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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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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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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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DUMMY

무기에 의지를 담는다.

무기에 감정을 담는다.

무기에 기억을 담는다.


무인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이 그 무엇보다 바라는 경지이자 수많은 이들이 좌절하는 첫 번째 벽.


마빈은 자연스럽게 드높은 벽을 뛰어넘어 길의 초입에 들어섰다.


이전에도 자연물을 닮은 칼솜씨를 보여주었으나 그건 심상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그저 무의식적인 모방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손에 들린 삭풍은 분명한 스스로의 의지를 통해 벼려낸 것이었다. 비록 마력과 함께하진 않았어도 칼에 의지가 깃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크나큰 도약이었다.


[이놈! 하찮은 것이 길게도 버티는구나!]


검의 궤적은 점점 거칠어졌다.


얇고 예리했던 바람은 점점 굵어지며 귓가를 휘휘 울리는 소리를 냈다. 마치 검이 만들어진 험악한 북부의 바람을 닮아가는 것처럼.


이에 마빈의 싸움 방식 역시 바뀌어갔다.


간혹 살을 주고 뼈를 잘라낸다는 생각으로, 상처를 감수하고 파고들어 촉수 여러 개를 동시에 베어내는 등 과감하고 난폭해졌다.


방어적인 면에서 특출 난 성기사들처럼 신성력을 품고 있는 검을 쥐었으나, 정작 전투방식은 북부의 광전사 못지않았다.


여기저기가 찢기고 멍들었다.

옷도 어느새 검붉게 물들었다.


그만큼 악마의 피해도 지대했다.

잘려서 꿈틀대다가 축 늘어진 촉수가 점점 바닥에 쌓이며 스러져갔다.


‘씁, 아프네.’


가슴을 후비는 듯한 고통이 찌릿하게 치밀어 올랐다. 목구멍 안쪽에서는 진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그러면서 몸은 여전히 활력이 넘친다는 모순적인 상태.


햇빛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지만, 너무 강하게 내리쬐면 모든 것이 말라붙으며 고사한다.


마빈의 덜 여문 육신이 거름망도 없이 내리꽂히는 천상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신성력이 선사하는 회복력이 없었다면 진작에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을 수준.


‘그래도 아직은 참을만해.’


이러한 고통도 마빈에게는 그저 경험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겪지 못할 진귀한 일을 몸소 체험하는 재미를 놓칠 순 없지!


한편, 악마는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크으윽! 이대로라면 당한다......!’


베인 상처에서부터 독처럼 침투하는 신성력에 촉수의 재생 속도와 탄력은 서서히 깎여나가는데 정작 저놈은 도무지 지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평범한 성기사가 아니로구나!’


이 힘은 절대로 일반적인 성직자가 낼 신성력이 아니었다. 이건 악마의 근본을 위협하는, 지옥으로 강제로 사출되지도 못하고 소멸을 시킬 비수 같은 힘이었다.


[잘도 빠져나가는구나. 하지만 이제 끝이다!]


다급해진 악마가 큰 공격을 가해왔다. 놈은 촉수 여럿을 엮어 그물처럼 펼치는 식으로 끝장을 보고자 했다.


‘자, 피해 봐라!’


악마는 촉수 끝에 힘을 집중했다. 녀석이 그물을 피하기 위해 촉수 그물의 가장자리로 향한다면 도리어 맹수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꼴이 되리라.


사방에서 조여 고깃덩이로 만들어주마!


“......”


냉철한 눈동자가 재빨리 촉수그물을 훑었다.


어부가 그물을 위로 막 던진 순간처럼, 바깥쪽은 펼쳐졌지만 중심부분은 말린 채 펼쳐지길 기다리고 있는 형태였다.


중심부는 촉수가 서로 엉겨 붙어 있었다.

저걸 잘라내면 모조리 힘을 잃겠지!


마빈의 검은 어느새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머리 뒤에도 묘한 후광이 어렸다. 과도한 신성력이 몸 주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바깥으로 넘쳐흐르는 현상이었다.


생성하고자 하는 의도도 절삭력도 없어 오러라고 부를 순 없으나 악마에게는 그보다 위협적이었다.


입에서 피가 흘러나와 앞섶을 적시는 것도 모른 채, 마빈은 과감하게 그물 안으로 몸을 던졌다.


[아니! 어째서 피하지 않고!]

‘피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야.’


광채를 머금은 검의 첨단이 기분 나쁜 색감의 분홍 살점을 두부처럼 뚫고 들어갔다.


손목이 비틀리며 팔이 위를 향해 사선을 그렸다. 뒤이어 아래를 향해 팔이 그어지고 수직으로 재차 썰어 올린다.


후두두둑


그물의 중심을 이룬 촉수들이 까맣게 타버린 단면을 내보이며 무력화되었다. 연결되었던 주변의 촉수들도 힘을 잃고 축 쳐졌다.


악마가 소스라치게 놀라 손가락으로 건드린 말미잘처럼 몸을 오므리려 했지만 마빈의 검은 이미 몸체를 파고들고 있었다.


[키아아아아악!]


마빈의 체내를 채우고 있던 신성력이 분출구가 생기자 이때다 하며 악마의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악한 것을 살라버리는 기운이 악한 것을 만났으니, 그것 자체가 용암이요 불길이라.


물컹한 몸체는 칼이 틀어박힌 곳을 중심으로 빠르게 숯처럼 검게 타들어갔다.


[키아아아아악!]


성대가 있었다면 가뿐히 찢어졌을 고음의 비명을 지른 악마는 소멸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걸 인식하곤 싹싹 빌기 시작했다.


[사, 살려줘. 제발! 뭐든지 다 줄게 제발! 칼 좀 뽑아줘어어어!!]

“뭐든지?”

[그래. 뭐, 뭘 줄까? 재물? 여자? 힘? 말만 해! 다 들어줄 수 있어!]


되도 않는 공수표를 남발하는 악마에게 마빈은 검을 더욱 깊이 쑤셔 넣는 것으로 화답했다.


악마를 죽였단 업적!


오로지 그것만이 지금 당장 악마가 마빈에게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 있는 요소였다.


[크아아아악!]


마빈은 마구잡이로 악마를 베어냈다.


악마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안개의 농도가 짙어졌다. 그에 따라 악마에게 침투하는 신성력의 양도 계속 늘어났다.


마빈은 과도한 천상의 힘에 내부가 진탕되어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웃었다.


일반인이라면 압도당하거나 미쳐버린다는 악마의 본체를 생생히 목도하면서도, 마력 칼날이나 신성력이 아니라면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 악마를 마구잡이로 베어내다니!


이런 귀한 경험을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천사님.’


세상에는 너무나도 할 게 많아요. 저를 여기 다시 태어나게 해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이 잔인한, 성기사 노오오옴.....!]


악마는 결국 신성력의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비참하게 쪼그라들며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몸체 위쪽에 박혀 있던 금속 쪼가리가 바닥에 내려앉은 잿더미 위에 툭 떨어졌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지하인데도 잿더미는 풍화가 가속되듯 서서히 바스라지며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안쪽을 채우고 있던 악마의 기운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지하실 특유의 쿱쿱한 곰팡이 냄새만 남았다.


아직도 악마를 벨 때의 손맛이 남아 있음에도 마빈은 얼떨떨했다.


사람들은 악마를 하나같이 끔찍한 재앙이라고 묘사하곤 했다. 그런 사악한 존재를 혼자서 잡게 될 줄이야.


‘아니, 혼자는 아니지.’


마빈은 두 손을 모아 짧게 기도했다.

고맙습니다 천사님. 덕분에 보스 잘 잡았어요.


“윽.”


마빈의 다리가 휘청였다. 천상에서 공급되는 힘이 사라지자 탈력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끼이익


“마빈?”


후들거리는 몸을 애써 지탱하고 있자니, 메이헌 사제가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 세상에!”


이곳저곳이 터진 옷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피까지 토해 앞섶이 붉게 물든 마빈을 본 메이헌 사제는 다급히 얼마 남지 않은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마빈은 내장이고 뼈고 모두 빠져나간 듯한 공허함이 뜨끈한 물에 들어간 듯한 느낌으로 채워지는 느낌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사제는 신성력을 눈에 집중했다. 혹여 악마에게 빙의되었거나 홀린 건 아닌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메이헌이 혼잣말로 감탄했다.


“허...... 참으로 대단한 성기사감이구나.”

“제가요오?”

“네. 아무래도 주신께서 형제님께 축복을 내리신 모양이에요.”


마빈은 부정하고 싶었다. 내 종교적 신실함이 아니라 단순히 천사님이 도와준 거라고.


그러나 자꾸만 감기는 눈과 축 처지는 몸에 점점 잠에 빠져들기만 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악마는 보는 것만으로 심력이 매우 크게 소모되는 일이다.


메이헌은 등불 아래에서 파랗게 질린 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마빈을 업고 얼른 지하를 나섰다.




***




그날 밤.


성수로 적신 물수건을 이마에 올린 마빈은 메이헌의 처소에서 곤히 잠에 들었다. 미약한 달빛 두 줄기가 창밖으로 들어와 마빈을 비추었다.


‘대단한 아이구나.’


메이헌은 속으로 감탄했다.


‘고작 열다섯에 악마를 퇴치하다니.’


과정은 못 봤지만 밖으로 악마가 탈출을 하진 못했으니, 분명 악마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지옥으로 되돌려 보냈을 것이다.


주신께서 이 아이의 용기와 신실함에 감격하시어 성직자로서의 길을 용인해주신 것이 분명했다.


‘이 아이는 본단으로 가야 해.’


사제는 뛰어난 재능의 아이가 엇나가지 않도록 교단의 총본산으로 데려갈 의무가 있었다. 범상치 않은 고결함의 묘목이 내부에 뿌리내렸을 이 아이라면 장차 큰 인물이 되겠지.


깊게 잠들어 차분한 숨을 내뱉는 마빈에게 담요를 끌어올려주며, 메이헌도 슬슬 잠을 청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담긴 또 하나의 고민은 쉽사리 평온에 들지 못하게 했다.


‘분명 나도 감당할 수 있는 악마였거늘.’


악마가 봉인된 곳은 그 봉인을 수리하거나 봉인된 악마를 능히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이 배치된다.


메이헌도 대재앙 당시 일선에서 싸웠던 인물. 아무 이유도 없이 성당에 사제 하나만 덜렁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용을 썼음에도 봉인이 깨지는 걸 막지 못했다. 빈민가 방향에서 느낀 흑마력이 악마에게 힘을 공급해 줬다기에는 메이헌의 재량으로 충분히 방비할 수 있을 그런 수준이었다.


주신께 맹세컨대 그의 신실함이 줄어들어 약해진 건 아닐 터.


‘분명, 저 괴상한 파편 때문이겠지.’


그는 방 한쪽에 덩그러니 놓인 금속 쪼가리를 쳐다보았다. 악마의 몸에 박혀 있었단 것치곤 어떤 사악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그래서 더 수상하기 짝이 없는 물건.


추론해 보자면 저건 필히 악마의 힘을 증폭시키는 것이리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메이헌은 한참이나 고민을 하다가 까무룩 잠들었다.


잠들기 무섭게 꿈을 꾸었다.


‘여긴?’


그가 늘 지내는 성당의 작은 방이었다. 벽에는 못 보던 자그마한 붙박이 새장이 하나 걸려 있었다.


메이헌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웬 새장인가 하며 손을 뻗었다. 새장과 벽을 연결하던 연결부가 툭 떨어지며 새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


철제 새장과 바닥이 만나 요란한 쇳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메이헌은 잠에서 깨어났다.


창밖으로 보이는 두 개의 달 사이의 거리는 자신이 잠들 때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웬 꿈이람.’


평소에 꿈을 잘 꾸지 않는 그였다. 꿔봤자 대재앙 당시에 겪었던 참혹한 장면이 재현되는 악몽이 전부. 이런 일상적인 소재가 주인 꿈은 드물었다.


메이헌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몇 분 뒤.


“......”


메이헌은 똑같은 꿈에 다시 깨어났다.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악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고 악몽도 아니었으니 흑마법사의 술수는 아닐 것이고.


‘기이하구나. 혹여 주신께서 내게 무엇을 알려주시려는 것인가?’


신을 섬기는 사제답게 그는 이 기현상을 신과 연관지었다.


‘어디......’


그는 한 번 더 잠을 청했다.

이번에는 쉽게 잠들지 못하고 두 달이 남쪽 하늘을 스쳐 지나가며 악수를 한 뒤에야 겨우 잠에 들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같은 꿈을 꾸었다.


“허어......”


한 번은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두 번은 우연일 수 있으나, 세 번은 필연이라 했다.


메이헌은 마른세수를 했다.


‘정말로 내게 계시가 내린 건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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