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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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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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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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DUMMY

해룡의 손님이 인간이라는 소문은 인어 도시 전체에 퍼졌다.


-죽일 인간 놈이 어딜 들어와?

-널 그렇게나 밀어붙였다고? 나도 함 싸워봐?


소문을 듣고 분노나 호승심에 찬 인어들이 몰려들었다. 전사들과 마빈의 대련은 매일 같이 이어졌다.


마빈이 궁전 앞마당에 나올 때마다, 전사와 민간인을 불문하고 호기심과 적의로 찬 시선들이 잡아먹을 듯 쫓아왔다.


그동안 다룰마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여왕 폐하, 그 무구를 이번 대의 사도에게 부디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는 여왕을 찾아가 무구의 대여를 건의했다.


인어 여왕이 아가미에서 물거품을 뿜었다. 마빈의 실력이 부족하여 무구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단 구실로 계속 거절해왔지만, 이게 대체 몇 번째인지.


해룡의 사자의 의지는 곧 해룡의 의지.


해룡이 아무리 인어의 권리를 존중한다지만 이렇게 요청을 계속 받으면 거절하기 부담스러웠다.


“그렇게나 저 어린 사도가 대단합니까.”

“그렇습니다.”


다룰마가 단언했다.


“요 며칠 동안 전사들과 대련하여 막상막하나 혹은 압도했다는 얘기를 들으셨을 겁니다.”

“......”

“지금껏 저 아이와 대련을 하면서 봐온 제 생각으로는, 저 사도는 눈에 담은 모든 것을 자기의 심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 겁니까?”


초식동물도 아무 풀이나 먹는 게 아니듯, 심상을 구성하는 데엔 자신에게 ‘적합한’ 경험만이 도움이 된다.


습득한 검술 혹은 마력 수련법에 알맞아야 한다든가, 개인의 문화나 가치관에 부합해야 한다거나, 살아온 경험과 비슷한 장면을 맞닥뜨렸을 때 혹은 완전히 반대되는 장면에서 성장을 이룰 수도 있다.


태생적인 재능과 삶의 형태, 주변 환경, 그 이후의 수련 방식 등에 따라 그 편차가 극과 극을 내달린다.


따라서 마음속에 품는 심상들 역시 취사선택이 될 수밖에.


“그 누구도 함부로 가지 못하는 곳을 포함해 수많은 것을 모조리 눈에 담을 수 있다면, 누구도 닿은 적 없던 경지에 다다를지도 모릅니다.”


저 아이는 바닷속을 봐야 한다.


지상에 사는 한 쉬이 닿을 수 없을, 지상과 견주어도 전혀 꿀릴 게 없는 다채로운 물밑을 봐야 한다.


은빛으로 번들거리는 작은 고기떼의 윤무를, 색색의 산호가 만들어내는 천연의 팔레트를, 고래들의 정답고 포근한 수다를, 지상과 다를 바 없는 산과 평원이 펼쳐진 드넓은 해저 지형을, 난폭하게 폭발하는 화산과 대지의 무시무시함을.


그 모든 걸 눈에 담고 피부로 느껴야 한다.


아무리 하찮고 의미가 없는 것일지라도, 저 아이의 심상의 용광로에 녹아들어간다면 그 또한 잘 벼려진 검의 일부로 재탄생하리라.


“......그게 가능할까요.”

“예. 주신의 사도는 한 시대에서 가장 찬란히 빛날 가능성이 높은 이가 임명되니까요.”


인어 여왕이 눈을 감고 고민했다.


‘그 무구를 인간에게 내주어야 하는가.’


고민하던 여왕에게 다시금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민됩니까? 아무리 옛날이라 해도 인어가 한번 세상을 구했는데, 그걸 원수로 갚은 종족의 일원에게 이걸 주는 게.”


여왕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꼬리 끝의 낙인이 아려왔다.


“아니면, 사사로운 원한 때문인가?”

“그건......!”


여왕이 반문을 위해 눈을 뜨자, 위엄 있는 광채를 눈에서 내뿜는 전사를 마주할 수 있었다.


육신은 다룰마이나, 정신은 해룡 이타카니아인 존재가 거기 있었다.


경외가 절로 드는 존재감이 여왕을 압박했다. 협박은 아니었다. 그저 용의 존재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해룡이 빙의했다는 증거의 안광에서는 오히려 여왕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한 줄기의 동정이 깃들어 있었다.


“나 또한 원한이 있다. 내 몸뚱이의 반절을 앗아간 존재가 밉고, 약해진 틈을 타 인어와의 우정을 배신한 인간이 미덥지 못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한 원망이 깃들어 있었다. 여왕과 마찬가지로.


“허나, 나는 주신의 명을 받들어 세상을 지키는 용들 중 하나며, 너는 한 종족을 이끄는 수장이다. 우리 둘 다 사사로운 감정은 잠시 치워두고 모두를 위해 인내하며 중용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

“나와 인어가 그 아이에게 협조하는 것은 인어의 미래는 물론이고 대륙의 향방을 결정할 중요한 발판이니, 그걸 분명히 깨달았으면 한다.”


여왕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였다.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젊었을 적 겪은 고생이 너무나 처절했던 나머지 탈출 과정의 기억은 지금도 여왕의 속내를 좀먹고 있었다.


여왕은 왕의 상징인 신성한 황동창을 거머쥐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몸에서 우울한 분위기의 핏빛과 모래빛깔이 뒤섞인 마력이 피어올랐다.


납치당하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본, 모래사장에 뿌려진 동족의 피에서 근원한 강렬한 증오였다.


‘그래. 나는 동족을 위해 이 자리에 있다.’


그녀는 더 이상 어항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한낱 가냘픈 소녀가 아니라 인어 전체를 책임지는 여왕이다.


부그르르르......


귀 지느러미 뒤에서 공기방울이 솟아올랐다.


대륙 한가운데에서부터 대양까지. 그 기나긴 여정을 견뎌왔던 기억이 기포를 따라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래. 인간이 다 나쁘진 않지.’


인어사냥꾼들에게 중상을 입고 정신을 잃은 위기의 때에 자신을 도와줬던 한 인간을 기억하며, 그녀는 공사구분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감정을 잠시 치워냈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 여왕으로서의 책무를 잊을 뻔한 어리석은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감정을 지닌 존재라면 그 유혹에 저항하기 힘들단 건 엄연한 사실이지. 그건 인내요 지혜의 영역이니, 용서를 하고 말고 할 게 아니다.”

“해룡의 말씀, 마음 속 깊이 새기겠습니다.”


여왕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돌아가신 그분께서도, 자신의 유품이 새로운 사도의 힘이 되어 동족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을 원하시리라.


“수장고로 가겠습니다.”


꼬리 끝의 통증이 조금 줄어든 것만 같았다.




***




해상왕국이 몰락하고, 마수의 창궐과 인간의 납치 시도로 인해 인어족은 더 이상 얕은 바다에서 사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깊은 심해저로 숨어든 그들은 자연스럽게 오랜 과거의 생활로 회귀해야 했다.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거나 지옥의 힘에 오염되지 않은 해양 괴수들을 수렵하는 식으로.


해저도시와 먼 바다를 잇는 마법 관문을 통해 오늘도 많은 인어들이 푸짐한 결과물을 안고 복귀했다.


단순한 해산물 채취는 하루 만에 왔다갔다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큰 바다생물이나 해양 괴수를 잡는 사냥조들은 제법 긴 기간을 두고 도시에 복귀하곤 했다.


“뭐? 인간?”


중소형 해양 괴수 몇을 줄줄이 엮어 막 복귀한 사냥조 역시 그러했다.


인어 전사 열 명으로 구성된 사냥조.


일곱 명은 젊은이들이라 ‘인간이 해룡의 손님으로 왔다’라는 말에 신기하네 수준으로 그쳤으나, 나머지 셋은 아니었다.


“그놈 어딨어.”

“뭐 하려고? 걔는 해룡의 손님이야.”

“상관없어. 잡혀간 우리 애들의 복수를 할 거다.”


말을 듣자마자 살벌한 기세를 풍기기 시작한 그들은 설명을 듣지도 않고 바로 자리를 박차 물속을 유영해갔다.


“거참...... 괜히 말했나.”


그냥 오랜만에 돌아온 동료들과 잡담이나 하려 했던 전사는 귀 지느러미를 흔들며 곤란해 했다.


‘뭐, 다룰마 님도 있으니까 괜찮겠지.’


자식들이 모두 인간에게 잡혀갔으니만큼 인어를 구해줬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저 해저화산 같은 분노도 도로 가라앉겠지. 그리고 명색이 해룡의 손님인데 죽이기야 하겠어?


하지만 전사가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저 셋은 자식을 잃은 비통함에 절여져 오러의 근원인 심상마저 변질된 이들이라는 걸.


심상 세계에 아물지 않는 커다란 흉터가 남은 그들은 스스로를 조절할 임계점을 넘어선 상태였다.




***




한편, 푸른소라 라는 이름이 붙은 인어 궁전의 앞마당.


“엇차.”


마빈은 근력운동에 한창이었다.


양손에 무거운 돌을 아령 삼고, 막대를 끼운 돌덩이를 바벨 삼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루게릭 병 진단을 받고 어떻게든 침대 신세가 되는 기한을 늦추기 위해 재활치료 및 영상을 검색하며 배웠던 것들이었다.


이곳에 환생한 이후론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라기보단 그냥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 좋아서 하고 있었다. 물속이라 그런지 훨씬 무거운 무게도 거뜬했다.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는 대련신청이 뚝 끊겨서였다.


그동안 지겹도록 싸움 신청을 받았단 사실이 무색하게, 어제부터 방문객이 없었다. 주위를 지나치는 인어들도 마빈을 소 닭 보듯 힐끔 보는 게 전부였다.


금방 끓고 금방 차가워지는 게 인어의 성격이라 했었나. 참 물거품 같은 성격이었다.


물론 마빈이 해룡의 손님이자 무해한 인간이라는 게 증명되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인어를 구해주었단 사실이 없었다면 지금도 치열하게 원망 섞인 시선을 받으며 싸워야 했겠지.


“후. 한 세트 더 할까.”


물속이라 금세 식어버리는 몸.

땀도 물에 금방 씻겨나가니 운동하기에는 참 좋은 곳이었다.


그때, 마빈에게 접근하는 이들이 있었다.


‘분위기 안 좋은데......?’


남성 둘에 여성 하나로 이뤄진, 흉흉한 기세를 발하는 세 인어 전사들이었다.


씩씩대며 달려온 전사들도 인어를 구해줬단 말을 듣자마자 그 기세가 한풀 꺾이곤 했었다. 그런데 살기를 풀풀 풍기는 걸 보면 소문을 못 들은 모양.


‘잘 됐다.’


대련에는 실전 특유의 짜릿함이 부족했다.

저 살기등등한 이들과 싸우면 뭔가를 얻을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해도 나도 참 못 말리네.’


안전한 수련보다 위험한 실전이 더 좋다니.


하긴, 어릴 적부터 이랬는데 이제 와서 그 성격이 없어지겠나.


세 전사가 다가오며 무기에 마력 칼날을 둘렀다. 마빈도 검을 뽑았다. 단단한 인어의 비늘을 상대하느라 이가 다 나가버린 날 부분을 움켜쥔 자세로.


심호흡을 했다.

공기와 별 다를 바 없이 숨 쉴 수 있는 신기한 물이 입 안을 들어갔다가 빠져나왔다.


도시에 온 첫날 사람들 틈에서 쏘아졌던 수준으로 진한 살기. 이에 반응해 마빈의 눈동자가 심해의 온도만큼이나 차가워졌다.


차가운 이성으로 무장한 눈과, 끓어오르는 감정이 들어찬 눈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팍!


여성 인어 전사가 꼬리지느러미를 박차며 수중으로 솟아올랐다. 떠오른 전사는 빠르게 사선으로 낙하해 마빈의 뒤를 선점했다.


여성 인어의 꼬리가 바닥에 닿자마자 세 방향에서 창이 찔러 들어왔다.


티팅!


마빈이 재빨리 허리를 숙이자 마빈의 가슴이 있던 부분에서 세 창날이 맞물렸다.


꽤나 호흡을 많이 맞춰본 합격술이었다.


창날은 곧바로 서로 떨어지더니 각자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마빈에게 달려들었다.


한 창날은 뱀장어가 몸을 비트는 듯한 어지러운 움직임으로 마빈이 피할 곳을 미리 선점했다. 또 한 창날은 이빨 가득한 상어의 돌진처럼 난폭했으며. 마지막으로 마빈 뒤편에 자리한 여성 인어의 창은 굴에 숨은 곰치처럼 숨을 죽이고 빈틈을 노렸다.


마빈은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상황에 입가가 당겨지는 걸 느끼며 몸을 크게 비틀었다.


‘그래. 이게 진짜 싸움이지!’


크게 휘둘러진 삼지창날이 마빈을 스친 뒤 빠져나가려던 것을, 과감히 크로스가드 부분을 갖다 대어 걸어버렸다.


마빈의 움직임이 멈추자 뱀장어처럼 움직이던 창날이 심장을 노리고 쏘아져 들어왔다.


붙잡은 삼지창을 지렛대 삼아 폴짝 뛰어오르자 폴암을 닮은 창날은 허무하게 물을 갈랐다.


후방에서 여성 인어의 가시 돋친 작살이 날아왔다. 이 역시 심장을 향하고 있었다.


소년은 불편한 자세임에도 허리를 틀어 그 반동으로 창을 피해냈다.


‘다들 심장만 노리네.’


대형 해양 마수를 상대할 때 급소를 노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기에 생긴 습관이었다.


두 번째 합격을 피한 마빈은 삼지창을 고정한 검을 미련 없이 놓고 새로운 검을 뽑아들었다.


스릉!


북부에서 태어난 철이 차디찬 해저 속에서 부르르 떨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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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1 24.08.31 892 3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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