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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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탈
작품등록일 :
2024.08.06 15:26
최근연재일 :
2024.09.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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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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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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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이, 소년, 어른(3)

DUMMY

사람의 정신은 얼굴에서 드러난다.

슬픈 사람은 울고, 화난 사람은 얼굴을 찌푸린다.

행복한 사람은 잘 웃고, 미치광이는 언제나 웃는다.


바렌은 16세 소년이다.

몸은 어른과 비교했을 때 약간 말랐을 뿐 충분히 소년티를 벗을 만큼 자랐지만, 얼굴은 앳된 티를 가지고 있었다.

즉 그의 정신은 앳된 얼굴만큼 아직 미성숙한 소년이라고 봐도 되었고, 그런 이는 보통 경비대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멸망해가는 세계의 경비대원으로는.


“······아.”


바렌은 의자에서 눈을 떴다.

교대하고 나서 잠깐 쉬려고 앉았다가 졸아버린 듯하다.

몸을 일으켜곤 입가에 흐른 침을 닦고서 멍하니 있었다.


푹. 창을 찌르는 감각. 어제, 먹구름 잔뜩 끼었던 하늘 아래 대낮의 전투에서 찔렀던 창의 감각이 손끝에 생생하다.


잭 조장님이 여태껏 가르쳐주었던 대로 창을 찔렀다. 눈을 찌르려고 했다. 그래야 뇌를 부숴서 괴물을 죽일 수 있으니까.


그러나 빗나가버린 창은 목을 찔렀다.

바렌이 일격에 처리하지 못한 괴물에게 한 피난민은 따라잡혔다.

그 피난민은 목에 창이 대롱대롱 꽂힌 그 괴물과 엎치락뒤치락했다.

그 사투에서 피난민은 물리고 말았다.


“하아······”


창으로 살코기를 찌르는 감각이 지독하게 혐오스럽다.

그래서 그 전투를 떠올리기 싫다.

하지만 창을 적중시켰다면 그 피난민이 물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에.

그 전투를 한없이 떠올리고 있다.


“또 밤이네.”


대장님은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다.

정말로 그 괴물들이 성벽을 넘는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까.


스쳐지나가는 그 피난민의 얼굴 때문에 바렌은 두려워 몸을 떨었다.


1년차 신입 경비대원의 삶은 너무나 어렵다.




***




영지 내엔 각자의 영역이 정해져 있다.

대장장이 노인은 저기 언덕 위의 집에 살고, 여관 아주머니는 당연히 여관에서 산다.

사과 파는 아저씨는 시장 바로 옆에 살고, 영주는 영주성에 거주한다.


그러나 영지에 자신의 영역이 없는자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피난민이다.


터전을 버리고 이곳으로 도망쳐온 자들 수십에서 수백을 수용해줄 공간은 마땅치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피난민 수용을 위해 마련된 공간에서 합숙한다.


교회나 빈 창고, 혹은 광장에 만들어진 가건물 따위에서 말이다.


4조 조장 해리는 바렌과 함께 광장의 가건물로 향하며 말했다.


“대장님이 피난민 관리에 더욱 힘을 쓰라더군. 그래서 2조 중에 너를 포함해 몇 명을 뽑아서 이곳에 배치했다.”

“왜죠?”

“우린 성벽 안에 갇혔으니까. 그러면 성벽 밖도 신경 써야 하지만, 안을 가장 많이 신경 써야 하거든. 수성전이 원래 그래. 내부 분열이 생기면 곧바로 무너지는 게 굳게 닫힌 성이거든.”


그들이 향한 광장에 보이는 것은 가건물이라 하기도 초라했다.

비를 막을 수는 있는지 의심되는 구조물은 그야말로 나무와 천막을 아무렇게나 뒤섞어놓은 것 같았다.


게다가 사람이 몰리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오물 처리다.

그래서 해리는 그의 코에 닥쳐오는 냄새에 한없이 표정을 찌푸렸다.


“젠장, 어쩔 수 없는 건 알아도 참기 힘들군.”


4조 조장 해리는 개인 포크를 상시 구비할 정도로 깔끔을 떠는 인물이다.

물론 조장인 만큼 참아낼 줄도 알지만.


“얼굴을 익혀둬. 괜히 피난민들이 어슬렁거리다가 일 터지면 귀찮아지거든. 서기관님이 작성해둔 서류에 총인원수랑 이름, 출신지 같은 거 다 적혀있으니까 외워두고.”

“옙!”

“뭐, 넌 대가리는 비상하니까 이런 건 잘하겠지. 그럼 수고해라.”


해리는 떠나가고, 바렌은 덩그러니 피난민들 앞에 놓였다.

그는 서기관이 작성한 서류를 읽으면서 분주히 돌아다녔다.

이름을 외우고, 얼굴을 외우고, 출신지를 외우고, 인원수를 확인하고.


바렌은 이 괴물과의 전쟁이 참으로 많은 참상을 낳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바렌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들을 마주쳐버렸다.


“저, 저기······ 이 아이 아버지는 지금 어디 있죠?”


웬 여인이 바렌에게로 다가와 물었다. 그녀의 오른손엔 여자아이의 작은 손이 붙들려있었다.


“아빠 어디 있어요?”


아.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대낮의 전투. 물려버린 피난민. 그들의 동행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가족인가 보다.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여자아이는 바렌에게로 와서 물었다.


“아빠 어디 있는지 알아요?”


이들의 아버지는 아마 지금 지하감옥에 있을 것이다.

다급하게 공성전을 준비하던 날에 그 피난민은 투옥시켜뒀으니까.


“무, 물리면 똑같이 괴물로 변해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설마 그이를 끌고 간 게 그래서인가요?”


바렌은 무어라 답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 남자는 자신의 창이 빗나가서 물린 것이기도 했기에, 설령 이 여인이 그 사실을 모르더라도 목소리가 죄책감에 짓눌려 나오질 못했다.


바렌의 입이 우물쭈물하자 여인은 아예 바렌의 손을 덥석 잡고서 물었다. 

그이가 어디 있느냐고. 바렌은 당황해서 얼버무리고 말았다.


“저, 저는 잘 모릅니다!”


바렌은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일과 중에 멀리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은 점점 바렌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삶의 터전을 버리고 온 피난민들은 이 타지에서 극도로 차오른 불안감 속에서 떨고 있었고, 그렇기에 소년 경비대원을 붙잡고 질문을 쏟아대기 시작했다.


“이, 이대로 괜찮은 겁니까?”

“괘, 괜찮을 겁니다!”

“식량 배급이 너무 줄어들었는데 이러다 끊겨버리는 거 아니에요?”

“피난민이 늘어난 만큼 배급량을 조정 중일 뿐입니다!”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자, 작은 소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으니 안심하시고—”


서류에 적혀있던 대로 대답했지만 어느 순간부턴 질문과 대답은 의미가 없었다.

밤이면 들려오는 괴물들의 소리, 분주히 뛰어다니는 경비대원들.

줄어드는 배급량, 늘어만 가는 피난민.

피난민들은 겁에 질려있었고 제 할 말만 쏟아내고 있었다.

쏟아지는 문장 속에서 바렌은 질식하기 직전이었다.


원래 군중이 몰리면 검을 뽑아 들어서라도 제지해야 하지만, 신입 대원 바렌은 그런 것까진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바렌은 자신을 도와줄 다른 대원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조장이든 대원이든, 아무나.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그 누구보다 든든하고 또 무서운 사람이었다.


“대, 대장님!”


마침 저 멀리서 경비대장 은휼이 걸어오고 있었다.


“음?”


밤인 것을 감안해도 왜인지 모르게 은휼의 전체적인 실루엣이 어두웠지만, 그 체격을 보니 분명히 은휼이었다.


바렌의 외침에 군중 속 몇 명의 시선이 은휼에게로 돌아갔다. 어느새 은휼은 바짝 다가왔고, 그를 쳐다본 이들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은휼은 피와 내장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의 실루엣은 검붉게 말라붙어버린 피 때문에 어두웠던 것이다.


“대, 대장님?”


특히 그의 어깨에 달라붙어 있는 소장인지 대장인지 모를 장기가 압권이었다. 

그 충격적인 모습과 피비린내에 군중은 순식간에 바렌과 은휼로부터 뒷걸음질 쳤다.


“무슨 일이지?”


은휼은 상황을 살폈다.

그의 시선은 방금 괴물 몇 마리 썰어버리고 온 만큼 살의 가득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온몸에 가득한 핏물과 차가운 시선, 그리고 은휼 특유의 무표정.

게다가 검지손가락으로 검자루를 톡톡 두드리는 그의 습관까지. 

피난민 중에 그와 눈이 마주친 몇몇은 물러서다가 주저앉기도 했다.


특히 은휼은 바렌과 가장 가깝던 여인과 아이를 빤히 쳐다봤다. 그 사람들이군.

어쨌든 보아하니 군중이 몰렸던 것 같다. 은휼은 생각을 마치고 말했다.


“소란은 자제해주길 바란다.”


누군가는 ‘예’라고 답하기도 했다.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냥 굳어있었다.


“이 영지는 안전하고, 영주님은 다수의 생존을 위해 힘쓰고 있다. 그러니 당신들도 공동의 안전을 위해 힘써주길 바란다. 이상.”


은휼이 할 말을 마치자 군중은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순순히 멀어지는 그들을 바라보며 은휼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되게 말을 잘 듣는군. 나한테도 달려들어서 꼬치꼬치 캐물을 줄 알았는데.”

“그······”

“음? 아, 바렌. 나 좀 따라와라. 갈 곳이 있다.”

“그, 대, 대장님?”


바렌의 검지손가락이 그의 어깨 위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체에서 방금 뽑아낸 듯한 장기가 얹혀있었다.


“아.”


은휼은 제 어깨 위의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 그게 뭡니까?”

“······방금 전투가 있었다. 성벽 밖에 소규모로 찾아온 다섯 마리를 처리했지. 그 과정에서 괴물 한 마리를 반으로 갈라버렸는데, 그때 뒤집어쓴 모양이다.”

“여태껏 모르고 계셨습니까?”

“아무도 말을 안 해주고 멀리 도망치더라고. 어쩐지 잭 그 자식이 낄낄 웃더라니. 역시 그놈보단 호크를 중히 써야겠어.”


은휼은 한숨을 쉬고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나직이 말했다.


“······무엇보다 피냄새가 너무 익숙해서 말이지.”





***





“어디 가는 겁니까?”


바렌은 은휼을 따라가고 있었다. 은휼은 어째서인지 대답해주지 않았다.

바렌이 보기에 지금 은휼이 가고 있는 곳은 지하감옥이었다.

그가 빗맞힌 창 때문에 물려버린 피난민이 수용되어 있을 곳이었다.

바렌은 발걸음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지만 은휼은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기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하감옥에 들어선 바렌은 꽁꽁 묶여있는 피난민, 해들러와 잭을 만나볼 수 있었다.

잭은 사이에 창살을 두고 해들러 앞의 의자에 앉아 턱수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저, 저는 대체 왜 여기 있는 겁니까?”

“해들러. 난 열 두 번쯤 말해줬수. 당신은 곧 괴물이 될 거라서 여기 갇혀있는 거라고. 어, 오셨습니까, 대장님?”


은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판단력 저하가 좀 있군. 기억력 저하도 있는 것 같고. 몬스터화가 진행될 땐 정신에 문제가 생긴다는 거겠지.”

“예. 물려서 괴물 된다고 열 번 넘게 말했는데 또 이러고 있습니다.”


확실히 해들러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온몸이 완전히 밧줄로 포박된 그의 어깨엔 물린 자국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어깨를 중심으로 터질듯이 부풀어오른 보랏빛 혈관이 목까지 퍼져있었다.

또한 그의 숨은 거칠었고 눈의 실핏줄이 거의 다 터져있었다.

은휼이 말했다.


“시기상 오늘 밤 안에 변하겠어.”

“그럴 것 같습니다. 근데 어깨에 그거 치우셨습니까?”

“치웠다. 어쩐지 낄낄 웃더라니.”

“잘 어울리더만 그러십니까.”


태연하게 대화하는 잭과 은휼에게 변해버리기 직전인 해들러가 소리쳤다.


“처자식이 있습니다. 얼굴이라도 보게 해주세요!”


그 말에 바렌의 몸이 흠칫 떨렸다. 이 사람의 처자식을 안다. 아까 말을 걸어왔던 여인과 아이.

잭은 여전히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동안 더럽게 바빠서 겨우 이런 일 처리할 시간도 없었단 말이죠. 지금이라도 데려오는 게 좋겠습니까?”


바렌은 은휼을 쳐다봤다. 은휼은 바렌의 간절한 눈길을 읽었다.

벤셔의 경우와는 상황이 달랐다.

이제 괴물에게 더 실험을 해서 얻어낼 것도 없었고, 이 사람은 아직 변하기도 전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피난민들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때였다.


사람은 그리 논리적이지 못하다.

단순히 갈기갈기 찢긴,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는 괴물의 시체일 뿐인데 그 얼굴에서 생전 지인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릇된 원한을 품을 수 있다.

만약 이 자의 남은 동행인들이 이 영지 내에서 분란을 조장하고, 테러라도 자행한다면?

공성전에서 수성측이 패배하는 주된 이유는 내부의 분열이다.

은휼이 피난민들의 관리에 더욱 힘쓰라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은휼은 생각해둔 것이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잭이 해들러에게 고개를 돌렸다.


“해들러, 이거 계속 말했던 거니까 이번엔 귓구녕 열고 제대로 들으쇼.”

“예?”

“당신은 곧 괴물로 변할 거요. 흡혈귀에게 피를 빨린 사람이 흡혈귀로 변해버리듯, 당신은 괴물에게 물려 그들과 똑같이 변할 거란 말이요.”

“예, 예?”

“당신에겐 시간이 얼마 안 남았수. 그러니 내 말 듣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결정하슈.”


잭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괴물로 변해가는 모습을 딸아이에게 보여주고 머리가 터져 죽을 건지, 아니면 여기서 그냥 죽을 건지.”


멍하게 잭을 바라보던 해들러는 어떠한 단어에 정신이 조금은 돌아온 것 같았다.

그의 멍한 시선이 바닥을 향했고, 곧이어 다시 잭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부인과 딸아이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못하고 죽을 순 없습니다.”


됐군. 은휼은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며 바렌에게 말했다.


“바렌.”

“예?”

“그때 너는 창을 들고서 망설였다. 그래서 저 자는 물리고 말았지.”


바렌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것은 지금도 그를 괴롭히는 실수였기에.

하지만 은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질책하려는 게 아니다. 베테랑이라도 실수할 수 있었던 상황이다. 창을 눈에 정확히 꽂는 게 얼마나 힘든데 말이지.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건······”


은휼은 제 품에 손을 넣어서 무언갈 꺼내었다.


“네 실수를 마주하라는 거다.”


그가 품에서 꺼내 바렌에게 건넨 것은 단검이었다.


“네가 해라. 네가 이 자의 처자식을 데려와. 그들의 작별을 지켜봐라.”

“······”

“그러고 나서, 네가 끝내라.”


바렌은 멍하니 단검을 받고선 은휼을 쳐다봤다.

언제나 대장의 눈빛은 차가웠고, 냉정했다.


“할 수 있겠나?”




***




잭과 은휼은 지하 감옥의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한 건물의 벽에 기대어있던 잭은 해들러의 처자식이 바렌을 따라 들어갔던 지하 감옥의 입구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 아빠가 미안하다. 아빠 어디 가는 거야, 여보 우리 어떡해요, 이런 얘기 하지 않겠습니까? 대충 여자애는 울면서 뛰쳐나올 거고, 부인이 잡으러 따라나올 겁니다.”

“그러겠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숱하게 봐오지 않았습니까.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해도.”


은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잭은 기다림을 참기 힘든듯 한참이나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다 말했다.


“슬슬 시간 됐겠는데.”


그의 말대로, 지하감옥의 입구에서 여자아이가 울면서 뛰쳐나왔다. 그 뒤로 얼굴을 감싼 여인이 힘없이 따라 나왔다.


“보쇼. 딱 내말대로잖수.”

“슬슬 들어가지.”


은휼은 잭과 함께 지하감옥으로 들어섰다.

그곳엔 여전히 밧줄로 묶여있는 해들러와, 그 앞에 앉아있는 바렌이 보였다.


“뭐야, 질질 짜고 있을 줄 알았는데.”


잭의 말처럼 바렌의 표정은 약간 어두울 뿐 담담했다.

그는 손에 쥐인 단검을 만지작거리며 해들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들러의 상태는 이제 정말로 좋지 않아 보였다.


결국 시간이 지나, 그는 변해버리기 시작했다.

게거품을 물고 온몸이 꺾일 듯이 발작하더니, 갑작스레 괴성을 내질렀다.

그 붉은빛 안광 속에 해들러라는 존재는 더 이상 없었다.

그저 괴물만 남았을 뿐이었다.


“끝내라.”


은휼이 말했다. 바렌은 고개를 끄덕이고 포박당한 해들러의 머리카락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는 단검을 그의 관자놀이에 가져다 댔다.

은휼은 바렌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렇게 찌르면 뼈에 막혀서 잘 안 들어간다. 약간 사선으로 틀어서 박아넣어야 해.”

“······”

“한번 힘을 줘서 거죽을 뚫으면, 맥 없을 정도로 쉽게 들어간다.”


푸욱, 바렌은 말없이 단검을 찔러넣었다. 순식간에 단검에 뇌를 침범당한 괴물은 허물어졌다.

바렌은 그 괴물이 죽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제 눈을 손으로 가렸다.


“······대장님은 이런 것도 쉽게 할 수 있는 건가요?”

“불행히도.”


당연하게도, 따위의 답이 돌아올 줄 알았던 바렌의 몸이 흠칫 떨렸다. 

은휼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바렌의 옆에 다가와 말했다.


“검은 철덩이라서 무거운 게 아니다.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무거운 거지.”

“······”

“앞으론 많은 책임을 지게 될 거다.”


전쟁이 시작되면 많은 사람이 죽을 테니까.


“책임감을 가져라. 병사의 검은 책임감을 가질 때 비로소 날카로워진다.”


바렌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단검을 은휼에게 내밀었다.

방금 솟아 나온 피가 단검에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은휼은 그 단검을 도로 바렌에게 되돌려주며 말했다.


“선물이다. 가져라. 그리고 언제나 기억해라. 네 실수를.”


바렌은 그 단검을 챙겼다. 그리고는 지하감옥을 떠나갔다.

잭과 은휼 역시 지하감옥을 나와 멀어지는 바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바렌을 좀 집중 관리하시는 것 같습니다.”

“싹수가 보여서.”


싹수가 보인다. 경비대원은 수가 많지 않고, 하나하나의 인재가 소중했다.

특히 바렌은 키워볼 법했다.

정신이 유약하지만, 그것만 고치면 될 녀석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강력한 정신 개조 방법을 쓴 것이고.


“창에 미숙해서 실수를 한 순간에도, 최소한 목에 꽂아넣었어. 심지어 창을 잃은 뒤에도 검을 뽑아서 전투에 임했다. 열여섯살 애새끼한테 나올 담력은 아니지.”

“집어먹은 겁은 오줌이랑 함께 다 싸버리는 모양이요. 오줌싸개 자식.”


잭은 낄낄거리며 웃다가 물었다.


“대장은 열여섯살때 뭐하셨습니까?”

“과거 묻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깝군. 자연스러웠는데.”


은휼은 잭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칠까 생각하다가, 고민에 빠졌다.

난 열여섯살 때쯤엔 무얼 하고 있었지?


글쎄.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이를 세질 않아서. 그래도 그쯤이면······

지휘관이었겠군. 기병사단이었나.

은휼은 자신이 소년이었던 적이 있나 고민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 잭이 멀어져가는 바렌의 이름을 불렀다.


“어이, 바렌.”

“잭 조장님?”

“울고 싶을 땐 아무도 모르게 구석에 처박혀서 울면 되는 거다.”


바렌은 멍하니 잭을 바라보다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봐.”


바렌의 뒷모습엔 힘이 없었고, 비틀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왜인지 바렌의 주위에 달빛이 반짝거렸던 것 같다.

호크가 봤다면 저게 눈물인지 뭔지 알려줬을 텐데.

은휼이 실없는 생각을 할 때 잭이 물었다.


“바렌 저거 괜찮겠수?”

“뭐······”


잠깐 고민했다.

이 짓거리를 구태여 한 이유는, 바렌이 죄책감에 시달리는 게 보였기 때문이고, 동시에 피난민의 안정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바렌을 몰아붙였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세계는 착실히 멸망 중이니까.


“어른이 되어가는 거지.”

“좋은 거요?”

“보통은 안 좋더라고.”


멸망해가는 세계는 소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





영주님의 집무실엔 다양한 사람이 모여있었다.

은휼은 그 한복판에서 영주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린 고립됐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지.”


그는 피로한 눈두덩이를 짓누르며 덧붙였다.


“우리의 식량은 고갈되기 직전이지만 저들은 굶어 죽지 않는다. 오히려 우릴 잡아먹기 직전이라 잔뜩 신났을지도 모르지.”


그가 손가락 두 개를 펼쳐 올렸다.


“우린 두 가지 중에 선택해야 한다. 첫째, 이 성벽 안에서 버티는 것. 둘째, 대규모 피난.”


이제 영주는 은휼을 쳐다보며 물었다.


“무엇이 옳다고 생각하나?”

“······어느 쪽이든 선결과제가 있습니다.”


은휼이 말을 이었다.


“우리를 노리며 몸집을 불리는, 대낮에 우릴 습격해왔던 괴물들. 그놈들을 떼어놓지 않으면 우린 성벽 안에서 말라죽거나, 피난을 택하더라도 도중에 붙잡혀 결국엔 잡아먹힐 겁니다.”

“그래, 그거다. 언제나 핵심을 짚어주는군.”


영주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그의 입이 떨어지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인류가 마지막으로 버티고 있는 이 남부에서 최후의 인류로서 살아남으려면, 그놈들은 어떻게든 쳐 죽여야 한다. 그러니 우린 먼저 우리의 살코기를 탐하는 그 괘씸한 버러지들부터 처리한다. 은휼?”

“네, 듣고 있습니다.”


영주의 말에 따르는 그의 정령은 집무실의 공기를 가라앉혔고, 동시에 촛불의 크기를 키웠다.


“나랑 작전 좀 세우도록 하지. 저 빌어 처먹을 괴물 놈들을 토벌할 작전을.”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원고가 잘 안 써져서 늦어버렸습니다 ㅠㅠ 앞으론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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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6) +1 24.08.30 37 3 17쪽
17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5) 24.08.29 45 2 17쪽
16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4) 24.08.28 44 2 12쪽
15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3) 24.08.26 49 2 12쪽
14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2) 24.08.24 50 2 15쪽
13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1) 24.08.23 45 2 22쪽
12 3. 아이, 소년, 어른(7) 24.08.22 48 2 14쪽
11 3. 아이, 소년, 어른(6) 24.08.21 53 2 17쪽
10 3. 아이, 소년, 어른(5) 24.08.20 58 2 22쪽
9 3. 아이, 소년, 어른(4) 24.08.19 65 2 19쪽
» 3. 아이, 소년, 어른(3) 24.08.18 71 2 20쪽
7 3. 아이, 소년, 어른(2) 24.08.17 85 3 22쪽
6 3. 아이, 소년, 어른(1) 24.08.15 93 2 26쪽
5 2. 인류 최후의 기사(4) 24.08.14 96 3 21쪽
4 2. 인류 최후의 기사(3) 24.08.13 103 3 20쪽
3 2. 인류 최후의 기사(2) 24.08.13 106 4 21쪽
2 2. 인류 최후의 기사(1) 24.08.13 114 1 18쪽
1 1. 프롤로그 24.08.13 148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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