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Grawingen
작품등록일 :
2024.08.08 14:31
최근연재일 :
2024.09.18 19:2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43,000
추천수 :
1,662
글자수 :
249,485

작성
24.09.10 13:20
조회
621
추천
34
글자
11쪽

36화

DUMMY

고즈넉한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해변가.


조용히 흔들리는 물결 한가운데 내리꽂힌 가느다란 낚싯줄 한 가닥이 움찔거렸다.


낚싯대의 주인은 손목으로 진동이 오기 무섭게 팔을 튕기며 낚싯대를 들어올렸다.


촤아아악!


팔뚝만한 물고기가 튼튼한 팔 힘을 이기지 못하고 너무나도 손쉽게 수면 위로 끌려올라왔다.


“아잣, 또 잡았다!”


월척에 마빈이 기쁨의 환호를 내질렀다.


꽉꽉!


마빈의 주변에 모여든 갈매기 몇 마리가 축하하는 건지 달라는 건지 모를 소리로 울어댔다.


“고마워. 자 여기.”


꽈악! 꽈아악!


물고기를 옆에 그냥 놔뒀는데도 집어먹지 않은 갈매기들이 기특해 마빈은 물고기를 썰어 나눠주었다.


“자, 그럼 모닥불을~ 피워어~ 볼까요오~”


마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을 준비했다.


서서히 저물어가는 하늘 아래, 타닥거리는 기분 좋은 불 소리와 함께 이름 모를 생선들이 익어갔다.


“으아, 배부르다.”


배를 채우고 모래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별과 모닥불을 벗 삼고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갈매기 소리와 함께 일어나는 나날은 참으로 평화로웠으나......


‘심심해.’


카트라그에서부터 줄곧 사람들과 부대껴 지냈던 탓일까, 주변이 조용한 게 더욱 크게 다가왔다.


‘동료가 필요하단 말이 뭔지 알겠어.’


모험가와 용병들은 든든한 ‘동료’의 필요성을 늘 강조하곤 했다.


-혼자 다니는 모험은 위험도 위험이지만 외로운 것도 문제거든.

-혼자서만 다니면 금방 피폐해져. 서로를 보듬어주는 게 동료의 역할이기도 하지.

-우효! 동료가 있어야 그게 바로 모험 아니겠냐고! 가슴을 주무를 수 있는 여자라면 더 좋......

-이 금발 놈아 애한테 그딴 거 가르치지 마!

-이 여자에 미친 사막 놈아, 말 좀 골라서 뱉으라고!


모험가 조합에 놀러갔다가 생긴 가벼운 소란을 떠올리고 마빈이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말이야.


“언제까지 따라올 거예요?”


하늘을 노니는 갈매기를 쓰다듬고 백사장을 기어 다니는 집게 달린 갑각류들과 손장난을 하며 지낸 닷새. 그동안 마빈을 계속해서 따라다닌 이들이 있었다.


촤악


검은 밤바다를 향해 그렇게 말하자, 새카만 수면이 불쑥 솟아올랐다.


“꾸악!”


곁에 앉아있던 갈매기들이 놀라 푸다닥 날아갔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기는 세 개의 머리들. 귀가 있어야 할 곳에는 귀 대신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달려 있었다.


인어들이었다.


“반가워요. 지하에서 본 이후로 오랜만에 얼굴 보죠?”


마빈이 반갑게 손을 흔들자 인어들이 자신도 모르게 손을 흔들었다. 참으로 친근한 마성의 미소였다.


“다른 분들 유해는 수습하셨나요?”

“덕분에.”


두 번째 흑마법사가 올라앉아 있던 마법진 주변에 갇혀 있던 인어들.


마빈이 풀어준 덕에 흑마법 제물 신세에서 살아남은 셋은 희생된 이들의 일부를 챙길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를 챙기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비늘 몇 장만 겨우 갖고 나왔지. 이제 해저도시로 가서 영전에 올려놓기만 하면......”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인어가 말을 멈췄다.

내가 인간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거람.


구해준 건 고마웠지만 그렇다고 숱한 동족들을 잡아댔고 지금도 불법으로 포획하고 있는 인간과 거리감을 좁히기란 어려웠다.


“안녕 마빈.”

“안녕. 이름은 어디서 들었어?”

“강에서 나무판 있는 데. 너한테 마빈이라고 부르는 거 들었어.


셋 중 마빈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소녀 인어만이 거리감 없이 실실 웃었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다른 인어가 붙잡지 않았다면 당장 물 밖으로 나가 수다를 떨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저는 왜 쫓아오셨나요?”

“쫓아온 게 아니야. 도시로 가는 지름길이 이 주변에 있어서 그렇지.”

“응? 언니 아까 그 항구 근처에도 하나 있었잖아?”

“......류티 제발 입 좀 다물렴.”


어린 인어 류티의 고자질로 인해 마빈은 이들이 자신에게 무언가 바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아챘다.


“저한테 볼일이라도 있나요?”

“......작별인사를 하러 왔어.”

“왜 진작 안 하고요?”

“고민했거든. 우리의 도시에 초대해줘야 하나 싶어서.”


인어의 물 속 도시라!

마빈의 눈이 번득였지만, 맥락으로 보건대 불가능하단 얘기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안 될 것 같아. 우리야 고맙지만 다른 동족들은 아직도 인간을 미워하거든.”

“어쩔 수 없죠.”


마빈은 어깨를 으쓱였다.

적어도 그동안은 초대를 진지하게 고려했단 얘기 아닌가. 그런 마음씀씀이를 알았단 것만으로 충분했다.


류티가 아쉬운지 투덜거렸다.


“힝. 마빈이 오면 내가 우리 도시 설명해주려고 했는데...... 아. 그럼 대신에 내가 만든 비밀기지 보러 갈래?”

“비밀기지?”

“류티! 너 아직도 그 짓 하고 있니?”


가장 연장자 인어가 류티의 등짝을 치며 타박했다.


“설마 이번에 잡힌 것도 그러다가 잡힌 거지?”

“히히, 아얏!”


멋쩍게 웃는 류티의 등판 비늘이 다시 한 번 매서운 손길에 들썩거렸다.


“무슨 일인데?”

“으응, 내가 주신의 자비가 내려온 인간들을 한데 모아놨거든.”


대륙에서 살아 움직이는 시체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흑마법사들이 강제로 일으킨 시체.

둘째는 자연적으로 움직이게 된 시체.


첫 번째 경우야 말할 것도 없이 처단과 성불의 대상이지만, 두 번째는 주신의 자비라고 칭하곤 한다.


왜냐하면 죽은 이가 남에게 해 끼치는 일 없이 터덜터덜 걸어 자신의 집이나 가족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제법 드문 현상이지만, 훼손이 너무 심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하염없이 걸어서 결국에는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


마빈도 그런 경우를 보았다.


다름 아닌 그에게 사냥 기술을 전수한 고향 마을의 늙은 사냥꾼이었다.


겨울날 올무를 확인하러 산으로 들어갔다가 실종된 그는, 봄이 되자 한쪽 팔을 잃고 파먹혀 반쯤 뼈만 남은 상태로 되돌아왔다.


지인의 죽음에 분노한 마빈은 사냥꾼에게 배운 추적술을 이용해 해당 산을 싹 뒤진 끝에 사냥꾼을 살해한 존재의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동굴 입구에 널브러진 단검을 쥔 팔뼈 하나.

그 주변에는 흩날리는 갈색 털과 나무에 새겨진 커다란 발톱 자국이 있었다.


마빈이 열네 살에 곰을 잡은 사건의 전말이었다.


이처럼 누군가 수습하지 못한 시신 중의 일부는 천천히 걸어 자신의 고향 내지는 가족에게로 돌아가는데......


“그걸 모아놨다고?”

“응. 어디 바위나 산호초에 걸려서 버둥거리는 걸 빼왔지!”


가슴을 쭉 펴면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류티에게 두 인어의 등짝 스매시가 날아왔다.


“아얏! 왜 자꾸 때려요!”

“위험한 짓 하니까 그렇지! 시체 옮기다가 인간한테 걸린 거지?”

“헤헤, 해안가에 있어서 그거 챙기러 갔다가 걸려서......”


바닷속 그물에 걸린 것도 아니고 지상에서 인간을 대면하고 잡혔다. 그럼에도 인간인 마빈을 향해 환하게 웃다니. 어떤 면에서는 참으로 대단한 인어였다.


“너는 나중에 혼나야겠다. 네 오빠한테 다 이를 거야.”

“안 돼요 제발 그것만은!”

“안 되긴 뭐가 안 돼. 몇 달 동안이나 실종당한 이유는 설명해야 할 거 아냐.”


한동안 투닥대던 인어들이 마빈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저희를 구해준 건 정말 고마웠어요.”


마빈이 뿌듯하게 웃었다.

역시 선행은 보람차다니깐.


“세상이 이렇게 되지만 않았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초대했을 텐데.......”

“어쩔 수 없죠. 조심히 잘들 돌아가요.”

“예. 감사합니다 은인. 죽은 이들의 영령도 주신의 곁에서 그대에게 감사를 표할 겁니다.”


마빈이 말없이 손을 흔드는 걸 마지막으로 세 인어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아쉽네.”


제프에게 인간과 인어 사이의 갈등은 익히 들어봤다. 인간이 인어를 뒤통수쳐 잡아가고, 인어도 그에 보복하는 등의 악순환이 대재앙 직전까지 이어졌다 했었지.


‘전대 황제라.’


인어 포획 허가령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는 전대의 황제. 내전이 터져 축출되기 전까지의 역사서에는 온통 그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가득했다.


‘참 못된 사람이야.’


마빈은 속으로 얼굴도 모를 사람을 원망하며 다시금 해안을 걸었다.




***




“......”


다크루먼은 피폐한 얼굴로 집 안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당장이라도 그의 여동생이 모퉁이에서 튀어나와 좀 긴 숨바꼭질을 했다고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을 것만 같았다.


“류티? 류티 거기 있니?”


하지만 오늘도 그렇듯 텅 빈 집 안에는 조용한 물결소리뿐이었다.


그는 발로 괜히 애꿎은 바닥만 쾅 찍었다.

물고기 꼬리가 달린 인어족 여자와는 달리, 인어족 남자는 다리가 달려 있었다.


‘내가 그렇게 밖에 막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다크루먼은 귀 대신 달린 지느러미 뒤편 아가미로 한숨처럼 공기방울을 부르륵 뿜어냈다.


그는 축 늘어진 채 흐느적거리며 삼지창을 챙겼다. 몸을 덮은 초록색 비늘 위로 갑옷도 걸쳤다.


그는 이 해저도시의 경비병이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해왔던 일인지라 반쯤 관성에 가까운 출근이었다.


밖으로 나온 그의 피부 위로 햇빛 대신 발광생물이 발하는 빛이 흐르고 산들바람 대신 도시 안을 천천히 맴도는 해류가 녹색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어 왔어?”

“그래. 교대하자고.”

“......얼굴이 반쪽이네. 아직도 그러고 사냐?”

“신경 꺼.”


다크루먼은 실력이 출중하여 전사로의 승급을 준비하던 촉망받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동생을 잃은 뒤로는 복어 알집이나 씹으며 일상의 대부분을 취해있는 폐인이 되었기에, 그의 동료는 안타깝기만 했다.


다크루먼은 터덜터덜 순찰인지 배회인지 모를 경비업무를 이어갔다.


‘류티......’


부모님이 마수에게 돌아가신 이후로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족이었다. 뭘 하건 류티의 얼굴이 눈앞에 일렁이고 류티의 환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그래. 지금처럼.


“오빠아!”

“......?”


오늘따라 환청이 생생한걸.

다크루먼은 속는 셈치고 뒤를 돌아보았다.


중앙대로를 힘차게 꼬리짓하며 다가오는 동생이 보였다. 주변에 일렁이는 물결이 참 현실감이 넘쳤다.


광증이 심해진 걸까.

이대로 더 있다가는 정말 미쳐버릴......


“으허헝! 오빠!”


류티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듬직한 오빠에게 폭 달라붙었다. 다크루먼은 묵직하게 안겨오는 무게에 잠시 멈칫했다. 환각이 아닌가?


“류, 류티?”

“응! 나 왔어! 미안해 오빠!”


다크루먼의 지느러미 뒤에서 물거품이 부그르르 뿜어져 나왔다. 그는 눈을 감으며 이것이 환각일지라도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눈앞의 동생을 힘껏 껴안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모험이 좋은 사도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5 45화 NEW 12시간 전 100 5 13쪽
44 44화 +1 24.09.17 200 9 13쪽
43 43화 +2 24.09.16 262 13 12쪽
42 42화 24.09.15 318 13 12쪽
41 41화 +4 24.09.15 329 16 11쪽
40 40화 24.09.14 385 14 13쪽
39 39화 24.09.13 424 16 13쪽
38 38화 24.09.12 491 21 12쪽
37 37화 +1 24.09.11 545 24 14쪽
» 36화 +2 24.09.10 621 34 11쪽
35 35화 +1 24.09.09 687 27 12쪽
34 34화 +3 24.09.08 721 36 13쪽
33 33화 +1 24.09.07 718 35 12쪽
32 32화 24.09.06 739 31 13쪽
31 31화 +1 24.09.05 830 29 12쪽
30 30화 +1 24.09.04 846 29 11쪽
29 29화 +1 24.09.03 870 32 11쪽
28 28화 +1 24.09.02 877 29 12쪽
27 27화 +1 24.09.01 880 34 12쪽
26 26화 +1 24.08.31 892 33 12쪽
25 25화 +2 24.08.30 903 35 12쪽
24 24화 +2 24.08.29 926 40 12쪽
23 23화 +1 24.08.28 927 35 13쪽
22 22화 +2 24.08.27 929 40 13쪽
21 21화 +4 24.08.26 977 40 12쪽
20 20화 +2 24.08.25 968 41 13쪽
19 19화 +2 24.08.24 983 39 12쪽
18 18화 +1 24.08.23 1,013 41 13쪽
17 17화 +1 24.08.22 1,045 38 12쪽
16 16화 +2 24.08.21 1,070 43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