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씹어먹는 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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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노트
작품등록일 :
2024.07.28 23:37
최근연재일 :
2024.08.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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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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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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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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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멸망 1일차 밤, 거래.

DUMMY

차원상인 쟈코.


그는 멸망이 도래한 세상에서 상행을 하는, 어떤 종족의 일원이었다.


성인이 된 후 두 번째 상행. 이젠 나름 짬이 생겨 자신을 얻은 그는, 가장 먼저 구역랭킹 1위를 찾아왔지만, 물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그 원인은 다짜고짜 자신을 공격한 신중한이었다.


"오해?"


손도끼를 든 중한은 여전히 전투태세를 유지한 채였다. 말하는 고양이라니, 더더욱 수상했기 때문이다.


"에,에헤헤. 저는 차원상인을 하는 '쟈코'라고 합니다마는...그, 아시죠? 몬스터를 죽이면 나오는 코인. 그것을 물건과 거래하러 온 것입니다만..."


두 발로 선 채 앞발을 비비적대며 아부하듯 비굴하게 설명하는 쟈코.


하지만 중한의 눈에는 의심이 더욱 번득거렸다. 두 발로 서기까지. 이건 완전히 몬스터였다.


"내가 그걸 어떻게 믿지?"


"여, 여기 명함입니다요! 시스템을 통해 확인될 겁니다!"


"잠깐. 그 이상 다가오지마라."


울상으로 명함을 내밀며 다가가는 쟈코였지만, 중한이 손을 내밀어 제지했다. 눈을 찌푸려 멀리서 명함을 훑어보는 신중한.


이윽고 명함을 응시하는 그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됐다.


[Tip: 운좋게 차원상인을 만나면 코인을 이용해 물건을 거래할 수 있습니다! 또는, 랭킹이 높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가기도 합니다.]


[차원상인 쟈코]

[시스템과 합당한 계약을 맺은 상인입니다.]


도끼눈을 뜬 채 메세지를 읽은 중한이 그제서야 전투태세를 풀었지만, 여전히 손도끼는 놓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일로 쳐들어온 거지?"


겁에 질린 얼굴로 그의 손에 들린 무기를 보던 쟈코가 대답했다.


"쳐,쳐들어 오다뇨. 헤헤. 저는 단지 구역랭킹 1위이신 분과 거래를 트러 온 것 뿐입니다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많을 겁니다."


"도와준다니, 어떤?"


"일단 구하고 싶으신 물건들은 말만 하시면 구해올 수 있습니다요. 아! 이건 어떨런지요? 멸망시기에 가장 인기상품인 보존식량세트! 30일분을 단돈 1,000코인에 모시고 있습니다요!"


"식량은 필요 없다."


중한은 쟈코의 제안을 칼같이 거절했다. 그야 당연하다. 식량은 아직 주변을 털어서 구할 수 있는데, 굳이 코인을 사용하면 아쉬우니까.


"그럼 이건 어떠십니까? 현재 봉천동 구역의 침략자는 리치로 보입니다만...바로 이것! 일명 시체분쇄기지요. 내구도 강화 및 충격강화 인챈트가 되어있습니다. 강화된 은을 써서 언데드에겐 아주 그만입니다요! 단돈 2,000코인에 모시지요."


이번엔 철퇴를 보여주는 쟈코. 하지만 중한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2,000코인이라니, 비싸다. 고작 1일 차에 그만큼을 가진 녀석이 어딨나?"


중한이 가진 코인은 2,600가량이었지만, 쟈코의 서비스 정신을 떠보기 위 블러핑을 쳤다.


"예? 첫날 랭킹 1위의 보상은 1,000코인일텐데요. 거기에 이런저런 업적 보상까지 합치면..."


"알고 온 모양이군. 그럼 좀 서비스해줘라."


헙.


나름 상인으로써의 감을 가진 쟈코가 불길함을 느꼈다. 마치 괜한 소리를 한 기분.


여기선 정직하게 나가는 게 옳다고 판단한 쟈코가 다시 입을 열었다.


"랭킹 1위를 하신 분과 거래를 튼다면 좋을테니까요. 뭐, 그렇습죠. 맞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다면 조금 우대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기왕 첫 거래를 트는 거, 싸게 넘기는 편이 좋은 인상이 될 거다. 네가 말했듯이 난 이곳의 랭킹 1위니까."


파고들 여지를 찾은 중한.


그에 비해 쟈코는 뭔지 모를 오싹함을 느꼈다.


"그,그치요. 첫 거래니까요. 대신 중한님도 저, 쟈코를 최우선 거래 대상으로 생각해 주셔야 합니다요?"


"그건 이 거래의 만족도에 달렸다만."


중한은 파병지에서 느꼈던 일들을 떠올렸다.


'전장에선 아군 빼고 모두 믿지 마라. 갓난쟁이 아기라도.'


그리고 귀국 후에 국가에서 해준 취급들도.


'타인의 기대에 부응해도 돌아오는 건 싸구려 보상이다.'


뭐든 신중하게. 그리고 절대 손해를 보지 않게.


꿀꺽.


침을 삼킨 쟈코가 대답했다.


"혹, 원하시는 물건이 있으신지?"


"으음...아공간 마법이 걸린 배낭이라던가."


일단 창작물에서 본 것을 토대로 던져본다. 이런 비현실적인 물건도 구할 수 있을지.


"아, 아공간 인챈트요!? 의미있는 수준의 용량은 전부 비쌉니다요. 구할 수 있는 가격 중엔, 정말 손바닥 한두 개쯤 더 들어갈 수준밖에..."


쩝.


그런게 있다면 물자조달이 수월할텐데.


다음으로 중한은 구형 샷건부터, 초기형 유탄발사기 등의 화기를 물어봤다.


다른 나라면 모를까, 이 한국이란 나라에서 총기는 갖고 있는 것만으로 위협적이다.


방아쇠만 당기면 애라도 어른을 죽일 수 있으니까.


"그건 살상력이 높아서...아무리 단순한 구조라도 말입니다. 그 무기가 낼 수 있는 위력을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하는지라. 예, 아마 최소 3,500코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적용할 수 있는 모든 할인을 적용해서 말입죠."


이쪽도 아직 무리였다.


그 다음으론 성능좋은 자동권총.


"에-말씀해주신 5세대 글록도 3,000코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할인을 포함해섭니다."


이쪽은 최신식에, 이 세상에서 끼치는 영향력에 따라 가격이 높게 책정됐다고.


아무래도 최고의 군용 권총이란 위상이 한 몫 한듯했다.


'완전 제멋대로군.'


신용하기 어려운 가격책정 방식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맘에 드는 총기를 구하려면 별수 없다.


'수도방위사령부가 있는 남현동은 멀다. 뚫고 가기도 애매해. 도착한다 해도, 군부대와 무슨 일이 생길지...경찰이 사용하는 리볼버는 불편하고.'


풀리지 않는 의문점도 있다.


'고작 좀비. 물론 시체기사나 리치도 있다지만,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군부대가 무력하게 당할 수준은 결단코 아니다.'


총기나 폭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야 정상인 상황이다. 허나 중한은 오늘 하루 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레벨과 무장이 갖춰지면, 본격적으로 탐색을 시작한다. 이 세상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를 위해선, 우선 힘이 필요했다.


"총기가 아무래도, 간편히 위력을 내기 쉽다 보니 비싼 편입니다요. 같은 가격의 근접무기라면, 높은 레벨대에서도 쓸 만큼 효율이 좋습니다만..."


쟈코가 영업을 해보지만, 이미 그는 나름의 계산이 선 상태였다.


"M1911A1."


M1911A1. 중한이 현역시절에 보급받았던 권총으로, 만들어진지 100년이 넘었음에도 신뢰도 높고 안정적인 물건이었다. 그만큼 손에 익은 건 덤.


"아! 이쪽은 아까보단 낫군요. 대량살상 능력이나 연발 능력이 없고, 연식도 오래됐으니... 단돈 2,000 코인에 모시겠습니다! 원래 가격에서 500코인이나 깎아서요!"


"홀스터는?"


"첫 구매시니까, 보너스로 얹어드립죠!"


"소음기랑 여분 탄창도."


"아,알겠습니다."


허둥지둥 차원문을 열고 물건을 가져온 쟈코.


"저어, 근데 소음기에 여분 탄창까지하면 2,500코인입니다만..."


홀스터는 주기로 했다만, 소음기와 여분 탄창은 알겠다고만 했다. 어떻게든 값을 더 받아내려는 쟈코의 속셈이었다.


중한의 보유 코인은 2,600가량.


그는 상인 특유의 감으로 상대의 여유분을 짐작해, 최대한의 값을 받아내려 하고있었다.


"깎아주기로 하지 않았나."


"하, 할인해서, 2,300코인에 드리지요."


여기까진 쟈코도 납득할 수 있었다.


'낼 수는 있다만...'


가진 예산을 대부분 쏟아부으면, 그 다음은? 그때그때 필요한게 다른 법. 중한은 코인을 최대한 남겨먹기로 했다.


"1,500 코인에 넘겨라."


"예, 예? 그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혹시 주거침입죄라는 말을 알고있는지 모르겠군. 1,500코인에 넘기면 봐주지."


중한의 손에 들린 도끼에 순간 힘이 들어갔다.


"히익! 너무합니다요!"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또 나타난 위협에 한창 감각을 곤두세우던 차였다. 네 등장에 얼마나 놀랐는지...정신적 손해보상이라 생각해라."


"예,예에!?"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거냐?"


그러면서도 쟈코의 머리속은 팽팽히 돌아갔다. 오싹할 정도로 이기적인 저 남자. 분명 쟈코가 봐오기로는, 이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적응하며 거물이 되는 부류였다.


'쓰읍, 일단 손해 좀 보고 투자하는 셈 치자. 어차피 나중엔 메꿀 수 있는 정도니까.'


계산을 마친 쟈코. 아쉽지만 더 큰 이득을 위해 참고 간다는 마인드로 입을 열었다.


"드,드립지요. 1,500코인에! 대신 절 잊으시면 안 됩니다!"


지금 당장만 혀가 쓸 뿐. 이런 유망주와 지속적인 거래를 트는게 더욱 이득이었다.


"좋아. 거래하지."


"다른 놈들과 거래하기 없기입니다?"


"...지금처럼만 한다면."


거래의사를 밝히자 자연스레 쟈코에게 입금된 차원코인. 물건을 넘겨받은 직후 중한은 하자가 없는지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신품이나 다름없군.'


어떻게 구해오는 건지 궁금했지만, 알아봤자 자신이 유용할만한 정보는 아닐 것 같아 굳이 말로 하지 않았다.


"주, 중한님. 혹시 탄은... 필요 없으십니까? 총기만 사셨으니...제가 박스당 300코인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쟈코가 마지막 수를 던져보지만.


"탄환생성, 45ACP."


그가 처음 상태창을 각성하며 얻은 스킬, '탄환생성'을 사용했다.


휴식하는 동안, 계속해서 금속다트를 만들며 스킬레벨이 올라간 덕분이었다.


'마력이 F급인데도 여러 번 쓸 수 있다니. 효율이 좋은 스킬이다.'


그의 마력은 조금 전, 45ACP탄을 두 개 만들면서 막 바닥난 참이었다.


'당했다...!'


이러한 광경에 쟈코는 그저 손을 파르르 떨 뿐.


쟈코의 고생길이, 지금 시작됐다.


"그나저나..."


"햐아악...! 아, 예. 예?"


정신적인 충격으로 온 몸의 털을 부풀리던 쟈코가, 얼빠진 듯 대답했다.


"다음엔 또 언제 볼 수 있지?"


"7일차마다 옵니다요..."


이게 다가 아니다. 아직 정보수집이 남아있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시스템과 계약을 맺은 차원상인이라니. 이 상황이나 시스템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나?"


"그,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요. 그런 계약인지라... 아마 이 세상 속에서 살아남는다면, 차차 조금씩은 알게되실겁니다. 예예."


"혹시 이 멸망이 온 세상에서 진행 중인지도, 알 수 없는건가?"


"...이건 괜찮겠군요. 멸망은 항상 행성 모든 곳에서 동시에 일어납니다요."


후.


그런가.


'내가 어찌할만한 규모의 일이 아니란 건, 어렴풋이 느꼈지만...'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일 줄이야.


"저,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요!"


생각에 빠진 그를 두고, 쟈코는 재빨리 도망쳤다.


중한은 경계를 이어나가다, 시체기사는 실내에 숨은 기척까지 찾아내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곤 잠자리를 펼쳤다.


"..."


침낭에 몸을 욱여넣은 그는 생각에 빠졌다.


'세상이 멸망한다는데,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전역 이후, 무기력하게 살던 자신에게 미묘한 생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많은 피가 흘렀다. 눈앞에서 죽어나간 전우는 셀 수 없었고... 자신은 운 좋게 살아 돌아왔을 뿐.


그 후 곧장 전역을 했다.


국가가 준 훈장은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아무런 의욕도 없이, 가끔 일용직을 나가며 텅 빈 눈으로 살다 보니 어느덧 29살.


갑자기 멸망이 시작됐고ㅡ그 기분은 마치.


'전장에 돌아온 것만 같은...'


흠칫.


'내가 왜, 이런 상황에 더 살아있음을 느끼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중한은 생각하길 그만뒀다.


'잠이나 자자.'


그의 방엔 곧 정적만이 감돌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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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씹어먹는 고인물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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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매일 연재됩니다. 24.07.30 100 0 -
20 멸망 14일차, 00시. 세 번째 거래. 24.08.16 52 6 14쪽
19 멸망 11일~13일차. 넥스트 레벨. 24.08.15 71 5 13쪽
18 멸망 10일차, 엔지니어 영입. 24.08.14 88 6 12쪽
17 멸망 8~10일차, 히든 퀘스트. 24.08.13 91 6 12쪽
16 멸망 7일차, 시체기사를 죽이다. 24.08.12 92 8 13쪽
15 멸망 6일차, 화력 확보. 24.08.11 97 7 13쪽
14 멸망 5일차, 결산. 24.08.10 103 7 13쪽
13 멸망 5일차. 웬디고를 처치하다. 24.08.09 102 6 12쪽
12 멸망 5일차, 몰살. 24.08.08 112 8 13쪽
11 멸망 5일차, 웬디고. 24.08.07 110 7 13쪽
10 멸망 5일차, 집단충돌. 24.08.06 123 8 12쪽
9 멸망 5일차, 돌발 퀘스트. 24.08.05 122 7 12쪽
8 멸망 4일차 밤, 시체기사를 가늠하다. 24.08.04 123 7 12쪽
7 멸망 4일차, 괴물과 싸우다. 24.08.03 126 8 12쪽
6 멸망 4일차, 기괴한 살더미와 마주하다. 24.08.02 152 9 13쪽
5 멸망 3일차, 습격받다. 24.08.01 159 10 12쪽
4 멸망 2일차, 탐색. 24.07.31 168 9 13쪽
» 멸망 1일차 밤, 거래. 24.07.30 194 9 12쪽
2 멸망 1일차, 외부활동 +3 24.07.29 221 8 12쪽
1 멸망이 내 이웃이 되었다. 24.07.29 307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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