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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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탈
작품등록일 :
2024.08.0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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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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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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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이, 소년, 어른(4)

DUMMY

은휼은 영주와 이야기를 끝마치고 나왔고, 성 앞에선 잭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대련 한번 하지.”

“갑자기 말입니까?”

“너 아니면 실력 맞는 놈이 없어서.”

“니미럴, 실력 맞기는 개뿔. 내가 맞기만 하는구만.”


요즘 이 새끼 말투가 점점 더 껄렁해지는 것 같은데.


연무장으로 향하는 은휼을 잭이 뒤따랐다.


경비대원들이 단련을 하는 연무장에서 은휼은 적당한 훈련용 스틸 블런트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잭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넌 원래 검을 써.”

“음? 위험하지 않겠수?”

“상관없어.”


잭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제 검을 꺼냈다. 스르릉 소리가 위협적으로 울려 퍼졌다.


“바로 시작하지.”


잭은 곧바로 달려들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치켜졌던 검끝이 하강하며 일선을 그려낸다.

정석적인 내려치기.

은휼은 단순히 한발짝 물러나며 피했다.

그 간격은 닿을 것만 같으면서도 절대로 닿지 않는 찰나의 간격이었다.


“실력이 늘었군.”

“대장 목 한번은 따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요!”


멈추지 않고 다시 땅을 박차며 잭이 달려들었다.

연무장의 흙먼지가 피어오를 때 그의 검이 태양을 향해 올려 쳐졌다.

은휼은 이번에도 한 발자국만 움직여 검을 피해냈다.


“그 검으로 맞아주면 정말로 죽어서 말이지.”


은휼이 물러선 순간이었다.

잭은 검을 쥔 손을 바꿔 쥐며 찌르기 자세를 잡았다.

두 번의 일격 속에서 붙은 가속도에 더해 다시 땅을 박차자, 잭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은휼에게 달려들 수 있었다.


이제 검끝으로 찌른다. 잭의 전매특허인 깔끔한 찌르기가 날아들었다.

그 찌르기는 한때 전쟁터에서 더없이 많은 용병의 목숨을 거뒀던 찌르기이기도 했다.


잭의 검끝은 맹렬하게 은휼을 향했다.

그리고 은휼은 그제야 검을 휘둘렀다.


사선으로 몸을 옮긴 은휼은 날아드는 찌르기에 내려치기로 응수했다.

잭의 검끝은 은휼의 검신에 부딪혔고, 그렇기에 미끄러지며 궤도가 비틀리고 말았다.


완벽한 시기에 정확한 반격.


잭의 몸은 균형을 잃었고, 은휼은 사뿐히 발을 걸었다.

우당탕 넘어진 잭은 바닥에 엎어져서 흙먼지를 잔뜩 먹은 잭이 몸을 뒤집으며 투덜거렸다.


“대련하자더니 세 합은 너무한 거 아니요?”


한편 은휼은 쓰러진 잭을 신경도 안쓰고, 오히려 제 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녹슬었어.”

“뭐가 말이요. 실력이? 영주님한텐 안 녹슬었다고 하지 않았수?”

“안 녹슬었지. 겨우 몇 년 전과 비교한다면.”

“음?”

“그보다 한참 전. 내가 이 영지로 오기 전과 비교하자면 녹슬었다.”


마음이 녹슨 것인가. 아니면 그것 때문인가.

은휼은 훈련용 검에 비치던 얼굴을 바라보다가, 검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시발, 군인 시절엔 얼마나 괴물이었던 거요?”

“그때였으면 한합에 네 목을 날렸겠지.”


잭은 목을 만지작거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끔찍하구만.”


일어나서 흙먼지 묻은 옷을 탁탁 털던 잭이 물었다.


“그래서, 이런 시기에 대련이나 하자고 부른 거요?”

“대련은 그냥 확인 절차였을 뿐. 따라와.”


은휼은 또 설명해주지 않고 움직였다. 잭은 어리둥절해하며 따랐다.


그곳엔 말들이 모여있었다. 몇몇 말은 여물을 먹고 있기도 했다.


“말? 갑자기 웬 말이요?”


은휼은 말을 골라보다가 특히나 색깔이 검은 말 하나를 골랐다.


“이게 좋겠군.”

“대장 말이요?”


은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너도 하나 골라둬라.”

“음······”


잭은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일단 하나 골라봤다.


“저 갈기 뻘건 놈이 맘에 드는구만. 갈기가 내 턱수염처럼 멋져.”

“그래. 따라와라.”

“말 왜 고르는지 설명도 안 해주는 거요? 이번엔 또 어디 가는 거요?”


설명 없는 은휼이 향한 곳은 창고였다.

이곳엔 검과 창, 활, 화살, 그 밖에도 이런저런 전투용 물건이 놓여있었다.

검과 창이 가득 놓인 어두운 창고에서 잭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물었다.


“대장, 지금 우리 대체 뭐 하는 거요?”

“준비.”

“무슨 준비 말이요?”

“싸울 준비.”


은휼이 턱짓하며 말했다.


“맘에 드는 걸 골라.”


잭은 은휼의 진지한 눈빛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영주님이랑 작전을 짰다더니, 앞으로 빡세질 모양이요.”

“그래. 그 어느 때보다 더없이.”


잭은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검 하나를 집어들었다.

검 이곳저곳을 만지작거리던 잭은 검이 검집에 매끄럽게 뽑혀 나오고 또 들어가는 것을 보며 말했다.


“난 그냥 이 검 하나면 됐수.”

“좋다.”

“음? 근데 저거······”


잭이 가리킨 곳엔 확연히 고급스러운 갑주와 검이 있었다.


“저거 그 기사가 남기고 뒈진 거 그거 아니요?”


성벽 앞에서 죽어버린 기사의 물건을 회수해서 여기에 뒀던 것이다.

곧장 그것 앞으로 간 잭이 이리저리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오, 갑옷 안에 금화가 있군. 전쟁터에서 행운을 기원한다고 금화 넣어둔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진짜인갑수.”


잭은 그 금화를 꺼내들고선 빛에 비춰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웃음을 보고 은휼이 말했다.


“제국 금화군. 근데 제국마저 무너진 종말 상황에 제국 금화가 쓸모가 있을까.”

“뭘 모르시는군. 이런 걸 챙겨두면 언젠가 다 쓸데가 있는거요.”


금화를 소중히 주머니에 넣은 잭이 말했다.


“대장은 뭐 안고르슈?”

“이미 골라놨어.”

“음?”


은휼은 잭의 옆에 서서 기사의 갑주와 검을 바라봤다.

제국군 문양이 그려진 갑주와, 마찬가지로 제국군의 문양이 검자루에 각인된 검.


“이거 쓰시게? 욕심 많으시구만. 근데 갑옷이 맞으려나?”

“드워프제 흉갑이다. 드워프제 갑옷은 유연해서 체격 비슷하면 대충 맞지. 지금 그런 거 따질 때도 아니고.”

“난쟁이 놈들 기술이 그렇게 뛰어난가?”

“드워프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모르나? 얼마 전엔 석탄만 넣으면 굴러가는 거대한 차도 만들었다던데.”

“마차 같은 거요?”

“비슷하다던데. 정확히 본 적은 없어서 모른다.”


은휼은 잭과 대화하며 기사의 갑주를 들어올렸다.

익숙한 문양, 그리고 익숙한 형태.

제국군 지휘관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갑주다.

즉, 은휼이 사용하던 갑주와 거의 똑같이 생긴 물건이었다.


은휼은 천천히 그 갑주를 착용했다.

탈착마저 쉽게 만들어진 드워프제 흉갑은 손쉽게 제자리를 찾았고, 마치 제것처럼 몸에 안착했다.


잭은 갑주를 입은 은휼을 쳐다봤다.


마치 고귀한 핏줄처럼 보이는 새하얀 은발에, 흉갑이 잘 어울리는 거대한 체격, 그리고 제국군 문양이 그려진 갑주와 검.

무엇보다 사람 수없이 죽여본게 뻔한 음울한 눈동자까지.


이건 누가 봐도······


“기사 같구만.”





***





은휼은 또 아무런 설명 없이 성벽으로 향하고 있었고, 잭은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광장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엔 바렌이 있었는데, 하는 짓이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아르르르, 까꿍!”


어느 여자아이 앞에서 혀를 내밀고 얼굴을 괴물처럼 찌푸리고 있던 것이다.

잭은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다가가서 말했다.


“이 새끼는 일과 시간에 일을 안하고 놀고 있네. 게다가 무슨 세 살 애도 아닌데 까꿍 거리고 있냐. 열살은 먹었겠구만.”

“조, 조장님.”


바렌은 잭을 보고 화들짝 놀라더니 말했다.


“이름은 리엔이랍니다. 해들러 씨의 딸이죠.”


바렌은 뒷문장을 아주 작게 말했다. 리엔이 아비의 이름을 들을까 봐 그런 걸까.

잭은 리엔을 쳐다봤다. 표정이 음울했다. 그야 며칠 전에 아비가 죽었으니까.

친절한 사람이 되길 원하는 사람, 잭은 오늘 조금 친절 해보기로 했다.


“······까꿍.”


호크는 드워프 겨드랑이털이라고 칭하는, 은휼은 오크 사타구니털 같다고 일컫는 잭의 턱수염과 ‘까꿍’이 어우러지자 리엔은 그 흉측한 몰골에 살짝 미소를 틔웠다.


바렌은 표정이 풀어졌고 잭은 머쓱해서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때 리엔의 시야에 바렌과 잭 뒤에 서있는 은휼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의 흉갑은 햇빛을 찬란하게 산란시키고 있었고, 그의 손이 올려진 검자루는 검이 꺼내지지 않았음에도 무언가 엄숙한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었다.


리엔은 아직 동화를 좋아할 나이다.


황실이 반역 기사의 목을 쳐버리고 오러 기사를 죄다 제국군으로 복속시킨 이후로는 기사도와 관련된 낭만 소설이 거의 씌어지지 않았지만, 본디 동화란 옛것.


즉, 리엔은 낭만 소설에나 등장하는 옛 기사의 모습을 동화로서 기억하고 있는 아이였다.

그런 리엔이 봤을 때 은휼은 누가 봐도 기사의 모습이었다.

헤에, 입 벌린 리엔이 멍하니 은휼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아저씨는 기사예요?”


잭과 바렌이 고개를 돌려 그들의 대장을 쳐다봤다.

나 말하는 건가? 은휼은 가만히 리엔을 바라봤다.

어린아이구나. 해들러의 딸이라고 했지.

아니라고 대답하려고 할 때, 갑자기 리엔이 말했다.


“아니—”

“엄마가 기사는 다 죽을 거래요.”

“······뭐?”

“이건 천벌이랬어요. 황제도, 귀족도, 마법사도, 기사도, 제가 좋아하는 동화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전부 죽어버릴 거래요. 정말이에요? 정말 다 죽는 거예요?”

“음, 그게 말이지—”

“다들 우리 아빠처럼 떠나버리는 거예요?”


리엔의 어머니, 해들러의 부인은 상태가 많이 안 좋은 듯 했다.

은휼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건 뭐라고 답해줘야하지. 그래서 그냥 튀어나오는 말을 뱉었다.


“그럴 지도. 근데 난 안 죽을 건데.”


아니 뭔 답을 그따위로 합니까! 바렌이 눈빛으로 쏘아 보냈지만 대장에겐 닿지 않았다.

그때 리엔이 말했다.


“그럼 아저씨가 마지막 기사겠네요.”


은휼은 그 말을 듣고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기사라. 참 무거운 칭호군.


“자자, 리엔. 엄마한테 갈까?”


바렌은 리엔을 데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쳐 지나가는 바렌에게 은휼이 말했다.


“······바렌. 해들러의 아내를 잘 지켜봐라. 그 밖에도 피난민 중에 상태 안 좋은 사람들 잘 지켜봐.”

“네, 그러겠습니다.”


멀어지는 바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잭이 말했다.


“저 새끼는 일과 시간에 애랑 놀아주고 있네.”

“놔둬. 나름의 정신 관리일 테니까. 그런데 아까 네 표정은 도대체 뭐였지?”

“뭐 말입니까?”

“됐다. 끔찍해서 상상하기 싫으니까.”


시발······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던 잭은 은휼을 뒤따라가며 리엔의 말을 생각했다.


마지막 기사라.


잭은 과거를 숨기는 전직 제국군 대장에게 말했다.


“있잖습니까.”

“음?”


그들은 어느새 성벽에 가까이 다다랐다. 잭이 말했다.


“지금 제국군이 죄다 뒤져버린 상황이잖습니까?”

“높은 확률로.”

“그래, 제국군이 죄다 뒤져버린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소드마스터도 뒈졌어, 기사단장도 뒈졌어, 그뿐만 아니라 제국군 소속의 기사들이 속속들이 뒈져버렸어, 그러면 대륙에 기사가 몇 남았겠습니까?”


몇 명 남지 않았겠지. 오러 기사는 대부분이 제국군 소속이니까.

잭은 은휼을 따라 성벽 위에 오르며 껄렁한 말투로 말했다.


“근데 그 와중에 멀쩡히 살아있는 기사가 하나 있다면 어떻겠수?”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거지?”

“지금은 인류가 쌓아온 힘이 죄다 사라져버린 상황이요. 오러 같은 거 있잖수. 그런 게 전부 유실되었다는 거요.”


성벽에 다 올라온 잭은 저 멀리 바라보는 은휼에게 말했다.


“만약 아직 살아남은 기사가 있다면, 살아남기 위해선 그 기사 옆에 붙어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잭은 떠보듯이 말했고 은휼은 그저 먼 풍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기사가 지금껏 인류가 쌓아온 힘을 가진 마지막 인간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요. 바꿔 말하면······”


잭은 은휼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오러란 마법과 함께 제국군의 상징. 동시에 제국의 힘이고, 인류의 힘이었다.

즉, 대륙의 마법사와 기사가 거의 다 죽어버린 시점에서, 그런 기사가 있다면······


“그 기사가 현존 최강의 기사일지도 모른다는 소리요.”


은휼은 잭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오러, 발현시킨 지 얼마나 오래 지났던가.

기사, 그 때의 기억을 잊고자 얼마나 노력했던가.

은휼의 상념이 스쳐 지나갈 때, 잭은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내더니 튕겨주었다.


팅! 잭이 꺼내서 튕긴 것은 아까 창고에서 건진 금화였다. 일광을 황금빛으로 반사하며 날아온 잭은 은휼의 손바닥에 안착했다.


“뭐지?”

“의뢰비.”

“무슨 의뢰?”

“난 뒈지고 싶지 않아서 말이지. 내가 생각하는 현존 최강의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거요.”


잭은 흉벽에 기대더니 말했다.


“제대로 좀 하란 소리요. 대장 전투도 잘하고 저번에 연설도 잘하고 다 좋수. 근데, 대장 눈빛이 맛이 갔어.”

“그랬나?”

“군인 때려치울 때 많이 좆같았수?”

“왜 물어보지?”

“보쇼. 내가 대장을 봐온 요 2년 동안 마을에 어쩌다 몬스터 나타나면 대장은 신명 나게 싸웠었거든. 사람 지키는 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냥 오랜만에 몸을 풀어서 좋은 건지. 아무튼 처지진 않았어.”


잭은 은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요즘은 아니야. 싫어하는 당근을 먹으라는 잔소리를 들은 애새끼처럼, 여기가 전쟁터로 변해버리니까 억지로 움직이는 느낌이라고.”


맞는 말이었다. 사실 조금 회의감이 들었을 뿐이다.

전쟁터로부터 그렇게나 멀리 도망쳐왔는데, 또다시 이런 상황을 마주했으니까.

하지만 그걸 딱히 내색은 안 했다. 감정과 일과를 분리하는 건 기사의 당연한 자질이니까.

은휼은 습관처럼 검자루를 매만졌다. 너무나 익숙한 감각이었다.


“그 금화는 제대로 영지 좀 지켜달라는 의뢰비, 뭐 그런 거요.”


그래, 이젠 움직일 때였다. 영주님과의 작전 수립은 끝났으니까.


“그래. 알겠다. 너한테 임무 하나 주지.”

“무슨 임무요?”

“우리의 생존을 건 임무다.”

“빡세겠군. 뭔데 그러는 거요?”


은휼은 흉벽 너머 멀리를 가리켰다.


“나갔다 와.”

“······예?”

“3조를 데리고 나가. 나가서 우리 주위에서 배회하는 그 괴물 무리를 조사해라. 영주님께서 직접 명령하신 임무다.”


잭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은휼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그것들의 토벌이다. 우리가 나가서 죽이든, 그놈들이 쳐들어왔을 때 이겨내든. 그러기 위해선 그들의 정확한 수효와 행동 양식 따위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어.”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던 잭의 손마저 굳었고, 그의 목소리는 그답지 않게 떨렸다.


“그, 그, 그러니까, 우리 잡아먹으려고 지금 남하하는 괴물이랑 합류해 수를 불리고 있을 그 수백 씨팔 수천의 괴물 무리를 조사하러 가라? 겨우 경비대원 몇 명 데리고?”

“그렇지.”

“그냥 잡아먹히라는 소리 아니요?”

“영주님께서 해당 작전에 자원을 아끼지 말라 하셨다. 너와 대원들에게 기똥찬 군마 하나씩 지원해줄 거다. 말은 괴물보다 빠르니까 괜찮을 거다.”

“그럼 아까 말을 고르라고 한 게 그것 때문이었수?”

“그렇지.”


허, 허탈하게 웃는 잭은 현실을 부정하듯이 말했다.


“조사를 하러 나가면 며칠이고 야영해야 할 텐데, 괴물들 돌아다니는 밖에서 야영하란 거요?”

“낮에 자고 밤에 움직여. 괴물이랑 똑같이 밤에 움직이면 되겠지.”


잭은 이제 나 말고 다른 사람 보내라는 듯이 말했다.


“아니, 3조 데리고 나갈 거면 저 말고 3조장인 호크를 보내야 하는 거 아니요?”

“호크는 이곳에 있어야 한다. 호크만큼 눈이 밝은 녀석이 없어서, 보초에 그 녀석이 빠지면 힘들어지거든. 그리고 이런 임무에 3조 대원들만큼 잘 어울리는 놈들도 없고.”

“대장은 안 나가는 거요?”

“난 여기 지켜야지.”

“씨팔, 맞는 말이군. 그럼 해리는? 아니, 긱센도 있고 타칸도 있고 다른 조장 많잖수?”


은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잭은 이 명령을 거부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하며 말했다.


“니미······ 그럼 아까 대련은 왜 한 거요?”

“나가서 살아남을 만 한지 실력을 본 거다. 살아남을 만 하더군.

“시발, 힘 좀 뺄 걸 그랬나. 아니, 애초에 세 합만에 처발렸잖수?”

“다른 조장은 두 합이면 끝나거든.”


잭은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러다 은휼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대장.”

“왜.”

“난 대장이 존나 싫수.”

“다들 그러더라고.”


잭은 한숨을 푹 쉬며 흉벽에 기대더니 말했다.


“그래. 알겠수. 이거 하나만 확실히 하쇼.”

“무엇을 말이지?”

“우리가 살아 돌아왔을 때, 이 영지가 제발 멀쩡했으면 좋겠수. 아까 말했듯이 영지 좀 제대로 지켜달라고.”


은휼은 잭이 아까 던져주었던 금화를 꺼내 보여주며 답했다.


“노력하지.”




***




소드마스터이자 군 원수, 한카르 스타셰이드의 유명한 격언이 있다.


‘비가 오면 꼭 좆같은 일이 일어난다.’


제국력 426년, 즉 72년 전에 제국과 용 사이에 벌어진 전쟁, 용살전 도중에 한카르가 했던 말이었다.


거의 숨통이 끊어진 용을 제국군이 쫓아갈 때, 비로 인해 갑작스레 불어난 강물은 제국군이 강을 건너지 못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용은 무사히 도망쳤고, 제국군은 허무함 속에서 쏟아지는 빗물을 맞아야 했던 것이다.


옆에서 비에 홀딱 젖은 대마법사 뮤렐이 흔치 않게 한카르의 말에 동의했다는 점에서 유명한 말이기도 했다.


오늘도 마침 비가 오고 있었다. 잭이 임무를 맡고 떠나간 지 사흘이 지난 날이었다.


비가 오면 꼭 좆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격언도 있지만, 사실 남동부에선 비가 오면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고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들러붙는군.”


갑주 사이로 침입한 빗물과 습기가 옷을 끈적하게 피부와 접착시키고 있었다.

비가 올때면 이러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은휼은 지금 그가 골랐던 말 앞에 서 있었다.


마침 비도 오는 김에, 마침 비 덕분에 기분이 더 안 좋아지기도 힘든 김에, 그냥 옛 생각을 하기로 했다.


갑옷과 검, 그리고 말.

그것은 옛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제2 기병사단장. 그게 기사일 때의 직위였지.


어릴 적엔 철없이 최강의 검사 따위를 꿈꿨던 적도 있다.

그런 치기 어린 꿈은 물론 전쟁터에 가자마자 사라졌다.

최강이고 나발이고, 살아남기도 바쁜게 전쟁터니까.

심지어 상관은 은휼의 재능을 바라보며 이건 개화를 시켜야 한답시고 일부러 전선에 밀어 넣기도 했다.


“살아계실는지······”


그랬던 상관조차 죽어버렸을지도 모르지.

리엔과 잭이 했던 말이 아직 머리에 남아있다.


마지막 기사. 현존 최강의 기사.


수식어도 유치하기 짝이 없군.

은휼은 그리 생각하면서도, 그 어처구니없는 사실에 한숨을 쉬었다.

최강이 되는 법은 간단했다.

본인을 제외하고 전부 죽어버리면 최강이었던 것이다.


한편 영주님의 말도 떠올랐다.

인류 최후의 병사.

인류의 존속을 건 전쟁.


만약 정말로 인류 최후의 기사라면, 겨우 영지 수준이 아니라 전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싸워야하는 것인가.

은휼은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고민했다.

그때였다.


“대장님!”


멀리서 홀딱 젖은 대원이 헐레벌떡 달려오며 외쳤다.


“영지 내에 괴물이 침입했습니다! 물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


은휼은 곧바로 말에 올라타서 달렸다.

비는 쏟아지고 있었다.


작가의말

유입이 부족해서 제목을 고민 중입니다. 조만간 제목 변경 공지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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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 아이, 소년, 어른(7) 24.08.22 48 2 14쪽
11 3. 아이, 소년, 어른(6) 24.08.21 53 2 17쪽
10 3. 아이, 소년, 어른(5) 24.08.20 58 2 22쪽
» 3. 아이, 소년, 어른(4) 24.08.19 66 2 19쪽
8 3. 아이, 소년, 어른(3) 24.08.18 71 2 20쪽
7 3. 아이, 소년, 어른(2) 24.08.17 85 3 22쪽
6 3. 아이, 소년, 어른(1) 24.08.15 93 2 26쪽
5 2. 인류 최후의 기사(4) 24.08.14 96 3 21쪽
4 2. 인류 최후의 기사(3) 24.08.13 103 3 20쪽
3 2. 인류 최후의 기사(2) 24.08.13 107 4 21쪽
2 2. 인류 최후의 기사(1) 24.08.13 114 1 18쪽
1 1. 프롤로그 24.08.13 148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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