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한탈
작품등록일 :
2024.08.06 15:26
최근연재일 :
2024.09.12 18: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1,500
추천수 :
54
글자수 :
188,471

작성
24.08.21 17:20
조회
52
추천
2
글자
17쪽

3. 아이, 소년, 어른(6)

DUMMY

다그닥, 다그닥. 은휼은 말을 달리는 것이 새삼 편해졌음을 느꼈다.

꺄르륵! 바람의 정령은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그것이 불어온 바람은 상황에 아주 적절했다.


‘순풍이 분다.’


정령들의 바람은 역풍을 없애고 순풍을 불어 말을 더욱 빠르게 달리게 했다.


다그닥, 다그닥. 게다가 분명 비가 오는데도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레 주위가 더워졌고, 비가 내리는 데도 기이하게 건조함이 느껴졌다.


‘화염의 정령!’


화르륵! 은휼은 주위에 떠다니는 화염의 정령을 발견했다.

마치 도깨비불처럼 떠 있는 그것은 은휼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영주의 화염의 정령은 은휼이 가려는 길 앞의 수분을 없애 말이 단단한 땅을 달릴 수 있게 해줬던 것이다.


“날 도와주는 거냐?”


꺄르륵! 바람의 정령은 웃었고 화염의 정령은 일순간 화르륵 타오르며 답했다.

영주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을 보니, 그는 정령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리고 탈진한 모양이다.

즉, 더 이상 영주에게 마력을 공급받을 수 없는 정령들은 곧 소멸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령들은 그들의 마력을 불태우고 있었다.


화염의 정령 때문에 주위의 온도가 급격하게 치솟긴 했지만, 그것이 도로를 불꽃으로 말려버린 덕분에 말은 더욱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바람과 불꽃의 비호 속에서 은휼의 말은 그야말로 폭우 속에서 독주하고 있었다.


“으, 으아악!”


어느 골목길, 한 피난민이 괴물에게 계속 쫓기다가 넘어져 버렸다.

코앞까지 다가온 괴물의 비에 젖은 시체와도 같은 끔찍한 몰골에 피난민이 머리를 감싸고 벌벌 떨었다.


“······?”


그러나 괴물은 그를 덮치지 않았다. 

피난민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보니, 뎅겅 잘려 나간 목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히익!”


목이 잘리고도 턱을 쩍 벌리는 괴물에게 피난민이 기겁하며 물러섰다.

하지만 아무리 턱 근육을 움직여도 목밖에 남지 않은 괴물이 사람을 물어뜯을 수 있을 리 없다.

피난민은 조금은 안심하고서 주위를 돌아봤다.


대체 누가 목을 벤 거지?


그러나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말 발자국 몇 개만, 왜인지 말라 있는 흙에 새겨져 있었다.


한편, 은휼은 여전히 질주하고 있었다.


‘우선 목만 친다.’


지금은 확산부터 막는다.

영주가 정령왕의 바람을 통해 건네준 소리는 은휼의 머릿속에 잔재하며 위치를 그려내고 있었다.

전쟁터를 떠나고 10년이 넘도록 살아왔고 경비했던 영지다.

골목길 하나하나마저 눈에 훤했다.

마치 지도처럼 머릿속에 괴물과 사람의 위치가 그려진다.


은휼은 최대한 많은 괴물을 쳐 죽이고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최단 거리로 달렸다.


폭우 속에서 홀로 폭발적으로 질주하는 말은 그 주위에 불타오르는 화염과 어우러져 이채로운 광경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한 피난민 무리를 쫓아가는 괴물이 보였다.

은휼은 오른손의 검을 길게 늘어뜨렸다.

지독하리만치 익숙하다.

기병사단으로 전쟁터를 굴러다니며 쌓은 실력은 그의 손에 익숙한 감각을 선사했다.


서걱! 질주하는 말 위에서 휘두른 검에 괴물의 목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가 질주를 멈추지 않았기에, 쫓기던 피난민들은 날아가 버린 괴물의 목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말했다.


“······방금 뭐가 지나간 거야?”


한 기병이 남기고 간 것은 그저 나누어진 목과 몸뿐이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어라?”

“뭐, 뭐가 지나간 거지?”


폭우 때문에 시야가 제한된 상황.

그러한 상황에서 괴물들에게 쫓기던 이들은 화염을 두른 무언가가 달려와 괴물의 목을 쳐버리는 것을 보고 눈을 끔뻑거렸다.


찰나라도 그 기병의 모습을 확인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이 멀쩡한지 의심해야만 했다.

낙하하는 빗방울은 그 기병의 주위에서 기이하게 비껴갔고,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화염이 그의 전방을 불태우며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을 목격한 자들 중에서, 피난민이 아닌 이 영지의 주민들은 알 수 있었다.

말을 타고 다니면서 몬스터들의 목을 순식간에 썰어버리는 인간은 이 영지에 단 한명이었다.


“경비대장······”


라티온 영지의 경비대장이 빗속을 돌파하고 있었다.





***





영지 내에서 사건이 터질 때, 사람들은 두 부류로 갈린다.

제 집 안에 틀어박히거나, 명확하게 방어용으로 설계된 건물로 향하거나.

후자의 경우 대개는 영주성, 그리고 교회이다.


집이 없는 피난민들의 경우, 수용소에서 갑작스레 괴물이 나타났을 때 그들은 대체로 교회로 향했다.


하지만 교회는 이미 피난민 수용소로 활용 중이었다.


그리고 이 사태의 시발점이 된 이들 중 하나는 교회에서 합숙 중인 자였다.


즉, 이미 교회는 난장판이었다.


그렇기에 교회로 도망치던 피난민들과 교회로부터 도망쳐 나온 피난민들은 뒤섞이면서, 새로운 곳을 향해 도망쳤다.


창고.


교회 인근에 놓인 창고가 있었는데, 조장인 타칸, 긱센을 비롯해 피난민 수용소 담당 대원들이 꽤나 현명한 선택을 했다.


창고라는 새로운 거점을 잡고서 그곳에 살아남은 피난민들을 유도해 몰아넣고서 수비 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첫째, 피난민을 쫓던 괴물 중 상당수가 창고로 몰려들었다는 것

둘째, 창고 안으로 성공적으로 도피한 피난민 중 물린 이들도 있었다는 것.

셋째, 창고는 영주성과 거리가 멀며, 문을 닫으면 완전히 외부와 고립된다. 즉 영주가 정령왕을 불러내기 전, 그의 일반 바람의 정령으로는 창고의 상황을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외부에게 지금 이곳이 어떤 상황인지 알릴 수 없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창고는 완전히 난전 상황이었다.


안에서는 두 명의 조장, 긱센과 타칸, 그리고 바렌을 포함한 약 다섯 명의 대원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마흔 마리의 괴물을 상대로 말이다.


“방패로 막아! 없으면 의자로 막아!”

“의자도 없습니다!”

“그럼 지푸라기라도 들고 막아 새끼야!”


창고 안에 마흔의 괴물이 있다.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이 창고 안에 기어코 침입한 괴물과, 이 안에서 변해버린 괴물은 오로지 수를 불리기 위해서인 것처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순식간에 물어뜯었다.

한 사람을 물어뜯고서 곧바로 다른 이에게 뛰어들고, 그자의 살결을 뜯어내면 또다시 다른 이에게 뛰어들면서 말이다.


게다가 분명 지금까진 몬스터화에 길게는 이틀까지도 필요했는데, 이 창고 안에선 물리고 몇초 만에 변해버린 자도 수두룩했다.


긱센과 타칸의 빠른 판단하에 많은 수의 사람을 포기하고서 방어진을 세웠으나, 지금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었다.


바렌이 이 불합리한 상황에서 넓적한 삽으로 괴물들을 밀어내며 말했다.


“대체 왜 이렇게 빨리 변한 겁니까!”

“나도 몰라! 일단 막아!”


창고 안의 괴물이 약 마흔, 등 뒤에는 수십명의 피난민.

경비대원, 단 일곱 명.


“바렌!”

“긱센 조장님, 어떡합니까 대체!”

“버텨! 우리 밀리면 다 죽는다!”


경비대원들은 등 뒤의 피난민을 보호하며 창, 넓적한 삽, 의자 따위를 내세워 괴물의 접근을 어떻게든 막고 있었다.

그러나 마흔 마리의 괴물과 일곱 명의 대원 간의 완력 차이는 방패 없는 방패진으로 막아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으아악!”

“야야! 케이드 잡아!”


대원 케이드가 괴물들에게 팔목과 발목이 붙잡혀 끌려가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타칸과 긱센이 외쳤다.


“씨발, 모르겠다! 그냥 싸워! 백병전이다!”

“씹새끼들 죽여!”


서로 조가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은 타칸 조장의 말에 순식간에 방패로 쓰던 잡동사니를 버리고 각자의 검을 뽑아 들었다.


“가자—!”


고함을 내지르며 마흔 마리의 괴물들에게 일곱 경비대원이 뛰어들었다.

아까부터 계속 앞에서 이빨을 딱딱거리던 괴물 하나의 목을 쳐버린 긱센이 외쳤다.


“우리가 밀리면 뒤에 사람들 전부 다 죽는다! 절대로 물러서지 마!”

“언제까지요!”

“몰라! 그냥 처막아!”


창고의 횃불 하나 켜지지 않은 어둠 속에서 오로지 사람들의 비명과 고함, 흐느낌만, 그리고 괴물의 괴성만이 울려 퍼졌다.

일곱 대원 중 바렌이 앞에 있던 괴물을 베어버린 직후였다.


“으아악!”


기어 온 괴물 하나가 바렌의 발목을 붙잡아 넘어뜨렸고, 그대로 끌고 갔다.

바렌은 저항하면서 땅을 긁었지만 부질없이 끌려갔다.

뒤에서 긱센의 외침이 들려왔다.


“바렌—!!”


바렌은 끌려가면서도 발길질로 격렬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동료들과 멀찍이 떨어져 고립되고 말았다.

캬아악! 그를 끌고 간 괴물은 바렌의 위로 몸을 던졌다.


“으윽!”


캬악! 키에엑! 바렌의 코앞에서 괴물이 침을 뚝뚝 흘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바렌은 괴물의 목을 조르듯이 붙잡고 겨우 버티고 있었다.


검, 검! 검이 어디 갔지? 바렌은 자신의 검을 찾았다.


제기랄! 검은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끌려오면서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멍청이가, 이런 순간에 검을 놓쳐? 끝까지 제 할 일 하나 못하는 폐급 새끼.

바렌은 필사적으로 물리지 않기 위해 눈앞의 괴물의 목을 붙잡고 버티면서도 속으로 자조했다.


그때 바렌의 머리에 스친 것이 있었다.

대장님, 대장님은 어떻게 싸웠더라?

바렌은 괴물의 입에 팔을 넣었다.

마치 성벽 밖의 전투에서 팔 보호대로 괴물의 이빨을 막았던 그의 대장처럼.


잭이 욕지거리를 내뱉을 정도로 두꺼운 바렌의 갑옷에 괴물의 이빨이 박혔다. 빠드득!

다행히 이빨은 피부에 닿지 못했으나 괴물은 바렌의 팔뼈를 으스러뜨릴 듯이 악물었다.


“크아악!”


바렌은 고통에 비명 지르면서도 다른 손으로 품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여기있다!

바렌이 꺼내 든 것은 그의 대장이 준 단검이었다.

단검이 늘씬한 검신을 드러내며 괴물의 눈알을 향해갔다.


키에엑! 눈알이 단검으로 찍힌 괴물은 괴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바렌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괴물의 목을 붙잡고서 마구잡이로 찔렀다.


“죽어! 죽으라고!”


캬아악! 단검으로 난도질당한 괴물의 얼굴에서 역겨운 피가 쏟아졌다.

바렌은 그 핏물로 얼굴이 흠뻑 젖어가면서도 단검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괴물이 죽어버리자, 바렌은 그 시체를 옆으로 치워버리고 일어섰다.


바렌은 이제 창고의 문을 등지고 섰다.

다섯의 괴물이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많잖아, 진짜.”


바렌이 단검을 치켜들었다. 

창고가 워낙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지만, 동료 대원들은 저 멀리서 피난민을 등지고 싸우고 있었다.


이곳에선 생사가 오가고 있었다.

소년 경비대원 바렌 역시 그런 전쟁터의 한복판에 있었다.


앞엔 다섯 마리, 그런데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검은 저 멀리 떨어져 있고, 손에 쥐어진 것은 단검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바렌은 그의 말을 분명히 기억한다.


체격은 오우거만큼 거대하고 얼굴엔 언제나 음울함이 가득해서, 마주하기만 해도 악몽에 나올 것 같은 인간이지만.


- 책임감을 가져라. 병사의 검은 책임감을 가질 때 비로소 날카로워진다.


그의 말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우리가 죽으면, 저 수십의 피난민은 이 창고 안에서 몰살당한다.

죽음이 우리를 넘으면, 그것은 우리 등 뒤의 이들을 향한다.

그게 전쟁터의 법칙이었다.


바렌은 두 번 다시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단검을 치켜세우고 있었지만, 사실 알고는 있다.


자신의 실력으론 겨우 단검만 가지고 다섯을 이겨낼 수 없다.


하지만, 경비대원이니까.

아무리 철 덜 든 애새끼, 폐급 대원이라고 욕을 먹어도, 결국 이 영지를 지키는 사람이니까.

설령 죽음이 닥쳐오더라도 마지막까지 싸워야겠지. 


······최소한 하나는 데려간다. 

바렌은 암흑 속의 붉은 안광 앞에서 단검을 내세웠다.


“와봐 개자식들아! 어디 한 번 끝까지 해보자!”


악에 받친 목소리가 목 밑에서 울컥 차올랐다.

그의 말에 화답하듯 다섯의 괴물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단검을 쥔 바렌의 손이 극도로 긴장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앙—! 폭풍처럼 거센 바람이 불어와 창고의 문을 부서뜨리며 열어젖혔다.

바람의 정령은 창고의 문에 마지막 남은 마력을 소모하고서 소멸했다.


그다음 차례는 화염의 정령이었다.

화염의 정령은 전방에 화염을 쏟아부었다.

창고 안의 톱밥과 지푸라기 따위에 불을 붙여 창고 안이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졌다.

마력과 거리의 한계로 그것은 두 정령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이제 다음 차례는 기병이었다.


기병.


최초의 오러 기사가 등장해 ‘기사’라는 단어가 오러를 사용하는 검사들을 일컫는 의미로 변질되기 전까지는, 기사란 본디 기병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그리고 현시대에 이르러 기병은 기사와 조합되어 제국군이 사랑하는 병종 중 하나가 되었다.

은휼은 옛 군인 시절, 제국군 기병사단의 병사로 돌아왔다.


불꽃과 바람을 품은 기병이 적진에 뛰어들었다.

화염의 정령이 소멸해가며 토해낸 마지막 불꽃을 가르며, 경비대원들에게 한줄기 희망이 될 고함을 지르면서.


“내가 왔다! 전원 물러서라!”


콰드득! 창고에 뛰어든 말이 바렌 코앞의 괴물의 머리를 밟아 짓이겼다.

동시에 휘둘러진 그의 검이 바렌을 위협하던 나머지 네 마리의 괴물을 무참히 썰어버렸다.


그 모습에 경비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은발과 그 온몸에 붉은 피가 말라붙어 그 모습이 악몽에만 나올 것 같고, 방금까지 사람이었던 몬스터를 베는데 전혀 망설임이 없는 냉정한 인물이지만. 

이럴 때엔 그 누구보다 든든한 이가 등장했다.

얼굴에 화색이 돈 타칸이 외쳤다.


“대장님 오셨다!”


그의 외침에 뒤따른 경비대원들의 함성과 동시에, 전속력의 말이 괴물과 충돌했다.

전속력으로 돌진한 말과 괴력으로 휘둘러진 검은 무시무시한 충격량으로 괴물 서넛의 목을 일격에 처버렸다.


기사와 마법사 이전의 인류 최강의 지상 병기, 기병.

검을 든 사람도 창을 든 사람도 기병을 이기지 못한다.

도구를 쓸 줄도 모르는, 오로지 이빨이 유일한 무기인 괴물이 기병을 이길 리가 없었다.


은휼의 검격 한번 한번에 괴물 둘 셋이 무참하게 썰려나갔다.

말의 돌파력과 괴력의 검격은 달려드는 괴물을 고깃덩이로 분쇄해버렸다.

어떤 괴물은 두개골이 일격에 부서져 버리기도 했다.

운이 좋게 겨우 근접한 괴물은 말에게 걷어차이고 밟혀죽거나 은휼의 왼손에 붙잡혀 골통이 으깨졌다.


경비대원들이 사투를 벌인 수십의 괴물들은 하나의 기병에게 처참하게 갈려나가고 있었다.

거기에 경비대원들도 함성을 지르며 합류하자, 그야말로 입장이 뒤바뀐 학살이었다.


타닥, 타닥······ 불타오르는 짚더미 위로 쓰러지는 괴물의 시체가 더해진다.

잘려나간 수십의 목에서 솟구친 피는 창고에 핏빛 비를 내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피에 젖어가는 은휼의 모습은 전쟁터에서 적군을 도륙내는 선봉장의 모습과 같았다.


어느덧 괴물의 괴성은 잦아들었고, 은휼의 검격 역시 멈췄다.

경비대원들도 거친 숨을 고르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타닥······ 난전 속에서 흩날렸던 톱밥과 먼지 따위가 허공에서 불타오르며 낙하했다.

피로 물든 창고, 가득 늘여진 시체, 환상적으로 빛나는 허공의 수많은 불씨들.

붉은빛과 주홍빛이 가득한 이채로운 풍경 속에서 라티온의 경비대장이 말했다.


“다들 고생했다.”


얼굴에 창고의 검댕과 괴물의 피가 잔뜩 묻은 경비대원들이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세상엔 겁을 먹으면 안될 사람이 있다.”


그들의 대장은 언제나처럼 필요할 때에 달려와주고, 그 압도적인 무력으로 몬스터를 박살냈다.


“끝까지 겁먹지 않아주어서 고맙다, 경비대원 바렌.”


바렌은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그의 단검에 맺힌 핏방울이 똑, 똑 떨어지고 있었다.

은휼은 말 위에서, 주저앉은 바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울 시간 없다. 계속해서 움직인다.”

“비, 빗물입니다.”


긱센은 바렌의 뒤통수를 때리며 말했다.


“여기 실내다, 얼간아.”


은휼이 검을 털고서 외쳤다.


“농땡이 피울 시간 없다! 긱센, 케이드, 톰은 이곳에 남고 나머지는 수색을 계속해라!”

“““옙!”””


피난민은 살았다며 안도하고, 늦은 울음을 터뜨리는 자도 있었다.

그들은 방금 자신들을 구해낸 이가 누군지 분명히 목도했다.

그 자는 이상하게도 제국군의 갑주를 입고서 수많은 괴물들의 한복판에 뛰어든, 어느 변두리 영지의 경비대장이었다.


은휼은 살아남은 그들을 뒤로하고 대원들을 이끌며 창고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파악! 창고의 한 외벽에 화살이 꽂혔다.

은휼이 고개를 돌리자 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호크인가보군. 성벽에서 내려온 걸 보면 무언갈 발견했나?


저 화살도 보아하니 호크가 쏘아보낸 것이었다.

화살에 양피지가 꽂혀있길래 확인해봤더니, 이렇게 적혀있었다.


- 북쪽 대장간, 괴물 다수.


이제 경비대장과 경비대원들은 이 사태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작가의말

제목을 ‘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으로 변경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금일 휴재 공지(09/06) 24.09.06 10 0 -
공지 재재재공지) 16:20에 업로드 됩니다! 24.08.18 35 0 -
24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12) +1 24.09.12 18 1 18쪽
23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11) +1 24.09.11 22 1 18쪽
22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10) +2 24.09.05 31 4 16쪽
21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9) +2 24.09.03 36 2 13쪽
20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8) +2 24.09.02 37 3 13쪽
19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7) +1 24.09.01 43 3 14쪽
18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6) +1 24.08.30 37 3 17쪽
17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5) 24.08.29 45 2 17쪽
16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4) 24.08.28 44 2 12쪽
15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3) 24.08.26 49 2 12쪽
14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2) 24.08.24 50 2 15쪽
13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1) 24.08.23 45 2 22쪽
12 3. 아이, 소년, 어른(7) 24.08.22 47 2 14쪽
» 3. 아이, 소년, 어른(6) 24.08.21 52 2 17쪽
10 3. 아이, 소년, 어른(5) 24.08.20 58 2 22쪽
9 3. 아이, 소년, 어른(4) 24.08.19 65 2 19쪽
8 3. 아이, 소년, 어른(3) 24.08.18 70 2 20쪽
7 3. 아이, 소년, 어른(2) 24.08.17 85 3 22쪽
6 3. 아이, 소년, 어른(1) 24.08.15 93 2 26쪽
5 2. 인류 최후의 기사(4) 24.08.14 96 3 21쪽
4 2. 인류 최후의 기사(3) 24.08.13 103 3 20쪽
3 2. 인류 최후의 기사(2) 24.08.13 106 4 21쪽
2 2. 인류 최후의 기사(1) 24.08.13 114 1 18쪽
1 1. 프롤로그 24.08.13 148 1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