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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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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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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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3)

DUMMY

성기사를 제외한 이들은 옥에 투옥되었고, 성기사는 경비대의 감시 속에서 영주를 따라 영주성으로 향했다.


집무실에서 이야기할 생각인가. 무거운 이야기일 것이 뻔했기에 


그때 영주가 내게 고개 돌려 말했다.


“은휼, 따라와라.”

“저도 같이 들어도 되겠습니까?”

“넌 유능한 경비대장이고, 또한 날 지켜줄 이는 필요하지 않겠나.”


하긴. 정령사와 마법사는 근접전에 약하다. 난 손이 묶여있는 성기사를 데리고 집무실에 들어섰다.


영주는 언제나 앉는 자리에 앉았고, 난 적당한 의자에 성기사를 앉혔다. 성기사는 딱히 저항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검자루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한다 싶으면 목을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이 사태의 원인을 알고 있다고 말했지.”

“······그렇다.”

“말해보도록. 단, 조금이라도 헛소리일 경우엔 네 존재마저 한 줌 재로 만들어줄 것을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화르륵! 집무실 내에 늘여진 촛불 여러 개가 동시에 켜졌다.

스르릉, 나 역시 경고의 표시로 검을 반 정도 뽑았다가 다시 납검했다.

세레드는 고개를 숙인 채로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고개 들어 한 단어를 말했다.


“좀비.”


좀비? 세레드가 말을 이었다.


“우린 그걸 좀비라고 부른다. 교단에 보고된 최초의 보고서에 좀비의 아종이 유력하다고 쓰여있었으니까.”


그래. 이 사태가 시작되고 교단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느냐가 궁금했다.

아무리 여러 성기사들이 전쟁을 지원해줬더라도, 교단의 본체는 교황과 그 휘하의 추기경들이니까.


“나는 성기사 세레드, 교단이 좀비에 대한 조사를 위해 파견한 조사대의 일원이었다. 대략 두 달 전쯤에 출발했지.”


조사대를 파견했었군.

보통 몬스터 사태가 일어났을 때 가장 발 빠르게 도착하는 이들은 성기사다.

이번 사태에도 교단이 마찬가지로 조사대를 파견한 것이다.


“우리 조사대는 동부를 지나 북동부로 향했고, 북부까지 확인하고서 동부로 돌아왔다. 돌아왔을 때 이미 동부는 박살 나 있었지만 말이다.”


동부는 전선이 무너지고 순식간에 난전 상황으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라고 추측했었다.

그야 동부에서 계속해서 피난민이 몰려들었으니까.


“제국의 황실은 북동부가 그 시발점이라 생각했지. 아니, 그 이야기는 틀렸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좀비가 대량으로 나타난 곳이 북동부였을 뿐이다. 조사 결과, 좀비의 발원지는 단순히 북동부가 아니라 북부부터 동부에 이르기까지 산발적으로 분포해있다.”


그래서였군. 난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서 전선이 박살났군. 뒤를 잡힌 거야.”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다.

이 라티온 영지에 발로 뛰는 괴물들이 너무나 일찍 도착했으니까.

약간의 오차라고 생각하고 그러려니 했다만, 좀비의 발원지가 남부와 가까운 동부에도 있었다고 하면 얼추 맞는다.


영주는 검지손가락으로 책상을 여러 번 두들기며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정리해보지. 그놈들은 마치 언데드 몬스터가 생겨나듯이, 북부에서 동부까지 넓게 이어진 근원지에서 솟아 나오고 있다는 거군. 그 근원지의 정확한 위치와 발원의 이유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다.”

“질문 하나 하지. 발원지의 모습은 어떠한가?”

“확인하지 못했다. 북부와 북동부, 동부의 곳곳에서 솟아 나오고 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솟아 나오는 좀비의 수는 유한한가?”


세레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한하지 않다고?


“우리가 원래 알고 있는 좀비였다면, 설령 언데드 몬스터라고 한들 부활의 매개체가 필요하지. 보통은 시체다.”


그래. 언데드 몬스터는 흡혈귀 따위의 예외를 제외하면 보통 시체를 매개로 생겨난다.

원래의 좀비가 그러하고, 스켈레톤 따위의 몬스터 역시 그러하다.


“우리 교단은 좀비 다수를 포획해 실험했다. 신성력과 마법을 총동원한 실험이었어. 교단 측에서 마법사를 실험에 기용했다면 얼마나 파격적인 실험이었는지 짐작했겠지.”


마법을 혐오하는 교단이 그 정도면 어지간히 급했나 보군.

난 교단이 좀비와 어떤 사투를 벌였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세레드가 말을 이었다.


“이들에겐 부활의 매개체가 없다. 애초에 우리가 익히 알던 언데드 몬스터와도 다르다. 그들은 그저 끝없이 어디선가 만들어질 뿐이다. 하늘에서 끝없이 태양빛이 쏟아지듯, 이들의 근원은 그 시초를 알 수 없는 무한이다.”


······매개체가 없는 무한이라니. 자연 생성이라는 건가? 몬스터가?


“이건 흡혈귀 폭증 사태 따위와는 궤를 달리하는 사태다. 흡혈귀들은 사람을 몬스터화시켜 수를 늘렸지만 결과적으로 그 수는 유한했다. 하지만 이 좀비들은 아니야!”


세레드가 외쳤다. 이윽고 그는 낮아진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무한이다. 무한정하게 솟아 나오는 확산형 몬스터가 북부와 동부를 휩쓴 거다.”


난 그즈음에서 그가 난동 부릴 생각이 없음을 알았다. 그는 정말로 솔직하게 정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제까지 동부는 전쟁터였다. 그리고 이젠 아니야. 동부의 마지막 영지가 며칠 전에 함락당했다. 내가 그곳에 있었지.”


그가 사실을 이야기했다.


“이제 그 좀비들은 어딜 향해 오겠나?”


집무실에 침묵이 흘렀다. 그 적막을 깨고 입을 연 것은 나였다.


“······남부.”

“그래. 무한정한 수의 좀비가 남하한다. 인간의 살코기를 탐하면서.”

“왜 네가 그토록 칼하라로 가려 했는지 알겠군.”

“그래. 제국이 무너지더라도 끝까지 살아남을 영지는 남부의 심장 칼하라다.”


남부의 심장, 칼하라는 오래전 남부에서 몬스터가 지금보다 더욱 활개 칠 때 만들어진 도시였다.

높은 성벽, 흐르는 강만큼이나 넓은 해자, 거대한 영지, 광활한 밭.

칼하라 영지는 남부의 중앙에 위치한 요새 도시였다.


“칼하라야말로 인류 최후의 보루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최종적으로 칼하라와 그 주위의 영지로 모여들겠지. 난 그곳으로 가야 한다! 이 소식을 전해야 한단 말이다. 그것이 조사대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짊어진 사명이니까.”


영주가 그의 말을 듣고서 말했다.


“질문 하나 더. 현재 남하하는 좀비들은 이곳을 통과하나?”

“높은 확률로.”

“그렇다면, 그 수는?”

“아마 여러 무리로 갈라져 내려올 거다. 북부와 동부는 광활하니, 비교적 이곳에 가까운 곳으로부터 달려오는 무리와 먼 곳으로부터 달려오는 무리가 갈리겠지.”

“각 무리가 시간차를 두고 남하할 거라는 소리군. 아주 오래전의 몬스터 웨이브처럼.”


동부의 내륙에서 달려오는 좀비와 대륙 저 끄트머리에서 달려오는 좀비는 아무래도 도착 시간에 차이가 크게 나겠지.

영주가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그렇다면, 이곳에 처음으로 도착할 무리의 예상 도착 시간과 수효는?”

“약 일주일 후. 너희들이 이겨낼 수 없을 정도로 올 거다.”

“우리 주위엔 이미 수백이 넘는 괴물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꿋꿋이 버텨왔지.”

“수백? 지금 수백이라고 했나?”


세레드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것은 조소였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되나 보군.”


세레드가 묶인 두 손을 높게 치켜들더니, 천천히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들어 올려진 손가락 하나는 어떤 거대한 숫자를 말하고 있었다.


“일만.”


그의 목소리는 음울했다.


“일만의 좀비가 오로지 이곳을 향해 달려올 거다. 네놈들을 짓밟고, 인류 최후의 영토에 다다르기 위해서. 심지어 그건 예고편에 가까워.”





***




비샨 라티온은 세레드의 말을 듣고 한참이나 어두운 표정으로 고민하더니 축객령을 내렸다.

세레드는 옥에 투옥되었고, 혹여나 신성력으로 난동을 피울 것을 대비해 쇠뇌를 장전해둔 대원 둘이 감시하기로 했다.


난 영주성 내의 경비대장의 방으로 돌아왔다.


“일만.”


난 일만이라는 숫자의 거대함을 안다.

일만의 아군을 볼 때면 전율이 돋고, 일만의 적군을 볼 때면 소름이 돋는다.


물론 난 그보다 더욱 큰 숫자도 본 적이 있다. 오래전 기사였던 시절에.

하지만 지금의 내 아군은 내가 기사였던 시절의 아군이 아니다.


그저 변두리 영지의 영주와 경비대뿐이다.


“······일만.”


일만의 대군이 온다. 일만이 와서 버텨낸들, 그다음에 남하하는 무리는 수십만, 그다음엔 수백만, 수천만······ 얼마나 몰려올지 알 수조차 없다.


젠장, 이건 그냥 사형선고군.


만약 소드마스터 한카르나 대마법사 뮤렐 둘 중에 한명이라도 살아있었다면 수백만이 몰려오더라도 이겨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제국군은 패망했다.

내가 알던 그 휘황찬란한 갑주의 기사들과 하늘에서 벼락과 운석을 내리던 마법사들은 더 이상 없다.


그런데 일만을 막으라고?


난 창문에 가까이 다가갔다.

이곳에 있는 것은 지금도 밖에서 지루하고도 기운 빠지는 일과를 수행하는 경비대였다.


그들은 습한 하늘 아래서 뛰어다니며 피난민들을 통솔하며 순찰을 하고 성벽 위에선 하염없이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난민은 굶주림에 떨고 있었고, 영지민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가끔 돌아버린 피난민이 영지민을 폭행해 식량을 빼앗거나 성벽 밖으로 달아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습격이라고는 몇백 정도의 좀비가 성벽을 넘을뻔한 사건과 영지 내에서 몬스터화가 발생했던 일 두개 뿐이다.


그런데 일만이 온다면? 일만이면 이 영지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설령 성문을 아무리 두껍게 막더라도, 그저 서로를 밟고 밟아 성벽을 넘기에는 차고 넘친다.


다 죽겠지.

전쟁터를 떠나 마침내 정착했던 영지는 무너지고, 나를 무서워하면서도 때때로 경비대원들 고생한다며 사과잼 하나씩 챙겨주던 이들이 죄다 죽을 거다.


나는 정말로 그들의 죽음에 앞으로도 무정할 수 있는가?

······아니. 검을 쥐었기에 무정함을 연기할 뿐, 검을 쥐어야할 이유마저 사라진다면 필시 절망하고 분노하겠지.


이럴 때면 꼭 내 기억 속에 각인된 상관의 말이 떠오른다.


- 가장 끔찍한 지옥은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이다. 전쟁터란 그런 곳이야.


내가 빌어처먹을 전쟁터에서 투쟁을 시작한 이후로, 그 말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뒷내용마저도.


- 인류의 역사에 전쟁이 없었던 적은 없다. 내가 장담하지. 네가 어디로 가든 전쟁은 그곳에 있을 거다.

그리고 검을 쥐어버린 이상, 넌 전쟁터에서 도망칠 수 없을 거다. 넌 전쟁터로 달려가야만 하는 자거든.

그게 바로 기사니까.


“씨발······”


입에서 실로 오랜만에 험한 욕이 나왔다. 


그래, 나는 기사였다.


그리고 난 앞으로도 기사여야 한다. 이젠 부정할 수 없다. 

갑작스레 닥친 이 인류의 존속을 건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말이다.


난 창문 너머의 영지를 바라보며 겨우 몇 달 전의 풍경을 떠올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따라 웃는 부모의 웃음소리가 들렸으며, 가끔 코흘리개들이 서로 싸운다 싶으면 경비대원들은 피식 웃으면서 말리곤 했다.

어쩌다 몬스터가 나타나면 경비대원들이 전부 몰려가 격퇴했고, 설령 누군가의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영지민은 끈끈이 하나가 되어 이겨냈다.


하지만 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이제 두려움뿐이다.

우린 성벽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한 무리의 양이 되어, 좀비라는 늑대에게 벌벌 떨고 있었다.


그렇기에 난 창문에서 몸을 돌렸다.


등 뒤의 이들에게 웃음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찾아올 때.

그럴 때 검을 쥐고 앞으로 나서는 게 기사다.


황실의 엄격한 통제 하에 전쟁 병기로 쓰이는 기사지만, 그들이 검을 쥔 이유는 본질적으로 ‘수호’였다.


그러니 나 역시 다시 한번 검을 쥐겠다. 기사로서, 그리고 이 마을을 수호할 경비대장으로서.


난 수없이 고민하며 여닫았던 서랍을 다시 한번 열었다. 그곳엔 편지 하나와, 작은 주머니가 있었다.


주머니를 열어보면 작은 단약 여러 개가 있었다.

그것은 최근 며칠간 복용해왔던, 오러기관의 복구제.


그리고 이 주머니와 함께 내게 전해져왔던 이 편지는, 이 모든 사태가 시작되기 직전에 전해진 편지였다.

난 읽고 싶지 않았던 서두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퇴역 기사 은휼은 즉각 복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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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3. 아이, 소년, 어른(3) 24.08.18 71 2 20쪽
7 3. 아이, 소년, 어른(2) 24.08.17 85 3 22쪽
6 3. 아이, 소년, 어른(1) 24.08.15 93 2 26쪽
5 2. 인류 최후의 기사(4) 24.08.14 96 3 21쪽
4 2. 인류 최후의 기사(3) 24.08.13 103 3 20쪽
3 2. 인류 최후의 기사(2) 24.08.13 107 4 21쪽
2 2. 인류 최후의 기사(1) 24.08.13 114 1 18쪽
1 1. 프롤로그 24.08.13 148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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