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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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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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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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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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4)

DUMMY

『······이렇듯 마탑의 의견에 따르면 마법학의 이름 아래 기사의 오러 역시 마나의 작용이라는 세계의 일차적이고 지극히 예상 가능한 법칙 하의 움직임으로 환원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형이상학적인 힘으로 치부되던 ‘오러’를 인간이 계산하고 통제하며 양성할 수 있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은 결국 권력을 무너뜨린다. 이는 제국과 황실에 지대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고, 제국력 412년의 오러 난사 사건으로 확실히 증명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우린 더 이상 낭만과 기사도 따위에 느슨히 묶여있는 기사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마법학의 발전이 우릴 잠재적인 쿠데타의 위협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 데트르 크리거는, 기사의 힘을 명명백백히 규명하여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기사 해부 실험을 제안······』

제국력 412년, 황실에 제출된 데트르 크리거의 『기사 해부 실험 제안서』 中



내 나이가 열여섯, 혹은 열일곱, 어쩌면 열다섯, 대충 그 정도의 나이였을 때 일이었다.

정확히는 15년 전, 그러니까 제국력 481년의 흡혈귀 폭증 사태 때의 일이었다.


내 상관은 내게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새삼스러운 광경이었다.

내 옛 상관은 분노와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그야 거의 200년을 살아온 늙은이였으니까.


군원수, 소드마스터 한카르. 내 옛 상관이었다.

흡혈귀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전선에서, 그가 내게 소리쳤다.


- 대체 왜 그랬던 거냐. 그 나이에 지휘관이 되니까 뵈는 게 없나!

- 아닙니다, 한카르. 오히려 보이는 게 너무나 많습니다.


난 그날 기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 내가 작전을 따라 돌격을 명하면, 수백이 달려가서 처참히 전사합니다. 난 언제나 홀로 그 시체들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백 명이 제 눈앞에서 죽어간 결과가 무엇입니까. 불에 잘 익혀진 아이들? 흡혈귀라고 단정되어 심장이 꿰뚫린 무고한 시민들?


전쟁에 질려버렸다. 이건 사람이 할 만한 짓이 아니었다.


-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 넌 사람이 아니다. 기사다.

- 차라리 기사를 그만두겠습니다.

- 제국군을 그만두겠다고?

- 예.

-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텐데.

- 상관없었습니다. 설령 마법사 놈들이 제 머리를 열어서 제멋대로 뜯어고치더라도.


제국은 중앙집권체제의 국가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황실이 힘을 엄격히 통제하기 때문이었다.


즉, 그들은 그들의 손을 떠나려 하는 기사를 곱게 보내줄 리가 없었다.


- 황실은 네 처형을 바랐다. 내가 간신히 막았어.


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한카르는 한탄하고 있었다.


- 대체 왜 그랬던 거냐. 내가 네 재능의 개화를 바라고 전선에 밀어 넣은 것이 잘못되었나? 네게 더욱 안온한 훈련 과정을 제시했어야 했나? 아니! 넌 전부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포기하겠다는 거냐!

- ······

- 네 재능은 백 년에 한 명 나올 재능이라고 내가 몇번이나 말했건만. 넌 어쩌면 나만큼이나 강해질 수도 있단 말이다.

- 그래봐야 1 써클입니다.

- 헛소리하지 마라. 넌 거의 백 년 만에 나타난 자력 오러 발현자다. 마탑의 오러 활성제 따위 먹지 않은 순혈 기사라고. 어디 그뿐인가? 나조차도 네 나이 때에 마나 하트를 만들지 못했다. 넌 인류 역사를 통틀어 최연소 오러 발현자고, 겨우 1 써클이 아니라 그 너머에 도달할 것이 뻔한 유망주란 말이다!


한카르는 내가 봐왔던 그 어느 때보다 개탄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는 내 재능을 보고 나를 아꼈으니까.


-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던 건가.

- 아닙니다, 한카르 경. 그 무엇 하나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재능이 내가 감당할만한 것이 아니었을뿐이다.


- 잘못된 것은 저 하나뿐입니다.


설령 한카르라고 할지라도, 황실의 명령이 내려온 이상 거역할 수 없었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천천히 황실의 명령을 읊었다.


- ······황실에서 내려온 명령은 간단하다.

제국군 제 2 기병사단의 지휘관 은휼의 기사 직위를 박탈하고, 그 오러를 폐한다.

마탑 놈들이 이제 네 머리를 뜯어서 오러 기관을 제거할 거다. 

은휼. 넌 더 이상 제국군의 기사가 아니다. 그러니 조용히 살아라. 황실도 제국군도, 나조차도 신경 쓰지 않을 곳에서.


난 나직이 말하고 뒤돌아섰다.


- 바라던 바입니다.


난 그 이후로 제국군을 떠났다.

내 몸에서 기사가 마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준다고 연구되었던 오러기관을 떼어내고, 지금의 영지까지 흘러들어왔다.

그게 내가 기사였던 시절의 종막이었다.




***




이 사태가 시작되기 전에, 내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제국군으로부터의 전령이라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자의 머리를 바닥에 내다 꽂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 자는 순순히 편지 하나를 전해주고 떠날 뿐이었다.


난 지금 그 편지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있었다.


- 퇴역 기사 은휼은 즉각 복귀하라.


지금 제국에겐 또다시 검과 방패가 필요하다.

황실은 자비를 베풀어 실수보단 용맹과 충성, 그리고 제국을 위해 헌신하였음을 기억하기로 했다.

본 명령을 받은 즉시 준비하여 수도의 황궁으로 오라.


“어이가 없네.”


다시 읽어도 어이가 없다. 자비를 베풀긴 개뿔, 내가 때려치우고 나왔는데.

기껏 정착했는데 강제로 오라는 꼴이 역겨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편지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소드마스터이자 군 원수인 한카르. 그러나 한카르는 그리 사족을 좋아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가 이런 편지로 말을 전했을 리가.


난 편지의 봉인을 검지로 천천히 두드렸다.


세 번, 네 번, 한 번, 길게 두 번, 세 번.


제국군 기사단장끼리 쓰던 전서 보안이었다.

지금이야 어떨진 모르지만 내게 전해져온 편지였던 만큼 방식은 여전했다.

파앗! 편지의 봉인으로부터 갑자기 빛이 쏟아지며 허공에 영상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영상 저장 마도구. 극히 보기 힘든 물건인데.

그런 물건에서 쏟아지는 영상에, 내 옛 상관이 비춰지고 있었다.


“은휼, 나다. 15년 만이군.”

“······한카르 경.”


이건 쌍방향 소통이 아니다. 그저 한카르가 남긴 영상이 지금 재생될 뿐.

그럼에도 난 옛 상관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내가 기억하던 모습보다도 조금 더 늙어있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지. 지금 황실은 팽창주의를 꾀하고 있다. 엘프도 드워프도 오크도 인어도 페어리도 전부 제국의 이름 아래 복속시키겠다는 생각이지.


따라서 제국은 더욱 많은 병력이 필요해졌고, 더욱 많은 인재가 필요해졌다. 그러나 기사는 설령 마탑의 오러 기관 생성 유도제가 있더라도 그리 쉽게 양성되는 존재가 아니야. 말 그대로 유도제일 뿐이니까.


그래서 황실은 너에게 눈길을 돌렸다.


최연소 오러 발현자. 약 백 년만의 자력 오러 발현자. 제국 기사 사관 학교 수석 졸업자.


설령 15년 전에 퇴역했더라도, 잃기는 아까운 존재라는 거지.”


제멋대로군. 제 손으로 때려치우고 오러까지 떼놓고 나온 사람한테 갑자기 복귀하라니.

다시 봐도 어이가 없는 영상이었다.

물론 지금 복귀 명령을 말하는 한카르도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네 죄는 말소됐다. 넌 지금 공식적으로 기사단장의 직위를 얻었어.

복귀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다는 소리다.

황실과 제국군은 네 소재지를 파악하고 있고, 복귀 명령을 거부할 시에 찾아올 결과는 너 역시도 예상할 수 있을 거다.


그러니 동봉된 오러 기관의 복구제를 복용하고서, 수도로 돌아와라. 

돌아온다면 내가 직접 가르쳐주마. 

내가 널 나 다음의 소드마스터로 만들어주겠단 소리다.

······돌아와라. 기다리겠다.”


한카르는 말을 길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돌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영상을 끊었다.

마도구의 빛은 잦아들었고, 이곳엔 다시 적막이 흘렀다.


······이 편지가 내게 전해져온 것은 약 두 달 전쯤.

공교롭게도 이 편지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좀비 사태가 터졌다.

덕분에 난 복귀하지 못했다.


“한카르 경. 전 돌아갈 수 없습니다.”


난 기사였지만 지금은 경비대장이다. 내겐 이 마을의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먼저였다.

더군다나······


“돌아갈 곳이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제국군은 패망했다. 대마법사 뮤렐과 소드마스터 한카르는 역사서에만 남을 인물로 스러져버렸다.

황제 폐하도 서거했다.

애초에 기사였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제국에 얼마나 남았을지도 의문이다.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제국이 무너질지.”


솔직히 운이 좋았다.

만약 내가 고민하지 않고 즉각 복귀했더라면, 좀비와의 전쟁터에 동원되어 필시 전사했을 것이다.

그야 한카르나 뮤렐 같은 영웅들조차 죽어 나간 전쟁터에서 내가 있어 봐야 뭐 달랐겠나.


하지만 좀비는 움직인다. 

역사서에 남을 영웅들을 죽여버린 괴물들이 두 발로 걸어 지금 여기로 찾아오고 있다는 소리였다.

이 변두리 영지에만 일만의 좀비가 몰려온다. 앞으론 어딜 가든 전쟁터일 터였다.


그렇기에 지금의 난 이 복귀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난 기사로 돌아가야만 했다.

내 옛 상관, 아니, 현 상관으로부터 전해져온 편지를 품에 넣고서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복귀하겠습니다. 설령 복귀할 곳이 없더라도.”


난 잠잠해진 수정구슬을 바라보며, 내 말을 들을 리 없는 상관에게 말했다.


황제는 죽었고, 제국은 멸망했다.

이제 인류가 자립 중인 영토는 남부뿐이다.

제국군은 패망했고, 몬스터에게 맞설 병력은 너무나 부족하다.


지금이야말로 기사로 돌아갈 때였다.


하지만 한카르조차 내 재능을 치켜세웠을지언정.


내가 마나에 대해 배우고 군사학 교본서를 읽었던 기사 사관 학교 따윈 더이상 없다.

내게 가르침을 줄 스승조차 없다.

내겐 15년이라는 공백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난 그 모든 시간과 장애물을 뛰어넘어 또다시 기사가 되겠다.


경비대장으로서 이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마지막 오러 기관의 복구제를 복용했다.


서늘한 마나의 감각이 심장에 자리잡고 있었다.





***




영주는 의자에 눕듯이 기대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화염의 정령은 촛불에 앉아 한숨을 쉬듯 작게 불꽃을 지어내고 있었다.


······혼란스럽다.

내 딸은 어디 있는 것이지. 살아는 있는 것일까.

좀비, 그 좀비라는 것들이 몰려온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영지에서 막아낼 수 있는가? 병력부터 부족한데 대체 어떻게?

하나하나 절망스러운 상황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그때 집무실의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은휼. 왔나.”


은휼이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영주는 여전히 어두운 눈빛으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져 은휼을 쳐다봤다.


그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꺄르륵! 꺄르륵! 바람의 정령이 은휼의 주위에서 웃었다. 집무실에 바람이 맴돌고 있었다.


정령사, 마법사, 기사.

마나를 운용하는 자들은 상대가 운용하는 마나의 흐름 역시 읽을 수 있다.

고위 정령사인 영주가 보기에······


“은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는 무언가 달라진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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