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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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작품등록일 :
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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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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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1화

DUMMY

북부의 설원에서 탄생한 검이 자신의 고향만큼 차가운 물을 만나 부르르 떨었다. 데릭손의 검도 그동안의 거친 대련으로 이가 빠져 엉망이었다.


원래라면 무기고에서 새 무기를 꺼내 써야 했지만, 단단한 비늘을 상대로 검신을 잡고 후려치는 게 묘하게 손맛이 좋아서 아직 바꾸지 않고 있었다.


소년은 여성 인어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자신이 가장 만만한 취급을 받았다 오해한 건지, 인어의 얼굴에 깃든 분노가 진해졌다.


“죽어라! 내 딸들의 원수!”


과묵하던 이들 중 처음으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물을 가르고 다가오는 창날에는 증오와 함께 처절한 비통함이 깃들어 있었다.


‘이런.’


강철로 짠 그물처럼 삽시간에 좁혀 들어오는 세 창날들.


해양 마수를 사냥하며 연마된 전사들의 합격술은 마빈의 사지 하나하나에 올가미를 건 것처럼 서서히 조여 들어왔다.


“흡!”


마빈이 짧게 숨을 들이쉬며 올무의 중간을 끊어냈다. 잘 맞물리던 세 창날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겨났다.


‘속전속결로 간다.’


일대삼을 일대일 구도로 만들어야 승산이 생긴다.


각종 험악한 바다생물들의 움직임을 닮은 궤적들 사이로 용감히 파고든 마빈이 여성 인어 전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동안의 대련으로 인해, 두 다리가 아닌 물고기 꼬리를 가진 여성 인어는 비교적 중심을 잘 못 잡는다는 걸 알기에.


팔에 상처가 나는 것을 대가로, 마빈은 북부에서 만든 묵직한 손잡이를 여전사의 얼굴에 정통으로 후려갈길 수 있었다.


뻐버벅!


그 뒤로 가슴팍을 연속으로 타격했다.


검을 타고 전해지는 반탄력은 경지에 오른 인어 전사의 비늘 강도가 만만치 않음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마빈의 힘은 그 이상이었다.


“으윽!”

“뒤로 빠져!”


뒤로 물러난 여전사가 꼬리를 힘차게 휘저어 공중으로 떠올랐다. 동시에 마빈도 뒤로 물러났다. 소년이 방금 있던 장소를 두 개의 창이 관통했다.


하마터면 꼬치에 꿰인 신세가 될 뻔했지만 마빈은 동요하지 않고 바로 다음 목표를 정했다.


저 여자 인어 전사가 다시 내려오기 전에!


마빈은 바닥의 진흙이 깊게 파일 정도로 강하게 땅을 박찼다. 목표는 삼지창 전사. 주변이 흙탕물로 부옇게 되며 자연스럽게 공중에 뜬 여전사의 시야를 차단했다.


코앞까지 들이닥친 삼지창날의 궤적을 회피한 뒤, 창대를 손으로 움켜쥐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파각!


그러나 시도는 중간에 막혔다. 폴암을 든 인어 전사의 폴암이 중간을 가로막았다.


창날 밑에 달린 도끼날이 마빈을 향해 빙글 돌아가더니 목을 노렸다.


목을 옆으로 꺾으며 도끼날을 피한 마빈은 목표를 바꾸었다.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이번에 무력화시켜야 돼!


전사들에게 생소할 물밖의 심상을 담은 칼놀림으로 삼지창 전사를 물러나게 만든 뒤, 마빈은 곧바로 폴암 전사에게 달려들었다.


전사의 가슴팍에 공성추처럼 수직으로 묵직하게 박히는 칼. 날은 무뎌졌지만 충격을 주기엔 충분했다.


전사가 우욱하고 짧은 신음을 흘리는 순간, 마빈은 돌연 몸을 빙글 돌리면서 전사의 우측으로 돌아가며 그를 살짝 밀쳤다.


푸욱!


위에서 마빈을 향해 내려찍던 여성 인어 전사의 창날이 마빈의 등짝 대신 폴암 전사를 찌르고 말았다.


‘얕았어.’


급히 피하느라 검을 깊게 꽂지 못했다. 마빈은 대신에 폴암 전사의 텅 빈 관자놀이를 크로스가드로 후려쳐 주었다.


폴암 전사가 휘청이고, 마빈은 한 바퀴 돌아 풀스윙으로 한 번 더 후려쳤다. 그렇게 하나를 기절시켰지만,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기회를 노리던 삼지창이 마빈의 어깨를 관통했다 회수되었다.


창끝에 둘러진 오러에 깔끔하게 구멍이 뚫렸다. 바닷물의 소금기가 환부를 마구 씹는 듯한 고통을 선사했다.


‘괜찮아. 이 정도는 금방 회복할 수 있어.’


몸에 깃든 신성력을 밖으로 꺼낼 수는 없지만 체력을 보충하고 상처를 수복시키는 데는 탁월했다.


마빈은 자신의 재생력을 믿고 달려들었다. 고통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는 것처럼 무표정한 소년을 마주한 전사가 이를 악물며 창을 짧게 잡아 근접전에 대비했다.


채채챙!


창과 검에 담긴 각자의 심상이 맞부딪쳤다.

해류와 바람이 뒤섞이고 물짐승의 이빨과 뭍짐승의 이빨이 서로를 물어뜯으려 했다.


검과 삼지창이 부딪히는 소리는 드문드문 끊겼다. 사이에 여전사가 자꾸 끼어들어 마빈에게 회피를 강요했다.


하지만 세 명이었을 때보다는 할 만 했다.


육지의 것을 담은 공격에 익숙하지 않은 둘과는 달리, 마빈은 대련 덕에 인어 전사들의 싸움방식에 익숙했으니까.


다소 여유가 생긴 마빈은 다른 데 신경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더 선명해졌어.’


피부 안팎으로 단순히 흘러가기만 하던 마력의 흐름이, 파도로 만든 이불을 덮은 것처럼 몸 전체에서 간질거리고 있었다.


‘더 자극이 필요해.’


재채기를 하다 만 것 같은 이 감각의 끝을 보기 위해서.


싸움은 계속 이어졌다.


팔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단 것처럼 피로가 쌓여갔다. 창날의 궤적을 못 따라잡아 여기저기 생채기가 생겨났다. 물속으로 피가 조금씩 흩어지다가 금방 멎었다.


“뭐야, 대련 아니었어?”

“거칠게 하는 것치곤 분위기가......”


중간에 와서 구경하던 인어들이 뒤늦게 심상찮음을 느끼고 궁전 안으로 달려갔다.


“이놈!”


도중에 기절했던 전사가 깨어나 균형은 다시금 위태로워졌다. 세 개의 심상이 하나의 심상을 찢어발기기 위해 파도처럼 세차게 몰아쳤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지만 마빈은 용케 버텨냈다. 전사들이 휘두르는 창대들은 여러 개의 가지와 같았다.

덕분에 마빈이 의식적으로 쓸 수 있는 유일한 심상, 가지의 사이를 휘몰아치는 겨울바람으로 대처가 가능했다.


‘조금만 더.’


간질거리는 마력의 흐름이 점점 선명해졌다.


‘조금만, 더.’


따스한 신성력, 따끔한 흑마력, 싱그러운 엘프의 마력, 그리고 이 순간까지 겪어왔던 여러 가지 마력 감각들을 필사적으로 떠올리고 비교했다.


‘조금만! 더!’


극한으로 몰릴수록, 마력이 선사하는 간질거림은 점점 손에 잡힐 듯 뚜렷해져만 갔다.


그렇게 위험한 줄타기를 하던 어느 순간.


‘!’


흐름의 가닥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히 인식되었다. 마빈은 그걸 꽉 움켜잡았다.


그 줄을 잡고 마지막 절벽을 올랐다.


‘드디어!’


산봉우리에 올라서면 그전엔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산 너머의 풍경이 보이기 마련이다.


마빈에게 더 넓은 세상이 펼쳐졌다.


‘평온해.’


드디어 올라섰다는 성취감 너머로 온몸을 감싸 안는 평화가 찾아왔다.


지금도 정신없이 세 전사들의 몸을 던지는 공격을 막고 있음에도 정신만큼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맑은 날의 하얀 구름 속에 몸을 폭 던진 것처럼 푸근하고, 은은한 저녁노을에 발갛게 물들어 가는 구름을 껴안은 것처럼 따스한.


이에 여러 기억이 저절로 떠오른다.


휠체어 신세라 곤란한 상황에 처한 그를 선뜻 도와주던 사람들. 침대 신세가 되었을 때 부끄러움 한 점 없이 그의 수발을 들었던 간호사나 자원봉사자들.


상처 입었던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경험들.


“.......”


그러나 마빈은 그런 과거의 추억은 고이 접어 마음속에 보관하기로 했다.


‘소중한 기억인 건 맞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생의 일.

그는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심상 속 강 너머의 도시는 거기서만 존재해야지, 영역을 넓혀서는 안 된다. 새로이 생긴 넓은 평원에 새로운 것을 놓을 자리가 줄어드니까.


그렇게 마음먹은 마빈의 머릿속에 이를 대체하는, 이 세상에서의 경험들이 떠올랐다.


다시 태어났음을 깨닫고 다시 움직일 수 있음에 감격하던 자신을 꼭 끌어안은 어머니의 온기.


목수 일을 배우면서 실수를 바로잡아주고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준 아버지의 든든함.


쌀쌀한 날 한기에 떠는 어린 가축들을 보듬던 어미 동물들의 행동.


수확철 황금빛 밀밭과 콩밭을 보며 느껴지는 풍요로운 뿌듯함.


그리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하며 미소 짓는 소년.


‘평화롭다.’


15년의 삶 동안 겪은 목가적인 심상이 마음 속 도화지 한쪽에 사각사각 그려졌다.


그러자 신체가 새로운 심상에 반응했다.


물에 빠진 옷이 물을 머금는 것처럼 주위의 마력이 체내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그 속도와 유량은 유수한 가문의 비법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몸으로 흘러들어온 마력을 인도하는 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가 다 빠진 볼품없는 검에 햇볕을 닮은 옅은 광채가 일렁였다.


그건 오러와 닮아 있었으나, 검신을 멀쩡히 쥐고 있는 마빈의 손에서 볼 수 있듯 무언가를 파괴하고자 하는 성질이 아니었다.


터텅!


방패처럼 넓은 빛이 뻗어 나와 살기 가득한 창날들을 모조리 막아냈다.




***




모든 것은 양면을 가진다.


따뜻한 태양은 겨울을 녹이지만 가뭄을 불러오기도 하고, 마른 땅의 목을 축여주는 고마운 비가 어떨 때는 모든 걸 휩쓸어버리는 홍수로 변모하기도 한다.


악을 불사르고 지상의 것을 치유하는 천상의 힘조차도 과하면 사용자에게 피해를 입히니, 이는 마력도 마찬가지였다.


각성의 순간, 마빈은 상대를 파괴해야 한다는 마음 대신 평화로운 과거를 연상했고 그 결과는 파괴를 위한 칼날이 아닌 보호를 위한 방패였다.


터텅!


살기 가득한 오러를 두른 창날이 튕겨나갔다.


끈질기게 버티는 마빈을 상대하느라 제법 지친 인어 전사들이 반탄력에 덩달아 나가떨어졌다.


마빈에게 찾아온 변화는 하나 더 있었다.


‘뭐야 이건?’


돌연 전사들에게 흐릿한 환영이 겹쳐졌다.


다시는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아이들을 찾아 허공에 손을 휘젓는 부모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오러에서 풍기는 단순한 의지의 편린이 아니라 더 상세하고 처절한 감정이 똑똑히 눈에 보였다.


왜 삶을 포기한 눈을 하는지.

심상에 어떤 상처가 남았는지.

왜 이런 무모한 선택을 했는지.


“모두 멈춰라!”


그때, 다룰마가 인어 경비들을 데리고 다급히 헤엄쳐 왔다. 그는 마빈의 만신창이가 된 몰골을 보고 아가미로 물거품을 내뱉었다.


“웬 싸움 소리가 나길래 대련인 줄 알았더니만...... 복장을 보니 사냥에서 막 돌아온 듯한데, 해룡의 손님이란 걸 못 들은 건 아니겠고.”


세 인어 전사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여 처분을 기다렸다. 눈을 스륵 감은 그들의 분위기는 오히려 홀가분해 보였다.


“감히 해룡께서 초대한 이에게 이런 짓을 했다는 건 응당 그 대가도 각오했단 거겠지?”


저들이 겪은 고통은 이해하나, 그 방법과 방향이 잘못된 것은 처벌을 받아야 옳다.


“아저씨 잠시만요.”


창백한 수호자가 분노하여 창을 치켜들자 마빈이 슬쩍 다가와서 팔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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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화 +3 24.09.08 721 36 13쪽
33 33화 +1 24.09.07 718 35 12쪽
32 32화 24.09.06 739 3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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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화 +1 24.09.04 848 2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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