현준에게 내심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매니저가 묻는다.


“신경 쓰이긴 하지. 어디가 나갈지 모르니까. 차라리 편집이나 왕창 당할 걸 그랬나.”

“열심히 했는데 안 나오면 속상하잖아.”


“근데 PD님들이 워낙 좋아하셔서 많이 찍었을걸. 아까 팔근육 엄청 잡더라. 이번에 운동한 보람이 있지. 다음에도 팔근육 보여 달라고 하면 어쩌지?”

수영장 위에서 현준이 잔뜩 날을 세우며 달려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매니저의 말투에도 남아있던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


“정말 멋있었어. 남성이랑 붙는데, 아 체격 차이에도 이 정도로 안 밀린 거면 대단하지.”

“그러게 내가 방송 욕심이 너무 많았나 봐.”

거들먹거리는 남성의 표정을 생각하면 현준은 여전히 욕지기가 나오는 것 같다. 뭔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까끌거리는 것이 속을 잔뜩 뒤집어놓는 듯하다.


태욱의 메신저가 왔다. 싸운 이후의 앙금이 남아 있는지 짧은 카톡에도 쌀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잔뜩 붉어진 손으로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씁쓸해진 표정을 이내 지우지 못한다. 괜히 바깥의 야경을 바라본다. 제법 그사이에 어두워져, 각종 조명으로 반짝이는 거리의 밤인데도 제법 생기가 많이 돈다. 그 모든 것에서 안전할 것 같은, 물론 인간에게도 뱀파이어에게도 말이다.


“오늘부터 출근함”


눈에 익은 정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제법 커다란 성당 건물이 지나가고, 근처에 학원가와 헬스장, 카페 거리 등이 뒤섞인 상가가 눈에 보인다. 상가를 지나자, 익숙한 아파트가 눈에 보인다.

새봄의 얼굴이 눈에 아른거린다.

“잠깐 저 정문 안에서 세워줄 수 있어?”


“왜요?”

유명한 아이돌의 노래를 흥얼거리던 매니저는 현준의 말에 갑자기 속도를 줄인다. 뒤에서 차들이 경적 소리를 내며 급정거를 한다.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현준이 짙은 남색의 체크 셔츠를 걸쳐 입고, 모자를 눌러 쓴다.


“기다렸다가 갈까?”


“택시 타고 갈게.”


“아 참, 내일은 좀 쉬어도 되는 거지?”

현준이 차문을 연다.


“오후 일정이라 천천히 일어나도 될 거 같아. 아침에 연락할게”


현준은 안에 있는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나선다. 매니저의 차가 떠나고 한산해진 거리에 편의점이 보인다. 편의점 안에 퇴근하고 바로 집에 와, 잔뜩 얼굴에 피로가 누더기처럼 붙어 있는-녹초가 된 직장인들이 전자담배를 앉아서 피고 있다. 위에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려는 듯 컵라면과 삼각김밥, 맥주캔이 다소곳하게 올려져 있다.


직장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간다. 다행히 사람이 없자, 현준은 가벼운 마음으로 느긋하게 둘러보기 시작한다. 와인코너에 가 작은 와인을 한 개 고르고, 안주로 먹을 다크 초콜릿을 산다. 복도 가운데에 과자들이 새삼 눈에 보인다. 거실에 자주 나뒹굴었던 과자봉지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태욱이 자주 먹었던 것 같은데···. 습관적으로 과자를 한 아름 사다가, 태욱의 샐쭉한 표정이 생각나서는 다시 몇 개를 내려놓는다. 그래도 새벽에 돌아다니고 오면 제법 출출할 텐데···. 라는 생각에 현준은 돌아가 컵라면과 소시지, 버터 오징어구이도 같이 산다.


제법 빵빵해진, 쓰레기봉투 겸용이라는 초록생 대형 봉지를 팔에 걸치고, 주변을 본다. 택시 앱을 켜려다 나오는 사람들을 피해 대단지 안으로 들어간다. 한 걸음씩 안으로 들어가자, 시끌벅적한 밖과 달리 안은 제법 어둡고 조용했다. 삭막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제법 마음에 든 현준은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대단지에 밝은 창문들은 하나 같이 커튼을 쳐져 있고, 낮이면 시끌시끌 벅적했을 놀이터가 한적하다. 저 너머에 106동이 눈에 보인다. 현준은 근처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사라진 별을 대신해 밝게 빛나는 야경을 바라보다, 전화를 건다.


“놀이터로 나와.”


잔뜩 피곤함이 묻는 얼굴과 다르게 목소리는 여전히 달큰하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나서 전화한 것처럼. 적막 속에 이어지는 기다림 속에 트레이닝복 위로 후드 모자를 뒤집어쓴 새봄이 나타났다. 누가 봐도 나오기 귀찮아 툴툴거리면서도, 트레이닝 바지와 세트가 아닌 후드집업을 보며 현준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오기 전에 거울을 바라보며, 후드집업을 신중하게 골랐을 것이다.


“공부는 잘 돼 가?”

현준이 새봄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냥 정신이 없어요. 시간이 적은데 할 거는 많아서 조바심은 나는데. 뭐 어떻게 되겠죠.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았어요”

새봄은 투덜거리는 말에도 현준의 벤치 옆에 앉는다.


“저번에 주소 알려 줬잖아.”


“음···. 아! 그때 디엠으로 스카프 달라고 주소 적었죠? 그래도 갑자기 찾아오면 좀···.”

“그럼 갈까?”

현준이 벤치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새봄이 화장한 현준의 얼굴을 보고 부러 말을 잇는다.


“오늘 촬영했어요? 힘드셨겠다.”


“많이 별로였어.”

모자 아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현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입술과 턱선만이 간신히 빛을 받아 보인다.


“음 무슨 촬영이었어요? 혹시 예능 출연했어요? 뉴스에 엄청나게 나오던데요!!”


“응 그 예능 갔어.”


“저 그 예능 지금도 꼬박꼬박 챙겨볼 정도로 정말 좋아하는데!! 이번에 본방 사수할게요.”

시큰둥한 현준의 태도에도 새봄은 제법 기대가 되는지 갑자기 눈빛이 반짝인다.


“그래라. 과자 먹을래?”


현준은 푸른 쓰레기봉투 속에서 작은 1인용 와인과 함께 과자봉지를 꺼낸다. 와인을 자기 옆에 두고, 과자봉지를 꺼낸다.


“야식이에요 살쪄요.”

현준은 와인을 돌려서 열려고 하다, 새봄의 이야기에 멈춘다.


“봉투 안에 들어있는 초콜릿 과자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투명하게 비치는 봉투 속을 바라보며, 새봄이 과자는 챙겨간다.


“안 먹는다며?”

“내일 먹을 거예요.”

기분이 좋은지 부러 새초롬해 보이는 새봄을 보며 현준도 따라 웃는다. 과자봉지 사이로 건네지는 빨간 손을 보더니 새봄은 왼손으로 현준의 손을 잡아챈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현준은 당황해하며 자신의 손을 빼내려고 살짝 힘을 준다.



“무슨 일이에요? 완전 손이 빨갛게 갈라지고 텄는데요.”

손가락, 손등까지 잔뜩 빨개져 나무껍질같이 푸석하고 거칠다. 공기 속에 있어도 지금도 손에서 쓰라린 감각들이 올라온다.


“그냥. 알레르기가 있어서.”


“아 엄청 아팠겠다. 알레르기약 먹었어요? 집에 좀 남은 거 있던데. 아니면 피부 연고 좀 가지고 올게요.”


“아냐. 약 안 먹어도 괜찮아.”


“아뇨. 알레르기는 가렵잖아요. 잠시만요.”

벗겨진 모자 사이로 긴 머리가 찰랑거리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새봄이 꾸며도 제법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흔들거리는 그네에 자신의 감정도 일렁이는 약풍의 바람처럼 간질거린다. 꼭 마치 은하수 사이에 둘러싸인 것 같은 밝은 밤이 화창하고 포근하다.


현준은 까려다 만 와인을 병으로 마시며, 입을 축인다. 입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포도 향이 쌉싸름하면서 약간 감칠맛이 나는 게 제법 흡족하다. 취하지 않는 술에도, 온종일 날 서 있던 감정들이 알코올이 들어가자 조금씩 누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요.”


“응 고마워.”


“지금 안 바를 거예요? 손 줘봐요. 제가 발라드릴게요.”

연고를 받으려는 현준의 손을 쥐어 잡고 직접 새봄이 검지로 현준의 등을 어루만진다. 거칠 거라는 손이어도 이렇게 실크같이 사람 손이 부드러울 수 있을까. 부드러운 손에 괜히 연고를 더 꼼꼼히 손등에서 손가락을 엄지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속으로 깍지를 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충분한 거 같은데”

자연스러운 스킨십 기회에 쾌재를 부르는 자신을 아는지, 현준이 손을 가져가 바라본다.

새봄은 속으로 스킨십을 할 기회라며 속으로 엄청 두근거린다. 자연스러웠다며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아니야. 집에 가서 바르면 되지 뭐.”


“집에 가서 안 바르면 어떡해요.”


새봄이 강제로 손을 잡는 모습을 못 이기는 척 현준이 바라본다. 손가락을 타고 올라간 붉은 기운이 손목까지도 번져 있다. 옷을 걷어 올리자, 팔뚝도 새빨갛게 잔뜩 부어 있다.


“여기도 발라야 하는 거 아니에요?”


새봄은 가녀린 몸과 달리 제법 두꺼운 팔뚝에 시선을 빼앗기며 말한다. 현준이 다른 한 손으로 셔츠를 내린다.


“나중에 내가 바를게. ”


실망한 새봄은 다시 현준을 바라보자, 현준은 제법 기운 없어 보이는 데도, 자신의 속셈을 다 아는 것같이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 꿰뚫어 보고 있다. 눈이 마주치는 느낌에 새봄은 제법 설렌다. 어떤 모습을 하더라도 치명적인 매력에 헤어나올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치 저주의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온몸에서 풍기는 현준의 꼼짝없이 위험하고 퇴폐적인 매력에 사로잡힌다. 가만히 아무 말도 못 하고, 새봄은 현준의 얼굴을 몇 초 동안,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실례인지도 모르고, 현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입꼬리는 조금씩 느슨해지며, 새봄이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현준이 자신에 팔에 있는 손을 다른 손으로 포개어 떨어뜨린다.

앗, 새봄은 자신이 스킨십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해하며 물었다.


“괜찮아요?”


“아니 전혀.”

형형한 눈동자에 입꼬리가 활짝 걸려 있다. 입술 안에 얕게 묻어 있는 검붉은 와인이 입술을 더욱 붉고 요염하게 만들었다. 작게 벌어진 입 사이로 보이는 윗송곳니는 미묘하게 길어졌다. 새봄은 눈치채지 못하며 잔뜩 설레는 감정을 추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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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 구내식당 24.05.11 14 0 12쪽
10 10. 회상 24.05.11 9 0 11쪽
» 9. 알레르기 24.05.10 1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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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 외출(2) 24.05.08 2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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