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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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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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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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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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5)

DUMMY

바람의 정령이 은휼의 몸을 훑었다.

정령은 그의 몸에서 맥박치는 마나를 읽을 수 있었고, 그렇기에 정령사인 비샨 역시 은휼의 마나의 흐름을 느낄 서 있었다.

기사의 마나다.

틀림없이 기사의 마나다.

심지어 지금껏 봐온 어느 제국군의 기사보다 그 마나의 흐름이 순결하고 깔끔했다.


“······말이 안되는데.”


그러나 눈 앞의 사실과는 별개로 영주는 납득할 수 없었다.


마나를 사용하는 자들은 초인이다. 기사든 마법사든 정령사든 누구든 간에.

그들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부릴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황실은 초인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초인이 테러를 벌이거나 황실에 반기를 든다면, 그것은 지대한 위협이 될 테니까.


특히 그들은 기사를 엄격하게 통제했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해부 실험을 통해 기사가 오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관이 뇌에 있음을 알아냈었다.

심지어는 시대가 지날수록 마탑의 오러 기관 생성 유도제 따위를 먹지 않고서, 자력으로 오러를 발현해내는 인재는 잘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즉, 이 시대의 기사는 대부분 황실과 마탑의 주도하에 제국군의 병사로 양성된 존재들이었다.


기사가 귀족을 주군으로 두고 기사도를 지키던 낭만적인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기사가 황실이 통제하는 전쟁병기로 전락한 시대였다.


그렇기에 영주가 이해가 가지 않는단 목소리로 말했다.


“납득이 가질 않는 상황인데.”


비샨 라티온은 은휼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혹시 기사였나?”

“네.”

“그런데 왜 제국군이 아니라 이곳에 있었지?”

“15년 전에 퇴역했습니다.”

“퇴역했다고?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닐텐데······”


영주는 무언가 생각났다는듯이 말했다.


“그러고보니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군. 흡혈귀와의 전쟁 중 명령에 불복종하고 기사를 그만둔 녀석이 하나 있다고 들었지.”

“······.”

“최연소 기사, 자력 오러 발현자······ 그 녀석이 한카르의 뒤를 이을 제국 최고의 유망주였는데, 안타깝게 되었다고 이야기가 돌았었지. 나 역시도 그 정도 재능을 가지고서 감히 제국군의 손아귀를 벗어나려한 미친놈이 누굴까 궁금했는데, 내 영지에 버젓이 들어와 살아왔을 줄이야.”


이런 시대에도 자력 오러 발현자가 나타났었다.

그게 은휼이었다. 심지어 그는 최연소 오러 발현자였다.

그러나 그는 전쟁터를 떠났던 것이다.


영주의 눈동자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기사였으면서 내 영지에 들어와 경비대를 하다니. 내 목을 날리려고 작정한 건가? 오러 기사의 사병화는 반역죄 취급인 걸 모를 리 없었을텐데.”

“퇴역 처리는 기사를 그만둘때 전부 해두었습니다.”

“아니, 명분은 그런 식으로 작용하지 않아. 난 영문도 모른채, 오러 기사의 사병화를 시도했다는 명분으로 황실에게 멸문 당할 수도 있었던 거다. 설령 네가 오러를 쓰지 못하더라도, 오러를 쓰던 검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지.”


틀린 말은 아니다. 명분은 보통 꼬투리 잡기니까.

은휼을 노려보던 영주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이제와서 의미없는 이야기는 그만두지. 어차피 황실은 사라졌으니까. 그런데 내가 알기로 기사를 그만두면 오러 기관을 거세한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네 몸에서 마나가 흐르는 거지?”

“복귀 명령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오러 기관을 되돌릴 수단도 지급받았었습니다.”


영주는 이 대목에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제 발로 나간 놈을 다시 불러 들여? 그 자존심 높은 제국군과 황실이?”

“네, 그랬습니다.”

“······소드마스터 한카르의 뒤를 이을법한 유망주라는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었나보군. 난 헛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하긴, 네 무력을 생각하면 그건 그거대로 납득이 가는군.”


영주는 은휼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곧 그 좀비들이 몰려올테니 오러를 다시 되살려낸 건가?”

“네. 이 영지를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 흥미로운 이야기군.”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조차도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때였다.

영주는 비관적으로 어두운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무엇이 바뀌지?”

“······일 만이 몰려오든, 십 만이 몰려오든, 백 만이 몰려오든, 전 필사적으로 싸워볼 생각입니다.”

“나도 그래야 하나?”


은휼은 순간 멈칫했다. 생각하지도 못한 말이 영주의 입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딸의 죽음이 확실시되었는데도, 내가 왜 싸워야 하지?”

“······싸우셔야 합니다.”

“왜?”

“인류의 존망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영주가 웃었다.

그것은 너털웃음이었지만 냉소이기도 했다.

한참이나 헛웃음을 짓던 그의 표정은 점차 굳어갔고, 그의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내게 인류는 더이상 의미가 없어.”


그의 눈엔 울분이 가득 찼고 목소리는 점차 격양되어 갈곳 잃음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내가 있고, 내 가족이 있다. 다른 개인에게도 가족이 있지. 인류란 수없이 많은 개인과 가족의 집합인 거다. 그런데 난 내 가족을 잃었다. 이제 내게 인류란 유명무실한 개념에 불과해!”


은휼은 깨달았다. 지금 영주의 마음이 꺾여버렸음을.

그야 딸을 잃은 아비에겐 그 무엇도 의미가 없겠지.


“내가 이 영지에서 계속해서 버틴 이유조차도, 내 딸이 이 영지로 돌아오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써줄 상황이 아니었다.

은휼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당신은 겨우 그정도의 사람이었습니까.”

“뭐?”


은휼은 잠시 격식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의 말투와 목소리는 이제 경비대장으로서 영주에게 존대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기사로서 대하듯이 변했다.


“전 앞으로도 당신의 병사일 것입니다. 그때 제가 당신의 최후의 병사가 되겠다고 약조한 그 말 그대로 말입니다.”


차분하던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난 지금만큼은 제국군의 기사단장으로서 말하겠습니다.”


그는 영주에게 윽박지르는 미친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영주는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은휼은 아랑곳않고 말을 이었다.


“움직이십시오. 기계처럼 움직이십시오. 내 존재의 의미와 삶의 목적 따위의 머리 아픈 것은 접어서 버려버리고, 오로지 자신이 수단으로서 제국과 인류에게 가져올 이익만 생각하십시오.”


은휼의 목소리는 필요한만큼만 격양되어있었고, 유심히 들어보면 그 어투만큼은 침착했다.


“그것이 바로 귀족, 기사,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의무 아닙니까.”


영주의 입에서 어이없는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내게 지금 딸의 죽음 따윈 잊고서 전쟁을 치르란 말이군?”

“정확합니다.”


적막이 찾아왔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고, 집무실의 공기는 바위처럼 무겁게 은휼을 짓눌렀다.

일렁이던 촛불은 어느새 화염이라고 불러도 될 수준으로 크기를 불렸고, 집무실을 통째로 불태워버릴만큼 뜨거워지고 있었다.


“감히 누구에게 그따위 태도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정령사의 분노가 정령에게 전해져, 바람과 불꽃이 은휼을 맹렬히 위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휼은 언제나처럼 굳건히 서있었다.


그는 지금만큼은 검자루에 손을 가져다대지 않은 채로, 담담히 영주의 시선을 마주봤다.


영주는 불꽃만큼이나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설령 어찌저찌 이번의 습격을 막아내더라도, 그 성기사의 말대로 무한정하게 불어나는 좀비가 영지를 덮치겠지. 마침내 그들은 모든 제국의 위업을 한줌 흙으로 되돌리고, 우리의 살점을 포식할 거다. 모르겠나?”


그는 절망적인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사태에 끝은 없어! 끝이라면 인류의 끝밖에 없겠지.”


그만큼 제국이 무너진 지금 인류의 미래는 절망적이었다.


“인류는 멸종한다.”


멸종.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을 시대의 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왜 의미 없는 전쟁에서 발버둥쳐야하는 거지?”


하지만 은휼은 그런 걸 생각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정치가가 아니라 기사였고, 

그렇기에 그는 언제나 검을 놓지 않을 뿐이었다.


“의미 있는 전쟁 따위는 없습니다.”


전쟁에 의미를 찾겠다는 유치한 생각은 코흘리개일때 접었다.


“제게 있어 전쟁은 그저 생존 투쟁일 뿐입니다. 전 전쟁을 일으키는 자가 아니라, 전쟁에서 살아남아야하는 자였으니까 말입니다. 이번 전쟁도 그럴 뿐입니다.”

“헛소리 하지 마라. 이 전쟁에서 우린 무슨 짓을 해도 살아남을 수 없어!”


어느새 영주의 불꽃은 집무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내 딸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뿐인가? 너도, 나도, 이곳의 모든 주민과 무너진 제국의 시민들 그 모두가 죽을 거다. 인류의 종말이란 말이다!”


하지만 은휼은 폐부를 침범하는 고온의 공기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생각만큼 멍청한 것도 없습니다.”

“뭐?”

“살아남을 길을 생각해야지 왜 죽을 길을 생각하냐는 겁니다. 전 제 죽음을 상정하지 않습니다.”


난 내 죽음을 상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살아간다.


“따라서 전 인류의 멸종도 상정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멸종은 나 자신의 죽음을 함의하니까 말입니다.”


은휼은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달궈지는 검처럼 단단한 각오를 다졌다.


“그렇기에 전 죽을 때까지 인류의 멸종을 막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기사는 귀족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겁니까.”


아주 오래된 낭만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처럼 기사가 귀족을 따르겠다면, 귀족은 그에 맞는 자질을 보여야한다.

은휼은 열기 속에서도 굳건히 서서 외쳤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내가 당신에게 약조했듯이. 당신이 귀족으로서! 제국에 몇 남지 않았을 기사 중 하나인 나를 당신의 병사로 두겠다고 약조했다면! 마땅히 주군으로서의 자질을 보이십시오. 그렇다면 난 기꺼이 당신의 기사가 되겠습니다.”


집무실 속 화염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닿을 정도로 몸집이 커져있었다.

바람의 정령이 휘날린 종이와 양피지는 화염에 잡아먹혀 허공에 불씨를 튀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모든 걸 포기하고 죽음에 저항하지 않을 겁쟁이에 불과하다면! 난 차라리 여기서 당신을 베겠습니다. 그딴 겁쟁이는 내 주군이 될 수도 없고, 전쟁에서도 장애물이 될 뿐이니까!”


은휼은 정말이라도 검을 뽑아들 것 같은 눈빛이었다.

감히 자신을 베겠다는 말에, 영주의 눈동자엔 분노가 끓어넘치고 있었다.


귀족과 기사의 시선은 허공에서 맞부딪히고 있었다.

그러나 귀족의 피는 푸르고, 기사의 검은 차갑다.


둘은 비슷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비샨은 차차 이성을 되찾았다.


······나는 귀족이다.

개인의 비극 따위보다 대의에 집중해야할 때가 있는 거다.

그 개인이 설령 나일지라도.


영주의 눈동자는 점점 가라앉았다.


집무실을 통째로 불태울 것 같던 화염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있었다.

공기는 제 가벼운 무게를 다시 되찾았다. 

영주는 나직이, 식어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담력 하나는 인정하지.”

“영주님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믿었을뿐입니다.”

“방금은 내 권위에 도전한 것과 마찬가지였는데 말이지.”


말만 그랬을뿐, 그의 권위에 도전할 생각은 없다. 머리는 언제나 필요한 법이니까.


“전 영주님의 경비대장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난 개는 들여도 늑대는 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네가 개를 자처하겠다면, 맞춰주지.”


영주는 서랍을 열었다. 그곳 아주 깊숙한 곳에, 오랫동안 꺼내지 않은 물건이 있었다.

하나의 파이프였다. 화염의 정령은 신속하게 그의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영주는 파이프를 입에 갖다대었다.


“담배를 피우셨습니까.”

“아주 오래 전에 끊었지. 마탑놈들이 담배가 어린아이에게 해롭다는 연구를 내놓지 않았나. 게다가 딸이 싫어했거든.”


영주의 눈동자는 그 연기를 들이마심과 동시에 완전히 죽어버린 것과도 같았다.

그는 연기를 내뿜으며,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그 너머엔 마을이 있었다. 한평생 몬스터와 다퉈오며 지켜낸 마을과, 그 주민들이 있었다.


“그래. 내 영지민이다. 내 비극에 젖어 저들의 결말 역시 비극으로 만들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영주 역시 각오를 다지기로 했다.


“내 딸이라면 그리 말했을 것 같군. 그 목소리로 직접 확인받을 수 없다는 것이 비통하지만 말이다.”


그가 창가에서 몸을 돌렸을땐 완전한 귀족의 모습이었다.

눈동자마저 차갑게 식어버린, 그야말로 오로지 살아남을길만 생각하는 귀족의 모습이었다.


“그래, 이제부터 이야기해볼까. 이렇게까지 이야기한 걸 보면 일 만의 적을 이길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이기지 못해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나 역시도 생각해둔 게 없지는 않다. 한번 이야기······”


그때 갑자기 창문에 붉은 빛이 비쳐왔다.

영주는 몸을 돌려 창문을 바라봤고, 은휼 역시 눈을 찌푸렸다.


하늘에 붉은빛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잭?”


저것은 영주님이 고쳤던, 사망한 마법사의 마도구가 내는 빛이었다.

하늘에 빛을 쏘아올리는 전장에서나 쓰이는 마도구.

그 마도구가, 붉은 경고의 빛을 하늘에 쏘아올리고 있었다.





***





몇 시간 전.


얼굴에 진흙 범벅인 잭이 중얼거렸다.


“대체 여기서 얼마나 오랫동안 있는 거야?”


그들은 지금 진흙에 몸을 파묻고, 저 멀리 산골짜기에 모인 괴물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껏 잭과 3조원들은 끈질기게 괴물의 흔적을 추적했다. 그 도중에 전투를 여러번 벌이기도 했다.


그들은 정확히 말하자면 괴물의 본대를 추격했다.

그들은 다른 마을을 덮치기도 했고, 산에 가만히 머물기도 했으나, 라티온 영지 주위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다.


잭은 그들을 계속해서 추적했고,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더이상 움직이지 않고 어느 산골짜기에 틀어박혀있음을 알아내었다.


그들이 도착한 골짜기엔 마치 숲처럼 나무가 가득했고, 땅바닥엔 그들의 발자국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산골짜리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나무를 흔들때면 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잭을 옥죄었다.


그런 산골짜기에 숨은 그들의 모습은 끔찍했다.


낮에는 그들이 햇빛을 피하기 위해 박쥐처럼, 종유석처럼 나뭇가지나 동굴 따위에 거꾸로 달라붙어있었다.

그들은 눈도 뜨고 있지 않았다. 마치 잠든 것처럼, 아니,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밤에는 간혹 움직이기도 했으나, 그들은 이상하게도 며칠간 밤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특이사항이라면 점점 괴물들이 이곳으로 집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디서 왔을지 모를 괴물들은 이 산골짜기로 와서 원래 있던 괴물들과 함께 마치 죽은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슬슬 보고하러 가야하나? 잭이 진흙과 수풀이 엎드려 몸을 숨긴 채로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긴 했다. 슬슬 돌아갈 때이긴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이 산골짜기를 훑었다.

목덜미를 스친 바람에 잭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그들이 일제히 눈을 떴다.

켜켜히 눈을 뜬 괴물들의 눈동자는 붉은색이었다.


밤하늘의 별이 모두 붉게 불타오르면 그 모습이 이러할까.

수많은 붉은색이 어두운 산골짜기를 가득 메웠고, 나뭇가지는 겁에 질린듯 흔들렸다 


매달려있던 그들은 천천히 몸을 움직이더니, 전부 예외없이 땅으로 떨어져내렸다.

마치 벌레가 달라붙어있던 벽에서 투두둑 떨어지듯이, 부러진 나뭇가지가 힘없이 추락하듯이.

수천의 무리가 동시에 투두둑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수백의 검은 새들이 그 소란에 놀라 황급히 산골짜기에서 도망치듯 날아올랐고, 괴물들은 그러한 새들을 향해 높이 고개를 치켜들고 괴성을 내질렀다.


그 불협화음은 메아리가 되어 끊임없이 골짜기에서 울려퍼졌고, 잭은 귀를 막고 싶은 심정에 낮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씨발. 이건 또 뭔 지랄이야.”


키에엑!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갑작스레 움직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느닷없었으나 격렬했다.

서로 모여 육편의 파도가 된 그들은 바위를 넘어, 나무를 짓뭉개고, 풀을 밟아뭉개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몰려가는 방향은, 잭이 잘 알고 있는 방향이었다. 


“······우리 영지로 가는 것 같은데.”


움직여야한다. 잭은 곧바로 대원들과 일어나 말에 올라탔다.

그들은 말을 재촉하며 영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더 빨리 가야 한다!”


끝내지 못한 선결 과제.

기사를 잡아먹었던 무리가, 수천으로 수를 불려 영지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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