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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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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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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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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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DUMMY

마빈은 카트라그 시장의 저택에 발을 들였다.


일꾼으로 일하면서 물품 배달 같은 일로 시장 저택에 자주 와보긴 했었다. 하지만 정원의 바깥에만 서성이다 떠났지, 이렇게 들어오는 건 처음이었다.


“오.....!”


수수하지만 정갈한 멋이 있는 복도였다. 베델라 상단주 제프의 집과 비슷하면서도 특유의 고고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신기하냐?”

“네!”


누가 애 아니랄까봐 촌놈 티를 숨길 생각도 안 하고 정신없이 고개를 돌려대는 모습에 경비대장 루이스는 피식 웃었다.


저 녀석이 사람 피로 목욕한 채 아무렇지도 않게 ‘다 처리했어요!’하고 웃었던 녀석이라는 걸 누가 믿을까.


‘신기한 녀석일세. 사람을 그렇게 죽여댔는데도 피 냄새나 살기가 안 보이다니.’


타고난 살인자인지 무인의 체질인 건지.


“들어가서 말조심해라. 시장님은 귀족이시다.”

“뭘 그리 겁주고 그러나. 요즘 귀족이 어디 옛날 귀족처럼 꺼드럭대는 것도 아닌데.”

“그것도 옛말이지. 돈으로 귀족 작위 사서 옛날 귀족도 안하던 천박한 짓을 한다는 놈들 얘기가 얼마나 많이 들리는데.”


어느덧 시장의 집무실 방문 앞에 다다랐다.

안에서는 인기척이 여럿 느껴졌다.


루이스가 마지막으로 귀띔했다.


“시장님이 귀족의 예의범절을 일일이 다 따지시는 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 예의는 갖추렴. 어제오늘 온종일 심기가 불편해 보이시긴 하더라.”

“네!”


뭐 이리 긴장 하나 없는 건지 원. 황제 폐하 앞에서도 생글생글 웃을 녀석일세.


“시장님,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 들어오게.”


문이 열리자, 햇살과 벽난로의 열기에 달궈진 따스한 공기가 얼굴을 어루만졌다.


“네가 마빈이냐.”


몸에 딱 맞는 크기의 잘 다려진 검은 외투를 걸치고 외알 안경을 낀 중년의 사내, 카트라그 시장 오리얀트가 뭔가 심기불편한 기색으로 마빈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변과는 색다른 복장 때문에 시계를 대략 일이백 년 정도 뒤로 돌린 것만 같았다.


이상할 것은 아니었다.

레이스를 둘둘 두른 벨벳 코트와 하얀 레깅스를 입고 과시를 뽐내는 귀족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


지금은 저렇게 몸에 맞거나 살짝 품이 있는 치수의 절제미가 돋보이는 복장이야말로 보편적인 이 시대 귀족의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지금 마빈에겐 옷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라.’


문을 열자마자, 붉은 칼날의 본거지에서 느꼈던 것과 매우 흡사한 기분 더러운 기운이 뇌리 한구석을 쿡 찔렀다.


그것은 시장의 가슴 부분에서 마치 바늘처럼 얄팍한 악의를 드러낸 채 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빈. 얼른 대답해야지.”

“아 네. 안녕하세요 시장님.”

“그래. 네가 그...... 사냥꾼이구나.”


어깨에 걸쳐진 늑대가죽의 머리를 힐끔 보고 눈 한쪽이 살짝 찌그러지는 걸 보면 복장불량이라 취급하는 듯했다.


“루이스도 도착했으니 슬슬 대책을 얘기하도록 하지. 우선 저 아이의 증언을 다시 듣고......”


오리얀트 시장은 마빈을 보았다가 루이스를 도로 쳐다보았다. 마빈의 시선이 연신 방 안을 훑는 게 영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눈치를 받은 루이스가 마빈을 톡톡 쳤다.


“집중해라.”

“앗. 죄송합니다.”


마빈은 다소 딱딱하게 증언을 시작했다.


아기를 뺏으려던 소음, 그 불의를 지나치지 못해 저지하고, 붉은 칼날을 습격했으며, 지하실에서 흑마법의 흔적을 발견한데다, 그곳과 이어져 있던 지하 물길에서 수적을 생포했단 것까지.


루이스에게 말한 것과 동일했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시선을 돌리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거 산만하기도 하지’ 같은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흠......”


증언을 들은 시장은 기사들과 휘하 관료들에게 둘러싸인 채 고민하다 결론 내렸다.


“흑마법사 건은 조사하지 않는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시장을 쳐다보았다.


“시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흑마법을 놔두다니요!”

“시장님,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는 손을 들어 왁자지껄하려던 이들의 입을 막았다.


“말 안 해도 안다. 그 사악한 의식으로 뭘 하려들지 모르니 서둘러 빈민가를 뒤져서 조치를 취하란 얘기겠지?”


안경을 내려놓은 시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25년 전 대재앙 이후로, 그동안 내가 이 도시를 위해 힘써왔다는 건 모두가 알 거다.

나몰라라하는 중앙의 무관심에도 저 베델라 상단에 과감한 투자를 해 도시의 목숨줄을 이어 붙였고, 주기적으로 주변 토벌을 해 모두의 안전을 지켰어.”


등을 돌린 그의 외투자락 한쪽은 유달리 힘이 없었다. 미동도 하지 않는 갈색 나무 손가락이 덜렁거렸다.


“그런데 내게 돌아온 건 뭐지? 팔까지 잃어가며 악마와 괴물에게서 도시를 지키고 내 모든 젊음을 바쳐 도시를 지금까지 유지한 대가는? 이제 와서 날 칭송하는 목소리가 있던가?”

“시, 시장님?”


그의 목소리에 분노가 실리기 시작했다.


“없어. 없다고! 은혜도 모르는 천박한 것들 같으니라고. 그 순간만 고맙다 하고는 등 돌리자마자 잊어버리는 것들!”


시장은 의자를 걷어찼다. 귀족이 쓰는 집무실치곤 수수한 나무 의자가 바닥을 뒹굴었다.


의자를 걷어차며 드러난 그의 옆얼굴에는 비이성적인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날마다 살인, 강도, 밀수, 식인, 인신매매! 그런데 이제는 흑마법까지? 돈에 눈이 먼 천박한 것들이 결국 일을 벌였단 거 아니냐!”


요즘 세상에 뒷골목 잡배조차 아기만 모은다는 게 흑마법과 관련이 있단 걸 모를 리가 없는데.


“내가 아니었더라면 얼어 죽고 굶어죽었을 비렁뱅이들이 은혜도 모르고 내 도시를 더럽히고 있다고!”


쾅!

책상을 후려치는 소리가 흡사 자신을 후려치는 것만 같아 모두가 움찔했다.


“그런 놈들을 왜 지켜줘야 하지 내가?”


“......”


“그래. 빠르게 조치를 취한다 치자. 무슨 인력으로? 저 비렁뱅이들이랑 한통속인 용병을 고용해서? 아니면 누가 내건지도 모를 호구조사 의뢰를 제멋대로 실시해서 제물 모으기에 한 발 걸친 모험가 조합? 어디까지 흑마법사랑 엮였는지 모를 범죄조직에 돈 주고?”


피를 토하듯 외치던 그는 등을 돌린 채 창문 하나 나지 않은 벽 쪽으로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히 자조하듯 중얼거렸다.


“땅 밑 물길로 밀수질을 하고 있단 걸 알아도 손대지 못하는 형편에 조사는 무슨 조사. 사실상 그 칼 든 비렁뱅이들에게 두 손을 든 게 아니냐. 그놈들의 발광이 무서워서 영역을 가르고 서로 못 본 척 하자고. 이게 어디 제대로 된 도시더냐?”


방의 분위기는 얼음이 얼 정도로 차가워졌다.


“그리고 이번에 잡은 블라켄트 수적도 있지. 이건 분명 흑마법사와 손잡고 여길 혼란케 한 사이에 음지를 장악하려는 블라켄트 졸부놈의 속셈이 분명해. 흑마법사에 다른 도시까지 개입하다니, 도저히 이건 답이 없어. 지쳤다고.”


누구도 그의 기나긴 폭언을 막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이 도시의 책임자로서 누구보다 몸고생 마음고생을 했다는 걸 알고 있는 측근들이니만큼 더더욱.


하지만 이상했다.


‘이럴 분이 아닌데......!’


불만이 있었다면 측근에게 토로하면 했지 저렇게까지 울분을 삭였다가 터뜨릴 분이 아니다. 더구나 저런 비논리적인 주장까지 하시다니?


와중에 유일하게 침착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진짜 흑마법인가본데.’


바로 마빈이었다.


혹시 자신의 감각이 잘못되었을까봐 시장 말고 방 여기저기를 살피며 흑마력이 느껴지는 걸 찾았다.


결과는 허탕.

오로지 시장에게서 느껴지는 게 전부였다.


“기사 아저씨.”

“왜 부르냐.”


마빈은 렌델을 툭툭 치고 귓속말했다.

그도 제법 당황하곤 있었지만 시장의 휘하에 배속된 기사가 아니라 덜 동요하고 있었다.


“제가 흑마법진이었나, 그거 발견한 거 있잖아요.”

“어.”

“그게, 흑마력이라고 했나. 뭔가 기분 나쁜 느낌이 느껴져서 찾은 거거든요?”

“오. 그래?”


렌델은 놀란 얼굴로 마빈을 보았다. 벌써 기운을 느낄 줄 안다고? 이거 잘하면 조만간 마력 각성도 하겠는데?


“그런데 그게 시장님한테도 느껴져요.”


자그마한 소리였지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기사들은 마빈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루이스가 슬쩍 다가왔다.


“......그게 사실이냐? 하지만 흑마법이 발동했다면 우리들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성직자들보단 아니지만 기사들도 흑마력이라는 꺼림칙한 기운을 못 느끼는 건 아니었다. 대재앙 와중에 악마와 흑마법까지 접한 적이 있으니 더더욱.


헌데 마력 각성도 못한 열다섯 짜리 꼬맹이가 그들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은밀한 흑마력을 알아챘다니?


이번에 흑마법진을 발견했단 걸 생각해보면 마냥 믿지 못할 말은 아니지만......


“지금 어디에 집중하는 거지? 루이스 자네까지 내 말을 무시하는 건가?!”

“그, 그럴 리가요. 진정하시죠 시장님.”


......동고동락한 이들에게도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차라리 흑마법으로 제정신이 아니었으면 했다.


마빈은 단호한 표정으로 자신의 신세한탄을 분노와 함께 쏟아내는 시장에게 성큼 걸어갔다.


“응? 어딜 다가오는 거냐, 이 비렁뱅이야! 무슨 야만인처럼 짐승 가죽이나 걸치고 다니는......”


마빈의 손이 불쑥 시장의 가슴팍으로 향했다. 가죽 외투 안쪽에서 길쭉한 무언가가 턱 잡혔다.


‘이거다!’


잡으니까 더 확실해졌다.

흑마력은 여기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도둑놈이! 무슨 짓이야!”

“기사 아저씨들 좀 잡아 줘요.”


기사들이 반신반의하면서도 몸부림치려는 시장을 양쪽에서 붙잡았다.


마빈이 시장의 품에서 손잡이 끝에 검은 조약돌 같은 게 매듭으로 달린 단검을 빼앗았다.


“이거 놔라! 이 반역자들! 기사의 맹세도 지키지 못하는 버러지 같...... 어. 음?”


단검이 몸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시장의 얼굴이 풀렸다. 들끓던 마음은 평온을 되찾았으며 분노를 토하느라 쉭쉭대던 폐는 도로 줄어들었다.


“정말 흑마법인가.”


렌델이 중얼거렸다.


저렇게 감정이 손바닥 뒤집듯 뒤바뀌는 건 정신병이 아니면 흑마법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음. 모두들. 내 말이 진심이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이거 참. 커흐흠.”


시장 오리얀트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아니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


문을 열고서야 겨우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미약한 흑마력이었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시장에게는 그 작은 균열도 치명적이었다.


“거기서 흑마력이 흘러나온단 거냐?”

“네 아저씨.”


모두의 눈이 마빈이 든 단검으로 향했다.


“저건 모험가 조합장의 유품인데. 조합장이 흑마법사라고? 10년이 넘게 도시에 있던 사람이?”

“도중에 바꿔치기 당했을 수도 있지. 흑마법사들 수법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한 기사의 중얼거림에 렌델이 씁쓸하게 말했다. 그 거기서 거기인 것들이 너무 효과적이어서 문제지.


“허, 믿을 수가 없구나. 내가 흑마법에 당했다니. 하필이면 사제님께서 안 계실 때에.”


시장이 말을 도중에 멈추었다.

기사들도, 관료들도 안색이 창백해졌다.


설마.

이게 다 사제가 없을 때를 노리고?


“그러고 보니 사제님께서 계실 때도 난 그걸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사제님은 모르셨어.”


흑마력에 민감한 사제가 코앞에서 흑마법이 있단 걸 모를 리는 없다. 그러니 메이헌 사제가 떠난 다음에 흑마법이 발동되었단 의미.


마침 마빈이 발견한 생생한 흑마법진 하나가 있었다. 그것도 발견 당시 제물이 바쳐진 지 반나절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그리고 시장이 심기불편해진 것도 그 즈음. 제물이 바쳐진 시각과 거의 동일했다.


“시장님. 아무래도 이번에 발견한 건 그저 시장님의 정신을 흐리려는 수법에 불과한 모양입니다.”


사제를 도시 밖으로 꾀어내고, 시장의 그릇된 판단으로 조사가 지체되는 사이, 제물을 더 모아 더 큰 걸 하겠단 꿍꿍이라는 걸 모두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당장 전 병력을 동원해서 빈민가를 포위한다. 지역 자경단까지 모두 동원하고, 뭐라고 하는 놈들이 있으면 흑마법사 수색이라고 찍어 눌러.

경들도 모두 참가하고. 시장의 권한으로 즉결처분권도 내릴 테니. 이제는 저 간악한 무리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예!”

“그리고 마빈.”


시장이 멀쩡한 손으로 마빈의 어깨를 짚었다.


“구해줘서 정말로 고맙다. 하지만 감사는 나중에 하고, 지금은 네 재능이 필요해. 우리와 함께 빈민가에 숨어든 흑마법사를 찾는 걸 도와줄 수 있겠니?”


마빈은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다는 것에 씩 웃었다.


“당연히 그래야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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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24.09.13 424 1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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