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Grawingen
작품등록일 :
2024.08.08 14:31
최근연재일 :
2024.09.18 19:2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43,035
추천수 :
1,664
글자수 :
249,485

작성
24.09.03 12:20
조회
871
추천
32
글자
11쪽

29화

DUMMY

계시란, 주신께서 지상과 소통하기 위한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다.


주신께서는 모든 것을 굽어 살피시는 위대한 존재이시니.


그런 위대한 존재께서 섣불리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시거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은, 연약하고 좁은 병 입구에 억지로 몸을 쑤셔 넣는 일과 다를 바 없다.


때문에 자신을 섬기는 이에게 꿈이나 빛 등을 통해 간접적이고 은유적으로 자신의 말씀을 전달하곤 하신다.


-라는 것이, 신학자들이 분석이었다.


‘정말로 내게 계시가 내린 건가......?’


성자성녀나 역대 사도들에게 내려지고, 그 외에는 정말 극소수의 인물들만이 보았다는 계시.


주신의 거룩한 손길이 자신에게 내려왔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메이헌은 한동안 바보같이 눈을 끔뻑였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눈을 감고 성경 문구를 외면서 의지를 끌어올렸다. 이 세상을 만드신 지고하신 주신을 향한 강렬한 믿음을 토대로 심상을 떠올렸다.


그의 심상은 덩그러니 놓인 우물이었다.

성경에 쓰인 문구를 충실히 재현한 그런 우물.


그 주변에는 그가 꿈꾸는 평화로운 세상의 일부가 드리워져 있었다. 메이헌은 평온하게 웃는 농부들의 인사를 받으며 풍성하게 자란 밀밭 사이를 걸어 우물 앞까지 도달해 우물에서 조심스레 물을 퍼올렸다.


다소 쌀쌀한 기운이 감돌던 방 안이 봄날 햇살을 받은 것처럼 따스해졌다.


‘이럴 수가.’


봉인을 억누르느라 바닥을 보여 족히 며칠은 요양했어야 할 신성력이 충만해져 있었다.


지성체는 무릇 의심이 많아 남은 물론이고 스스로조차 믿지 못하니, 배려가 드넓어 바다와 같으신 주신께서는 자신의 뜻임을 깨닫게 하도록 친히 그 증좌를 내려주시곤 했다.


‘계시가 확실하구나.’


메이헌은 수많은 지성체 중 하나인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신 주신께 감사함을 표했다.


이제 그 이유를 찾아야 했다.

왜 관심을 보이셨을까?


보잘것없는 사제에 불과한 내게 대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시는......


‘설마.’


잠들기 전까지 하고 있던 고민 중 하나는, 마빈의 활약을 교단에 알리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언가를 가두는 새장이 나오고 그 새장이 떨어져 문이 벌컥 열리는 꿈이라.


‘그렇구나.’


마빈은 틈만 나면 모험을 떠나러 갈 거라 말하곤 했다. 그 때마다 메이헌은 세상은 위험하다 경고했지만, 이 아이는 묘하게 쓸쓸함이 엿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주신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알겠어.’


교단에 보내 성기사 교육을 받게 되면 아무리 짧아도 족히 몇 년은 바깥출입이 제한된 채 교육과 훈련만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세상을 위한 일이라 한들, 이 아이가 바라지 않는다면.


‘새장에 가둔 새가 아닌가.’


악마 퇴치가 끝난 뒤 찾아온 시장에게 일은 잘 끝났으니 이만 쉬고 싶으며 나중에 얘기하자고 얼버무리길 잘했다 싶었다.


하긴, 자신이라도 요 어린 아이가 악마를 쫓아냈다고 하면 쉽게 믿지 않았을 테지.


그래. 이 아이가 이번에 발한 이적은 숨기자. 언젠간 밝혀야 할 때가 온다면 이 아이의 허락을 받고 알리자.


메이헌은 그렇게 결심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


그 판단이 맞다고 주신께서 고개를 끄덕이기라도 한 것처럼, 이번에는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었다.




***




이튿날 아침.


“신기하네. 그렇게 큰 불이 났는데도 그을음 없이 깨끗해.”

“주신께서 가호를 내리신 거지요.”

“암, 그렇고말고. 대재앙 때도 멀쩡했는데.”


“그런데 마빈이 걔는 괜찮나? 불 꺼진 다음에 못 봤는데.”

“사제님이 말씀하셨잖어. 연기 마셔서 쓰러졌다고.”

“저런.”

“뭘 그리 놀라. 사제님의 신성력 한 방이면 한 숨 자면 바로 일어날 텐데.”


겨울의 아침이라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았는데도 성당에 사람들이 많이들 모였다.


성당에 화재가 났었단 소식에 도시의 멀리 떨어진 구역의 사람들까지 성당이 괜찮나 하고 찾아온 것이다.


성당이야말로 대재앙에서 살아남았다는 증거이자 모두의 굳건한 마음의 안식처였으니, 뭔가 일이 생겼단 말에 헐레벌떡 달려와 자기 집처럼 이리저리 살펴댔다.


그간 연락이 뜸했던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그 자리에서 기나긴 대화를 나누고, 성당을 바라보며 과거의 좋고 나쁜 기억을 반추하는 등, 성당 주변은 광장처럼 소란스러워졌다.


“그 빈민가 놈들이 지들 들쑤셨다고 보복으로 성당에 불을 지른 게 분명해!”

“나쁜 놈들! 침공 끝나고 눈치 보면서 기어 들어온 것들이 감히!”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 사이에 요상한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저 외부인 놈들 때문이다!


“내가 어제 밤에 성당에 늦게 갔다가 봤는데, 딱 봐도 깡패처럼 생긴 놈들이......”

“나는 복면을 쓴 놈들을 봤는데......”


몇몇 사람들이 그럴듯한 말을 하자 분노는 삽시간에 좌중을 휩쓸었다.


“감히 사제님을 해치려 들어?”

“빈민가 순방도 가시던 그 착한 분을 은혜도 모르고!”

“에이! 시장님께 갑시다! 이번에 흑마법사하고 결탁도 했다던데 이번에야말로 쓸어달라 하자고!”

“나도 그놈들 자꾸 주변으로 기어 나와서 돈 뜯고 하던 게 꼴 보기 싫었어. 이참에 나도 손 좀 거들어야지!”

“옳소!”


분노한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 덩어리가 된 사람들은 순식간에 언덕을 내려갔다.


‘......시장 아저씨 머리 좋네.’


마빈이 성당 뒷문을 열고나오며 생각했다.

사람들 중에 시장 저택에서 얼굴을 익힌 하인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람잡이었다.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니까.’


따지고 보면 그들이 흑마법사에게 협력해서 일어난 일이 아닌가.


아무래도 시장은 이번 기회에 최소한 도시 성벽 내의 빈민가는 완전히 정리할 계획으로 보였다. 이번 흑마법사 건으로 인해 칼을 마구 휘둘러도 될 강력한 명분을 얻었으니.


빈민가 깡패들의 저항도 만만치는 않을 테니 잠시 도시는 홍역을 겪겠지만,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언덕 경사면에 조성된 작은 숲.

겨울이라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곳을 지나치던 마빈이 우뚝 섰다.


앙상한 가지 너머, 시간 상 아침이지만 겨울이라 미처 어둠이 걷히지 않은 밤하늘에서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빛 공해로 인해 제대로 보이지 않고 어쩌다 보여도 인공위성인지 비행기인지부터 의심을 해야 했던 전생의 밤하늘이 아니었다.


오롯이 별이라 믿고 아름다움을 만끽하면 그만인 그런 하늘.


‘고맙습니다.’


저 먼 곳 어딘가에 있을 천사님을 향해 다시 한 번 어제 악마와의 싸움에서 도움을 준 것에 감사를 표했다.


‘이제 슬슬 떠나볼까.’


도시에서 너무 오래 보냈단 생각이 들었다.


계절 하나 보낸 게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그동안 그 안에서 열심히 일하고 배워서 나름의 결실도 맺었으니 낭비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마빈은 심상 세계가 텅텅 빈 걸 보고 내심 충격을 먹었다.


전생의 기억과 천사님을 만난 기억만 덜렁 있, 아니지. 천사님은 그냥 함께하고 계신 거니 사실상 전생의 기억밖에 없는 셈이었다.


문명의 고하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이곳을 하찮게 여겼나 하는 의심도 했고, 혹시라도 눈이 너무 높아진 나머지 지금까지 본 게 눈에 차지 않아서 그런가 하는 고민도 했다.


그리하여 마빈이 내린 결론은 ‘떠나자’였다.


더 넓은 곳으로 향해 더 많은 것을 보고 진지한 탐구와 분석을 통해 텅 빈 심상 세계를 채우자.


그리하면 언젠가 삶의 황혼 때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흐뭇하게 웃으며 나는 이렇게 충만한 삶을 살았다며 스스로에게 당당해질 수 있으리라.




***




대재앙으로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시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곳은 드물었다.


그나마 괜찮은 곳이 바로 강.


카트라그를 관통하는 유베나 강은 카트라그의 젖줄이었다. 도시에서 수많은 일을 해봤던 마빈도 대략 절반 정도의 일거리가 강과 연관될 정도였다.


그러나 누구나 강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곳의 어부와 부두 일꾼 조합인 민물장어파가 사실상 일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당하다고 볼 순 없었다.

아무나 일꾼으로 삼았다가는 외부에서 들여오는 귀한 물자에 손을 댈 수 있으니 그만큼 신뢰하는 단체에 맡겨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 곳에 초보 일꾼으로 별 검증 없이 쉽게 들어갈 수 있던 건 전적으로 베델라 상단의 상단주, 제프의 덕이었다.


“어이구, 소식은 들었다. 빈민가에서 고생했다며? 자, 과자라도 들거라.”

“앗, 감사합니다.”


이 도시에서 시장만큼 권력 있는 그의 집무실을 마음껏 들락거릴 수 있는 사람은 상단의 부단주와 마빈뿐이었다.


“빈민가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단 얘기는 대충 들었다. 그 험한 곳에서 고생이 많았구나. 흑마법사도 잡았다며?”


열다섯 짜리 사냥꾼이 흑마법사를 잡았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지 못할까봐 대외적으로는 기사가 사살했다고 알려졌지만, 시청과 밀접한 관계인 제프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빈은 멋쩍게 웃었다.


“별 거 아니었어요.”


진짜다.

힘든 건 성당에서였지.

빈민가는 기사들 덕에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아침 일찍 웬일이니?”

“슬슬 도시를 떠나려고요.”

“벌써? 겨울은 지나고 떠난다면서?”

“마음이 좀 바뀌어서요.”


제프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손주 같은 녀석이 떠난다는 섭섭함, 부디 원하는 바를 이루면 좋겠다는 바람, 혹여나 험한 일을 겪진 않을까 하는 걱정.


마을을 떠날 때 소년의 부모님이 보여준 표정과 판박이였다.


“그래서 하나 여쭤 보려고요.”

“그래. 뭐든 말하려무나.”

“혹시 바다 쪽으로 가는 배에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


제프가 턱을 만지작거렸다.

허공을 보면서 표정을 살짝 찡그리는 게 좋지 않은 기억이 상기되는 모양이었다.


“바다구경 하려고?”

“네. 맞아요.”

“......그래. 마침 나도 블라켄트에 갈 일이 생겼으니까 태워주마.”

“무슨 일인데요?”

“그냥 업무 차. 헌데 모험 준비는 많이 했니? 여비랑 장비는 충분하고?”

“여비는 그동안 아끼면서 많이 모았어요. 이제 슬슬 여행 장비랑 건량이랑 준비해 봐야죠.”


뿌듯하게 말하는 마빈에게 제프는 빙그레 웃어주었다.


“그래. 우리도 출발 준비는 해야 되니까 배는 이틀이나 사흘 정도 뒤에 출발할 거야. 너도 이만 여관 방 빼고 그동안 여기서 지내거라.”

“그래도 될까요?”

“그럼. 방 하나 내주는 게 뭐 문제겠니.”

“감사합니다!”


제프가 서류를 정리하며 덧붙였다.


“그동안은 사고 치지 말고. 이번에 빈민가 일 때문에 시장님이 단단히 마음먹으신 모양이야. 잘못했다가 싸움에 휩쓸릴 지도 모르니 빈민가엔 접근하지 마라.”

“그럴게요.”


소탕에 한손을 거들고 싶었지만, 배 출발일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모험이 좋은 사도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5 45화 NEW 12시간 전 105 6 13쪽
44 44화 +1 24.09.17 204 10 13쪽
43 43화 +2 24.09.16 263 13 12쪽
42 42화 24.09.15 319 13 12쪽
41 41화 +4 24.09.15 330 16 11쪽
40 40화 24.09.14 386 14 13쪽
39 39화 24.09.13 424 16 13쪽
38 38화 24.09.12 491 21 12쪽
37 37화 +1 24.09.11 545 24 14쪽
36 36화 +2 24.09.10 622 34 11쪽
35 35화 +1 24.09.09 688 27 12쪽
34 34화 +3 24.09.08 721 36 13쪽
33 33화 +1 24.09.07 718 35 12쪽
32 32화 24.09.06 739 31 13쪽
31 31화 +1 24.09.05 832 29 12쪽
30 30화 +1 24.09.04 848 29 11쪽
» 29화 +1 24.09.03 872 32 11쪽
28 28화 +1 24.09.02 879 29 12쪽
27 27화 +1 24.09.01 882 34 12쪽
26 26화 +1 24.08.31 892 33 12쪽
25 25화 +2 24.08.30 904 35 12쪽
24 24화 +2 24.08.29 927 40 12쪽
23 23화 +1 24.08.28 927 35 13쪽
22 22화 +2 24.08.27 930 40 13쪽
21 21화 +4 24.08.26 977 40 12쪽
20 20화 +2 24.08.25 969 41 13쪽
19 19화 +2 24.08.24 984 39 12쪽
18 18화 +1 24.08.23 1,013 41 13쪽
17 17화 +1 24.08.22 1,045 38 12쪽
16 16화 +2 24.08.21 1,070 43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