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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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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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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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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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5화

DUMMY

약 2년 반 정도가 흘렀음에도 마빈은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고행을 자처하는 떠돌이 사제라 칭하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노인이 마을에 잠시 들렀다 떠난 날을.


그래. 바로 이 눈앞의 그 사람 말이다.


아이들을 불러놓고는 아이들에게 작은 인형 연극을 보여주는 사람처럼 목소리를 높여 이해하기 힘든 말을 쏟아놓고 갔었지.


신은 불공평하고 세상에 관심이 없으며 하루빨리 다른 믿음을 찾아야 하며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세상엔 정의 따윈 없다는, 지극히 사이비스럽고 반사회적인 연설이었다.


“어......? 떠돌이 사제님 아니세요?”


그는 고작 하룻밤을 머물다 갔지만 헛소리를 내뱉으며 자아도취하던 기괴한 표정이 너무나도 인상 깊었기에, 마빈은 지금도 저 주름살과 수염 가득한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날 아느냐?”

“네. 예전에 저희 마을에 들렀다 간 적이 있거든요.”


온통 피투성이에 머리카락까지 잔뜩 피를 먹어 달라붙은 마빈이 꾸벅 인사했다.


“그러냐?”


떠돌이 사제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가 떠돌며 거친 마을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 많은 곳 중 빌렛힐이라는 촌구석을 기억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작은 마을 위주로 돌아다녔으니, 눈앞의 자신을 봤단 이 녀석도 갓 도시로 올라온 어리숙한 촌놈이리라.


“정말 다행이구나. 웬 흑마법사 놈이 이런 흉측한 곳에 날 잡아가뒀단다. 제물로 쓰려던 모양인데. 덕분에 살았어!”


떠돌이 사제는 이 녀석을 속여보기로 했다.


‘마법이 있긴 하지만, 되도록 아끼는 게 좋지.’


주문은 유한하고 자신은 적진의 한복판에 있는 상황. 이 밑에 물길이 있긴 하지만 구불구불하고 위험하니, 여기에 붙잡힌 인질이라 말하고 육로로 빠져나가는 게 더 낫다 판단했다.


‘뭔가 어리버리해 보이니 속여 넘기긴 쉽겠어.’


이 상황에서 인사를 하다니. 칼솜씨는 제법이지만 머리는 좀 모자란 녀석인 모양이야.


그러나 그건 오판이었다.


사실 인사를 한 건 순전히 마빈의 실수였다.

카트라그에서 여기저기 일을 하고 다니면서 아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밝게 인사하는 게 몸 깊이 체득된 탓이었다.


마빈도 도중에 속으로 아차 했으니, 역시 습관이란 무서웠다.


하지만 어딜 가건 인사가 중요하단 선현의 가르침은 실수 속에서도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었으니, 마빈의 엉뚱한 실수는 다행히도 노인의 경계를 낮춰 주었다.


소년이 성큼 다가와 몸을 기울이며 떠돌이 사제를 살폈다.


“그런데 어디 묶인 데는 없네요? 어디 묶여있었으면 풀어드리려 했는데.”

“나는 힘이 없으니까 안 묶어둔 거지. 밖에는 수적도 잔뜩 있고.”


떠돌이 사제는 로브자락을 고쳐 쓰는 척하며 옷자락 안으로 칼자루를 숨겼다. 그걸 마빈이 못 알아챌 리는 없었다.


“아, 그래요? 밖에 있는 도적은 다 처리했으니까 같이 나가요.”

“음. 그래 고맙다.”


떠돌이 사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긴장을 푸는 순간, 살심을 머금은 손도끼가 바로 지척에서 휘둘러졌다.


“쳇!”

“칫!”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둘의 입에서 동시에 튀어나왔다. 서로 원하는 바를 성취하지 못했다는 짜증이 섞인 짧은 소리들.


“깊은 밤의 절망을 불러오는 자께 간청하오니, 부디 제게-”


떠돌이 사제가 입술을 꿈틀거리며 주문을 외우자 살벌한 소리를 내며 도끼가 날아왔다.


팍!


떠돌이 사제가 몸을 비틀었다. 도끼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그를 스쳐 지나가 애꿎은 돌벽에 맞고 튕겨 나왔다. 벽에 튕긴 손도끼는 그의 다리로 날아들었고, 그는 다급히 칼을 내려 막아냈다.


자세가 흐트러지자 마빈이 양손으로 검을 잡고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카카캉


검격이 몇 번 교차했다.

야수의 이빨 같은 칼날이 떠돌이 사제의 팔과 어깨를 스치며 상흔을 만들어냈다.


‘목을 노렸는데.’


떠돌이 사제의 칼솜씨에서 상당히 방어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마음 깊숙한 곳의 욕망을 뒤집어 까 현혹하는 힘을 원하오니-”


한때 드높은 천상을 찬양하던 그의 입에서는 정반대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사악한 주문을 빌리고자 하는 낱말들이새어나왔다.


채챙!


마빈은 더욱 매섭게 검을 놀렸다.


칼 한 자루밖에 없음에도 방패를 무장한 이를 상대하는 것 같은 생소한 검술은 마빈의 칼날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허나 마빈의 날카로운 이빨은 방패의 가장자리를 쉴 새 없이 물어뜯으며 떠돌이 사제의 팔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았다.


떠돌이 사제는 신음 하나 흘리지 않고 계속 입을 움직였다.


“-를 일으킬 것을 부디 간청드립나이다!”


그렇게 끝내 사악한 주문이 완성되었다.




***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말라죽은 잡초와 흙을 밟던 말의 발굽 소리는 단단하게 바뀌었다.


정신없이 말을 몰던 메이헌 사제가 그걸 알아채고는 속도를 줄였다. 드디어 도시에 도착했구나.


“후, 후우. 조금만. 조금만 더 고생해 다오.”


숨을 몰아쉰 메이헌은 말에게 마지막으로 체력 회복을 시켜주었다. 더 이상 신성력을 소비하면 만약의 경우에 대처가 힘들다.


성벽 밖으로 뻗은 작은 시가지를 지나친 메이헌은 굳게 닫힌 성문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저녁도 아닌데 왜 벌써 성문을......’


카트라그에서 가장 큰 중앙 성문을 맡고 있던 기사 하나가 얼른 다가왔다.


“빨리 오셨군요 사제님.”

“예. 왜 성문을 닫고 있습니까?”

“지금 흑마법사의 종적을 찾느라 문을 닫았습니다.”


기사가 손짓으로 성문을 열라 명했다.


“흑마법사가 침투했단 말은 들었습니다. 상황은 어떤가요?”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저는 여기만 지키고 있느라요. 근데 저게 뭡니까?”


기사의 눈이 질질 끌려와 형체도 채 남지 못한 무언가를 가리켰다.


“모험가 조합장입니다. 흑마법사에게 돈을 받고 저희를 습격했지요.”

“맙소사. 시체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세상에. 사제님도 흑마법 관련해선 무서우신 분이구나. 극악한 죄인이라고는 하지만 설마하니 이런 방식으로 질질 끌고 오실 줄이야.


“그럴 필요 없습니다. 같이 갑시다. 시장님을 뵈어야겠어요.”

“예? 하지만 저는 여길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제님이라면 시장님을 바로 뵐 수 있을 텐데요?”

“어차피 곧 불려갈 테니까요.”


메이헌이 입술을 씹었다.


“침투한 흑마법사는 하나가 아닙니다.”


그의 시선이 저 멀리 성당을 향했다.




***




이 세상에서 마법은 두 부류로 나뉜다.


특정한 자들이 스스로 깨우쳐 사용하는 이적.

또는 악마에게 대가를 바쳐 얻는 사악한 주문.


떠돌이 사제가 사용한 것은 명백한 후자, 흑마법이었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넘어 간청하는 언사와 감읍하는 듯한 운율은 누군가에서 힘을 빌려온다는 증거였으니.


질척한 음울함이 처덕처덕 발라져 있는 회색 덩어리가 떠돌이 사제의 손끝에서 마빈에게 쏘아졌다.


쨍!


강렬한 충격이 검을 통해 손아귀로 전해지자 날카로운 금속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부러졌어!’


자신의 돈으로 마련한 첫 검을 결국 떠나보냈다. 그러나 옛 전우와의 추억을 떠올릴 시간은 없었다.


검을 부러뜨린 덩어리는 곧바로 연기처럼 흩어지며 마빈을 덮쳤다.


‘어우 매캐해!’


흑마력 특유의 불쾌함이 콧속으로 들어오자 마빈이 콜록거리며 팔을 휘저었다.


“흐흐흐, 그럴 때가 아닐 텐데?”


떠돌이 사제가 음침하게 웃었다.


‘튀어야 한다.’


웃고 있지만 그는 여유가 없었다.


마빈의 검에 입은 상처.

그곳으로 과거 그가 갖고 있었으나 버렸던 것이 스며들어왔다. 신을 배신한 자에게 다시 돌아온 신의 힘은 배신의 대가를 톡톡히 맛보여 주었다.


‘교단의 추적자인가? 크으윽.’


몸을 가득 채운 사악한 기운이 불살라지는 건 끔찍한 고통을 선사했다. 그걸 버티는 건 순전히 정신력이었다.


‘악마에게서 세상을 지키지도 못한 무능한 신의 힘에게 질 순 없다!’


배교를 하고 오랜 기간 동안 쫓기면서 그릇된 신념을 유지하는 것도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명과 제물을 숱하게 바쳐 강화한 환상마법은 교단의 추적자들조차 쉽게 따돌리게 해줄 정도로 강했다.


지금까지 모든 추적자들이 당했던 것처럼 저놈도 괴물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생생한 환상을 보고 꼴사납게 허공에 칼을 휘두르리라.


마빈이 갑자기 뒤편, 괴문자로 뒤덮인 문짝을 향해 부러진 검을 겨누었다.


‘드디어 환영을 보고 있구나! 이때다!’


그 틈을 타 떠돌이 사제는 등을 돌려 시신 무더기로 향했다. 그 옆, 거적에 덮인 지하 통로를 통해 지하 물길 선착장으로 가기만 한다면......!


“어딜 도망가!”


그러나 배교자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마빈은 떠돌이 사제를 먼저 잡는 걸 택했다.


퍽!


“어, 어억!”


비스듬히 부러진 검이 휙 날아가, 동강난 복수를 하겠다는 듯 떠돌이 사제의 엉덩이에 정확히 명중했다.


단순히 베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신성력이 가차 없이 사제에게로 파고들었다.


‘이럴 수가. 이렇게 강력한......!’


상처에서 비롯된 실혈과 자잘한 신성력에 의한 고통을 간신히 참고 있었던 정신은, 검에서부터 전달된 훨씬 많은 신성력으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다.


‘신성력 때문에, 힘이, 빠진......’


떠돌이 사제는 눈을 까뒤집은 채 풀썩 엎어졌다. 그 바람에 거적으로 숨겨져 있던 지하로 향하는 비밀 문이 무너져 내렸다.


“오. 없어졌다.”


떠돌이 사제가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뭔가 반투명한 괴물들이 발소리도 없이 문을 유령처럼 스르륵 통과해 들어오는 어설픈 광경이 모조리 흩어져 사라졌다.


사악한 주술 글귀들이 잔뜩 새겨진 석실에서 마빈은 양팔을 번쩍 들고 승리를 자축했다.


그러나 모험은 끝나지 않았다.


호기심 가득한 소년의 눈이 떠돌이 사제의 시체가 무너뜨린 바닥의 구멍으로 향했다. 낡은 바닥이 부서지며 드러난 지하실 입구.


그곳에서는 여전히 가느다란 흑마력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




카트라그의 지하에 있는 물길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하나하나 직접 파내 물길을 넓힌 것이라 원한다면 언제든지 인력을 동원해 새로운 공간을 지을 수 있다.


이곳도 그런 곳이었다.


흙으로 된 벽에 허술한 지지대만 세워진 것이 전부라 언제 무너져도 모를 공간. 바닥에 깔린 견고한 석재에 새겨진 불길한 피의 마법진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건 그동안 발견된 사악한 마법진과는 달랐다. 검붉어지는 사람의 피보다 훨씬 옅고 약간의 푸른색이 감돌았다.


“흐흐흐, 이제 마지막이다.”


마법진 위에서 중얼거리는 또 다른 흑마법사.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자그마한 쇳조각을 바라보았다.


쇳물을 손으로 반죽해 만들기라도 했는지, 얼핏 보면 돌을 깨서 만든 주먹도끼처럼 보이는 쇳조각이었다.


“깨어나소서. 이 도시를 집어삼키고 혼돈을 불러오소서!”


흑마법사가 마법진 한가운데에 그 쇳조각을 단검처럼 푹 박는 순간.


쾅!


문짝이 크게 흔들렸다.


콰직! 쿵!


거친 소리와 함께 도끼날이 장작 패듯 문짝을 부수고 들어왔다. 그 틈으로 검은 머리의 소년이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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