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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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탈
작품등록일 :
2024.08.0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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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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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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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6)

DUMMY

난 영주님을 모시고 순식간에 성벽으로 달려갔다.

잭과 3조 대원들은 말을 타고 이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우린 황급히 전시 상황에 대비해 전 대원을 이끌고 성벽에서 대기했다.

마침내 잭과 그 무리가 가까워지자 우리는 성문을 열었고, 잭은 잔뜩 지쳐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말에서 내려 열심히 달려왔다.


“니미, 씨팔, 대장, 어흐, 힘들어 뒈지겠네.”


그는 내 옆에 서 있는 영주를 보더니, 화들짝 허리를 폈다.


“여, 영주님?”


잭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경례를 올렸다.


“잭. 괴물들이 몰려오는 건가?”

“네, 네. 괴물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언제, 얼마나?”

“오늘 밤 안에 도착할 겁니다. 놈들은 수천마리로 수를 불려서 잔뜩 몰려오고 있습니다!”


영주는 침음하더니 말했다.


“은휼.”

“네.”

“성기사가 말했던 그 일만의 좀비가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남았다고 했지?”

“일주일이었습니다.”

“그래, 일주일 뒤에 일만이 몰려오는데, 지금 수 천마리가 또 달려오고 있단 말이지.”


그의 눈은 열린 성문 너머, 어디선가 달려오고 있을 괴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쉴 틈을 안 주는군.”


이제 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는 떠오르는데 모든 힘을 소진하고 벌써 천천히 저물고 있었다.


“······오늘 밤이라.”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막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는다.”


그리고 영주가 손을 펼쳐 명했다.


“동원 가능한 병력을 전부 끌어모아라.”





***




통상적인 전쟁에서, 전쟁이 벌어졌다고 영지 내의 모든 장정을 징병하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실력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그들에게도 생업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생업을 내팽개치고 전쟁에 참여하라는 건 죽으라는 이야기와도 같다.

즉, 전쟁이 벌어졌을 때 용병이 아닌 다른 생업을 가진 장정들을 징병하려 든다면, 그들은 차라리 도망가길 택한다.


실제로 전쟁에 참가해 개죽음당하기 싫어서 영지에서 도망치는 자들도 이 시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어차피 도망칠 곳은 없었다.

얼마 전에 개구멍까지 파서 다른 곳으로 도망쳐보려던 이들은 물려서 괴물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꽤나 많은 장정이 오히려 검을 들고 싸우겠다고 나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이 되지만, 잘 훈련된 병사 하나가 수십의 몫을 해낼 수도 있는 것.


따라서 난 지하감옥으로 향했다.

그곳엔 상당히 강한 병사 하나가 있었다.


“나와라, 성기사 세레드.”


그는 손이 뒤로 묶인 채로 감옥에 갇혀있었다.

혹시나 신성력을 쓰고 난동을 피울 것을 대비해, 장전한 석궁을 든 대원들이 경비를 봐왔다.

난 지금 그가 갇힌 옥의 문을 열고, 그를 불러들인 것이다.


“······드디어 날 칼하라로 보내주는 건가?”

“그건 영주님이 알아서 하신다고 했으니 잊어라. 지금 네겐 할 일이 있다.”

“할 일이라고?”


성기사는 날 따라 지하감옥으로 나왔다.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 안 해도 무슨 일인지 알겠군.”


주위의 상황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대원들이 주민과 피난민을 통솔해 한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공성전에 필요한 각종 물건을 수레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가족에게 유언을 남기듯 슬픈 눈동자로 말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친구와 서서 마지막 술 한잔을 나누기도 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타일렀고,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야말로 전쟁이 임박했을 때 보이는 상황들이었다.

성기사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시기상 아직 일만의 좀비가 몰려올 때는 아닐 텐데. 이 근방에 다른 무리가 있었나?”

“그래. 수천마리 정도.”

“내게 전쟁을 도와달라는 건가?”

“성기사의 신성력이 있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 대목에서 그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난 멈칫한 그를 돌아보며 검자루에 손을 올렸다.

혹시나 난동 피운다면 그냥 벨 생각이었다.

나 아니면 상대할 자가 마땅찮은 성기사였기에, 바쁜 와중에 내가 직접 이 자를 데려 나온 것이었으니.

그러나 그는 얌전하게 서서, 뜬금없는 말을 해왔다.


“······부탁 하나 하지.”

“그게 무엇이지?”

“교회로 날 데려가 줬으면 좋겠군.”


난 갸웃했지만, 그의 말대로 교회에 그를 데려가 주었다.

성기사니까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피난민 수용소로 쓰이던 교회엔 아무도 없었다.

사제조차도 자리를 피한 말 그대로 텅 빈 교회였다.


피난민들이 사용하던 천과 담요, 옷가지 따위가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었다.


심지어 몇몇개는 피가 묻어있었다. 그날의 흔적은 아직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진작에 치워진 의자를 성기사가 하나 끌어와 교회의 정중앙에 앉았다.


난 뒤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을 상징하는 태양의 문양 앞에서, 그는 고개 숙인 채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검자루를 부서지도록 꽉 쥐고 있었다.


······내가 봐온 기도 자세는 보통 저렇게 간절하진 않은데. 무언가 불안했다.


몇 분이 지나고, 그가 일어나 몸을 돌렸다.

그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




진형은 간단했다.

어차피 저들은 공성 전략 따위 쓰지 않는 놈들이다.

정직하게 서로를 밟고 밟으며 몰려들 뿐.


그렇기에 우리 역시 대단한 전략 따위 없었다.

그냥 오는 대로 죽인다.

위에서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고, 만약 성문이 돌파당한다면 싸우고, 성벽을 넘으려 들어도 싸운다.


동원된 장정들은 성문 안쪽에 대기하고 있었고, 훈련된 병사, 즉 대원들과 나, 성기사는 성벽 위에 서 있었다.


“영주님은 언제 오시는 거요?”


잭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피난민과 주민들을 지금 영주성에 전부 몰아넣었어. 영주님은 그곳에서의 일 처리를 마치고 오실 거다.”


하룻밤 안에 닥친 전쟁을 준비하는 거다.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래도 준비를 끝냈다. 이젠 싸우는 것만이 남아있었다.


모든 이들은 지평선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밤이었고, 그렇기에 세상은 하나의 물감으로 칠해버린 것처럼 어두웠다.


그러나 저 멀리서 선명하게 빛나는 것들이 있었다.

붉은색. 피와 살코기를 갈망하는 그 붉은 눈동자들.

그 붉은빛은 밤하늘 아래에서도 형형히 빛나며 지평선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호크는 조금씩 가까워지며 일렁이는 붉은 눈동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관이군. 삼천은 넘는 것 같은데.”

“그래,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거짓말이 아니야.”


잭이 제 두 눈을 검지와 중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놈들이 골짜기에 모여서는 죽은 듯이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눈을 일제히 뜨고서는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용케 살았군.”

“당연하지, 내가 뒈질 놈이냐.”

“평소였다면 네가 죽길 바랐겠지만, 이번만큼은 네 기이한 행운에 걸어보고 싶군.”


호크는 활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네가 도무지 안 죽는 놈이라는 게 이번에도 증명되길 바라지. 어차피 패배하면 전부 죽을 테니까.”


그의 말 그대로, 저 상대의 괴물들에게 패배하는 순간 죽음은 확정이었다.

적들은 포로를 잡지 않는다. 먹어 치울 뿐.

잭은 긴장했는지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다가, 곁눈질하며 내게 물었다.


“저게 성기사라는 거요?”


내 옆 조금 떨어진 곳엔 세레드가 서 있었다.


“몸집이 말도 안 되게 크군. 대장보단 조금 작긴 한데.”


잭은 그를 훑어보더니 물었다.


“저놈 이름이 뭐라고 했수?”

“세레드.”

“좀 안 어울리는데.”

“세례명이니까.”


성기사는 교단에게 성기사로 임명될 때 원래의 이름을 버린다.

그리고 성기사의 세례명엔 단순한 의미가 담겼다.


“세레드. ‘세’는 백, ‘레’는 열둘을 뜻하지. ‘드’는 검을 뜻한다.”


백 열두번째 검. 정말 단순하고 멋없는 이름이지만, 이들 종교는 자신을 벗어던지고 오로지 신에게 귀의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내세우기에 신이 검인 성기사에게 적합한 이름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백하고도 열두번째 검이라는 거다.”

“검 한번 더럽게 많군.”


잭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내가 봐도 많긴 했다.


“그래도 신성력을 쓴다면 엄청나게 도움이 되지 않겠수?”


잭이 물었다.

사실이다. 성기사의 신성력은 대량 살상이 가능할 정도니까.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 녀석은 나와의 전투에서 신성력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쓸 시도조차 안 했다고나 할까.

나를 과소평가한 걸 수도 있지만, 어쩌면······

아까부터 세레드의 표정은 단단히 굳어있었다.


“세레드.”

“왜 그러지.”

“네 신성력은 어느 정도지?”


세레드가 내게 몸을 돌렸다. 그 동작엔 미묘하게 힘이 없었다.


“적의 진격을 늦출 정도는 되나?”

“······”

“세레드.”

“난 신성력을 쓰지 못한다.”

“뭐?”


이 자식이 갑자기 무슨 소리지? 신성력을 쓸 줄 아는 놈들이 성기사가 되는 건데.

성기사가 왜 신성력을 쓰지 못한다는······

아. 못쓰게 된 거군.


“······너, 믿음을 잃었군.”

“그래.”

“성기사이면서 믿음을 잃었다고?”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야 성기사니까.


“왜지? 내가 알기로 어떤 고난이 닥쳐오든 신을 믿고 끝까지 버티는 것이 너희 종교의 교리 아닌가?”

“······”

“누구보다도 신을 믿고 따를 성기사가, 이런 고난 속에서 신의 믿음을 잃어버리면 어떡하자는 거냐. 성기사마저 신을 향한 믿음을 잃으면, 누가 신을 찾겠—”

“신은 죽었어!”


성기사는 나조차도 화들짝 놀랄 정도로 뜬금없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신은 죽었다. 저 좀비라는 것들이 신마저 잡아먹어 버렸는지도 모르지. 내가 숭배하던 신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다!

그래, 성기사인 나조차도 믿음을 잃었다! 그게 이상한가? 내가 동부에서 뭘 보고 왔는지는 아나? 수 만의 좀비가 성벽을 넘어 그대로 모든 인간을 잡아먹는 거였다! 사지가 뜯겨나가면서까지 신을 부르짖던 이들은 아무런 구원조차 받지 못했어!”


심지어 그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내가 그곳에서 말을 타고 도망치며 무슨 생각을 한 줄 아나?”


그가 겪었던 일은, 아니, 대륙을 덮친 이 사건은, 성기사들의 강인한 믿음마저 깨어질 정도로 절망적인 사건이었다.


“신이 살아있고 여전히 우리에게 빛을 비췄다면, 무고한 자들은 물론이고 우리 교단이 그렇게 쓸려나갈 리가 있었겠나? 우리만큼 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도대체 어디 있다고! 평생토록 신을 믿고 따라왔는데, 그는 우리를 버린 거다!”


잭은 옆에서 가만히 듣더니 비웃었다.


“그래, 신 그 씹새끼가 일 제대로 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질 리가 있나. 신이라는 그 자식도 뒈져버린 모양이지.”


세레드는 잭을 노려봤다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난 어이없이 성기사의 뒤통수를 내려다봤다.


안다. 상황은 절망적인 것을.

당장 우리만 해도 이 안에서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 수많은 이들의 죽음이 있었고,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나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래, 그런데.

지금이 징징거릴 때는 아니다.

난 완전히 기운을 소진해버린 채로 흉벽에 주저앉은 성기사를 바라봤다.

그에겐 이 전쟁에서 싸울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싸우지 않을 거냐?”

“······싸울 이유가 없어.”

“왜, 신을 향한 믿음이 깨어지니 살 이유가 사라졌나?”

“그래. 바로 그거다.”


성기사는 정말로 싸울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이는 목소리로 답했다.

짜증이 날 지경이군. 계속 징징거리기는. 저기 바렌조차도 떨림을 억누르고 검을 쥐고 있는데.


난 이곳을 바라보는 대원들의 표정을 바라봤다.

그들은 상황을 잘 몰라도 성기사의 어두운 낯빛을 봤고,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두려움은 어두운 색채라 쉽게 번지곤 한다. 

한 사람만 공포에 질려도, 모든 병력에게 전염시킬 수 있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일이기도 했다.

아직 영주님은 오지도 않으셨고, 저 괴물들 역시 이곳에 도착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 전에 벌써부터 아군이 공포에 빠지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됐다.

난 더없이 차오르는 분노로 성기사에게 말했다.


“······신이 지금까지 네 인생을 대신 살아줬나?”

“뭐?”

“신을 믿든 안 믿든, 삶을 살아가는 건 인간 그 자신이다. 넌 믿음이 깨졌다고 삶을 포기하는 건가? 주객이 완전히 바뀌었군.”


난 성기사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거기 얌전히 앉아있다가 죽어라. 아무도 네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으니, 너조차도 네 삶을 포기한다면 남은 건 죽음뿐이다.”


삶을 포기하면 죽음뿐이다. 그리고 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우린 죽을 때까지 발버둥 칠 테니, 방해하지 마라.”

“······어차피 내가 이 전쟁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멍청하기는, 애써 외면하고 있군.”

“외면? 신성력을 잃은 내가 이 전쟁에서 도대체 뭘 할 수 있는 거냐!”


난 그가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가리켰다.


“네 손에 정답을 쥐어놓고도 그딴 약해빠진 소리를 내뱉는 거냐!”


난 일부러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성기사는 멍하니 날 쳐다봤고, 아까부터 이쪽을 흘끔 쳐다보던 대원들이, 내 고함 때문에 이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또한 다른 대원들까지 내 목소리에 놀라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은 지금도 달려오고 있었다.

전쟁터는 마련되었고, 우리의 목숨을 불태울 무대 역시 준비되었다.

난 감히 그 무대의 시작을 맡기로 했다.


“라티온 영지의 경비대원은 들어라!”


잭이 눈치 빠르게 창대를 바닥에 쾅 찍었다.

다른 조장들은 잇따라 발이나 창 따위로 바닥을 쿵 내려찍었다.

대원들은 순식간에 날 바라보며 도열했고, 난 검끝으로 저 멀리를 가리켰다.

그곳에선 일렁이는 괴물들의 파도가 있었다.


“저길 봐라! 수천마리의 괴물이 몰려온다!”


지평선에서 몰려오는 수천의 괴물들.

그러나 이곳 성벽 위에 선 자들은 많지 않았다.


“그에 비해 우리는 소수다.”


하지만 모두가 검을 쥐고 선 자들이었다.


“그래서, 포기할 건가?”


아닙니다! 대원들이 모두 소리쳤다.

특히나 조장들이 눈치껏 크게 소리쳤다.

그래, 이래야지.

누군가는 정말로 포기할 생각이 없을 것이고, 누군가는 분위기에 휩쓸려 그리 외쳤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면, 충분하다.

난 이 미치도록 저돌적이고 짐승적인 경비대원들에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솔직히 말해서 답답하지 않았나? 저놈들은 우릴 말려 죽이고 있었다! 우린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어가야만 했다!”


식량은 떨어져 가고, 밖으로 나가볼 엄두조차 제대로 못 냈으며, 각 영지와의 교류는 끊겼다.

멈추지 않고 피난해오는 자들, 그로 인해 생겼던 사고까지.

우린 싸우지도 못하고 이곳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더없이 몰려와도 좋다! 원 없이 검을 휘두를 수 있으니까! 마침내 우린 제대로 싸워볼 수 있는 거다!”


난 나를 바라보는 경비대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기회를 날릴 건가?”


사실 억지다. 우린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싸워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억지 연설이야말로 전쟁터에서 필요한 것.

지금 대원들의 눈동자에 투지가 끓어오르는 것만 봐도, 그들의 손이 전투를 앞둔 자들의 흥분으로 떨리는 것만 봐도, 실로 필요한 것이었다.


“기억나나? 우리의 영지에 저 괴물들이 침입했던 날!”


난 대원들의 눈동자 속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떼며 말했다.


“우린 그날 패배했다! 겨우 몇 마리 침입했을 뿐인데 수백명이 죽어야 했다! 우린 처참히도 패배했었다!”


우린 패배했다. 지금의 우리에게 그 사실은 절망이 아니라, 닥쳐오는 위협을 향한 분노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 번의 패배면 족하다.”


투지를 불태웠다면, 이젠 명령할 차례였다.


“단 한 마리도 이 성벽을 넘어오게 두지 마라. 명령이다. 알겠나?”

“““옙!”””

“알겠나!!”

“““옙!!”””


난 검을 들어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우린 비샨 라티온 백작님께서 이 땅을 지키도록 직접 명령하신 라티온의 경비대!”


밤하늘은 우중충하지 않았다.

오늘의 달은 보기 드물 정도로 밝았다.

무너진 제국의 검에 밤하늘의 달빛이 반사되어 대원들을 비췄다.


“절대로 성문이 열리게 두지 마라! 이 땅은 괴물 따위가 넘볼 땅이 아님을 알려주는 거다!”


모두가 검을 높게 치켜들고 함성을 질렀다.

조장들은 눈치 빠르게 내게 호응하며 소리치기도 했다.


“박터지게 싸워보자!”

“다 쳐 죽이는 거다, 개자식들!”


적이 다가올수록, 내 심장은 고동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서늘한 마나는 몸을 차갑게 식히고 있었다.

달이 밝은 밤의 결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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