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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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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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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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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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DUMMY

낡고 허름하며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건물.


그 안으로 들어간 렌델이 목도한 건 이곳에 왜 있는지 모를 사람이었다.


“다, 단장님?”

“네?”


이상한 듯 쳐다보는 마빈의 말도 무시한 채, 렌델은 눈가를 찌푸리며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용을 썼다.


“어째서, 단장님께서 여기 계시는 겁니까?”


되살아난 고깃덩이들이 걸려 있던 살벌한 갈고리들이 가득 매달린 곳 아래. 렌델이 적을 두었던 제국 중앙 기사단의 단장이 있었다.


“내가 여기 있는 게 무슨 상관이지?”

“상관이 있지요! 이곳은 흑마법사가 있는 곳이란 말입니다! 설마 단장님이 흑마법사와 결탁한 건......”

“어허, 아니니까 진정하고. 이리 앉아봐라.”


렌델은 자신도 모르게 칼을 늘어뜨리고 그 말에 따르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방금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몸이 나른하고 무거웠다.


“머리 좀 식히고 오란 말은 했건만. 벌써 10년째구나. 왜 이리 안 올라오는 것이냐?”


다른 기사단원들에게 실력 부족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있음에도 늘 자신을 똑같이 대해 주며 기나긴 휴가를 내준 인자하신 단장님.


기사답지 않게 사근사근하면서 중후하기도 한 목소리는 렌델이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였다.


“그게, 그것이......”

“말해 보거라.”


자신은 더 이상 더 성장할 수 없으리라 생각해 자포자기하여 도망쳤다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비록 단장이 무기한 휴가를 내주기는 했으나, 마음가짐으로 따진다면 사실상 탈영이나 마찬가지였다.


“......카트라그가 하는 괴물 토벌에 참가를 했는데, 창칼 한 번 못 휘두르고 나가떨어지는 애들이 워낙 많아서 말입니다. 너무 보기가 답답해서 도장을 하나 세웠어요.”


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중앙의 도움 없이 힘겹게 버티고 있는 이 도시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 네가 누굴 가르치는 건 참 잘했지. 돌아올 생각은 있고?”

“......곧, 돌아가야지요.”


예전이라면 그렇게 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 카트라그에 뼈를 묻을 생각도 했었으니.


하지만 마빈에게 오러를 보여주고 그 반응을 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너무 일찍 주저앉은 것이 아닐까?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 본 것이 아닐까?


“그나저나, 단장님은 늙지도 않으셨네요.”

“고강한 경지에 이르면 젊음이 길게 유지되는 건 상식인데 뭘 그리 새삼스레.”


렌델은 그동안 묵혀왔던 이야기를 쭉 늘어놓으며 간만의 해후를 즐겼다.




***




“아저씨. 아저씨?”


마빈은 렌델을 계속 불러도 보고 흔들어도 봤지만 가만히 그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멍하니 선 기사는 반응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거 때문인 거 같긴 한데.’


-마빈! 지금 어딜 보는 거니?

-엄마아빠가 왔다니까?


마빈의 눈앞에는 저 아래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이 계셨다.


참 할 말이 많았다.


왜 이미 그때 만삭이던 어머니가 지금도 여전히 만삭인 것이며, 왜 둘이 자신에게 바로 안 오고 빈민가에 처박혀 있었는가는 둘째 치고.


“성의가 없네.”


홀로그램처럼 반투명하고 지지직거리고 있으니, 사람의 눈을 속이는 환상이란 걸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저씨가 제정신 못 차리는 걸 보면 허술한 거 같진 않은데.’


뭐 나한텐 안 통하니 됐나.


마빈은 팔을 휘저어 환상을 무시하고 흑마력이 흘러나오는 길을 따라 인간 도축장 깊숙이 들어갔다.


“응?”

“뭐야 저놈!”


그렇게 들어간 한 방.


바깥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모르는 건지 못 본척 하는 건지, 험악하게 생긴 남자 셋이 편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들의 외모와 목덜미 및 얼굴에 새겨진 문신은 마빈이 지하 선착장에서 마주했던 수적과 동일했다. 강제로 요술쟁이(마법사)에게 협력하고 있다던 이들이었다.


“죽여!”


불문곡직 덤벼드는 수적들.

마빈은 가볍게 그들의 공격을 피하고는 도끼로 장작을 패듯이 딱딱 끊어지는 절도 있는 동작으로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들에겐 기사와 싸울 때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비단결 같은 머릿속 흐름이 필요 없었다.


“웬 소란이야?”


수적들이 쓰러지자, 안에 있던 문이 벌컥 열렸다.


“헉, 침입자-”


퍽!


마빈은 수적을 걷어찼다. 그 밑은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었다. 딱딱한 돌로 이루어진 계단을 굴러가는 소리가 퍽 야단스러웠다.


아래로 내려간 마빈은 긴 복도를 마주했다.


“뭐야?”

“적이다!”


복도 양편의 숙소 문들이 벌컥벌컥 열리더니 수적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마빈의 눈이 빛났다.


‘저기다.’


수적들 너머, 복도 끝의 문.


저기에서부터 사악한 기운이 풀풀 풍겼다.




***




마빈의 전생은 마법이니 오러니 하는 그런 초능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아니다.


공기 중에 마력이란 성분이 떠다닌다는 것은 상식이고, 천사가 존재하며, 사람의 몸으로 금속을 가르거나, 허공에서 불이나 물을 만들어내는 마법을 부리고, 기도만으로 새살을 돋게 하는 이적이 당연한 세상이다.


그런 곳에서 ‘기운을 느낀다’라는 지극히 판타지스러운 사건이 연속해서 자신을 찾아왔다.


미지에 대한 탐구심이 불끈거렸다.


마법이라는 신비.

처단해야 할 무언가.

그것의 바로 코앞까지 다다랐다.


무시무시한 외모의 도적들이 가로막고 있다 한들 그의 마음을 꺾을 순 없었다.


죽어나간 아이들의 넋을 기리고 스스로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마빈이 몸을 움직였다.


“아아악!”

“크악!”

“뭐야 이놈!”


적은 다수였지만 통로가 좁아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두셋. 수적들은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도륙당하기 시작했다.


칼을 내뻗으면 슥 타고 올라가 손목을 베고, 걷어차려 들면 뒤로 빠지며 허벅지나 발목을 찔러 주었다. 자기들끼리 몸이 엉키며 엎어지는 건 덤.


휙휙 검을 휘두르는 마빈의 손길은 도축장에서 반복적으로 고기를 자르는 것 같이 단조로웠다. 그 수법은 골목길에서 깡패들을 도륙했던 기사들과 닮아 있었다.


바닥에 고인 붉은 웅덩이에 복도 등불 빛이 이리저리 일렁였다.


“으으으......!”

“괴, 괴물!”

“씨, 씨발 살인마다, 살인마야!”


수적들은 공포에 질렸다.

마빈은 웃고 있었다.


살인의 쾌락을 향한 웃음이 아니라 이 장애물 뒤에 맛볼 미지를 향한 웃음이었다.


물론 수적들이 그 사실을 알 리 없으니, 그들에겐 그저 사람을 학살하며 실실거리는 잔혹한 미친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기가 바닥을 쳤다. 그들도 험하게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도저히 답이 없는 미친놈 앞에서 주눅이 드는 건 본능의 영역이라 어쩔 수 없었다.


“피, 피가 안 멎어.”


몇 명의 안색은 창백했다.

허벅지나 손목의 동맥이 끊겼으니 제대로 된 조치가 없다면 죽을 것이다.


마빈은 목을 좌우로 꺾으며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피로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하루에 몇 건이나 하역작업을 했어도 멀쩡한 체력이다.


피에 손이 미끄러워 어디에 닦고 싶었지만 온몸이 피에 절어 닦아 봤자였다.


검날은 엉망진창으로 이가 나가 있었다. 살과 뼈를 갈라온 녀석의 수명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사냥할 땐 쓰지 말 걸 그랬나.’


마빈은 품에서 손도끼를 꺼내 왼손에 쥐었다.

데릭손과 그 부하들에게서 노획한, 북부인에게 맞게 만들어진 무게감 있는 날붙이가 수적을 향해 내리찍어졌다.


“오, 온다!”

“으히익!”


캉!


내리꽂히는 도끼날을 수적이 칼로 막아냈다. 마빈은 손도끼의 기역자 날과 자루 사이를 칼에 걸고 치워내는 기예를 선보였다.


무방비해진 수적의 목에 칼이 틀어박히며 피분수가 솟았다.


“뒈져어어엇!”


한 수적이 몸을 바짝 낮추며 달려들었다. 허벅지에서 피가 철철 나는 녀석이었다. 얼마 못 살 걸 직감하곤 저승길에 너는 같이 데리고 가겠다는 속셈이었다.


마빈은 몸을 비틀며 도끼를 휘둘렀다.

목표는 수적의 머리. 하지만 수적은 왼팔을 제물삼아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콱!


마빈의 도끼가 재차 휘둘러졌다.

도끼날이 단번에 척추를 쪼개버렸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쇼크로 죽거나 힘이 빠져야 될 상황이었지만, 출혈로 창백해진 가운데에도 마구 달려든 것에서 볼 수 있듯 이 수적은 악바리 근성을 가진 자였다.


“으아아아!”


수적은 끝끝내 마빈에게 붙어 칼을 찔러 넣었다. 너도 똑같이 당해보라는 듯, 허벅지였다.


그 순간 마빈의 표정이 변했다.


피에 절어 있음에도 그 기색이 너무나 섬뜩해, 이때다 싶어서 달려들려던 수적들이 멈칫할 정도였다.


“......”

“커헉!”


마빈은 수적의 등에 칼을 꽂고 머리에 도끼를 찍었다. 허벅지를 찔렀던 단검이 빠지며 그 틈으로 처음으로 남의 것이 아닌 피가 왈칵 새어나왔다.


쩍, 퍽!


마빈은 박힌 도끼를 뽑아 이미 죽어버린 수적의 머리를 계속 내리쳤다.


수적들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인형 같은 무표정으로 이미 죽은 시체의 머리를 씹다 버린 껌처럼 만들고 있는 모습은 그들도 처음 접해본 광기였다.


사람은 누구나 역린을 가지고 있다.


혈육, 물건, 상황 등 절대로 자극하면 안 되는 영역.


소년의 역린은 없었다가 생긴 것이었다.


퍼석!


다리를 건드려?

어딜 감히?


우직!


천사님이 선물해준 걸?

내가 그토록 갖고자 한 걸?


“네가 뭔데!”


머리가 잘게 흩어진 조각이 되어버린 뒤에야 마빈은 이성을 되찾았다. 만약 수적들이 마빈의 살벌함에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었다면 더 일찍 되돌아올 수 있었을 테지만.


“다, 다쳤잖아. 빨리 죽여!”

“네가 해!”


마빈이 앞으로 나설 때마다 수적들이 단체로 뒤로 물러섰다.


“으아악!”


똑같은 실수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한층 더 진지해진 눈빛을 번들거리며 피로 절여진 손이 다시금 움직였다.


통증을 경험해 한층 더 날카로워진 야수의 검과 도끼가 날붙이를 쳐내고 팔을 자르고 머리를 쪼개고 쇄골과 갈비뼈를 박살냈다.


“후.”


그렇게 모든 수적이 복도 바닥에 피로 이루어진 카펫의 일부가 되었다.


상처 부위를 눌러 보았다.

아프진 않았다.


전장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와중에는 총알에 맞은 줄도 모를 정도로 감각이 둔해진다던데.


‘얼른 끝내야겠다.’


전투로 고양된 몸이 식기 전에, 통증과 출혈로 몸이 둔해지기 전에 얼른 이 일을 끝내야 했다.


마빈은 피웅덩이를 철퍽철퍽 밟으며 복도 끝의 문을 향해 나아갔다.




***




자그마한 석실 안에는 피로 그린 사악한 마법진이 있었다.


새카만 로브를 뒤집어쓴 이는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 위에서 꾸물거리던 손을 뗐다.


‘모두 당한 건가.’


문 너머에서 들려오던 비명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쓸모없는 놈들.’


하긴, 마법 한 번에 기겁하고 납작 엎드린 수적 따위에게 뭘 바라겠나.


그는 성성한 회색 수염을 검은 로브 안쪽으로 갈무리하며 마법진을 응시했다.


계획이 다소 일찍 들통나 추격이 귀찮게 되었긴 하지만 목적한 바 자체는 거의 이루었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되거늘. 이런 사달이 날 줄이야.’


철벅 철벅


물기 있는 발걸음이 문 앞에까지 다다랐다.

노인은 로브 안으로 칼집을 움켜쥐었다.


‘주문을 쓸 시간은 벌어주겠지.’


꽤 높은 악마에게 지속적으로 제물을 바쳐 가며 강화시켜온 주문이다. 험한 떠돌이 생활에서 그의 목숨을 숱하게 구해주고 거친 수적들을 무릎 꿇리게 한 힘.


어지간한 기사조차 현혹시킬 수 있고 심약한 이는 심장마비로 쓰러지거나 실제로 상처를 만들 수 있는 등, 거의 저주에 가까울 정도로 강력한 환상마법.


‘발소리로 보아 적은 하나.’


경계용 환상마법을 뚫고 들어온 걸 보면 어느 정도 정신력은 강한 거 같지만, 그의 마법은 목표 대상이 적을수록 효과가 증폭된다.


“깊은 밤의 절망을 불러오는 분이시여......”


노인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웅얼거림은 금방 멈추었다.


끼이익


“어......? 떠돌이 사제님 아니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상대방이 그를 알아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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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화 +1 24.09.04 848 29 11쪽
29 29화 +1 24.09.03 871 32 11쪽
28 28화 +1 24.09.02 879 29 12쪽
27 27화 +1 24.09.01 882 34 12쪽
26 26화 +1 24.08.31 892 3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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