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한탈
작품등록일 :
2024.08.06 15:26
최근연재일 :
2024.09.12 18: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1,515
추천수 :
54
글자수 :
188,471

작성
24.08.13 15:20
조회
149
추천
1
글자
5쪽

1. 프롤로그

DUMMY

용의 사체 위에 세워진 승전비가 보증하는 영광의 시대였다.

인류의 적을 석비 아래 매장해버린, 인류의 여명을 열어젖힌 시대.

기사의 칼날은 바래지 않았고 음유시인의 노래는 그치지 않았으며 성직자는 신께 영원을 기도했다.


그러나 난 지금에 이르러 감히 생각해본다.

누군들 상상이나 해보았을까?

우리의 최후가 잡아먹힘이라는 것을.


“저기 보입니다!”


남자 하나에 여자 둘.

서로를 부축하며 세 명이 성문으로 다가온다.

저물어가는 황혼의 짙게 깔린 어둠 아래 그들의 느린 걸음은 모래 먼지를 일게 한다.

그러나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비가 먼지를 진흙에 재차 파묻어버린다.


“구하러 가야 합니다!”


난 대답 않은 채 걸어오는 그 세 명의 뒤를 바라보았다.


마차는 부서져 있었고, 병사와 말은 잡아먹혔다.

저 셋은 이곳을 향해 도망쳐온 병력 중 마지막으로 남은 생존자들이었다.


이윽고 가장 상태가 멀쩡해 보이던 남자가 두 여인을 먼저 보내더니 검을 뽑아 들었다.


“마, 말도 안 돼. 기사입니다! 구해야 해요!”

“아니야.”

“네?”


남자의 검이 갈색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확실히 오러를 쓸 줄 아는 기사가 맞다.


그러나 내가 부정한 건 뒤쪽이었다.

난 칠흑 속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붉은 눈동자들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늦었어.”


황혼이 어둠에 잡아먹히고 완전한 칠흑.

그 속에서 붉은 눈동자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어둠은 붉은 눈동자를 치켜뜨며 달려든다.

붉은 눈동자들이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저 기사의 분노에 찬 고함이 들리는 듯하다.

이윽고 갈색빛의 오러가 휘둘러지며 잠깐 어둠을 밝힌다.


“······.”

“우린 도와줄 수 없어.”


찰나의 빛 앞에서 저 기사는 무엇을 보았을까.

공포, 절망. 최소한 그 두 개를 보았겠지.


횃불 하나 두지 못한 성벽 위, 내 옆에서 소리치던 바렌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나 난 지켜보았다.


갈색빛의 오러는 무언가를 베어내었다.

그러나 그뿐.

멈추지 않는 수많은 검붉은 눈동자가 달려들어 그 기사를 덮쳤다.


스러지는 단말마.

살려달라는 절규.


그 비통한 외침에도 맹목적인 포식 욕구는 그저 기사를 해체할 뿐이다.

난 꺼져가는 오러가 발하는 빛 속에서 그 모습을 낱낱이 보았다.


빗방울 속 일렁이는 검붉은 눈동자들.

그들은 먼저 목을 물어뜯고 꺾는다.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로 배를 찢어 열고 내장을 뽑아낸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이들.

수많은 포식자들이 그것들을 먹어 치운다.


짧은 단말마 끝에 주인 잃은 검은 덩그러니 비에 젖어간다.

오러가 빛을 다한 어둠 속엔 검붉은 눈동자만이 다음 고깃덩이를 찾아 움직인다.


난 이제 성벽 아래로 고개를 살짝 내렸다.

저 기사가 먼저 보낸 두 여인은 성벽을 향해 필사적으로 다가오는 중일 것이었다.


난 이미 그들의 결말을 알기에, 어차피 붉은 눈동자밖에 보이지 않는 어둠임에도 바렌을 따라 고개를 돌릴까 했지만, 결국 그러지 않았다.

두 여인의 비명이 내 귀를 비집고 들어왔으니까.


비명은 살점이 뜯겨나가는 소리와 포식자들의 괴성 속으로 사라져갔다.

바렌은 빗물과 눈물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흐느끼고 있었다.


“괜찮나?”

“으, 은휼 대장님. 우린 괜찮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

“성벽이 있으니까, 이 안에서 가만히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얼마 안 가 제국군이 구하러 오지 않겠습니까!”


현실부정인가.


우리의 성벽은 높지 않았고, 저들의 이빨과 손톱은 날카로웠으며, 몇 초 전 제국의 검 하나가 스러졌다.


“네가 본 것 그대로 이야기해주지.”


난 담담히 사실을 읊었다.


“방금 죽은 것은 제국군의 기사였다. 갑옷엔 제국군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지. 설령 네가 그 문양을 못 봤더라도, 저 오러는 봤을 거다. 상당한 실력이더군. 제국군 기사단장급이려나.”


바렌은 이젠 귀까지 막더니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듣지 않는다고 사실이 거짓이 되진 않는다. 내 입이 내뱉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필시 군의 지휘관급 인물일 기사가, 후방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변두리 영지로 도망쳐와서 죽었다. 무슨 의미인 것 같나?”

“······”

“전선은 붕괴했다. 이제 이곳은 후방이 아니야.”


사실은 곧 무서운 진실을 전했다.


“제국군은 패배했다.”

“······제국은 멸망해가는 겁니까?”

“아마도.”


난 떨리는 손으로, 그러나 그 떨림마저 무감해진 손으로 검자루를 잡았다.

비에 젖어 차가운 검자루가 내게 현실을 알려주었다.


오래전, 진작에 제국군 기사단을 떠나 조용히 은거했던 나는.

더이상 후방이 아닌 남부 영지의 경비 대장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금일 휴재 공지(09/06) 24.09.06 10 0 -
공지 재재재공지) 16:20에 업로드 됩니다! 24.08.18 36 0 -
24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12) +1 24.09.12 18 1 18쪽
23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11) +1 24.09.11 22 1 18쪽
22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10) +2 24.09.05 31 4 16쪽
21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9) +2 24.09.03 37 2 13쪽
20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8) +2 24.09.02 38 3 13쪽
19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7) +1 24.09.01 44 3 14쪽
18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6) +1 24.08.30 38 3 17쪽
17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5) 24.08.29 46 2 17쪽
16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4) 24.08.28 44 2 12쪽
15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3) 24.08.26 50 2 12쪽
14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2) 24.08.24 51 2 15쪽
13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1) 24.08.23 46 2 22쪽
12 3. 아이, 소년, 어른(7) 24.08.22 48 2 14쪽
11 3. 아이, 소년, 어른(6) 24.08.21 53 2 17쪽
10 3. 아이, 소년, 어른(5) 24.08.20 59 2 22쪽
9 3. 아이, 소년, 어른(4) 24.08.19 66 2 19쪽
8 3. 아이, 소년, 어른(3) 24.08.18 71 2 20쪽
7 3. 아이, 소년, 어른(2) 24.08.17 85 3 22쪽
6 3. 아이, 소년, 어른(1) 24.08.15 93 2 26쪽
5 2. 인류 최후의 기사(4) 24.08.14 96 3 21쪽
4 2. 인류 최후의 기사(3) 24.08.13 103 3 20쪽
3 2. 인류 최후의 기사(2) 24.08.13 107 4 21쪽
2 2. 인류 최후의 기사(1) 24.08.13 114 1 18쪽
» 1. 프롤로그 24.08.13 150 1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