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씹어먹는 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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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노트
작품등록일 :
2024.07.28 23:37
최근연재일 :
2024.08.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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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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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멸망 8~10일차, 히든 퀘스트.

DUMMY


멸망 8일 차.


처음 시체 기사를 죽인 후, 나는 봉천동 일대를 정찰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것이다.


---

[히든 퀘스트 - 기사 살해자]

[구역 최초로 '시체 기사'를 살해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해당 구역의 동일 개체들을 모두 살해하십시오.]

[퀘스트 목표: 시체 기사 처치 1/9]

[클리어 시 보상: 스킬 '죽음의 오라(LV.1)']


-그 기사단은 죽음을 뿌리며 산 자들을 탄압했다. 기사단의 검에 죽어나간 모든 생명이 그들을 저주했고, 결국 움직이는 시체가 되어 기사로서의 모든 불명예를 얻었다.

---


남은 개체가 무려 여덟.


나는 이틀간 이들의 동선과 위치를 파악했고,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바로 봉천동의 하위 9개 동에 각각 한 기씩 배치되어 있다는 걸.


'...체계적이군.'


여태 상대해온 괴물들은 이지가 없었다.


허나 이놈들을 배치하고 난을 일으킨 '리치-데스몬드'는 그러지 않을 것이란 가설을 한 가지 세웠다.


실제로 정찰을 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은천동 방향에서는 더 이상 시체 기사가 출몰하지 않았다.


"...생존자들이 조금씩 보이네요, 형님."


"그래. 우리 동네엔 시체 기사가 더 없으니까."


참고로 정찰에는 용달필을 이용했다. 차량이 있는데 굳이 쓰지 않는 것은 손해니까.


터엉-!


"어흑 마이깟."


"...고작 1톤 트럭인데, 꽤 튼튼하군."


"아, 저번에 얻은 차량 개조 스킬에 코인을 다 투자했거든요. 헤헤."


이전, 시체 기사와의 일전에서 5톤 트럭은 크게 손상됐다. 그래서 이 자식의 애마가 주차되어 있다는 곳을 탈환해 준 상황.


'내 알바는 아니지만, 상인을 이용하지 않고 차량 개조에 모든 코인을 투자하다니.'


생각이 짧은 녀석이다.


"제 애마거든요. 절대 안 부서지게 할 겁니다. 그치 타봇?"


"타봇?"


"모르십니까?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하는 만화인데. 어릴 적에 좋아했습죠."


...게다가 유치하기까지.


뭐 이건 적당히 무시해 주자.


"시, 실례합니다."


8일 차 밤, 우리는 정찰을 마치고 빈집의 문을 땄다. 하룻밤을 지새기 위함이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나는 집안의 물건들을 이용해 이부자리를 깔아놓고, 내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통조림하고 물이 있군. 좋아. 설탕이나 소금, 믹스커피도 가져간다. 한데 모아놓고 내일 아침 차에 싣자고."


물론 냉장고가 돌아가지 않아 부패해버린 음식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저어...형님."


내가 내부를 아무렇지 않게 뒤적거릴 동안, 안절부절못하던 용달필이 말을 꺼냈다.


"?"


"역시 이 집에 살던 인간. 죽은 거겠죠? 세상이 이 모양이니. 그래서 빈집으로 남은 걸 테고요."


"죄책감이라도 있나? 살 사람은 살아야지. 인간끼리도 죽일 마당에, 빈집털이는 별일 아니다."


"그건 그렇지만요...뭔가 기분이 헛헛하달까요. 한 발짝 삐끗하면 저도 이 꼬라지가 날 수 있으니..."


뭐 그래.


평화롭게 살던 이 녀석의 입장에선 이게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총과 폭탄이 빗발치는 전장 속에서, 폐허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죽은 자의 물건을 당연하듯 사용하는 건.


이 나라에선 그리 흔한 경험이 아니니까.


'하남자 새끼.'


그래도 지금은 팀업을 이루고 있으니, 팀원의 멘탈 케어도 덕목이겠지. 정신 건강은 중요한 생존 요소다.


"...어디 멀리 여행을 가느라 집을 비웠을 수도 있고."


"예?"


"아니면 야근을 하느라 일터에 남아 있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려던 참일 수도 있겠지."


"갑자기 무슨..."


"생각해봤자 모른다는 거다. 좆도 의미 없는 일이지. 고민해서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을 계속 고민한다는 것. 그건 나오지도 않을 똥을 싸려고 몇십 분이고 앉아서 힘을 주는 것과 똑같다."


"예에?"


"치질이나 안 걸리면 다행이란 거지. 네 걱정이나 해라."


용달필은 어이가 없었다.


'뭐 있어 보이는 말 하려나 싶더만, 개소리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긴 했지만.


'어라...근데.'


술렁이던 마음이 사그라들긴 했다. 김이 빠져서 말이다.


'...'


그래서 용달필도 그냥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싸움은 싸움대로. 계획도 계획대로. 이런 상황에선 그야말로 철인 같은 인간이지만, 어디 한 곳 나사가 빠진 면이 있다.


그게 신중한에 대한 그의 평가였다.


오히려 그런 무신경함. 자기 갈 길만 가는 중한의 성향은, 엉뚱하더라도 바람막이가 될 수 있었다.


그의 등을 따라 걷는 이들이 안심할 수 있게.


---


멸망 9일 차.


나는 보라매동의 시체 기사를 처치했다. 첫 번째보다 쉬웠다.


우선, 탄환 생성과 폭발물 생성의 스킬 레벨이 각각 하나씩 더 올랐다.


덕분에 철갑탄과 수류탄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완전히 파악해 둔 동선을 토대로 인계 철선 함정을 깔고, 10레벨을 달성하며 얻은 '기도비닉' 스킬로 몸을 숨겼다.


다그닥-다그닥-


직후, 달려오던 시체마가 철선에 걸렸고.


콰광-!


함정으로 깔아둔 수류탄의 충격에, 낙마시킬 수 있었다.


투두두두두두-!


['나이트메어'를 처치했습니다.]

[500코인을 획득합니다.]


직후 기동력의 원천인 탈것부터 제거해줬다. 심지어 화력은 소총만으로 충분했다. 시체 기사의 보호를 받지 못하니, 철갑탄에 죽어나갈 뿐.


직후는 첫 번째 전투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탕-! 타탕-!


녀석을 약 올리듯 천천히 공격하며, 골목을 이용해 추격전을 펼쳤다.


교묘하게 지형을 이용해 아슬한 거리를 유지하며 공격하니...


"크오오오오-!"


광분한 녀석은 검에 모든 오라를 집중해 아예 골목길의 벽들을 부숴가며 날 따라왔고.


"강화 사격."


곧장 이중목적 고폭탄의 희생양으로 삼아줬다.


[시체 기사를 처치했습니다!]

[1,000코인을 획득합니다.]


집으로 돌아와선, 총기를 정비한 뒤 잔여 마력을 소모했다.


탄이나 폭발물을 보충하고, 스킬 레벨도 올릴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지익-지익-


내 화이트보드엔 봉천동의 9개 하위 구역이 모두 적혀 있었는데, 그중 보라매동과 은천동을 그어놓았다.


"...앞으로 일곱."


그날 밤, 자정이 지날 무렵엔 또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됐다.


[리치-데스몬드의 영역 내에 죽음이 만연합니다.]


[이 땅에 뿌리내린 흑마법의 영향이 더욱 강해집니다.]


[변이 좀비의 출현 빈도가 높아집니다.]


[시체 기사의 활동 시간이 길어집니다.]


아무래도 이 죽음의 행진은 더더욱 빨라지기만 할 모양이다.


'고작 동 하나 수준이 이만큼이라니.'


게임처럼 상태창을 얻고, 스탯과 스킬의 도움을 받아도 혼자서는 버겁다.


이런 멸망이 봉천동을 넘어 관악구, 관악구를 넘어 서울, 또 대한민국, 아시아, 전 세계에 펼쳐지고 있다니.


이 흐름 속에서 난 그저 한 톨에 불과할 뿐이겠지.


'...생각해서 뭐하나.'


일단 어떻게든 살아가자.


질긴 목숨이다.


나는 수많은 전우들의 죽음을 딛고 서 있으니까.


적어도 내 스스로 놓아서는 안 되겠지.


---


세상이 이 모양이 되기 전, 나는 생존주의자로서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했었다.


그러던 중, 생존주의 취미를 가진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볼 수 있었다.


딱히 특별한 건 아니다.


살면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선택지 고르기 게임이다.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함께할 동료를 고른다면?]


많은 댓글들이 있었다.


[베어맨 그릴. 특수부대원 출신이잖아.]

ㄴ[하지만 지금은 제 점심이죠.]


우선, 누구나 떠올릴 법한 것부터.


'베어맨 그릴. 좋지. 나도 많이 봤다고.'


어떤 상황에서든, 최소한의 도구와 환경을 이용해 살아남는다. 나 또한 특수부대원으로서 존경했지.


하지만 진지하게 의견이 갈린 건, 다른 두 개의 직업이었다.


[의사지. 인간은 감기나 간단한 외상도 제대로 조치 못하면 죽는다고.]


[너네 최소한의 문명 없이 살 자신 있냐? 기술자다.]


솔직히 나도 인정한다.


특수부대원? 전투에 특화되어 있으니 좋지. 시가지? 산지? 어디서든 싸울 수 있다.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법도 훈련받았고.


하지만 우리가 살아남을 곳은 대한민국이다.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 한복판, 서울이란 말이다.


베어 그릴스처럼 벌레를 먹고, 소변을 저장해 수분을 섭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도시에 남은 자원을 이용하면 되니까.


그때 내가 택한 것은 '기술자'였다.


외상에 의한 감염? 나도 조치할 줄 안다. 가벼운 질병? 약국이라도 털면 돼.


하지만 수술이 필요한 외상이나 중병이라면?


그건 이미 생존 실패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선 의사라도 조치하기 어렵기도 하고.


하지만 '기술자'는 여러 방면에서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나야 급조폭발물이나 사제총기를 만들 순 있지만, 전기 설비나 차량을 고칠 줄은 모른다.


그리고 기계는 계속해서 유지보수를 해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만능 기술자인 '곽정필'을 만난 것은 썩 나쁘지 않았다.


멸망 10일 차.


내 목표는 청룡동의 시체 기사였고, 곧장 채비를 마치고 이동했다.


"저는 안 가도 됩니까, 형님?"


"어. 청룡동 가깝잖아."


장거리 이동이 아니라면, 굳이 차량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


생존자들의 주의가 끌리기도 하고, 좀비들이 따라붙기도 하니까.


[스킬 '기도비닉'이 발동 중입니다.]


게다가 이 스킬 덕에, 좀비와의 쓸데없는 교전도 최소화할 수 있으니.


내 계획은 간단했다.


청룡동엔 경사가 가파른 언덕이 많으니, 고지를 선점해 시체 기사를 죽이는 것.


전투에서 고지대를 차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설명할 것도 없겠지.


거기에 함정까지 설치해두면 두말할 것도 없고.


나는 놈들의 대략적인 활동 시간과 동선을 알고 있으니, 미리 진을 짜두면 될 뿐이다.


[시체 기사의 활동 시간이 길어집니다.]


물론, 안 좋은 방향으로 상황이 바뀐 것도 인지하고 있으니 최대한 이른 시간부터 준비를 했다.


쩍-쩍-!


[좀비를 처치했습니다.]

[5코인을 획득합니다.]


장소를 봐둔 곳은 좀비를 치우고, 인근 철물점을 털어 장애물을 설치했다. 보통은 윤형철조망이었다.


이젠 수류탄을 쓸 수 있으니, 인계 철선도 잊지 않아야겠지.


그렇게 대부분의 작업을 마쳤을 때쯤이었다.


"어이. 지금 남의 집 근처에서 뭐 하는 거요?"


웬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곽정필과의 첫 만남이었다.


"..."


나는 평소 얼굴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조치를 취하고 다녔다.


어떤 때는 두건, 어떤 때는 오토바이 헬멧 등.


충분히 수상할 수 있겠지.


"적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시체 기사를 퇴치하러 왔을 뿐입니다."


"허? 시체 기사? 미친. 자살하러 온 거였나? 이봐, 아직 젊은 것 같은데. 남의 집 근처에서 그런 괴물과 싸우면 나는? 우리 집에 영향이 미치면 어쩔 거야?"


그래.


여태 이런 식의 항의는 예상 못 했다.


보통은 나를 피하건, 괴물을 피하건 할 테니까.


'맞는 말이긴 하지.'


시체 기사는 검에 오라를 두르면 콘크리트 벽 정도는 썰어 재낀다. 바로 인근에 집이 있다면 피해를 입을 수 있겠지.


재수 없으면 휘말려서 죽을 수도.


'이걸 어쩐다.'


적대하는 게 아니라 죽일 순 없다. 지극히 정당한 항의니까. 이런 상황이라도 무분별한 살인멸구는 내 신조에 위반된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때.


"카르륵-! 카르르륵-!"


변이 좀비들이 나타났다.


"아, 염병! 골통 깨지겠네. 이것들은 또 뭐야. 하-씨팔."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여태껏 한두 마리면 모를까. 한 번에 네다섯씩 뭉쳐다닌다니?


'...흑마법의 영향이 강해져서 그런가?'


하여튼.


나는 이걸 이용할 셈이었다.


"일단 철조망을 넘으시죠. 위험할 것 같습니다."


"...칫, 알겠수다."


그리고 그는 목숨의 위협 앞에서는 판단이 빠른 인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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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멸망 14일차, 00시. 세 번째 거래. 24.08.16 52 6 14쪽
19 멸망 11일~13일차. 넥스트 레벨. 24.08.15 71 5 13쪽
18 멸망 10일차, 엔지니어 영입. 24.08.14 88 6 12쪽
» 멸망 8~10일차, 히든 퀘스트. 24.08.13 91 6 12쪽
16 멸망 7일차, 시체기사를 죽이다. 24.08.12 91 8 13쪽
15 멸망 6일차, 화력 확보. 24.08.11 97 7 13쪽
14 멸망 5일차, 결산. 24.08.10 103 7 13쪽
13 멸망 5일차. 웬디고를 처치하다. 24.08.09 102 6 12쪽
12 멸망 5일차, 몰살. 24.08.08 112 8 13쪽
11 멸망 5일차, 웬디고. 24.08.07 109 7 13쪽
10 멸망 5일차, 집단충돌. 24.08.06 123 8 12쪽
9 멸망 5일차, 돌발 퀘스트. 24.08.05 122 7 12쪽
8 멸망 4일차 밤, 시체기사를 가늠하다. 24.08.04 123 7 12쪽
7 멸망 4일차, 괴물과 싸우다. 24.08.03 126 8 12쪽
6 멸망 4일차, 기괴한 살더미와 마주하다. 24.08.02 152 9 13쪽
5 멸망 3일차, 습격받다. 24.08.01 158 10 12쪽
4 멸망 2일차, 탐색. 24.07.31 168 9 13쪽
3 멸망 1일차 밤, 거래. 24.07.30 193 9 12쪽
2 멸망 1일차, 외부활동 +3 24.07.29 220 8 12쪽
1 멸망이 내 이웃이 되었다. 24.07.29 307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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