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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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탈
작품등록일 :
2024.08.0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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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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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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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류 최후의 기사(1)

DUMMY

『······친애하는 제국의 영주들이여.

제국 북동부에서 나타난 미확인 몬스터의 수효는 가히 짐작할 수 없는 바, 황실은 이에 대한 엄중하고도 신중한 숙고로 결국 전시 상태를 선포했음을 알리는 바이다.

순식간에 북동부를 집어삼켜 이젠 북부와 동부를 넘보는 그들의 비상식적인 확산 속도에 제국은 총력전을 각오했다.

황실은 제국의 안녕과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그 노력은 각 영주들의 손끝에서 완성될 것이다.

따라서 황실은 제국 내 모든 영주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린다. 각 영지는 즉각 전쟁에 대비하고, 중앙에 지원할 병사를 준비······』

- 제국력 496년, 황실로부터 전 대륙으로 전파된 서신 中



나는 기사였다.

그래, 과거형이다.

난 제국군의 기사였지만 오래 전에 퇴역했다.


- 은휼. 넌 더이상 제국군의 기사가 아니다. 그러니 조용히 살아라. 황실도 제국군도, 나조차도 신경 쓰지 않을 곳에서.


그래서 남부의 적당한 변두리 영지에 자리를 잡았다.

칼질로 제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기사라는 것들이 모인 제국군에서 생활했으니, 계속 칼밥을 먹기로 했다.


바로 경비대원이다.

이 변두리 영지엔 몬스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습격해왔고, 그런 영지에서 경비대원을 하는 건 꽤나 적성에 잘 맞는 일이었다.


물론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긴 했다.


몬스터들이 허구헌 날 몰려와 가난한 영지였기에 영주님에겐 제대로된 사병도 없었고, 오로지 경비대뿐이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정착한지 몇년이 지나지 않아 내 조장이 죽어서 난 경비조장이 되었고, 또 몇년 뒤엔 경비대장이 몬스터와의 전투 중에 전사해버렸기에 내가 새로운 경비대장이 되었다.


제국군의 기사였을때부터 퇴역한 이후의 경비대원 생활까지.

솔직히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고 생각한다.

내가 겪은 일들로만 병법서 하나 써도 될만큼.

하지만 이런 일을 겪을 줄은 몰랐다.


“피륙을 쫓아 움직이는 굶주린 괴물들. 이런 몬스터 본 적 있으십니까?”


나와 함께 보초를 서던 호크가 물었다.

사실 대장 쯤 되면 보초를 서지 않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부러 내가 일선에 나서고 있었다.


“아니. 나 또한 지금껏 한번도 본적 없는 몬스터다.”


제국군은 저런 몬스터들과 사투를 벌였다는 거겠지.

황실에서 내려온 서신은 전 대륙에 널리퍼졌고, 나 역시도 영주님께 들어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 서신에 따르면 전선은 북부에서 동부에 형성되었을 것이다.

전선과 한참 떨어진 이곳에 몬스터가 다다랐다는 건, 전선이 무너졌다는 소리일테고.


“······어이가 없군.”


난 성벽 위에 선 채로 흉벽 너머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충격적인 몬스터들은 지금 이곳에 없었다.

어제 실컷 인간 고기를 뜯던 괴물들은 전부 어디론가 떠나간 것이다.


“해가 뜰 때가 되니 사라졌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호크가 말했다.

그래, 이놈들은 동녘이 밝자 순식간에 도망쳤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숲의 어둠 속으로, 산의 적막 속으로.


“주위에 아직 있을까요?”

“다람쥐도 도토리가 어딨는지는 기억한다. 저놈들이 어지간히 멍청한 게 아니고서야 우리의 위치를 기억하고서, 지금도 주위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을 지도 모르지.”


내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영지를 둘러싼 지형 어딘가에서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포효 같기도, 비명 같기도 한 괴성은 끔찍한 하모니를 연주해내고 있었다.

쇠가 서로 긁히는 것만 같은 그 불협화음에 몸이 절로 떨렸다.


저놈들이 얼마나 굶주렸는지 잘 알기에, 저들이 이곳을 떠났다고 마음 놓을 수 없었다.

어제 이 성벽 가까이까지 왔던 병사들과 기사의 시체.

그들의 시체는 시체라 칭하기엔 껄끄러웠다.


보통 뼈에 살점 몇 조각 붙어있는 것을 시체라고 하지 않는다. 백골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남은 해골마저도 핏빛이었으니 백골이라 부르기도 애매모호했다.


“······눈알까지 파먹었군요.”

“두개골도 깨서 뇌까지 꺼내먹은 모양인데.”


그들은 기사를 붙잡자마자 꺾어버린 목에서 피와 척수를 맛봤고, 뱃가죽을 찢어 내장을 들어내었다.

살코기, 장기, 뇌, 안구, 그들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포식했다.

남은 것은 강아지가 실컷 뜯어먹고 뱉은 뼈처럼,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말라붙었을뿐인 뼈다귀였다.

호크는 답지 않게 침착함을 잃고 표정에 지금 그가 느끼는 역겨움이 드러났다.


난 그저 그 시체를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할뿐이었다.


잔반조차 남기지 않는 끔찍하리만치 올바른 저 몬스터들의 식습관을 생각해보면, 제 1 행동양식은 굶주림의 해소인 걸까.


그렇다면 사람만 먹진 않을 것 같은데.

가축까지 잡아먹는다면 우리의 식량 자급 가능성은 절망적으로 흘러가겠군.


호크는 내 시선을 확인하고는 물었다.


“대장님은 괜찮으십니까?”

“그럭저럭.”


놀랍긴 하지만 충격적이진 않다.

제국군이었던 시절에 전장에서 별의별 시체를 다 봤으니까.

······별로 좋은 건 아니겠지. 시체에 익숙하다는 거니까.


호크는 어떻게 그러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난 어깨를 으쓱거리곤 성벽을 내려가는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햇빛을 무서워하는 놈들이다. 우리에게 잠깐이나마 빛이 주어진 이상 그것을 허투루 써선 안되겠지.”


호크는 나를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난 말을 이었다.


“영주님께 새로 보고드릴만한 것 좀 찾아보자고.”





***





은휼은 대원들을 시켜 성문을 열었다.

몬스터의 습격을 지난 수십년간 견뎌온 성문은 저 괴물들의 두들김조차 막아내어줄 정도로 견고했다.


그 견고함만큼의 무게를 가진 성벽이었기에 몇 명의 장정이 달라붙어서 열어젖혔다.

은휼은 다른 경비대원, 해리와 함께 성벽 밖으로 나왔다.


“이건 좀 끔찍하군.”


성벽 밖으로 나오자, 위에서 내려다볼땐 잘 보이지 않는 광경이 보였다.


말라붙은 핏빛 손자국이 성벽에 가득했다.

한없이 어둡고 허기진 의지는 성벽 너머의 고기를 원했는지 하염없이 성벽을 긁어댄 것이다.


“······어째서 이런 손자국이 생긴 겁니까?”

“어젯밤에 그 괴물들이 계속해서 성벽을 긁어대더군. 바렌은 덕분에 오줌을 시원하게 지렸고.”


괴이하다. 핏빛 손자국이라니,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귀신의 이야기에나 나올 법하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었다. 손에 피와 내장 조각 따위를 묻히고 성벽을 긁어대던 것들은 분명히 우릴 노렸었다.


“대장님. 이건 마치 성벽을 타고 오르려던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 당연히 말도 안되는 짓이지만 말이야. 지능이 높진 않나보군.”


보여지는 상황 자체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지만, 생각해보면 지능이 높은 행동은 아니다.

못 넘을 벽을 앞에 두고도 저렇게 벽을 긁어댔다는 거니까.


은휼은 그즈음에 성벽에서 눈을 떼기로 했다.


아직 확인해볼만한 것들이 많았다.

늘어진 시체들엔 파리들이 군무를 추고 있었다.

하지만 코가 마비되도록 풍기는 피비린내와 시체 썩는 냄새와는 달리, 구더기의 먹잇감은 진작에 다른 괴물들이 독점해버렸기에 생각보다 파리는 많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봤을때 이상한 점은 기사가 아니라, 기사를 따라온 두 여자였다.

은휼은 두 여자의 시체, 정확히 말하자면 핏빛 해골과 그 위에 얹어진 옷, 가방 따위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뭐하시는 겁니까?”

“조사. 기사랑 붙어왔는데 무장이 너무 단촐해서, 오히려 무언가 있을 것 같군.”


손에 핏물과 무엇인지 모를 인체의 조각이 묻었지만 은휼은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뒤졌다. 호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두려움을 말하는 거라면 시체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진정으로 두려워 해야할 건 시체를 쌓아놓은 놈들이지. 더러움을 말하는 거라면 지금은 더러운 걸 피하기 적절치 못한 상황이니까.”


해리는 이제 거의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나름 조장이라는 녀석이 그리 비위가 약해서야.


그때 은휼은 사망한 두 여성의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무언갈 발견했다.

피에 젖어서 잘 안보였지만, 수통의 물로 대충 씻어서 햇빛에 비춰보니 수정구슬인 것처럼 보였다.


“이건 마도구인데. 마법사였나보군. 하긴,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이들이면 지휘관과 참모였겠지.”

“그게 마도구입니까? 생긴 건 그냥 구슬 같은데······ 전 처음 봅니다. 대장님은 마도구를 본 적 있으십니까?”

“여러번.”

“······비싸다 못해 암거래하면 목이 날아가는 마탑의 마도구를 여러번 봤다고요?”

“어쩌다보니.”


해리는 은휼이 마법사인지 아니면 도둑 길드의 마스터 쯤 되는지 의심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마도구는 제국군 소속 기사였던 시절에 몇 번 봤었다.

그야 제국군엔 마법사도 있고, 마법사랑은 지독한 인연이 있으니까.


물론 자랑스럽게 말할 법한 과거는 아니었다.

기사라는 단어는 휘황찬란한 갑옷을 두른 멋진 검사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상은 전쟁병기에 불과할 뿐이니까.


“마법사가 둘이나 붙어있을 정도의 기사면 필시 제국군의 거물급 인물이겠지. 이제 확인해보자고.”


두 마법사에 비하면 비교적 성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망한 기사의 시체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기사의 시체와 소지품, 그러니까 갑옷과 검을 비롯해서 꽤나 무게가 나가는 것들을 한번에 짊어졌다.

그러자 해리가 물었다.


“도와드릴까요?”

“됐어.”

“무거우실텐데······”

“너한테 맡겼다가 토 치우고 싶진 않다. 그리 무겁지도 않고.”


소지품을 성벽 가까이로 옮겨와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옆에서 해리가 물었다.


“뭐가 있긴 할까요?”

“잘은 몰라도 분명 큰 거 하나 쯤은 들고 있을 거다. 제국군의 기사단장급은 되어보이는 인물이니까.”


해리는 비관적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가 있긴 할까.

갑옷과 검 따위의 단단한 재질이 아닌 옷이나 가방 따위는 뜯어먹히던 도중에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찢어지고 피에 젖어버렸으니까.

하지만 은휼은 반쯤 확신을 가지고 뒤적거리고 있었다.

보통 이쯤에 넣어둘텐데.


“찾았다.”


해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정말 있습니까?”

“그래. 이거다.”


은휼이 내민 것은 피에 젖은 원통형 물건이었다.

그는 그것을 손바닥에 통통 내려치더니, 그 뚜껑을 열어 안에 있는 양피지 하나를 꺼냈다.


“작전 하달서. 기사단장급 인물들이 하달받는 작전 하달서는 단단히 봉인되어있거든.”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어쩌다보니.”


뭐 이렇게 아는 게 많아. 해리는 원래도 그랬지만 그의 대장이 참 불가사의한 인물임을 깨달았다.

한편 은휼은 양피지를 펼쳐보았다.


“쯧. 그래도 피에 젖긴 했군. 하긴, 처음 읽을 때 봉인을 한번 풀었을테니 헐거워져있었나보군.”


그래도 읽어볼만한 것들이 있었다.


“피에 젖어서 중간부턴 읽을 수 없지만 분명 작전하달서가 맞군. 군 원수 한카르 스타셰이드의 직인까지 찍혀있어.”

“저, 정말입니까? 뭐라고 적혀있습니까?”

“음······”


- 본 서류는 약식으로 작성한다. 


대부분의 기사단과 마법사단이 전멸. 

북부로부터 동부까지 길게 이어지던 전선의 유지는 더 이상 불가능함을 통보한다. 

따라서 나 한카르 스타셰이드는 현재 생존 중인 모든 지휘관에게 병력을 통솔하여 즉각 전장을 이탈할 것을 명령한다.


최상위 지휘부는 새로운 전략을 모색할 것이며, 이를 위해 모든 잔존 병력이 무사히 후방으로 이동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최종집결지는 수도이나, 현재로선 집결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병력의 보존을 우선시하여 후퇴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또한, 후퇴 도중 민간인의 구호는 그 행위로부터 비롯될 위협인······

[피에 젖어 보이지 않는다.]


“······제국군이 패망했다는데.”

“예?”

“기사단과 마법사단이 대부분 전멸······ 제국군은 확실히 패배했군.”

“그, 그게 말이 됩니까?”


은휼은 양피지를 꿰뚫을듯이 노려봤다.


설마했던 게 사실로 다가왔다.


제국군이 패배했다.

산 하나를 베어가르는 소드마스터 한카르와, 지평선을 불꽃으로 물들이는 대마법사 뮤렐이 속해있는 제국군이 패배했다.

도대체 저 밖에선 무슨 일 있었던 것이지?


적들은 그래봐야 사람 물어뜯는 괴물일 뿐이다. 괴력을 지닌 것도 아니고, 무서운 능력이라고 해봐야 압도적인 수효 정도.


······제국군이 패배했다면, 그런 괴물이 도대체 몇이나 있는 거지?


이상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하다.

일단 그토록 강대한 제국군이 무너졌다는 것부터 이해가 안가지만, 마음에 더욱 걸리는 것은 작전하달서에서 피에 가려진 뒷부분이었다.


- 또한, 후퇴 도중 민간인의 구호는 그 행위로부터 비롯될 위협인······


민간인의 구호에서 비롯될 위협?

보통 후퇴 작전에선 병력의 보존을 우선시한다면, 민간인의 구호를 우선순위로 두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 문장은 그런 맥락이 아니었을 것 같다.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





영주님께 보고를 드리고 오는 사이에 태양은 착실히 그의 귀갓길을 따라 지평선을 향해가고 있었다.


난 다시 성벽으로 향했다. 호크는 날 기다렸는지 오자마자 저 먼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누가 오고 있습니다.”


성벽 위에 올라 호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과연 마차 하나와 사람들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지평선부터 이곳까지 늘어진 시체들을 보곤 멈칫거리기도 하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피난민인 것 같은데.”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운이 좋은 자들이군. 밤에 도착했다면 어제 기사처럼 되었을텐데.”


아직 태양은 하늘에 여실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햇빛이 있는 동안에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밤낮의 차이가 피난민의 생사를 가르는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호크가 물었다.


“영주님께선 피난민을 계속 받으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영지 내 식량 비축량이 여유롭지 않긴 하지만, 피난민이 들고 올 정보는 그에 못지 않게 유의미할테니까.”


정보가 전해지는 데엔 시간이 필요하다.

가장 널리 쓰이는 정보의 전달 방식이 누군가 편지 들고 말을 타서 달리는 거니까.

그렇기에 우린 저 괴물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했다.


“전 대륙에 전해진 황실의 서신에 따르면, 이 괴물들이 처음으로 나타났던 곳은 북동부다. 그리고 북부와 동부로 확산되었지.”


일단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의 확산이 북동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그것은 황실으로부터의 서신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두번째로 알게 된 것은, 북부에서 동부까지 형성되었던 전선이 무너졌다는 것.

따라서 제국군은 전 병력의 후퇴를 결정했고, 어제 기사가 죽은 꼴을 보니 그 후퇴 작전마저도 원활히 수행되진 못했다는 사실.


돌아가는 꼴이 난장판이었다.

기사로서 겪었던 어느 전쟁터와 비교해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동부 전선이 무너졌다고 생각해보면, 지금 제국의 동부는 완전히 난전 상태일 거다. 뒤죽박죽이겠지. 누군가는 버티고 누군가는 도망쳐올 거다.”


난 흉벽에 기대듯이 팔을 올리고 말했다.


“부디 저들이 그 난전 상태의 동부에서 괴물을 조우하고 살아온 이들이길 빌지. 그래야 쓸만한 정보를 들고 있을테니까.”


피난민들은 어느새 성벽에 가까이 다가왔고, 내 지시에 따라 대원들은 성문을 열었다.


열린 성문 사이로 사람들과 마차가 들어오고, 난 그들에게 다가갔다.


“잠깐 정지.”


마차는 내 지시에 따라 멈췄고, 마차 주위의 사람들 중 하나가 물었다.


“여, 여긴 안전합니까?”

“아마도. 왜 그러지?”


그는 그 말에 감격하며 외쳤다.


“살았다. 살았어!”


다른 이들 역시 몸에 힘이 빠지는지 축 늘어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중에서 척 보기에도 확연히 뚱뚱한 자가 말했다.


“저흰 그 몬스터들이 습격한 마을에서 간신히 도망쳤습니다. 그 괴물들을 본 적 있으십니까?”

“이 앞에 시체들이 왜 늘어져 있겠나.”

“제기랄, 그래도 여긴 안전한 것 맞지 않습니까?”

“너희들이 온 곳보단 안전할 거다. 거긴 상황이 어땠지?”

“아, 밤에 갑자기 괴성이 들리더군요. 살면서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괴성이 말입니다. 그러다가 비명도 들리는 겁니다. 창밖을 내다봤더니 그 붉은 눈을 한 괴물들이 마을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그 골목길을 가득 메우고 달려오는 놈들의 모습은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습니다. 사람과 그리 다르지도 않은 모습인데, 서로 밟고 밟아서 담벼락을 넘고, 지붕 위를 오르고······”

“용케 살았군.”

“보자마자 마차를 타고 달렸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다른 주민들은······”


죄다 죽었겠지. 저들의 포식은 예외를 두지 않는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경비대원 잭과 함께 그들의 마차와 짐을 수색했다.


그런데 마차에 누워있는 자가 있었다. 천을 몸에 덮은채로 덜덜 떨고 있었다.


“이 자는 왜 이러지?”

“아, 벤셔는 중간에 갑자기 열이 나서 말입니다. 병이라도 걸린 건지······ 벤셔, 괜찮나?”

“괘, 괜찮습니다.”


잭은 벤셔가 몸을 떠는 것을 지켜보더니 말했다.


“열병인가. 이건 사제님께 데려가야겠습니다만.”

“마을에 사제님이 계십니까? 잘 됐습니다! 벤셔, 금방 치료 받을 수 있겠어!”


신성력으로 대부분의 병은 치유가 된다.

전염병 따위를 걱정해야할 시대는 이미 수십년 전에 끝났었다.

그러니 이 자도 그냥 사제님께 데려가면 되는 거긴 한데······


“잠깐.”


난 지나가려던 마차를 잡아세웠다. 그들을 인솔하던 잭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언가 불안한 감이 든다.


“그냥 병자입니다. 아무런 문제 없어보입니다만.”

“대장님?”

“왜 그러십니까?”


대원들은 무엇이 이상하냐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딱히 이상할 건 없긴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확인해볼 게 있다.”


벤셔가 덮고 있는 천을 치웠다. 그는 상의를 벗은 상태였는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난 그의 어깨에 무언가 이상한 걸 확인하고, 그의 몸을 일으켜세웠다.


“······”


그의 어깨 뒷쪽에 선명한 이빨 자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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