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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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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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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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DUMMY

마빈이 전생에 살던 세상에서는 살기니 기세니 하는 건 순전한 공상의 영역이었다.


외모, 목소리, 분위기, 재능 등으로 좌중을 휘어잡을 수는 있어도 단순히 생각만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순 없었다.


‘신기하네.’


그래서 사람의 감정이나 의지에 자연의 무언가가 스스로 반응하여 별개의 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이 여전히 생소하고 흥미로웠다. 카트라그에서 이와 관련된 사건을 이미 몇 번 겪었음에도.


악마 늑대 토벌 때 기사들의 검에 깃든 의지를 느꼈던 것처럼, 사방에서 호기심, 흥미, 불쾌, 분노, 살의 등등의 다양한 감정이 마빈을 자극해댔다.


“어때?”

“뭐가요?”

“우리 도시가.”

“예쁘네요. 근데...... 뭔가 생기가 없어 보여요. 빛이 적어서 그런가?”


둘러싼 결계 밖은 깜깜한 심해라 도시는 전체적으로 어둑했다. 수면 근처에서 보았던 대규모 물고기 떼 같은 생동감 있는 풍경도 없어서 더욱 쓸쓸해 보였다.


“그럴만하지. 원래 우리는 따뜻한 열대 바다에서 살고 있었거든. 일종의 피난민촌이라고 봐도 돼. 쫓겨났는데 이렇게 어둡고 차가운 곳에서만 계속 살고 있으니 축축 처질 수밖에 없지.”


마빈은 실제 광량이 적다는 의미에서 말한 거였지만 다룰마는 좀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네가 여기서 큰 성과를 거둬서 하루빨리 이타카니아 님의 부담을 줄여줬으면 좋겠어. 그럼 우리도 여길 벗어나 다시 밝은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열심히 해볼게요. 저기 그런데, 다룰마 아저씨는 어떻게 되살아나신 건가요?”


그는 숨소리도 심장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즉, 언데드다. 그럼에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신의 자비는 그냥 걸어 다니는 시체에 불과하고, 흑마법으로 일으켜진 건 생명체에게 증오를 품는 꼭두각시라는 상식과는 달랐다.


“의외로 늦게 물어보는구나?”

“어떤 방식으로 죽었다가 살아났는지 모르니까요. 잘못 질문했다간 실례가 될 수도 있고.”

“그건 아니야.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이지.”


자랑스러운 일?


“나는 대재앙 때 마수랑 싸우다가 전사했어. 그러다가 해룡께서 주신의 보증과 함께 나를 일으켜 세우셨지.”

“주신의 보증이요?”


죽은 지 얼마 안 된 이의 영혼을 주신의 허락 하에 불러내 계약을 하고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말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다.


“우선 그 어떤 사심도 없어야 해.”


더 살고 싶다, 가족을 지켜보고 싶다 같은 개인의 욕망을 철저히 억제하고 계약서에 언급된, ‘공공의 이익’에서만 최대한 생각하고 행해야 한다.


또한 계약의 주선자는 주신이 인세에 손끝을 내미는 순간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타카니아 님 같이 용이나 그에 비견되는 강력한 존재만이 이런 계약을 하는 게 가능하지.”


각 용들의 휘하에는 이런 과정으로 되살아나 세계나 종족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이 있다고.


“그런 사람들을 수호자라 불러.”

“수호자...... 어울리는 호칭이네요.”

“나처럼 약한 수호자도 무력수준에 관계없이 인어들의 존경을 받아. 외부의 자극과 사사로운 욕심에도 계약 내용을 준수할 만큼 정신력이 뛰어나단 얘기니까.”


마빈의 눈이 절로 커졌다.

약하다니? 누가 봐도 역전의 용사로 보이는 이 아저씨가?


“아저씨가 약하다고요?”

“그래. 비교적 최근에 부활한 막내지. 그래서 바쁜 선임들을 대신해서 너한테 붙어있는 거 아니겠냐? 흐흐흐.”


어느새 주위는 조용해져 있었다.


도시의 외곽으로 나아가면서 구경 온 인어들이 차츰 흩어졌다. 북적거림이 사라지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집도 많고 사람도 많았던 중심부와는 달리, 외곽은 건물도 사람도 광원도 눈에 띄게 줄어들어 바다 밑바닥 본연의 우울하고 삭막한 분위기가 확 치고 들어왔다.


“슬슬 내리자.”


수로의 끝에 도달한 둘이 배에서 내렸다. 지금까지 뒤따라오던 발걸음들이 멈추었다.


“전사로서 마음가짐이 아직 부족하구나.”


다룰마가 혀를 쯧쯧 찼다. 그의 시선을 받은 이들이 침음을 흘리며 눈을 감거나 시선을 피했다.


한가락 하는 덩치에 흉터를 훈장처럼 새긴 인어 전사들이었다.


거리를 거닐다가 우연히 만나 따라와서 그런지 대부분이 무기를 들고 있진 않았지만, 몇몇은 무기를 쥐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 한 번은 봐주마. 지금은 특별한 상황이니까.”


다룰마가 씩 웃으면서 마빈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한바탕 대련 뛰어 볼래?”

“지금요?”

“여태껏 기세를 받느라 네 감각이 예민해져 있을 거야. 그렇지?”

“음...... 그런 거 같기도 하고요?”

“그 긴장상태를 쭉 유지시켜 보자고. 그러면 뭔가 더 명확한 실마리가 잡히지 않겠어?”


다룰마의 말대로, 단순히 멀리서 살기를 받는 것만으론 뭔가 부족했다. 역치를 뛰어넘을 자극이 필요했다.


“좋아요.”


안 그래도 지겹게 해안만 걷느라 몸이 근질거렸는데 잘 됐지 뭐.


“진검도 되나요?”

“전사들은 비늘이 단단해서 상관없어.”


싸움을 허락받았음을 깨달은 인어 전사들이 투지를 끌어올렸다. 그때, 뒤편에서 초록 비늘을 지닌 한 인어가 앞으로 나섰다.


“해룡의 사자시여, 송구하지만 저 인간과 잠시 대화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 해봐라.”


초록색 머리칼에 초록색 비늘이라.

뭔가 익숙한데.


“혹시 위에서 인어를 구해준 적 있나.”

“있긴 한데...... 아아! 비늘 색도 그렇고, 얼굴이 비슷하다 싶었는데. 설마 류티 오빠인가요?”

“......맞나보군.”


인어 전사들이 수군거렸다.


인어를 구해줬다고? 이번에 셋이 돌아왔잖아. 인간이 풀어줬다고 했는데 그게 진짜라고? 그래서 해룡 님께서 초대를? 그건 아니겠지. 방심하지 마. 저놈이 음모를 꾸미려고 수작부린 걸 수도 있어.


딱 봐도 인어들의 인간불신이 보이는 대화들.


“일단은, 내 동생을 구해줘서 정말로 고맙다.”


다크루먼이라 자신을 소개한 인어가 삼지창을 겨누었다.


“보답으로 너와 가장 먼저 대련하겠다. 듣자하니 여기서 실력을 기르려는 거 같은데, 물속은 지상과 달라.”


그러니 적응하게 해주마, 라는 의도였다.


“그리고 나도 인간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라.”


스트레스도 풀 겸.


“해룡의 사자시여, 허락해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전사 분들, 이 모자란 전사 후보생이 감히 인간에게 은혜를 갚아도 되겠습니까?”


모두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전사 몇몇은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조용히 눈을 감을 뿐 굳이 반대하진 않았다.


“기특한 녀석이군. 잘 상대해 봐.”

“네.”


다룰마가 마빈의 등을 살짝 밀며 뒤로 빠졌다.


마빈의 검과 도끼 그리고 상대방의 삼지창이 지나가는 심해 아귀의 초롱불에 번들거렸다.


화륵


다크루먼의 삼지창에서 아지랑이가 돋아났다.


전사들이 조그맣게 감탄했다.

벌써부터 마력 칼날을 생성할 줄 알다니!


“......간다.”


마빈의 어깨를 향해 창날이 날아들었다. 마빈은 경로에 도끼를 갖다 대 간단히 궤적을 틀었다.


태애앵!!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리고.

모두의 눈이 커졌다.


마력을 두르지 않은 무기가 오러를 막아내는 믿을 수 없는 광경.


그래. 그걸 노렸어. 마빈은 당황하여 흔들리는 창대 안쪽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전쟁에서는 창을 상대할 때가 많다며 제대로 배워두라는 렌델 경의 가르침 덕에 창을 상대하는 건 능숙했다.


마빈이 도끼날의 반대편을 둔기처럼 써 상대의 머리를 후려쳤다. 다만 변수가 있었다. 이곳은 물속. 저항 때문에 움직임이 느려졌다.


지체된 사이 상대가 물러나는 바람에, 애초 목표인 관자놀이 대신 목 부분을 타격했다.


‘진짜로 단단하네.’


어지간한 가죽갑옷 수준의 경도였다.


마빈은 칼을 거꾸로 잡았다. 손잡이를 둔기머리 삼은 칼이 물을 가르며 힘차게 휘둘렀다.


카캉!


오러를 거둔 삼지창날 사이로 검 손잡이를 걸어 단번에 걷어낸 뒤, 그대로 파고 들어 도끼머리를 휘둘렀다. 어깨 부분을 맞은 상대방이 신음을 흘리며 물러섰다.


기세를 타고 마빈이 연거푸 달라붙었다.


“크윽!”


다크루먼은 창대를 짧게 쥐어가며 분전했지만, 지상에서나 볼 수 있는 자연물들을 닮은 마빈의 몸동작이 낯설은 까닭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렇게 열 번 정도 무기가 교차할 무렵.


“그만.”


다룰마의 말과 동시에 싸움이 중지되었다.


마빈은 숨소리 하나 거칠지 않았으나 다크루먼은 갑옷 귀퉁이에 금이 가고 비늘도 몇 개 떨어져 나가는 등, 만신창이였다.


“이거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겠는데.”

“아니에요. 덕분에 물속에 좀 익숙해졌어요.”

“좋아. 졌으니 난 이만 간다. 나중에 내 동생 보러 와라. 벌로 바깥을 못 돌아다니게 해서 풀이 팍 죽어서 말이지.”

“네, 꼭 들를게요. 잘 가요 류티 오빠분.”


다크루먼은 자신의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물러갔다.


“다음은 자네가 해보게.”


다룰마가 붉은 비늘을 지닌 전사를 지목했다.

무기 없는 맨손이었지만 솥뚜껑같이 큼직한 손은 충분히 살상력이 있어 보였다.


“간다 인간 놈아!”


붉은 비늘로 뒤덮인 상체가 힘차게 움직이자 곧게 편 손날이 마빈을 쪼갤 기세로 물을 갈랐다.


물속에는 없는 바람을 닮은 심상이 깃든 발놀림이 손날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직후 검끝을 빠르고 예리하게 상대의 가슴을 향해 찔러 넣었다.


엘프 프레야난이 보여주었던 날렵한 검술의 일부가 마빈의 손 안에서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인어 전사는 당황했지만 해류에 흐느적거리는 해초를 닮은 움직임으로 검이 만들어내는 직선을 비껴냈다. 과연 제대로 된 전사답게, 그는 엘프 검술의 편린이 깃든 마빈의 공격을 연달아 회피했다.


뒤로 한참을 물러난 붉은 비늘의 인어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제법이구나.”


여기가 물속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비늘에 닿고도 남았을 위협적인 검술이었다.


“다시 한 번 받아봐라.”


웃음기 섞인 친절한 말.


마빈은 저 전사가 편견을 걷어내고 제대로 된 ‘대련’을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오세요!”




***




“허억, 허억......”


마빈의 숨은 거칠어져 있었다.


“흐름을 보면 마력은 못 쓰는 거 같은데.”

“체력 하나는 칭찬할 만하네.”


마력을 다룰 수 없으니 마력으로 체력을 보전하는 수법도 모르는 이가, 인어 전사를 무려 여덟이나 연속으로 상대했다.


인간을 보고 끓어올랐던 인어 전사들의 분노는 모두 사그라든 지 오래였다.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뿜던 이들마저.


그들에게 마빈은 이제 증오스런 인간이 아니라 당당한 한 명의 전사였다.


“수고했다. 오늘은 이만 끝내지.”


다룰마의 선언에 전사들이 수긍했다.


“저희의 철없는 분노를 받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이 특별한 경우라 봐준 걸세. 앞으로 정신수양 제대로 하게나. 그리고 당분간 궁전 앞에서 대련을 받을 거니까, 다른 이들한테 막 덤비지 말고 정당하게 신청하라 전달하고.”

“예. 그러하겠습니다.”


전사들이 모두 물러가자, 마빈이 바닥에 털퍽 앉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어땠어?”

“오랜만에 움직여서 그런지 시원한데요?”

“이제 돌아가자. 대신 노 저어주랴?”

“아뇨. 제가 할게요.”


삐걱거리는 노 젓는 소리를 들으며, 다룰마는 부지런히 팔을 움직이는 마빈의 뒤통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바다에서 살아온 인어.

육지에서 살아온 인간.


성장 환경이 다른 만큼 서로의 전투방식은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마빈이 공격할 때 인어들은 당황했고, 인어들이 공격할 때 마빈이 밀렸다.


그러나 육지에서 온 소년은 균형을 빠르게 붕괴시켰다.


‘참 별난 녀석이야. 마력 각성을 하지도 못했는데 움직임마다 심상을 담다니.’


옛날에 육지 여행을 해본 적 있는 다룰마는 마빈의 손짓 몸짓에 들어찬 다양한 심상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숲 속 나뭇가지 같은 찌르기, 붐비는 거리를 바삐 걷는 듯한 발놀림, 스산한 가을의 바람을 닮은 몸비틀기, 철썩이는 파도 같이 흔드는 칼날, 싸늘한 겨울 같은 베기 등등.


같은 동작에도 다른 심상이 엿보일 때가 있었고 다양한 동작에서 하나의 심상이 비춰지기도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요소들을 밖으로 표출하고 행동에까지 적용할 수 있는 거지?


의식적으로 끌어낸 건 차가운 바람 단 한 가지뿐, 나머지는 어디까지나 무의식적인 모방에 불과하지만 그것도 대단한 거였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지 않은가.


‘좀 더 살펴봐야겠어.’


그는 마빈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지까지 담긴다면 얼마나 강해질까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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