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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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탈
작품등록일 :
2024.08.0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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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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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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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이, 소년, 어른(5)

DUMMY

며칠 전, 영주성의 집무실에서 은휼은 옥에 구금한 괴물들을 지켜보며 얻은 정보들을 영주에게 보고했다. 하나하나 듣던 영주가 물었다.


“벤셔라고 했지. 우리가 처음으로 확인한 몬스터화의 사례가.”

“네, 그렇습니다.”

“그자는 물리고 나서 얼마 만에 변했지?”

“물린지는 몇 시간이었고, 밤이 되자마자 변했습니다.”

“듣자 하니 몬스터화는 보통 밤에 이뤄지나 보군. 물리고 나서 몬스터화에 걸리는 시간을 특정해낼 순 없나?”

“어렵습니다. 물린 부위,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 변화하는 시간이 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영주는 침음하더니 말했다.


“난 그 몬스터화가 마음에 걸린다.”

“왜입니까?”

“놈들에겐 페어리만큼 고등하진 않지만 분명 군체의식이 있다. 그리고 군체의식이 있다면 놈들의 포식 의지 역시 개개인의 괴물이 아닌 군집의 의지일 가능성이 높다.”


군체의식이 있다는 가정하에, 놈들이 고깃덩이를 쫓는 의지는 각각의 괴물이 아닌 군집이 가지는 의지라는 것이다.

개미들이 군집을 위해 음식을 그 자리에서 먹지 않고 들고 나르듯이 말이다.


“그 가정이 옳다는 전제하에,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그게 무엇입니까?”

“만약 괴물 한 마리가 성벽 안으로 침입했을 때, 그 괴물이 과연 사람 하나를 붙잡아 완전히 잡아먹어 버릴까, 라는 의문이다.”


영주가 말을 이었다.


“성벽 안으로 침입에 성공한 괴물 개인의 입장으로 생각해보면 그냥 사람 하나 붙잡아서 배부르게 먹는 게 낫겠지. 하지만 정말 군체의식이 있는 몬스터가 그리 행동할까.”


은휼은 영주의 말을 듣고서 생각했다.

정말로 사람을 동료로 만들 수 있는 수단이 있는 몬스터가, 사람이 가득한 적진 한복판에서 그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건 상당히 멍청한 행동이었다.

영주가 말했다.


“오히려 잡아먹어 죽여버리지 않고, 적당히 물어뜯어 동료의 숫자를 늘리지 않을까.”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 만약 사람에 비해 괴물의 수가 확연히 부족한 상황에서, 붙잡은 사람을 무턱대고 남김없이 뜯어먹는 건 전략적으로 멍청한 짓이라는 거다. ‘몬스터화’라는 수단이 있다면, 그런 상황에선 사람을 완전히 잡아먹어 버리지 않고 적당히 물어뜯어서 몬스터화를 시켜버리는 것이 괴물에게 전략적으로 좋은 선택이겠지.”


영주는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몬스터는 진화한다. 내가 지금껏 봐온 모든 몬스터가 그러했고, 흡혈귀 폭증 사태 때의 흡혈귀들도 그러했지. 저 괴물들도 어떤 몬스터로부터 진화해온 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 이 예측은 망상이 아니야.”


영주의 눈밑엔 피로가 가득 쌓여 시꺼먼 색채를 띠고 있었지만, 그의 뇌는 계속해서 회전하고 있었다.


“우린 그들의 행동 양식이 그저 맹목적인 포식 의지라 생각했지만, 하나 더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 하나는······”

“침투에 성공한 괴물을 통해 그 안에서 괴물을 확산시킨다. 마치 오래전의 전염병이 전염되듯이 말이지.”


영주가 두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즉, 이러한 전제 아래에서 유추해볼 때, 이놈들의 행동 양식은 두 가지.”


첫 번째. 고깃덩이를 쫓는 그들의 맹렬한 의지.


“포식, 혹은······”


두 번째. 포식을 위해, 적진 한복판에서 아군의 수를 늘리는 것.


“확산.”





***




어느 소년은 광장의 피난민 수용소에서 몸을 일으켰다.

비가 시끄럽게 쏟아져서 도저히 잠이 안 온다.

으, 춥다. 폭우 때문인지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옆에 있던 사람도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런데 상태가 이상했다. 보통 춥다고 해서 저렇게 발작하듯 움직이던가?


“아저씨, 왜 그러세요?”

“······”

“아저씨?”


소년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 순간, 그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 눈빛은 형형한 붉은 색이었다.


“어?”


소년이 멍하니 그 눈빛과 마주 본 찰나에, 괴물은 이빨을 들이밀었다.

소년의 뜯겨나간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괴물은 목만 물어뜯고서 다른 이를 노렸다.

마치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전염병처럼, 괴물은 최대한 많은 이들을 물어뜯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피가 비산하고, 목덜미가 물어뜯긴 이들은 목을 부여잡고 쓰러진다.

어떤 이는 팔을 물리기도 했고, 다리를 물리기도 했다.


꺄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피난민 수용소에서 튀는 피와 비명은 순식간에 피난민들을 비명 지르며 도망치게 했다.

군중은 순식간에 두려움을 젖어 수용소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가만히 있으십시오!”


5조 조장 타칸은 즉시 검을 뽑아 들고 군중 속에 난입했지만, 공포에 물들어 마구잡이로 달아나는 피난민들의 무게 앞에 오히려 밀려날 뿐이었다.


“좆됐군.”


괴물은 더욱 많은 이를 물어뜯고, 혼란에 빠진 군중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어디로 도망가는지, 누가 물렸는지, 누가 괴물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비를 쏟아내는 밤하늘 아래, 수백의 피난민들이 제각각 흩어진다.


그들과 비교하면 확연히 숫자가 부족한 경비대원들은, 이제부터 어둠 속에서의 사투를 시작해야 했다.





***





은휼은 곧장 말을 타고 달렸다. 원래 피난민을 수용하던 광장의 가건물에 몇몇 대원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다급하면서도 당황한 상태였고, 은휼이 오자 그들은 일제히 그들의 대장을 쳐다봤다.


“상황.”


말에서 뛰어내리듯 내린 은휼이 말했다. 답한 것은 호크였다.


“누가 개구멍을 파서 성벽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왔습니다.”

“제기랄.”


왜 발견하지 못했는지 질책할 시간도 없었다.

지금은 우선 상황을 해결할 때였기에 은휼이 물었다.


“숫자는?”

“발자국을 보니 최소 넷이었습니다. 발자국 주위의 핏자국을 고려할 때 어디선가 물려온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에 와서······”

“피난민들 속에 섞여들었군.”

“네. 괴물로 변해버린 이가 다른 이들을 물어뜯었습니다. 그리고 피난민들은 통제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흩어졌습니다.”


쏴아아. 비가 쏟아진다. 비명조차 잡아먹도록 시끄럽게 쏟아지고 있었다.


“해리의 4조와 2조원 중 일부가 우선 괴물의 사살 및 피난민 통솔에 나섰으나, 군중이 공포에 질려 통제를 벗어나면서 초기 진압에 실패했습니다. 가뜩이나 밤이라 앞도 잘 안 보이는데 폭우까지 내려서 소리도 잘 안 들리니 괴물이 얼마나 퍼졌는지도, 피난민들이 어디 있는지도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젠장. 피난민 숫자만 최소 몇백이다. 그 사이에 괴물이 섞여서 누굴 물어뜯고, 그자가 또 괴물로 변하고.

그 와중에 피난민들은 흩어지고. 비는 쓸데없이 쏟아지는데 밤하늘은 더럽게 어둡다.


난전이다.

횃불 하나 들지 못할 수준으로 비가 오는데, 괴물들은 어디선가 사람들을 괴물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지금은 밤이다. 

벤셔가 밤이 되자마자 괴물로 변해버렸던 것을 고려하면, 사람에 따라선 지금 물리자마자 괴물로 변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괴물의 수는 늘어난다.

게다가 만약 영주님의 예측이 적중했다면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은휼은 빠르게 판단을 마치고 명령했다.


“1조는 동쪽, 2조는 서쪽, 4조는 남쪽, 5조는 북쪽. 6조부터 8조는 피난민 수용소 각각 확인하고 9조는 성벽 위에서 안과 바깥을 지켜보며 대기해라. 호크, 너 역시 성벽 위에 올라가서 네 두 눈으로 찾아내라. 이미 현장에 있는 대원을 마주치면 내 지시사항을 전달하도록.”


대원들은 어둠 속에서 비를 맞으며 그들의 대장이 내리는 명령을 들었다.


“잘 들어라, 무단 출입자는 물론이고 물린 자국이 있는 사람을 찾으면 예외 없이 사살해. 칼 들고 덤비든 목숨을 구걸하든 노인네든 애새끼든 그냥 죽인다. 특히 괴물로 변해버린 자를 마주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사살한다. 놔두면 피난민 수백명과 영지민이 전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경비대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은휼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외쳤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너희가 머뭇거리면 모두 죽는다. 움직여!”


그 말을 듣자마자 5조 조장 타칸이 외쳤다.


“빨리빨리 움직여!”


경비대원들은 순식간에 흩어지며 제 할 일에 나섰고 은휼은 창을 하나 집어 들고서 말에 올라타 달렸다.

그들의 발자국엔 빗물이 들어차고 있었다.





***





하늘은 그동안 우중충했던 날들을 토해내듯이 비를 한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4조 조장, 해리는 어느 골목길을 달리고 있었다.

조원과 조장이 함께 다닐 여유도 없었다.

차라리 한명씩 흩어져서 수색에 임하는 것이 나았다.


지금은 벌써 수색을 시작한 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나고 있었다.

괴물들이 얼마나 퍼졌을지, 밤의 어둠은 끔찍한 상상력에 기폭제를 더해주었다.

그리고 그 상상이 망상이 아닌 사실임을 증명해줄 법한 흔적을 해리는 찾아내었다.


“시발, 좆같은 일이 있었나 보군.”


해리는 골목길의 어느 흔적 앞에서 멈췄다.

그는 무릎을 꿇고서 그 흔적들을 상세히 살폈다.


다수의 발자국. 일곱 명 정도인가. 발자국은 진흙에 깊이 패어있었다.

깊게 팬 그런 발자국들에 지금 쏟아지는 빗물이 얼마 들어차지 않은 것을 보니, 이 발자국들은 새겨진 지 몇 분도 안 지났다.


‘한명은 넘어졌다.’


한 명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다 넘어졌고, 사망했다. 넘어진 자국 주위로 가득한 피가 증명했다.

비 내음 사이로 피비린내가 진동할 정도로 피가 고여있었다.

그러나 분명 사망했을 사람의 흔적은 끊기지 않았다.

다시 일어서 다른 이들을 쫓아간 발자국이 있었다.


‘여기로군.’


넘어진 사람이 물어뜯겼는데 다시 일어나 달렸다.

괴물은 여기서 다른 이를 괴물로 변화시켰다.

그것도 몇 분 전, 아니, 어쩌면 몇 초 전에.


해리는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검신이 뽑혀 나오는 감각이 비에 젖은 손끝을 따라 전해졌다.


“······”


해리는 검을 치켜들고서 사방을 경계했다.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폭우는 청각을 의미 없이 퇴색시키고 있었다.

또한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폭우 때문에 횃불 하나 켜지 못하는 지금의 밤하늘은 너무나 어두웠다.

후우······ 해리는 숨을 깊게 내쉬며 모든 감각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키에엑! 어두운 골목길에서 붉은 안광이 갑작스레 뛰쳐나왔다.


“이 새끼가!”


해리는 곧바로 검을 찔러버렸다.

푸욱, 복부에 깊게 검이 찔린 괴물의 움직임이 잠시 멎었다.

해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순식간에 검을 뽑은 다음 그것의 목을 쳐버렸다.

서걱, 고기가 잘리는 감각과 함께 그것의 목이 진흙탕을 나뒹굴었다.

그는 데구루루 구르는 그 목에 검을 마저 꽂아 확실히 죽여버렸다.


검을 뽑자, 검과 그의 손에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쯧, 결벽증이 있는 해리가 손에 묻은 피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더럽다. 하지만 깔끔 떠는 것도 때가 있는 거지. 지금은 전투 중이었다.


해리는 방금의 괴물이 튀어나온 골목길을 바라봤다.

더없이 어두워서 마치 공간이 뚝 끊겨버린 듯한 그곳에서 이질적으로 빛나는 붉은빛이 있었다.

괴물의 붉은 안광이 열둘.

여섯마리가 그를 바라보며 뛰어오고 있었다.


“인간적으로 너무 많잖아.”


여섯이라.

그래봤자 한 시간 정도밖에 안 지났을 텐데 벌써 이토록 확산된 건가.

한 번 뚫렸다고 난장판이 됐군.


젠장, 한 번도 접근을 허용치 않고 여섯은 불가능에 가까운데.

여기가 죽을 자리일지도 모르겠군.

기왕 뒈질 거라면 양지바르고 깨끗한 곳에서 뒈지고 싶은데.


퉤, 땅에 침을 뱉은 해리가 검을 치켜들며 자세를 잡았다.


“와봐라, 온힘을 다해서 상대—”


쐐애액! 무언가가 공기를 찢으며 해리의 귓가를 스쳤다.

그의 등 뒤로부터 날아온 것은 해리를 지나, 가장 선두에서 달려오던 괴물의 머리에 적중했다.

그것은 창이었다.

고속으로 날아간 창은 괴물의 두개골을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뭐지? 해리가 창을 던진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이미 창을 던진 자는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확인할 필요도 없었군.’


해리는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말의 거체를 얼핏 확인하고는 생각했다.

이 거리에서 저 파괴력으로 창을 던질만한 사람이 누가 있겠어.


“대장님!”


그의 생각대로, 투창을 한 것은 은휼이었다.

그는 말을 타고서 순식간에 해리를 지나쳐, 달려오는 여섯의 괴물 무리에게 뛰어들었다.


키에엑! 자신들에게 겁먹지 않고 말을 달려오는 라티온의 경비대장에게 괴물들이 소리쳤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검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서걱! 달려가는 말의 속도와 함께 휘둘러진 검은 엄청난 절삭력을 가지고 순식간에 한 괴물의 목을 쳐버렸다.

이제 다섯 남았다. 은휼은 괴물들을 살짝 지나쳐 말을 멈추고는 곧바로 뛰어내렸다.


해리는 그 어이없는 광경을 바라봤다. 은휼은 피범벅이었다. 이미 한바탕 하고 온 건가.


아무런 두려움 없이 검을 쥐고서 은휼은 달려들었다.


케에엑! 다섯의 괴물이 은휼의 살코기를 노리고 달려든다.

하지만 그의 검은 빗방울마저 가르며 선두의 괴물에게 찔러 들어갔다.

퍼억! 눈알과 두개골, 그리고 뇌가 파괴되는 감각이 검신을 타고 그의 팔에 찡하게 전해왔다.


그 순간에 은휼은 검을 놓았다.


검이 머리에 꽂힌 괴물은 뒤로 쓰러져갔고, 검을 놓은 은휼에겐 두 손이라는 새로운 무기가 생겼다.

뒤따라오던 두 괴물의 목을 은휼의 양손이 각각 하나씩 붙잡았다. 그리고는 땅에 내다 꽂아버렸다.

콰앙! 진흙 사이사이에 박힌 돌길에 두 괴물의 머리가 강타당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붉은 안광을 잃고 비에 젖은 시체가 되어버렸다.

다른 경비대원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은휼의 체격에 걸맞은 괴력이었다.


한편 머리에 검이 꽂혔던 괴물은 아직 다 쓰러지지도 못했다. 

은휼은 여전히 뒤로 쓰러지는 중인 괴물의 머리에서 검을 뽑아내는 기예를 선보였다.


가가각, 부서진 두개골을 가르며 검이 뽑혀 나왔다.

다시 그의 손에 쥐어진 검은 달려드는 괴물의 목을 쳐버렸다.

바닥을 나뒹군 그 목을 발로 밟아 완전히 죽여버리면서, 은휼은 마지막으로 달려오는 한 마리를 바라보았다.


이미 은휼에게 가까이 다가왔던 그 괴물은 맹렬한 의지를 불태우며 마치 몸을 던지듯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은휼은 그 괴물의 목을 붙잡아 가볍게 멈춰 세워버렸다.

케에엑! 목이 우악스러운 손에 붙잡혀 꼼짝 못 하는 상태로 괴물의 눈동자가 은휼을 바라봤다.


‘이 자들은 깊게 물렸군.’


아예 목이 뜯겨나갈 정도로 물어뜯겼다. 그마저도 살결이 꿈틀거리는 걸 보니 몬스터화가 진행되어 재생하려는 것 같지만.

확실히 물린 부위마다 변화 시간이 달라진다.

목에 물리면 급속도로 변하는 건가.

목이라기보단 동맥이라 하는 게 옳을지도.

이건 나중에 알아봐야겠군.


은휼은 확인을 마치고는 오른손의 검을 괴물에게 찔러넣었다.

그를 향해 이빨을 딱딱거리는 괴물의 입 사이로, 그것의 아래턱을 뚫고 입안을 침범한 은휼의 검이 보였다.

그런데도 괴물은 여전히 이빨을 딱딱거리며 은휼을 물어뜯고자 애썼다.

하지만 은휼의 검은 멈추지 않았고, 그의 검은 괴물의 입천장을 뚫고, 비강을 뚫고 나서, 이젠 뇌에 다다랐다.

그러자 맹렬히 움직이던 괴물의 몸이 갑자기 축 늘어졌다.

은휼이 검을 뽑는 순간, 괴물은 바닥에 힘없이 허물어졌다.


그 모든 순간 속에서 은휼의 눈동자는 한 점 흔들림 없었다.

오히려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시체를 바라보며 검을 털었다.


“어이가 없군.”


해리는 그 광경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누군 죽을 각오도 했는데.

방금 여섯의 괴물이 죽는데 몇십초도 안 걸린 것 같다.


은휼의 어깨와 갑주, 다리 등등 온몸에 달라붙은 살점과 내장 조각이 빗물에 맞아 투두둑 떨어졌다.

핏물과 빗물에 완전히 젖어버린 은휼의 은발 머리카락은 이제 붉은빛이었다.


해리는 은휼에게 걸어가며 그가 방금의 전투에서 조금도 흥분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숨은 거칠지 않았고, 그의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무미건조한 음울함을 가지고 있었다.

생과 사를 가르는 전투 중에 필연적으로 솟아오르는 흥분감. 

은휼의 깊은 눈동자와 그의 담담한 걸음걸이, 검에 묻은 핏물을 무감하게 털어내는 그의 동작에서 그런 흥분감 따위는 추호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 따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쉬운 전투였던건가, 아니면 이런 전투를 수도 없이 겪어왔던 것일까.

해리는 이 괴물들과 은휼의 공통점을 알 것만 같기도 했다.

맹목적인 살인 기계. 은휼은 무언가를 죽이는데 너무나 탁월한 인간이었다.


“대, 대장님.”

“움직여. 잡담할 시간 없다. 네가 저쪽으로 가라. 내가 이쪽으로 갈테니.”


은휼은 곧바로 말에 올라타 달렸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던 해리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


일곱의 시체는 물에 젖어가고, 말발자국은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




은휼은 말을 타고 빗 속을 달리고 있었다.

폭우 속에서 말을 달리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다.

영지에 도로가 잘 정비 되어있으니 망정이지, 곧장 낙마해버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말을 평상시처럼 빠르게 달리기 어려웠다.


게다가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바람에 소리가 묻히고 흔적이 지워진다.

어딘가로 도망치고 숨었을 피난민과 그들을 쫓는 괴물들을 추적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소리였다.


은휼 뿐만 아니라 경비대원들도 헤매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나마 은휼은 말을 타고 있었으니 사방을 돌아다니며 괴물을 처죽이고 피난민을 구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어디로 가야하지? 지금 이 순간에도 괴물들은 수를 불리고 있다.


은휼은 이를 빠드득 악물며 말을 달렸다.


그의 얼굴은 완전히 젖어가고 있었다.

말을 달리는데다가 갑작스레 불어온 바람은 빗방울이 그의 얼굴을 때리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바람이 몸을 감싸는듯이 느껴졌다.

꺄르륵!


“······정령?”


꺄르륵! 꺄르륵! 은휼의 귓가에 희미한 웃음소리가 어른거렸다.

이건 영주, 비샨의 바람의 정령이 내는 웃음소리일텐데?

그때였다. 은휼의 귓가에 어른거리는 바람을 타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휼. 들리나.”

“영주님?”


바람의 정령의 능력이었다.

바람의 정령은 특정 공간의 소리를 지우거나, 그 소리를 바람을 타고서 다른 곳에 전해줄 수 있었다.


지금 비샨 라티온은 영주성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문으로 들이치는 비가 그의 손등을 때렸다.


“지금 폭우와 어두운 시야 때문에 상황이 어렵겠지.”

“네, 그렇습니다. 흩어진 괴물과 피난민의 위치 파악이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어쩔 수 없군. 난 지금부터 상당히 무리할 거다. 그러니 너에게 맡기지.”


비샨이 손바닥을 펼쳤다. 그 손바닥에 바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창문에 들이치던 빗방울은 바람을 따라 허공에서 춤추듯이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비샨은 영주성에서, 지금 저 먼곳을 달리고 있는 은휼에게 말했다.


“귀가 터질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든 버텨라. 네가 아니면 지금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없으니.”


바람과 불꽃을 주로 다루는 고위 정령사, 비샨 라티온이 바람의 왕을 불러내기 시작했다.


“이곳에 왕림하라, 모든 바람의 왕이여. 북풍을 그 형체 없는 손에 그러쥐어 숨죽이고 죽어가는 모든 소리를 인도하라.”


그의 영창을 들은 은휼은 멈춰세운 말 위에서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이 통째로 움직인다. 아니, 구름이 바람에 휩쓸린다.

쏟아지던 비는 때아닌 강풍을 맞아 땅바닥의 위치를 잊어버린듯 옆으로, 때론 거꾸로 하늘을 향해 쏟아졌다.

번개가 번쩍이던 먹구름들이 바람에 밀려나 생겨난 하늘의 빈틈에 무언가가 내려온다.

은휼은 영주성의 하늘 아래 희미하고 거대한 형체가 어른거리는 것을 보았다.


정령왕이 왕림한다.


현상을 관장하는 마력적 존재, 정령. 그러한 정령들의 왕이 폭풍을 일으키며 실체화했다.


이 땅에 내려온 바람의 정령왕은 이 일대의 바람을 휘어잡아 그 속에 담긴 만물의 소리를 영주의 의지대로 재구성하고 있었다.


쿨럭! 영주성의 비샨은 피를 토했다.


“젠장, 힘들군.”


이건 설령 그가 고위 정령사더라도 정신 나간 짓이었다.

정령왕의 권능은 엘프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지금 비샨이 시도하는 것은, 영지에 울려퍼지는 모든 소리를 잡아내어 재조합하는 것이었다.


그가 평생을 지켜온 영지의 주민들의 비명, 최대한 살려내려던 피난민들의 절규, 빗속에서 검 하나 들고 사투하는 경비대원들의 고함.

그 모든 소리를 한데 모으자 인간의 몸으론 견디기 어려운 정령왕의 마력이 비샨의 몸을 망가뜨렸다.

그의 입에서 피가 한가득 쏟아졌으나, 비샨은 어떻게든 그러쥔 그 모든 소리를 그가 친애하는 경비대장에게 바람과 함께 전달했다.


“크윽!”


은휼은 갑자기 수많은 소리가 그의 귀에 쏟아져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귀가 터질 것만 같았다.

말이 화들짝 놀랄 정도로 강하게 불어온 바람은 은휼을 휘감고서 그의 귀를 침범하고 있었다.


- 무, 문 열어주지마!

- 살려주세요! 제, 제발!

- 흐아악! 죽기 싫어!

- 내 아가, 내 아가!

- 엄마아!


소리가 들린다.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그 존재를 잃지 않고 방향과 위치를 전달할만큼 선명하게 들린다.

어디지? 은휼은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바람과 소리의 폭풍 속에서 필사적으로 그들의 위치를 찾았다.


- 바렌!

- 긱센 조장님, 어떡합니까 대체!

- 버텨! 여기 뚫리면 다 죽는다!


······찾았다. 은휼은 다시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 사이로 탈진하기 직전인 영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티온의 경비대장 은휼, 라티온의 영주로서 명한다.”

“······”

“가라. 가서 내 영지민과 무너진 제국의 국민들을 구해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경비대장의 말이 비를 헤치고 달려나갔다.



작가의말

제목을 '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으로 변경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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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아포칼립스의 남부 경비 대장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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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8) +2 24.09.02 38 3 13쪽
19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7) +1 24.09.01 44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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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5) 24.08.29 46 2 17쪽
16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4) 24.08.28 44 2 12쪽
15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3) 24.08.26 50 2 12쪽
14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2) 24.08.24 51 2 15쪽
13 4.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1) 24.08.23 46 2 22쪽
12 3. 아이, 소년, 어른(7) 24.08.22 48 2 14쪽
11 3. 아이, 소년, 어른(6) 24.08.21 53 2 17쪽
» 3. 아이, 소년, 어른(5) 24.08.20 59 2 22쪽
9 3. 아이, 소년, 어른(4) 24.08.19 66 2 19쪽
8 3. 아이, 소년, 어른(3) 24.08.18 71 2 20쪽
7 3. 아이, 소년, 어른(2) 24.08.17 85 3 22쪽
6 3. 아이, 소년, 어른(1) 24.08.15 93 2 26쪽
5 2. 인류 최후의 기사(4) 24.08.14 96 3 21쪽
4 2. 인류 최후의 기사(3) 24.08.13 103 3 20쪽
3 2. 인류 최후의 기사(2) 24.08.13 107 4 21쪽
2 2. 인류 최후의 기사(1) 24.08.13 114 1 18쪽
1 1. 프롤로그 24.08.13 148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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