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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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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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DUMMY

렌델은 이 까만 머리칼의 소년이, 검에 대한 재능과는 별개로 마력 각성은 하기 힘들 거라 예상했었다.


마빈은 본능에 의지해 칼을 휘두른다.

조금 나쁘게 말한다면 생각 없이 휘두른단 말이었다.


정교한 이성과 몸으로 체득한 습관이 조화를 이루어 칼을 내지르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본능에만 몸과 정신을 맡기는 싸움법.


구체적인 심상을 떠올리고 그걸 밖으로 내보내고자 강한 의지를 동반해야 하는, 마력을 끌어내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마빈의 발언 앞에 산산조각났다. 벌써부터 상대의 의지를 읽어내다니.


지금까지 그가 쌓아온 모든 상식이 이 꼬맹이 앞에서 부정당하고 있었다.


‘주신께선 공평하시다더니. 아니셨구만.’


무언가에 대한 재능을 주시면 그만큼 대가를 가져가신다.


렌델은 무엄하게도 그 성경 문구를 향해 틀렸다고 단언했다.


하늘은 마빈에게 제대로 검술을 터득하지 못한다는 단점을 내리셨다. 헌데 그 대가로 천부적인 싸움 실력에, 육감에 가까운 예민한 신체 감각에다가, 이런 재능까지 내려주다니.


상대방의 마력에서 발산되는 의지를 읽는다는 건, 음식의 냄새만 맡고 어떤 재료가 사용되었는지 정확하게 맞추는 것과 같다.


사람마다 생각과 경험이 다르니, 같은 의지라 하더라도 오러의 발현 방식이 다르거나 발현되는 형상은 같아도 그 속성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마빈은 상대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근원을 파악할 수 있으므로 싸울 때 그만큼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예전에 짐승과 사냥 도구에 비유했던 마빈의 단점 하나가 완벽하게 깨져 나갔다.


“-그러니, 네 그 감각은 싸움에서 분명 도움이 될 거다.”

“오. 신기하네요.”

“하지만 노력해야 한단 건 변하지 않아. 게으른 천재는 노력하는 범재에게 언젠간 따라잡히니까.”


렌델이 냉정하게 평가했다.

아무리 창대하게 자랄 씨앗이라 할지라도, 물이 없으면 영원토록 싹트지 않는 것처럼.


“네. 명심할게요.”

“자, 그러면 마력을 표출하는 보편적인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마.”


잡다하게 풀어헤쳐진 생각의 끈을 모아 의지라는 튼튼한 하나의 밧줄을 만든다.


그 밧줄을 건 두레박을 마음 깊숙한 곳으로 내려, 심상을 끄집어 올린 뒤 무기에 주입한다.


그것이 바로 마력으로 된 칼날, 오러다.


“어. 성경 문구랑 비슷하네요? 두레박을 내려 네 마음속 신앙을 길어 올리는 것이야말로 네 신실함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거 맞아. 성경에 언급된 그 표현이 괜찮은 비유라서 이쪽에서도 널리 쓰이지. 성기사들도 그 방식대로 하고. 다만 성기사는 일반적인 기사랑은 조금 달라.”


성기사는 마력 대신 신성력을 사용한다.


“성기사와 사제는 독실할수록 강하지. 그들의 의지는 신을 따른다는 것 그 자체니까.”


성직자는 교리라는 울타리 안에 자신을 가둔 셈이다. 때문에 특출 난 경우가 아니면 오러 형태와 효과가 단조로운 편이다.

한편으론 활력을 보충하고 상처를 수복하는 신성력과 교단에서 가르치는 방어 위주 검술 덕에 전투지속력이 길다.


요약하자면 고점은 낮지만 저점과 안정성은 기사보다 높은 편.


“하여튼 이 문구처럼, 네가 강하게 무언가를 갈망하거나 다짐하거나 염원하여 심상을 구현하고, 내부에서부터 그걸 끌어올려야 해.”


백날 생각 없이 칼만 휘둘러봤자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물론 단순 수련만으로 마력을 각성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사람의 재능은 다양하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므로 ‘무조건 이게 좋다!’ 하는 규칙은 없다.


렌델이 말한 것도 그저 수많은 갈래 중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한 가지 방법일 뿐.


“마력을 깨우쳤지만 그게 끝인 사람도 많아. 한 발 나아가 마력으로 육신과 감각의 강화가 가능한 경지에 도달해야 하고, 거기서 또 한 단계 더 올라가야 비로소 마력을 밖으로 표출할 수 있지.”


“그럼 각성이나 수련엔 어떤 요소가 가장 도움이 될까요?”


“뭐든지.”


의지, 심상, 경험, 신념, 우직한 연습 등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무엇이 자신에게 맞느냐다.

어떤 기사는 단계마다 완전히 다른 수련법과 깨달음으로 경지를 올린 경우도 있다고.


“각 요소에 따로 차이는 없는 건가요?”

“없어. 사실상 거의 동의어로 취급하는 거라.”


그 모두가 각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


“세상에 정답은 하나가 아니야. 네 마음을 틀에 가두려 하지 마. 내가 알려준 것도 반만 머리에 담고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돼. 자연스럽게 네 스스로가 알게 될 테니까.”


“알았어요. 이제 오러 한번 보여주세요! 경험도 한 요소라면서요? 보면 뭔가 영감이 생길 지도 모르잖아요.”


렌델이 잠시 주저했다.

질긴 녀석, 그 말을 피하고 싶어서 이론 설명으로 빠졌는데.


하지만 스승으로서 제자의 초롱초롱한 눈을 언제까지고 무시할 순 없었다. 정말로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고.


“......”


렌델은 회한 가득한 시선을 자신의 허리로 내렸다. 기사단을 뛰쳐나올 때 가지고 나온, 자신과 함께 조금씩 늙어가는 검 한 자루.


“......잠시만 기다려라.”


그는 눈을 감았다.


종자 시절, 폭풍이 몰아치던 날.

연무장 바로 옆 감시탑에 벼락이 떨어졌다.


세상을 찢어버릴 듯한 굉음과 함께 강렬한 번쩍임을 목도한 렌델은 실제로 낙뢰를 맞기라도 한 것만 충격을 받았다.


그 강렬한 기억을 품은 채 벼락을 닮고자 하는 의지로 칼을 휘두르다 보니 마력을 깨달았고 오러를 생성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성장세는 그걸로 끝이었다.

한 순간에 겪은 강렬한 느낌만으로 심상을 계속 유지하는 건 그의 재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눈을 감아 어두워진 시야.


비오는 밤을 닮은 어둠 속에서 그때와 같은 밝은 벼락이 떨어졌다.


빛은 늘 그림자를 대동하는 법.

심상 속 응달에서 그림자들이 킬킬댔다.


-반딧불보다 못한 그 빛을 가지고 기사라고?

-종자나 가르치는 교관이 너한텐 딱 맞아.

-들어온 지 몇 년인데 오러 꼬라지가 그게 뭐야! 언제까지 검술 교본만 연구할래!

-넌 재능이 없다. 그냥 나가서 병사나 가르쳐.


독사의 혓바닥과 같은 속삭임이 렌델의 어깨맡에 달라붙은 채 나불거렸다.


완숙해져 전성기를 찍을 나이에 은퇴하게 만든 원흉들이 심상을 오염시키며 그의 마력의 표출을 방해했다.


‘잊자.’


가르치고 있는 아이에게 부끄럽지는 않아야지.


날개가 꺾인 기사는 창대하게 날개를 펼칠 아이를 위해 애써 비루한 과거를 떨쳐냈다.


콰르릉!

비 내리는 밤중의 심상에 낙뢰가 떨어졌다.


“오오!”


마빈이 작게 감탄했다.


검신에 미약하게 감도는 푸르스름한 아지랑이.


비록 조금만 떨어져도 보이지 않을 만큼 흐릿하고 흐트러져 있었지만, 그 주변에 미약하게 푸른 전격이 튀는 모습이 렌델의 각성 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 이런 것 때문에 기사가 되고자 했지.’


마빈의 동경 가득한 표정. 혼란스러운 시대에 이렇게 누군가의 앞을 밝히는 횃불이 되고자 렌델은 기사의 길에 뛰어들었다.


“후.”


오러는 얼마 안 가 후들거리는 팔과 함께 꺼져버렸다. 그 다음 몰려드는 깊은 탈력감.


잠깐 되찾은 초심만으로 마력 주입을 유지하는 건 마음이 꺾인 범재에겐 버거웠다.


“와. 대단해요! 역시 가까이서 보는 건 다르네요. 뭔가 가슴이 두근거리는데요?”

“......”


주먹을 꽉 쥐고 감탄하는 마빈을 보고 렌델은 조금 부끄러웠다.


지금껏 오러의 실현을 차일피일 미뤄왔던 이유는 ‘애걔? 고작 이게 끝이에요?’ 같은 말을 들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당장 찬란한 푸른빛을 발현한 시장 휘하의 기사들이라는 월등한 비교대상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현실은 아니었다.

마빈은 비웃기는커녕 순수한 시선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었다.


‘내가 겁쟁이였구나.’


검술 교관이라는 직업은 타인의 단점을 눈에 담고 고치라 조언한다. 허나 그는 정작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지 못했다.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해졌다.


제국 중앙 기사단에서 핍박을 받았던 새까만 기억들이 저 아이의 미소 덕에 그의 발밑으로 흘러내려 뭉개졌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건 재능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자신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볼품없는 오러를 보고 자극을 받았는지 ‘열심히 해볼게요!’라며 외치는 마빈에게 렌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열심히 해봐야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과 함께 꾹 쥔 그의 주먹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그마한 전격이 픽 튀었다.




***




시장의 집무실.


온화한 갈색 빛의 가구가 채운 방 안에 세 명이 앉아 있었다.


카트라그를 지배하는 시장 오리얀트.

오리얀트 가문의 기사이자 경비대장 루이스.

카트라그의 유일한 사제 메이헌.


지금 이 자리는 일주일 전 악마 늑대 떼의 공격을 저지하던 당시에 미심쩍은 점이 있다는 경비대장의 의견에 따라, 추가적인 조사 이후 그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였다.


“그래. 말해보게.”

“예. 이전에 위험지대를 침범한 모험가들이 맡은 의뢰는 위험지대 근방에서 어떤 약초를 채취해달란 거였습니다.”


그런데 의뢰주가 찍어준 지도는 잘못되었다.

위험지대 근방이 아니라 그 안쪽이었던 것.


거기서 끝났다면 단순한 지도 표기 실수로 인한 사고였겠지만, 의뢰주가 영 수상쩍었다.


“모험가와 의뢰주가 접촉하는 과정이 골목길에서 접선하는 방식인 데다, 로브로 몸을 숨기고 있었고, 일이 끝나면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지도 않았답니다.”


의뢰주가 누군지를 알 수도 없으니, 책임을 물으려 해도 찾는 게 불가능했다.


“그리고 기사 둘이면 충분하던 악마 늑대 우두머리가, 셋이 붙어도 쉽게 처치되지 않았단 것이고?”

“예. 또 해체하는 과정 중에 들었는데, 우두머리 말고도 다른 늑대들의 가죽도 반 배 정도 더 두꺼웠답니다. 실제로 화살이 박혀도 멀쩡했고요.”

“음......”


오리얀트 시장이 손에 쥔 자그마한 단검을 만지작거렸다.

같이 대재앙이란 힘겨운 싸움을 겪었던 모험가 조합장이 정찰을 나가기 전, 모험가 제퍼슨을 시켜 유품이 될 지도 모르니 드리겠다고 한 물건이었다.


악마 늑대 떼는 퇴치했지만 조합장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아마, 누군가 고의로 손을 쓴 게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필요한 요소들이 비어 있는 수상쩍은 제안.

돈이 궁했던 모험가들로 하여금 일을 수락하도록 한 짭짤한 선금.

괴물 소굴로 들어가도록 유도한 잘못된 지도.

그곳에 있던 괴물들이 강해졌다는 것까지.


무언가 딱딱 들어맞는 게 음모의 냄새가 풀풀 풍겼다.


“확실히 의심스럽긴 하다만......”


오리얀트와 루이스가 메이헌을 힐끔 보았다.


악마의 영향을 받은 괴물과 관련되었다면, 흑마법사의 소행일 가능성이 컸다.

대재앙 이후 전 세계적으로 악마의 세가 강해진 바, 사제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사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루이스의 의견이 비약일 수도 있으나, 메이헌은 대재앙 당시 최전선에서 활약했던 인물이다. 사소한 징조를 넘겼다가 봉변을 당한 사례들을 여럿 알고 있었다.


응당 흑마법의 개입이 있었는지 검증하기 위해 메이헌이 해당 지역을 방문해 확인해야만 하나......


‘어허, 이를 어찌하나.’


메이헌은 모종의 이유로 인해 도시를 함부로 떠날 수 없는 몸이었다. 괜히 그가 부제나 호위 하나 없이 홀로 성당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모처럼 잡은 음모의 꼬리를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 고민하던 사제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제가 직접 가봐야 알겠네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호위를 해드리겠습니다.”

“다만 요청이 하나 있습니다.”

“예, 말씀하시지요.”


메이헌은 창밖으로 보이는 성당을 보았다.


“제가 없는 동안, 기사와 경비대로 성당을 봉쇄해 주십시오. 밤낮 상관없이, 쥐새끼 한 마리 들어갈 수 없게 말입니다. 저랑 아는 사람조차도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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