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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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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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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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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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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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류 최후의 기사(2)

DUMMY

『이처럼 세상을 어지럽히던 용을 기사 한카르와 대마법사 뮤렐, 교단의 성기사, 그리고 위대한 선황제 루칼 블리히트르의 군대가 진격해 그것을 역사서 속 한 줄 잉크로 만들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은 여전히 많은 위기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일례로 제국력 481년, 제국의 남서부를 공포로 물들였던 흡혈귀 폭증 사태는, 얼마 전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이가 끔찍한 괴물이 되어 돌아온다는 언데드 몬스터의 공포가 얼마나 간단히 지휘체계를 마비시키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 제국 군사 학교의 군사학 교본서, ‘제국 전쟁사 및 차세대 위협에 대한 군사학적 접근.’, 144p, 데트르 크리거 저.



그의 어깨 뒷쪽의 이빨 자국은 마치 짐승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빨의 형태는 분명 사람의 치아와 비슷했다.


“이름이 벤셔라고 했나.”

“네, 네. 그렇습니다.”


은휼은 벤셔의 어깨 부근의 기이한 이빨 자국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빨 자국이 있군. 이건 뭐지?”

“그 몬스터들에게 물린 겁니다.”

“어쩌다가 물렸지?”

“괴물들이 습격한 마을에서 마차를 타고 도망쳐 나올때 물렸습니다. 그 놈은 마차에서 나가떨어져서 전 간신히 살았고 말입니다.”


은휼은 그 이빨 자국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그러자 잭이 다가와서 물었다.


“대장님, 왜 그러십니까?”


······오래 전의 대륙엔 한 몬스터가 있었다.

햇빛을 두려워하고, 사람의 피륙을 좇으며, 사람을 자신들처럼 몬스터로 바꾸어버리는 몬스터가.

은휼이 침음하다가 말했다.


“잭. 알고 있나? 15년 전 남서부에서 벌어졌던 전쟁.”

“갑자기요? 음, 15년 전쯤이면 용살전은 아닐 테고, 오크 대전도 아닐 테고, 인어들이 홍차 집어 던졌을 때도 아닐 테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호크가 중얼거렸다.


“흡혈귀 폭증 사태?”


잭은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아, 그때 그거군. 그래, 흡혈귀 폭증 사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가 용병 생활 시작하기 전이라 저는 잘 모릅니다만······”

“상황이 너무나 닮아있어.”


하늘은 우중충했다. 구름 사이에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는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햇빛. 저 놈들은 햇빛을 두려워한다.

어둠을 좋아하고, 인간의 피륙을 탐한다.

인간과 그리 외형이 다르지 않다. 


비슷한 특징을 가진 흡혈귀는, 치아를 통한 접촉으로 인간을 자신들과 같은 몬스터로 변화시킨다.


대륙엔 흡혈귀라는 선례가 있었다.

그렇기에 은휼은 이들을 간단히 보낼 수 없었다.


“햇빛을 싫어하고, 어둠 아래서 움직인다. 피륙을 탐한다. 그리고 인간과 그리 다르지 않은 외형까지. 흡혈귀와 너무나 닮아있단 말이지.”

“그래서······”

“인간을 몬스터로 바꾸어버린다. 그것까지 닮았을지도 모르지.”


은휼은 말하면 말할수록 이들을 가만히 보내선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감은 뇌가 보내는 신호다. 보통은 무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이다.

그래서 은휼은 일단 안 좋은 감이 들면 확인하고 넘어가는 편이었다.


“흡혈귀 폭증 사태 당시에 피난민을 받았던 영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때엔 흡혈귀가 사람을 몬스터화시키는 것을 몰랐거든.”


뚱뚱이 상인은 멍하니 은휼과 경비대원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보다가 말했다.


“지, 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요?”


잭이 답했다.


“대장은 저놈이 괴물처럼 변해버릴 가능성을 우려하는 거요.”

“예?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흡혈귀한테 피 쪽쪽 빨린 놈이 똑같은 흡혈귀로 변하는 것처럼, 저놈도 그럴지 모른다는 거지. 저렇게 땀을 뻘뻘 흘리는 게 단순히 병세가 아니라, 몬스터화의 전조라는 거요.”

“베, 벤셔가 몬스터로 변한다는 말입니까?”


벤셔는 힘겹게 고개만 들어올려 반문했다.


“제가요?”


뚱뚱이 상인은 잠시 턱을 벌린 채로 은휼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는 소리쳤다.


“말도 안되는 소리! 저 괴물들이 흡혈귀의 아종이나 돌연변이라도 된단 소리요? 흡혈귀는 15년 전에 제국이 대륙에서 존재 자체를 지워버렸소!”


은휼은 가소롭다는듯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직접 보긴 했나? 그때의 전쟁을.”

“뭐······?”


그의 목소리는 낮고 어두웠다.

은휼은 습관처럼 검자루를 매만지고 있었고, 그것은 차갑도록 소름이 돋는 무표정과 어우러져 상인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상인은 은휼을 바라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잭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끼어들었다.


“새로 등장한 몬스터일지도 모르잖수?”

“그, 그럴 리가 있나. 대륙에 더이상 새로운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아. 돌연변이나 아종이라면 모를까. 그건 용이 죽은 이후로 당연해진 이야기일텐데.”

“그럼 그 괴물들은 뭐요?”

“생긴 걸 보면 언데드 몬스터인 좀비 따위의 돌연변이 아니겠소? 흡혈귀라니, 난 그런 이야기 믿을 수 없소.”


말이 길어지는군. 저 상인이 왜 저렇게까지 불신을 내비치는지는 알겠는데, 어울려주고 싶진 않았다.


“만일을 위한 조치일뿐이다.”


은휼의 목소리에 상인이 다시 흠칫 몸을 떨었다.

심지어 그는 상인에게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멀리서만 봐도 거대한 체격이 다가오자 통나무 하나가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협조 좀 해줬으면 고맙겠는데.”


은휼은 다른 이에 비하면 키가 머리 두개 쯤은 컸고, 체격은 그와 비례해 거대한 바위와도 같았다.

그런 이가 검자루에 손을 올린 채로 말하자, 자연스레 솟아오른 공포가 상인의 몸을 옭아매었다.


그 험악한 아우라에 옆에서 지켜보던 상단의 호위 무사가 순간 검자루에 손을 갖다대었다.

그러나 은휼은 고개 돌려 나직이 물을 뿐이었다.


“자신 있나?”


호위 무사는 상대의 실력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의 하수는 아니었다. 그는 천천히 검자루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사과 드리죠. 하지만 방금 건 자기보호를 위해서였습니다. 난 상단의 호위로 일하며 수없이 많은 사람을 봐왔습니다. 그런 제게 당신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아십니까?”


옆에서 지켜보던 뚱뚱이 상인이 겨우 입을 열고 외쳤다.


“살인귀. 사람을 수없이 죽여온 사람들은 딱 티가 나지. 당신네들이 딱 그렇단 말이오!”


잭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야, 경비대니까?”

“아무리 경비대라도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다니진 않겠지. 그런데 당신네한테선 살인귀의 냄새가 난단 말이오. 사람을 대할 때 인격체로 대하는 게 아닌 고깃덩이로 대하는 작자들이 있어. 당신들의 눈빛이 딱 그렇소.”


잭은 피식 웃었다. 상인 놈들이라 그런가, 사람 보는 눈이 있군.


그야 여기 경비대원들은 대부분 산전수전 다 겪어본 놈들이니까. 

그리고 그중에 제일은 저 사람이겠지.


“그렇게 잘 알면 가만히 있지 그래.”


뚱뚱이 상인의 뒤에서 낮고 어두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스레 흠칫 몸이 떨렸다.

그래. 가장 피비린내가 진하게 느껴지는 자는 바로 저 대장이라는 자였다.

외견으로 짐작되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한없이 어두운 눈동자와 세상에 실망해버린 자들 특유의 차갑고 매서운 눈빛.


저런 자들은 남을 베는데 거리낌이 없다.

상인과 같은 부류의, 사람을 상대하는 이들이라면 무조건 피해야할 부류이기도 했다.

은휼은 여전히 검손잡이를 습관처럼 매만지며 말했다.


“잭.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난 이 짓을 길게 하고 싶지 않아.”

“알겠수, 대장.”


잭은 아예 밧줄을 들고 와서 벤셔에게 다가갔다.

뚱뚱이 상인은 그를 막으러 움직였으나, 잭은 순식간에 단검을 꺼내들어 그의 목을 겨눴다.


“가만히 있으쇼. 난 친절한 사람이고 싶거든.”

“뭐, 뭐?”

“우린 경비대요. 영지 경비에 방해되는 이는 처리할 수도 있다는 소리요. 그러니까 쉽게 가자고, 쉽게. 알겠수 다들?”


상인은 제 목에 겨눠진 단검을 바라보며 뒷걸음질쳤다.

역시 검을 꺼내니까 말을 잘 듣는군.

잭은 저렇게 강단있게 행동할 줄 알아서 이런 일에 쓰기 좋은 녀석이다.


은휼은 잭이 벤셔를 밧줄로 둘둘 묶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경비대장이 된 이후로 편한 점을 골라본다면, 대원들이 잡무를 다 해준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대원들이 일하는 동안 경비대장은 뒤에서 적당히 위압감을 주면서 말만 하면 된다.


“친절히 말하지. 다들 협조 좀 부탁한다.” 


은휼의 명령에 따라 벤셔를 포박하는 잭의 밧줄은 전혀 친절하지 않았고, 어두운 목소리로 말하는 은휼의 얼굴은 더더욱 친절하지 않았다.

그 친절하지 못한 분위기에 피난민들은 바닥에 뿌리를 내린듯 움직일수조차 없었다.


“진작 말했듯이, 만일을 위한 조치일 뿐이니까.”


잭은 순식간에 벤셔의 포박을 마쳤고, 은휼에게 다가왔다. 


“대장님.”

“음?” 

“그래서 확인은 어떻게 할 겁니까? 솔직히 이빨 자국이 좀 걸리긴 해도, 땀 뻘뻘 흘리는 건 그냥 열병일 가능성이 높긴 하잖습니까.”


이제보니 잭도 약간 긴가민가한 상태인 것 같았다.

벤셔의 증상이 단순한 병세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몬스터화의 전조인지.

은휼도 감으로 찍은 것이기 때문에, 지금 명확한 증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증명할 방법은 간단했다.

병인지 아닌지 확인해보려면 만병통치약을 써보면 된다.

그리고 대륙에는 놀랍게도 만병통치약이 있었다.


“사제님 불러와. 사제님의 신성력으로 치유가 안 되면, 단순한 병이 아닐 테니까.”





***





“음.”


라티온 영지의 사제, 켄드릭은 심히 당황스러웠다.


마차에 한 명이 밧줄로 꽁꽁 묶여서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고 주위 사람들은 엄숙하다 못해 시간이 멈춘 듯이 아무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오면서 상황은 들었네. 그래, 일단 내가 해보지.”


사제는 오른 소매를 걷으며 앞으로 나섰다.


“손쉽게 치료되면 단순한 병인 거고, 아니면 은휼이 의심하는 것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지. 흡혈귀가 자행하던 몬스터화는 신성력으로도 막을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켄드릭은 바로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사제와 성기사가 가지는 신성력은 신을 향한 믿음으로부터 생겨나며,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제는 기도문을 통해 신성을 실체화시킨다.

켄드릭의 오른손에 햇빛을 닮은 하얀빛이 깃들었다. 그는 그 빛나는 손을 벤셔의 이마에 갖다대었다.

차츰 신성력은 벤셔의 몸에 스며들듯 잦아들었다. 켄드릭은 묵묵히 신성력이 잦아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지켜보던 잭이 물었다.


“되, 된 겁니까?”

“괜찮은 거죠?”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보던 피난민들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켄드릭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오히려 먼저 말한 자는 은휼이었다.


“보기만 해도 알겠군.”


은휼이 앉아있던 바위로부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마치 사형선고 같기도 했다.

켄드릭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병이 아니야.”


벤셔는 여전히 끙끙거리고 있었고, 오히려 이젠 아까와는 달리 눈조차 제대로 못뜨고 있었다.


“예? 병이 아니라고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뚱뚱이 상인이 물었고 켄드릭이 답했다.


“인류는 신성력의 힘 아래 모든 병을 극복했지요. 전염병의 위협이 사라진 이후 인간의 기대수명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만큼. 한데······”


켄드릭이 신성력을 거둔 오른손을 쥐락펴락하며 말했다.


“아무런 작용도 일어나질 않습니다. 병 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난 거라면, 신성력이 닿은 순간 순식간에 병이 나아 상태가 나아져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저 자는 오히려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것 같군요.”

“예? 그럼······”

“경비대장이 의심하는 것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은휼은 고개를 끄덕이곤, 옆의 다른 경비대원에게 말했다.


“해리, 영주님께 나 대신 가서 보고해라. 그리고 손 남는 경비대는 여기로 불러오고. 아무래도 옥으로 호송하는 게 좋겠지.”


은휼이 명령하자 몇몇 대원들이 떠나갔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분위기는 하늘을 따라 점점 어두워졌다.


벤셔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이제 벤셔는 땀을 비처럼 흘렸고 벌벌 떨기 시작했다.

피난민들, 그중에서도 특히 뚱뚱이 상인은 벤셔의 옆에서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말도 안되는 거요. 어떻게 사람이 괴물로 변한단 말이오. 난 도저히 믿을 수 없소.”


호위 무사는 아예 천을 적셔서 벤셔의 이마에 계속해서 갈아주고 있었다.


은휼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언데드 몬스터의 무서운 점이 바로 저것이다. 

누군가 몬스터로 변해버리거나, 몬스터로서 부활해서 돌아오면, 주변인들은 그가 몬스터임을 맹렬히 부정한다는 것.


그래서 은휼은 지켜볼 뿐이었다.

확실한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한편, 경비조장 호크 역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호크는 눈이 좋다. 경비대원 중에 그의 시력을 따라올 자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보았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넘어가고 햇빛의 잔재가 하늘을 보랏빛으로 물들이면, 곧이어 찾아오는 어둠.


그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자의 움직임이 격해졌다.


어느 순간 그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확장되었고, 축소되었으며, 실핏줄 하나하나가 터져나갔고, 그의 손발가락은 발작 환자의 그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흐아아악! 벤셔가 갑자기 발작하며 소리쳤다. 입에는 게거품이 가득했고 온몸이 포박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베, 벤셔?”


벤셔는 비명을 한참이나 지르다가 픽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벤셔!”


철퍽, 호위 무사가 화들짝 놀라며 떨어뜨린 물에 적신 천이 벤셔의 얼굴에 안착했다.

천에 눈이 가려진 벤셔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천은 천천히 흘러내렸다.

이윽고 그의 얼굴이 다시 드러났을때, 그의 눈동자는 핏빛 붉은색이었다.

먹잇감을 찾는 허기진 눈동자는, 지금 뚱뚱이 상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크가 말했다.


“대장님.”

“나도 알아.”


쿵! 은휼이 순식간에 땅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호크는 그 움직임을 순간 놓쳤다. 그리고 벤셔는 입을 벌렸다.

뚱뚱이는 어리둥절하게 굳은 채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벤셔의 누런 이는 살코기 앞에서 망설이지 않았다.


따악! 그러나 짐승처럼 변해버린 벤셔의 이빨은 허공에서 맞물렸다. 은휼이 뚱뚱이의 목덜미를 순식간에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아이코! 뒤로 나둥그러진 뚱뚱이 상인이 신음을 뱉었다.


“내가 말했지.”

“베, 벤셔?”

“네놈이 알던 벤셔란 놈은 이제 없는 것 같은데.”


바닥에 나뒹굴고서 멍하니 벤셔를 바라보는 뚱뚱이 상인에게, 은휼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봐도 괴물의 모습이다.”


실로 그러했다.

벤셔는 이제 단순한 발작이 아닌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였다.

그 목적은 바로 굶주림의 해소였다.


“정말로 변했군.”


은휼은 벤셔를 바라보며 살짝 물러났다.

거리를 두고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벤셔는 밧줄에 포박당한채로 바닥에서 흙먼지를 잔뜩 일으켜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베, 벤셔!”


피난민들이 하나같이 소리쳤고 경비대원들 역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대장님!”

“벼, 변한다!”

“대, 대장님. 지금 죽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잭은 지금 당장이라도 창을 집어던질 기세였고 경비대원 최고의 겁쟁이 바렌은 기겁을 하며 비명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은휼은 무정한 눈동자로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놔둬. 어떻게 되는지 보게.”


손톱은 마치 짐승의 것처럼 길어지고 날카로워졌으며 입에선 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힘없이 투두둑 끊어지며 흩날렸고, 흉흉한 붉은 안광은 인간보단 짐승의 것에 가까웠다.


지금껏 성벽 위에서 지켜봐 온 것들의 모습과 똑같았다.


이제 벤셔는 온몸을 뒤틀고 꺾어 느슨해진 포박을 이빨로 갉아먹고 손톱으로 찢어내며 벗어나고자 하고 있었다.


“미친, 방금 어깨뼈가 뽑혔는데.”


잭이 그의 몬스터화를 바라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괴물로 변해버린 벤셔는 인간의 움직임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제 몸을 비틀고 꺾었다.

그 기이한 모습에 바렌은 겁먹어 소리쳤다.


“으아악!”


다른 경비대원들 역시 사람이 몬스터로 변해가는 충격적인 과정에 제대로 사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호크가 담담했고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있던 잭이 외쳤다.


“창 더 가져와! 기다란 거로! 아니, 그물이 낫겠다. 바로 옆에 그물 있잖아! 그거 들고 오라고!”


그때 혼란스러운 군중 속에서 은휼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냥 물러나라. 우왕좌왕하지 말고.”


마침내 괴물이 되어버린 벤셔는 포박을 완전히 풀어내었다.

투두둑, 끊어진 밧줄이 바닥에 떨어졌다.

벤셔는 거친 숨을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그에게 다가오는 라티온의 경비대장이었다.


“대장님?”


경비대원들은 은휼이 천천히 벤셔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은휼은 검을 뽑았다. 스르릉, 익숙한 소리가 귓가를 타고 들어왔다.


“투항해라. 그러지 않으면 베겠다.”


괴물은 마치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낮은 괴성을 내었다.

키에엑! 그러다가 소리를 내지르더니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음, 역시 언어 소통은 안되는군. 은휼이 검을 날카롭게 치켜들었다.


“난 경고했어.”


푸욱! 은휼의 검이 괴물의 심장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그의 동작엔 망설임 하나 없었다. 검끝이 살과 뼈를 가르고 부수며 심장을 꿰뚫는 소름끼치는 감각이 검을 따라 손까지 전해져왔지만 은휼은 담담했다.


심장이 꿰뚫린 벤셔의 입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그리고 지켜보던 잭이 멍하니 목소리를 흘렸다.


“어?”


그 옆에서 벌벌 떨며 지켜보던 바렌이 말했다.


“왜, 왜 안 죽어?”


꺽, 꺼억······ 은휼 앞에서 벤셔는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낼 뿐 여전히 이빨을 딱딱거리고 있었다.


안 죽는군. 흡혈귀를 생각해서 일부러 심장을 노렸는데. 은휼은 침착하게 벤셔를 마주봤다.


벤셔는 심장에 꽂힌 검이 파고드는 것을 신경도 쓰지 않는듯이 오히려 은휼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악!”

“대, 대장님!”


바렌의 비명과 잭의 외침이 뒤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은휼은 침착하게 오른쪽으로 몸을 빠르게 돌렸다.

동시에 바렌의 몸에 꽂힌 검을 몸의 회전방향을 따라 강하게 회전시켰다.

쏟아지는 원심력에 벤셔의 몸이 검으로부터 뽑혀나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검붉은 피를 바닥에 한가득 쏟아내던 벤셔는 금방 몸을 일으켜 은휼에게로 달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검을 길게 늘어뜨린 은휼은 달려드는 벤셔를 바라보며 고민했다.


‘죽일까.’


당연히 안될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시도해본 언어소통은 역시 실패했다.

완전히 괴물로 변해버린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그냥 죽이는 게 정말로 맞는 선택인가?


지금으로선 어딜 베야 죽는진 모르겠지만, 상관은 없다.

죽을 때까지 죽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상황에 적합한가?

마치 시간이 느려진듯한 풍경 속에서, 달려드는 괴물의 붉은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판단은 이미 끝나있었다.


은휼의 검이 움직였다. 검신에 반사된 빛이 순간 번뜩인 검격은 아주 찰나였다.


먼저 벤 것은 발목이었다. 한쪽 발목은 아예 잘려버렸고 다른 한쪽은 너덜거리며 기능을 상실했다.


‘그 다음은 어깨.’


기우뚱하게 넘어져 가는 놈을 은휼의 검이 놓치지 않았다. 놈의 몸이 완전히 땅바닥에 넘어져 버리기 전, 오른쪽 어깨를 째듯이 길게 베어버렸다.


쿵소리를 내며 놈이 바닥에 쓰러지고, 놈의 어깨와 발목에서 솟아오른 피가 흙먼지와 함께 비산했다.


이미 왼쪽 어깨 역시 깊게 베어져 있었다.


사지의 움직임이 막힌 채로 놈은 겨우 버둥거렸고 은휼은 놈의 허리 근육과 등 근육마저 전부 끊어버리고는 여전히 담담한 채로 말했다.


“잭.”

“예, 예?”

“창.”

“예, 옙!”


잭에게서 창을 받아든 은휼은 놈의 몸을 발로 깔아뭉개 못 움직이게 만든 이후 마지막으로 창을 꽂았다.

온몸의 근육이 잘려나가고 몸을 관통한 창이 땅바닥에 꽂혀 완전히 움직임이 봉쇄되어버린 괴물 위에서, 은휼이 담담히 말했다.


“재갈 물리고 손가락 발가락 다 잘라. 완전히 무력화시킨다.”


그것은 명령이었다.

사위의 거의 모든 인원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보고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은휼은 명령을 계속했다.


“지금부터 피난민 전수조사한다. 이 영지에 들어와있는 피난민은 물론, 앞으로 이 영지에 들어오는 피난민 역시 옷 벗겨서 물린 자국 등의 외상을 전부 점검한다. 이빨 자국이든 손톱 자국이든 괴물과의 접점이 있으면 죄다 격리 수용해. 그 외에도 특이사항이 있다면 뭐든지 보고하도록.”


은휼은 괴물의 피에 젖은 모습과 그의 차분한 목소리가 대비되어 기이한 분위기를 풍겼다.


“또한 이 괴물은 옥에 수용한다. 아직 알아내야할 것이 많아.”


모두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일찍이 정신을 차린 것은 호크와 잭이었다.

그중 잭이 크게 소리쳤다.


“뭐해! 들었으면 움직여!”

“““예, 옙!”””


경비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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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12) +1 24.09.12 18 1 18쪽
23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11) +1 24.09.11 22 1 18쪽
22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10) +2 24.09.05 31 4 16쪽
21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9) +2 24.09.03 36 2 13쪽
20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8) +2 24.09.02 38 3 13쪽
19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7) +1 24.09.01 43 3 14쪽
18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6) +1 24.08.30 38 3 17쪽
17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5) 24.08.29 46 2 17쪽
16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4) 24.08.28 44 2 12쪽
15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3) 24.08.26 49 2 12쪽
14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2) 24.08.24 50 2 15쪽
13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1) 24.08.23 46 2 22쪽
12 3. 아이, 소년, 어른(7) 24.08.22 48 2 14쪽
11 3. 아이, 소년, 어른(6) 24.08.21 53 2 17쪽
10 3. 아이, 소년, 어른(5) 24.08.20 58 2 22쪽
9 3. 아이, 소년, 어른(4) 24.08.19 65 2 19쪽
8 3. 아이, 소년, 어른(3) 24.08.18 71 2 20쪽
7 3. 아이, 소년, 어른(2) 24.08.17 85 3 22쪽
6 3. 아이, 소년, 어른(1) 24.08.15 93 2 26쪽
5 2. 인류 최후의 기사(4) 24.08.14 96 3 21쪽
4 2. 인류 최후의 기사(3) 24.08.13 103 3 20쪽
» 2. 인류 최후의 기사(2) 24.08.13 107 4 21쪽
2 2. 인류 최후의 기사(1) 24.08.13 114 1 18쪽
1 1. 프롤로그 24.08.13 148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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