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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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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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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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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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DUMMY

빈민가의 깊숙한 곳.


“일은 잘 되어가고 있소?”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이 둘이서 소담을 나누고 있었다. 바깥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와 아기를 빼앗긴 이의 절망 어린 비명을 들으며.


젊은 목소리를 가진 이가 말했다.


“호구조사를 의뢰하면서 착실하게 계획을 세워놨던 것이니,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금방 진을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성성하게 기른 흰 수염이 후드 밑으로 비죽 튀어나온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덕에 효율 좋은 제물을 잘 구할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구해온 제물이 아니었다면 여기서 아기를 몇이나 바쳐야 했을지.”


“내가 오히려 고맙지요. 그대가 미리 이 도시에서 기반을 마련하고 있지 않았으면 계획을 짜느라 그만큼 시간을 낭비해야 했을 테니.”


바깥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에게 훈훈하게 금칠하고 있는 둘의 대화에 악에 받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사악한 악의 하수인들이여, 주신께서 이 일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잡은 짐승을 가둔 것처럼 작고 낮은 철창 우리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검은 로브를 쓴 둘은 동시에 코웃음쳤다.


“흐, 주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에서 방관만 하는 년 주제에 용서치 않을 거면 어쩔건데?”


젊은이는 단순히 비웃음을 흘리는 데 그쳤지만, 나이든 쪽은 음절마다 증오와 원망이 뚝뚝 흘러내렸다.


“하하, 생선 따위에게 열 받지 마시지요. 지옥의 위대한 계획의 시발점이 될 때에 분노해봤자 도움 될 것 없잖습니까.”

“크흠. 알겠소. 쓸모없는 년 얘기가 나와서 잠시 흐트러졌구려. 그럼 난 이만 가보겠소. 순탄하게 계획을 이루길.”

“걱정 마시지요.”


노인은 철창을 지나가면서 창살을 잡고 있는 손을 퍽 걷어찼다. 비늘로 덮인 손이 안으로 쏙 들어가며 앓는 소리를 냈다.


“흥, 지저분한 놈들.”




***




좁은 뒷골목을 배회하는 이들의 면면은 다양했고, 그 중에는 나이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고아거나 없느니만 못한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마치 물고기가 천적을 피하기 위해 몰려다니는 것과 같은 생존전략을 취했다.


효과가 있긴 한 건지 무리를 이루면 나이가 찰 때까지 별 탈 없이 자라는 비율은 높았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눈여겨보고 있던 조직들에게 반강제적으로 가입 당하곤 했다.


이들은 양지와 음지를 자유로이 왕래하는 집단이기도 했다.


양지에 사는 시민들의 입장에선 소매치기나 좀도둑질을 하는 녀석들이 껄끄럽긴 해도 위협적인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개중에는 도제나 종업원 같이 번듯한 직업을 가지는 경우도 있는지라 경계대상이 아니었다.


때문에 아이들은 의도치 않게 넓은 정보망을 가진 집단이 되었다. 어쩌면 돈 몇 푼만 들이면 정보를 살 수 있기에 조직들이 가만히 두는 걸지도 몰랐다.


마빈이 이 아이들을 방문한 이유도 같았다.


“얘들아 안녕.”


사냥꾼의 발걸음으로 기척 없이 스르륵 나타난 키 큰 소년에게 아이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작게 비명을 질렀다.


“어, 어우씨 깜짝이야.”

“진짜 사냥꾼은 사냥꾼인가.”

“저게 어딜 봐서 열다섯이야. 키도 크네.”

“그래도 얼굴이랑 목소리는 티 나는데 뭐.”


자신들에게 다가온 마빈을 보며 수군대는 아이들.


이곳저곳을 다니며 귀동냥을 하는 아이들인지라 마빈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다. 도시에서 늑대가죽을 망토 삼아 걸치고 다니는 사람은 오로지 한 명뿐이기도 하고.


아이들의 경계심이 높아졌다.

갑자기 나타났단 것뿐만은 아니었다.


‘피 냄새.’


뒷골목의 악취를 뚫고 풍기는 혈향.

족히 수십 명씩이 죽어나가는 조직 간의 격한 전투에서나 맡아본 적 있는 수준의 농도였다.


아이들이 피운 작은 모닥불은 마빈의 모습을 모두 밝힐 정도로 밝은 광원이 아니었다.


피 냄새를 덕지덕지 묻히고 몸의 절반 이상이 어둠 속에 묻힌 사내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무, 무슨, 일인데요?”


그럼에도 한 아이가 용감히 나섰다.


“아. 너구나. 그동안 잘 지냈니?”

“네, 네......”

“요즘은 소매치기 안 하지?”


아이가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했다. 운이 좋게도, 이 작은 무리를 이끄는 아이는 마빈과 안면이 있었다.


“오늘 빈민가가 시끄럽던데 무슨 일인지 아니?”

“어, 잘은요? 혹시 아는 사람?”


아이들은 고개를 저었지만 모두가 긴장하거나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네가 뭘 궁금해하건 우리가 알 바냐. 그런 기색을 마빈이 모를 리 없었다.


“이거 줄 테니까 말 좀 해줄래? 여기저기서 아기를 뺏고 있던데.”


마빈이 은화 한 닢을 내밀었다.


보상이 눈앞에서 흔들거리니 아이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뭐 어디 앵벌이로 팔려고 그러나보죠.”

“그런 것치곤 여기저기서 잡던데? 그리고 앵벌이도 어느 정도 큰 애들 잡지. 최소한 우리 수준으로.”

“하긴, 멀쩡한 집에 쳐들어가지는 않지?”

“근데 어떻게 애기 있는 집만 다 알고 쳐들어가는 거야?”

“전에 모험가들이 여기 여러 번 들락거렸잖아. 그때 조사해서 그런 거 아닌가?”

“나 그거 시청에서 조사 나온 줄 알았는데.”

“아닐걸? 몇 년 전에 시장이 여기 한 구획 가둬놓고 통째로 불태운 거 기억 안 나? 그때 여기 깡패들이 수백은 죽었는데. 시청에서 나왔다고 하면 바로 목 따이지.”

“그래서 모험가한테 맡긴 거 아냐? 모험가 조합에도 여기 조직이랑 형님동생하는 사람 많잖아.”

“에이, 그러면 오히려 정보가 새니까 안 맡기겠지.”


아이들의 이야기는 어느덧 마빈을 향하기보단 자기들끼리의 잡담으로 번졌다. 그래도 가치가 없진 않았기에 마빈은 잠자코 얘기를 들었다.


“하여튼 왠지는 모르겠어요. 누가 하는진 알아도.”

“누군데?”

“붉은 칼날이요. 사람 잡아 파는 놈들 중에서 목에 힘주고 다니는 놈들이에요. 그보다 작은 조직들이 걔네 무시하고 함부로 납치는 못 하죠.”


그러고 보니 마빈이 여기까지 오면서 죽인 수십의 조직원들의 목이나 손, 뺨 등에 빨간 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 걔네들 어디 사니?”

“그건 왜요? 막으려고요?”

“응.”

“걔네 악독한 걸로 유명해요. 우리들 중에서도 여럿 잡혀가서 팔다리 하나씩 잘려서 앵벌이로 써먹혔거든요? 이젠 그런 애들한테 적선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그래요. 누구는 다른 조직 기선제압한다고 일부러 그런다고도......”

“괜찮아.”


놓친 조직원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마빈이 제 조직원들을 죽였단 것이 그들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먼저 친다!’


그놈들이 복수를 안 할 리는 없으니, 그들이 태세를 갖추기 전에 먼저 조지기로 했다.


말단에서부터 시작된 마찰이 대가리까지 따야 끝나는 플롯이 괜히 유행한 게 아니다. 그게 가장 확실한 방책이니까.


그리고 아기를 납치하고 애들 팔다리를 잘라낸다는 말종들을 가만 둘 순 없지.


‘다리를 잘라?’


사지 귀한 줄 모르는 새끼들.

마빈의 눈이 험악해졌다.


“으, 으으.”


갑자기 사나워진 기세에 아이들이 주춤 뒤로 물러서자, 마빈은 금방 표정을 고쳤다.


“붉은 칼날이 어딘지 알려주면 하나 더 줄게.”


마빈의 손엔 어느새 은화 한 장이 들려 있었다.




***




마음속에서 이성이 내 귓가에 속삭인다.


이 도시는 네 종착지가 아니야. 단순히 정보를 얻고 여비를 마련하는 시작점이지. 그런데 여기서 굳이 사달을 일으킬 필요가 있어?


없지.


이런다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오물 한두 삽 떠낸다고 시궁창이 깨끗해지진 않는다고. 빈 곳에 똑같은 놈들이 몰려 들어서 똑같은 짓을 할 거야. 괜히 네 힘만 빼고 너만 위험해지는 짓이지.


알아.


이쯤에서 끝내. 여차하면 경비대나 제프 할아버지네에 투신해도 나쁠 거 없고, 돈도 많이 모았으니 이제 슬슬 떠나도 되잖아.


싫어.


그럼 왜 칼 한 자루만 가지고 범죄자들의 소굴로 기어들어 가는데?


이에 대한 답을 하자면.


‘.......기분 나빠서.’


다리가 없어 남들에게 업신여겨지던 삶.


침대 위에서 무기력하게 임종만 기다리던 삶.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많은 걸 흘려만 보내야 했던, 마지막 희망마저 산산조각 난 이전의 삶.


아까 전에 본 할머니의 눈은 내게 잊고 싶은 과거의 기억보따리를 강제로 풀어헤쳤다. 그리고 다리를 잘라낸다는 개새끼들을 살려둘 순 없지.


내 심장이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지금 조지지 않으면 족히 10년은 갈 불쾌함이 될 거라고.


이건 내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침대 위의 삶이 시작되었을 때 결심한 게 있었다.


만약 내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다면.


하루하루, 매 순간.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내 감정에 충실하자고.


“다 왔어요.”


앞서 가던 꼬마가 발을 멈췄다.

다닥다닥 지어진 판자촌과 골목길로 이뤄진 빈민가에서 드문 넓은 공터였다.


“저기요. 저 벽돌 건물. 간판 보이죠?”


대놓고 붉은 단검 하나가 현판 위에 콱 박혀 있었다.


“그래. 고마워.”

“절대로 저희가 가르쳐줬다고 하지 마요.”

“그래그래.”

“......죽지 말고요.”

“그럼.”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한테 소매치기를 하다가 걸린 아이였다. 하지만 나는 아이의 돈을 역으로 갈취하지도, 두들겨 패지도 않았다.


전생에 부모 없는 놈이란 말을 여러 번 들어왔던 나다. 제대로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설움을 잘 안다.


전생의 세상이었다면 초등학교를 다니며 다른 아이들이랑 하하호호 뛰놀았을 나이. 하다못해 제대로 된 부모가 있었다면 최소한 사랑을 받으며 클 나이.


그런 아이가 소매치기를 하게 된 건 심성이 악해서라기보단 처한 환경이 내몬 거겠지.


“다른 사람들한테 뺏기지 말고 다른 애들이랑 같이 맛있는 거 사먹어. 성당 근처에 라커네 빵집이라고 맛있는 빵집이 하나 있거든? 내가 거기서 자주 일하니까 내가 준 돈이라고 하면 좀 더 싸게 줄 거야. 거기 주인 아저씨가 착하셔.”

“......감사합니다.”


아이는 은화 한 닢을 건네받고는 부리나케 골목길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붉은 칼날의 본거지를 쳐다보았다.

문틈으로 여러 소리가 섞여 나왔다.


술잔 부딪히는 소리, 혀 꼬인 고성, 술병 구르는 소리, 나뭇조각 달그락거리는 소리, 오늘은 내가 가져간다, 이 개자식 사기 치지 마라, 요즘 벌이도 안 좋은데 봐줘......


전형적인 술판에 도박판.


‘사람 납치해다 판 돈으로 이딴 짓을 해?’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솟아나왔다.

성큼성큼 내딛는 발의 느낌이 오늘따라 유달리 낯설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저 건물,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기분이 더러워졌다.


너 같은 게 있어서 세금이 이상한 데로 샌다며 백주대낮 거리에서 날 향해 웬 노인이 손가락질했을 때. 그때 느꼈던 분노와 처량함을 생각나게 만드는 느낌.


칼집을 쥔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간다.


덜컹!


분노와 함께 문짝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코를 찌르는 알콜 냄새와 구질구질한 냄새가 훅 밀려들었다.


“뭐야 저거?”

“어우씨 대가리 둘인 줄 알았네. 끄윽.”

“어디서 사람이라도 죽이고 왔냐? 웬 피야?”

“야 너 뭐야?”


문을 연 지 얼마 안 되어서 수많은 시선이 나를 쏘아본다. 경계, 어이없음, 짜증 등등.


총합 스물네 쌍.

따로 나가있으라 할 사람은 없음.

속이 후련하냐고 일갈할 필요도 없음.


챙!


나는 번개 같이 검을 뽑아, 문을 등진 채 카드패에만 집중하고 있던 놈의 목을 그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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