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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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탈
작품등록일 :
2024.08.0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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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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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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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류 최후의 기사(3)

DUMMY

경비대는 그날밤 모든 피난민들의 옷을 벗겨야했다.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아이든 경비대는 가차없이 옷을 벗겨서 전부 확인했다.

다행인 것은 괴물에게 물렸다고 보여지는 이는 없었다.


애초에 이 영지에 이미 들어와있던 피난민의 수는 몇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괴물을 조우한 자들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날밤 이후로 점점 피난민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경비대원들은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잭은 성문에 방금 들어온 피난민을 향해 말했다.


“옷부터 벗으쇼.”

“옷, 옷이요? 왜요?”


대부분은 당황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지시에 따랐다. 그러나 가끔 반항하는 자들이 있었다.


“왜 내 옷을 벗기려 들어!”

“내가 왜 옷을 벗어야 하는 거예요! 변태에요?”

“다 늙은 노인네 알몸을 봐서 대체 뭐하려는 건가. 자네들 혹시 미친 겐가?”


가끔 반항하는 자들도 있었다. 물론 그럴 땐 내가 다가가서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내 취향 아니다. 협조 좀 부탁하지.”


그러면 예외를 두지 않고 모두 지레 겁을 먹고 옷을 벗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든 의문이 있었다.


······내가 그렇게 무섭나?

확실히, 경비대원으로 생활하다보니 느낀건데, 외지인은 물론이고 영지민들 중에서도 날 무서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내가 대부분의 상황에서 위압감 있게 말을 했던 건 있지만, 내가 말만 하면 흠칫 떠는 건 좀 과하지 않나.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에 잭이 다가와서 보고했다.


“그 괴물에게 외상을 입었다고 확실하게 판단되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겉으로 보이는 외상은 원인을 불문하고 격리 수용을 완료했습니다.”

“잘했다. 근데 잭.”

“예?”

“내가 그렇게 무섭나?”

“예? 갑자기요?”


잭은 머리 하나 없는 두피를 긁적거리다가 답했다.


“악몽에 나올 것 같긴 합니다.”

“젠장.”

“눈을 좀 착하게 뜨십쇼. 대장은 눈이 평생 햇빛 못 본 드워프 눈깔 같단 말이요.”


눈을 착하게 뜨는 게 대체 뭐지. 내가 열심히 미간과 눈썹의 상대적인 위치를 조율할 때 잭이 덧붙였다.


“그 검에서 손 좀 떼고.”

“안돼.”

“왜 안되는 거요?”

“언제든 검을 뽑을 준비를 해야하니까.”


내 강박이다. 빈민가와 전쟁터에서 구르다보면 자연스레 그리 된다.

언제든 상대를 죽일 준비를 해두는 것. 그러다보니 내 손은 검자루와 접착되어있다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그래도 눈은 착하게 떠보기로 했다. 그러나 잭의 반응은 냉담했다.


“글러먹었어.”

“왜지?”

“일단 대장은 체격이 너무 크단 말이요. 게다가 얼굴이······”

“얼굴이 못생겼나?”

“아니, 그건 아닌데, 뭐랄까······”


잭은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다가 날 가리키더니 말했다.


“내가 용병 생활할 때 정말 많은 사람을 봤수. 대장님 같은 얼굴을 한 자도 있었지. 사납고, 험악하고, 음울하고, 어디 비극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사연 네다섯개씩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얼굴 말이요.”


내 얼굴이 그 정돈가. 난 괜히 내 턱과 뺨을 만지작거렸다.


“이거 보쇼. 내가 용병 생활 하면서 뒈질 뻔 했을땐 대부분 상대가 그런 놈들이었어.”


잭은 제 볼과 목의 길게 패인 흉터를 하나씩 가리키며 말했다.


“용케 살았군.”

“더럽게 쎈 놈들이었지. 근데 그런 놈들 공통점이 뭐였는지 아쇼?”

“뭐지?”

“검을 너무 일찍 쥐어버린 자들이었수.”


난 습관처럼 검자루를 매만졌다. 너무 오래된 습관이었다.


“나 같은 놈은 먹고 살려고 검을 쥐었수. 근데 코흘리개일때부터 검을 쥔 놈들은 왜 검을 쥐었겠수? 죽이지 않으면 죽는 곳에서 살아왔거나, 어릴적부터 죽여야할 원수가 생겼거나, 엄청난 범죄자의 아들이거나, 뭐가 됐든 그리 좋은 이유는 아니겠지. 내가 보기에 대장은 첫번째일 것 같군.”


인생의 시작이 빈민가였고 중간은 전쟁터였으니, 죽이지 않으면 죽는 곳이란 말이 맞겠지.


“대장은 내가 상대했던 놈들 따위는 수십이 몰려와도 이길 거고, 심지어 나보다 젊기까지 하잖수. 도대체 몇 살부터 검을 쥔 거요?”

“······나이를 세질 않고 살아와서 모른다.”

“쯧. 한번도 과거 이야기를 안해주는군.”


거짓말은 아니었다. 내 생일도 모르는데 무슨.

하지만 키가 훌쩍 크기도 한참 전에 검을 쥐었으니······

핏덩이일 때부터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겠지.


“대장. 용병 생활 중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내가 깨달은 게 있수.”

“뭐지?”

“인간이 살아온 흔적은 얼굴에 남수. 그리고 그건 이깟 흉터보다 수배는 진한 거요.”


그들이 내 얼굴을 무서워하는 이유가 있었다.

내 얼굴엔 기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전쟁터에서 손에 피를 묻히던 기사의 흔적이.


“내 얼굴엔 피가 참 많이 묻었나보군. 그 상인이 말한 살인귀의 얼굴인 걸까.”

“에이, 그건 아니지.”

“음?”

“그놈이 말한 건 틀렸수. 대장 얼굴은 살인귀가 아니요.”

“그럼?”

“뭐, 리더? 통솔자? 그래, 지휘관이라 하면 되겠군. 대장 얼굴은 지휘관의 얼굴이요. 살인귀와 지휘관은 손에 피를 많이 묻혔다는 것만 제외하면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른 거요.”


잭은 그 붉은 턱수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살인귀는 성격 삐뚫어진 새끼들 뿐이요. 지들 끌리는대로 사람 죽이고 다니는 미친놈들이지. 하지만 지휘관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이는 자들이요. 적군이든, 아군이든, 어깨에 올려진 책임 때문에 적군을 베고 아군을 죽음에 몰아넣어야하는 자들이니까. 씻어내지 못할 피비린내에 책임감을 더하면 지휘관의 흔적인 거지.”


책임감이라. 그런 거랑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는데.


“내가 그런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그럼 아니요? 지금도 여기 있지 않수. 대원들한테 일 맡기고 저기서 낮잠 한숨 자고 와도 될텐데.”

“그럴 상황이 아니니까.”

“그게 책임감 있는 거지 뭐요.”

“아부 잘 떠는군.”

“용병이었으니까. 귀족한테 아부를 얼마나 떨고 살아왔는데.”


난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잭이 물었다.


“어디 가는 거요?”

“너도 따라와라. 지하감옥에 갈 거니까.”

“거긴 왜?”

“해야할 일이 있다.”

“아부 좀 떨었으면 쉬게 해주지, 니미럴······”


잭은 투덜거리면서 따라왔다. 지금 향할 곳은 지하감옥이었다.





***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옥 관리인에게 안내받아 지하 감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발을 디뎠다.

지하 감옥은 음습하고 어두웠다.

벽돌로 이루어진 벽이 그려낸 단조로운 무늬는 희미한 촛불을 따라 춤추고 있었다.


은휼이 내려오자, 감옥 안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이가 경례하고 지하 감옥을 빠져나갔다.

잭은 은휼을 따라 내려오고는, 이 지하감옥에 갇혀있는 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아, 저거를 여기 가둬뒀었지.”


쿵! 쿵! 아까부터 들려오던 소음을 향해 잭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선 온몸을 튼튼한 밧줄로 포박하고 재갈을 물려놓은 벤셔가 옥에 갇혀있었다.

벤셔는 온몸이 묶여있는데도 불구하고 머리를 바닥에 쿵 쿵 찧으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저건 지치지도 않나. 애초에 근육을 다 찢어놨는데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재생하더군.”

“재생이요? 별 같잖은 능력이 다 있군.”


잭의 뇌까림에 대답이라도 하듯 벤셔는 재갈을 문 채로 감옥의 창살 앞에서 성대조차 토해내듯이 소리쳤다. 키에엑!


“감옥 무너지겠네, 목청 좋은 개새끼.”


잭은 귀를 후비며 화답하고는, 고개 돌려 은휼에게 물었다.


“그래서, 여긴 왜 온 거요?”

“실험.”

“무슨 실험이요?”

“가능한 모든 것에 대한 실험. 곧 사제님이 오실 거다.”


발걸음 소리. 누군가 이곳 지하로 내려오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켄드릭 사제였다.


“이런, 내가 좀 늦었나?”


은휼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바로 시작하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겠네.”


사제는 곧바로 벤셔 앞에 섰다.

벤셔는 고개를 치켜들어 사제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신성력을 쏟아부어보지. 솔직히 그리 기대는 안 한다만.”

“네. 부탁드립니다.”


켄드릭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 무릎을 꿇고는 오른손을 창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어느새 지하 감옥은 한낮의 하늘 아래처럼 밝아져 있었다.

켄드릭의 오른손에서 피어오른 신성력 탓이었다.

그것은 마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지는 햇빛처럼 한 줄기 빛이 되어 벤셔의 이마를 향했다.

그러나 벤셔는 여전히 켄드릭을 바라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지켜보던 은휼이 물었다.


“터닝도 안됩니까?”

“안되는군. 흡혈귀보다 지독한걸.”


켄드릭은 오른손의 빛을 거두고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성력이 먹히질 않아. 성기사의 신성력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사제의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어. 죽이려는 의도를 담고 사용해도 말이지.”


은휼은 낮게 침음했다.


“이건 의외군.”


신성력이 먹히지 않는 몬스터라. 최악인데. 물론 성기사의 신성력 대폭발 같은 건 당연히 먹히겠지만······

사제는 그렇게 감옥에서 떠나갔다. 잭은 은휼에게 물었다.


“그래서, 사제님도 가셨는데 이제 뭐합니까?”

“또 다른 분이 오실 거다.”

“누구 말입니까?”

“영주님.”

“예?”


그때였다.

꺄르륵! 어디선가 희미한 고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갑작스레 옥내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하 감옥으로 내려오는 계단으로부터 발소리가 들려왔다.

잭은 순식간에 경례를 올렸다. 은휼 역시 마찬가지였다.


꺄르륵! 웃음소리는 가까워졌다. 기이하게 방향을 바꾸어가며 부는 바람은 촛불의 불꽃이 장난을 치듯 춤을 추게 했다.


“은휼,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장난과는 어울리지 않는 과묵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위 정령사이자 라티온의 영주, 비샨 라티온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비샨은 하인 한명과 함께 내려왔지만, 그의 옆엔 사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꺄르륵! 바람의 정령이 촛불의 흔들림에 따라 간간히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불꽃의 크기가 기이하리만치 커진 감옥의 촛불 속에도 화염의 정령이 숨어있었다.


“생포했다더군.”

“그렇습니다, 영주님. 사지를 결박한 채로 이곳 옥에 호송해두었습니다.”

“고생했다. 내가 직접 보지.”


비샨은 성큼성큼 걸어와 옥의 창살 앞에 섰다. 벤셔는 또다시 머리를 쿵쿵 박아대며 울부짖었다.

비샨은 그의 입에 물려져있는 재갈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물리면 똑같이 변해버린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이 자를 피난민 수용소에 들였다면 참사가 날뻔했군. 덕분에 영지가 한 번 살아남았다.”

“과찬입니다.”

“난 칭찬을 지어내지 않는다. 넌 칭찬을 받을 법한 일을 해냈다.”

“감사합니다.”


비샨은 고개를 끄덕이곤 벤셔에게 집중했다.

창살 너머에선 벤셔가 새로이 등장한 이를 먹잇감으로 여기는 듯 침을 흘리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어이가 없군.”


비샨이 손짓하자 불어온 바람은 벤셔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나 비샨은 금방 표정을 찌푸리며 바람을 거뒀다.

후웅, 순식간에 감옥의 공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기묘하게 뒤틀린 마나의 흐름이 느껴진다. 정령들이 기피하고 있어.”


그러고보니 웃음소리는 잦아들어 있었다. 은휼이 비샨에게 물었다.


“마법학적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니. 이건 되돌릴 수 없다. 애초에 사람이 아니니까. 이건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죽고 다시 태어난 몬스터에 불과하다.”


비샨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하나는 알겠군.”

“그게 무엇입니까?”

“이 더러운 자식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몬스터화시키는지 말이다.”


그는 으르렁 거리는 벤셔에게 물려진 재갈 부분을 가리켰다.


“흡혈귀와 똑같은 방식이다. 치아 부근에 기이하고 불쾌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상대를 물어뜯으면 저 기운이 상대를 잠식하는 것이겠지.”

“마법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기운입니까?”

“아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마나의 흐름이다. 흡혈귀의 것과도 달라. 마탑의 이론 마법학자놈들이 십 년 정도 매달리면 해독이 가능하려나.”


그는 사람의 내면을 잃어버린 괴물을 어두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괴물들이 지금 대륙에서 활개 치고 있다는 얘기겠지.”


그의 눈동자엔 분노가 불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감히 제국의 남동부까지 침범해서, 제국이 일궈낸 가도를 틀어막고 우릴 고립시켜 말려 죽이고 있어.”


은휼은 그의 분노를 이해하고 있었다.


영주에겐 애지중지하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 그녀는 이 영지에 없었다.

타 영지에 가있는 비샨의 딸을 데려오기 위해 경비대 몇 명이 출동했으나, 그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여전히 그녀의 소식을 알 수는 없었다.


“······영주님.”


아까 켄드릭의 신성력이 잔잔한 햇빛처럼 감옥을 밝혔다면, 지금의 감옥은 화염에 잡아먹히기 직전이었다.

지하감옥 촛불의 불꽃은 더이상 촛불에 갇혀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영주의 분노에 따라 몸집을 불리고 불린 화염의 정령은 촛불의 몸집을 거대하게 만들어 이 감옥에 열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은휼의 말에 이성을 붙잡은 비샨이 말했다.


“아니, 아니지.”


당장이라도 괴물을 감옥째로 불태워버릴 듯 몸집을 키워가던 화염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더이상 정령의 웃음소리는 없었고,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으며, 영주의 눈동자는 귀족의 눈동자로 돌아와 차갑게 식어있었다.


“아직 우린 이것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안 그런가?”

“네. 그렇습니다”

“그래. 그러니 우선 약점부터 찾도록. 몬스터화의 이유는 알았으니 이제 그것을 알아야겠지.”


비샨은 몸을 돌려 은휼의 옆을 지나쳤다.


“난 가보도록 하지.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도록.”


비샨이 떠나자, 잭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어후, 볼 때마다 식은땀이 나는 분이요.”


잭은 두피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쓸어내다가 물었다.


“대장님은 괜찮수?”

“뭐가 말이지?”

“영주님 주위에 있으면 막 어깨가 짓눌리지 않수? 바람이 짓누른다고 해야하나······”


바람이 좀 기분 나쁘게 흐르긴 하는데, 짓눌리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화염의 정령 때문인지 땀이 좀 나긴 했다.


“덥긴 하군.”

“둔감한 건지, 더럽게 센 건지······”


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찌됐건 영주님은 강한 정령사다.

그런 사람이기에 경비대만 있는 영지에서 몬스터를 상대로 수십년 동안이나 영지를 지킨 것이겠지.


잭은 땀을 닦아낸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합니까?”

“영주님이 말한대로, 실험을 해야지.”


아무래도 지하 감옥은 고문에 적합한 곳이었고, 고문은 곧 실험이기도 했다.

은휼은 어떤 실험부터 할지 생각하며 말했다.


“약점을 찾는다.”





***




신성력이 감염병 따위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이후, 의사라는 직업은 쓸모 없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신성력이 해결해줄 수 없는 외과적인 부분은 의사가 담당해야만 했다.

또한 의사는 장기의 구조와 기능, 독의 제조와 약초학 따위에 박식하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감옥에 불려온 의사, 앨버트 라우드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어, 음. 저게 그 괴물입니까?”


은휼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나 괴물의 모습은 경비대원만큼의 담력을 가진 게 아니고서야 쉽사리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긴 게 조금······ 많이 징그럽군요.”


의사는 공포에 질린듯이 벤셔의 핏빛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은휼에게 고개 돌려 말했다.


“······경비대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알아줘서 고맙군.”

“에, 아무튼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실험을 좀 도와주면 된다.”


은휼은 그에게 꽃봉오리가 열리지 않은 꽃을 건넸다.


“오, 이건······”

“그래. 달맞이꽃이다.”

“네. 달맞이꽃이군요. 게다가 달빛을 한번도 보지 못한 달맞이꽃······ 구하기 힘든 건데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어느 마법사의 시체에서.”

“예?”

“그런 게 있었다. 독초로 쓸 수 있을 것 같나?”

“네, 쓸 수 있습니다.”


대마법사 뮤렐이 사랑하는 꽃, 달맞이꽃은 재배 환경에 따라 맹독을 품는다.


보통의 달맞이꽃은 소화에 도움을 주지만, 이렇게 달빛을 한번도 보지 못한 채로 자란 달맞이꽃은 매우 강한 독을 품는 것이다.


잭은 괴물을 단단히 붙잡았고, 은휼은 괴물의 턱을 부여잡았다.


“움직이면 안되지.”


이것은 조금이라도 섭취하거나 상처를 통해 흡수될 경우 반나절 안에 온몸의 근육이 굳어 사망하는 독.

의사는 달맞이꽃의 즙을 짜내어, 괴물의 혀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렸다. 버둥거리는 괴물을 붙잡은채로.

그러나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독은 안통한단 말이지.”

“먹여서 안된다면 찔러볼까요?”


은휼은 단검을 뽑아들어서 달맞이꽃의 즙을 묻히고 그대로 괴물의 허벅다리에 꽂아버렸다.

여전히 통하지 않았다.


“독은 별 효과가 없다. 넘어가지.”


그 후로 실험은 이어졌다.


“에, 일단 심장을 찔렀는데도 살아 움직인 것을 고려하면 움직임에 심폐 기능은 불필요한듯 보입니다.”

“인간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능력. 언데드 몬스터의 특징이지.”


“기본적으로 재생 능력이 있다. 재생성 몬스터의 특징도 있는 거다. 트롤 따위엔 한참 못미치지만, 이 정도 재생 능력이라면 근육 따위에 이상이 생겨도 얼마 안 지나 다시 움직일 수 있겠지.”

“으음, 어느 정도의 상처까지 재생이 가능할까요?”

“진작에 잘라놨던 손가락과 발가락은 재생되지 않았다. 더 정확한 건 실험해보면 되겠지.”


은휼은 곧바로 괴물의 사지를 잘라봤다.

절단면의 혈관과 살결이 마치 작은 촉수처럼 움직여 서로를 옭아매며 재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혈 정도로 그칠뿐, 사지가 새로 돋아나지는 않았다.


“신체의 결손까지는 재생되지 않는 모양이군. 그럼 화상은 어떨까.”


은휼은 횃불을 가져와 괴물의 피부를 지졌다. 특이하게도 사지를 자를 때와는 달리 괴성을 지르며 상당히 고통스러워했다.


“고통스러워하는군. 검에 찔리고 베이는 것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더니. 심지어 불에 당하면 재생이 안돼. 불이 첫 번째 약점일 듯 한데. 좋은 수확이군.”

“그럼 이젠 뭘 합니까?”

“어딜 찔러야 죽는 지를 봐야지.”


은휼은 이제 검을 뽑아들었다. 계속 괴물을 붙잡고 있던 잭이 물었다.


“언데드 몬스터 죽일 줄 아십니까? 저도 언데드 몬스터는 만나본 적이 없는데.”

“알아.”

“어떻게 죽입니까?”

“간단해. 죽을 때까지 죽이면 된다.”


은휼의 답변과 동시에 검이 번뜩였다.

그의 검이 내려쳐질때마다 괴물의 관절과 뼈마디 하나하나 씩 잘려나갔다.


전쟁터에선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난다.

그 중에선 살인은 물론이고 고문도 당연히 포함된다.


지금 팔뚝, 어깨. 그 후엔 종아리, 무릎, 허벅지, 신체 부위를 하나씩 찌르고 잘라내는 것은 너무나 익숙했다.


은휼이 기사를 그만뒀던 이유 중 하나도, 이런 일에 하염없이 익숙해져가는 모습 때문이었다.


피비린내도, 뼈가 꺾이는 소리도, 가죽과 살을 찢는 감각도 익숙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익숙함이 오히려 필요했다.


은휼은 검은 마침내 괴물의 목에 다다랐고, 괴물의 목은 땅을 나뒹굴었다.


“목을 쳐도 죽질 않는군.”


목에서 피가 솟구쳐 날 적셨다. 나뒹구는 목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지만, 그것은 여전히 아가리를 벌렸다 닫고 있었다.


은휼의 검이 옆을 바라보고 있는 괴물의 머리통을 향했다.

푸욱! 관자놀이을 정확하게 찔러 들어간 검은 그것의 골통 속을 완전히 헤집어버렸다.

마침내, 괴물의 눈동자는 빛을 잃었고 더 이상 이빨 부딪히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간단하고 뻔하군. 약점은 뇌다. 뇌를 제외한 곳은 아무리 파괴해도 죽지 않는다. 영주님께 보고 드려야겠군.”


은휼이 고개를 들자,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이 있었다.


“왜 그렇게 보지?”


피에 젖어 축 늘어진 머리카락,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검.

철퍽! 검에 달라붙어있던 괴물의 뇌조각이 바닥에 떨어졌다.

잭은 이 광경을 바라보던 감상을 한 마디로 응축시켰다.


“······오우.”


그때 헛구역질을 눈을 반쯤 가리고 있던 의사가 손을 들고 물었다.


“구,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뭐지?”

“저는 대체 왜 데려오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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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8) +2 24.09.02 37 3 13쪽
19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7) +1 24.09.01 43 3 14쪽
18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6) +1 24.08.30 37 3 17쪽
17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5) 24.08.29 45 2 17쪽
16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4) 24.08.28 44 2 12쪽
15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3) 24.08.26 49 2 12쪽
14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2) 24.08.24 50 2 15쪽
13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1) 24.08.23 45 2 22쪽
12 3. 아이, 소년, 어른(7) 24.08.22 47 2 14쪽
11 3. 아이, 소년, 어른(6) 24.08.21 52 2 17쪽
10 3. 아이, 소년, 어른(5) 24.08.20 58 2 22쪽
9 3. 아이, 소년, 어른(4) 24.08.19 65 2 19쪽
8 3. 아이, 소년, 어른(3) 24.08.18 70 2 20쪽
7 3. 아이, 소년, 어른(2) 24.08.17 85 3 22쪽
6 3. 아이, 소년, 어른(1) 24.08.15 93 2 26쪽
5 2. 인류 최후의 기사(4) 24.08.14 95 3 21쪽
» 2. 인류 최후의 기사(3) 24.08.13 102 3 20쪽
3 2. 인류 최후의 기사(2) 24.08.13 106 4 21쪽
2 2. 인류 최후의 기사(1) 24.08.13 114 1 18쪽
1 1. 프롤로그 24.08.13 148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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