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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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작품등록일 :
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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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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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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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2화

DUMMY

인어들에게 해룡이란 주신 다음가는 존재다.

세상의 조율자이자 인어족을 지키는 수호자의 권위는 그 어떤 이도 쉬이 범접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손님을 감히 해하려 들다니.


아무리 자식을 잃어서 제정신이 아니라고는 하나, 죄는 죄. 해룡의 권위를 모욕한 죄인을 향해 다룰마의 창이 번쩍 올라갔다.


그때 마빈이 다룰마의 팔을 슬쩍 잡았다.


“아저씨 잠시만요.”

“왜?”

“한번만 봐 주실 수 있나요?”

“안 돼. 이러한 잘못은 엄격히 다뤄야 한다. 용의 권위가 걸린 일이야. 함부로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는 만신창이가 된 마빈의 몰골을 지적했다.


“그리고 네 모습을 한번 봐라. 옷도 다 베였고 이곳에 자욱한 피 냄새도 온통 네 것인데 화도 안 나냐?”


빠른 회복으로 인해 상처는 다 나았지만 팔다리 부위의 옷가지가 너덜거리고 장비도 걸레짝이 되었다.


그럼에도 마빈은 뭐가 문제냐는 듯 말했다.


“제가 이겼으니까 상관없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는데.

다룰마의 말문이 막혔다. 생사여탈권이 승자에게 있단 건 불문율이니 말이다.


“목숨보다는 다른 걸로 죗값을 치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태연한 모습으로 그리 말하는 마빈을 보는 다룰마의 눈이 가늘어지며 위아래를 찬찬히 훑었다.


이내 그는 눈을 떼고 세 전사를 노려보았다.


“이 녀석의 자비에 감사해라. 포박해.”


경비들이 다가가 셋의 팔다리를 해초 줄기를 꼬아 만든 밧줄로 묶었다.


“앗. 류티 오빠분 안녕하세요.”

“......”


경비 무리에 섞여 있던 다크루먼이 멋쩍은 표정으로 못 들은 척 했다.


묶인 전사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왜 우리를 살려주는 거지.”

“이해하니까요.”

“무엇을?”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요. 그 어떤 이성으로도 참기 힘들었겠죠.”


세 인어들의 눈이 흔들렸다.


그냥 말로만 위로하는 게 아니었다. 마빈의 흔들리지 않는 푸른 눈이 정말로 그러한 광경을 여러 번 봤다고 증명하고 있었다.


요양병원에 누워 있을 적, 많은 죽음을 보고 들었다.


어쩌다가 격한 통곡이 들리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임종을 앞둔 노인이나 시한부의 젊은 환자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걸 전해듣곤 했다.


워낙 많이 듣다 보니 그 둘의 차이점도 알았다.


나이든 부모와 작별한 자식의 울음은 늪지와 같이 깊게 가라앉는 느낌이라면,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울음은 화산에 비견될 만했다.


“성경에서 주신님이 자비를 베풀라고도 했잖아요. 다음부터 그러지만 않겠다고 하고 죗값만 치르면 저는 용서할 수 있어요. 어찌되었건 살아야 실수를 속죄할 기회가 오지 않겠어요?”


살아야 기회가 있으며 죽음은 답이 아니다.


카트라그에서 시신을 옮기는 일을 돕다가 장의사에게 들은 말이었다. 그때 옮기던 시신은 친지를 잃은 슬픔에 자살한 이였다.


“......”


세 전사의 모습 위에 겹쳐 보였던 피눈물을 흘리는 환영이 점차 맑아지며 투명한 눈물로 대체되었다.


그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순순히 압송되었다.


마빈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부디 저들이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이성을 되찾길 바랐다.


다룰마가 씩 웃으면서 마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력 각성했지?”

“어떻게 아셨어요?”

“이타카니아 님의 사자가 되면서 용의 눈을 얻었거든.”


지금 그의 눈에는 마빈의 주위를 은은하게 맴돌거나 흡수되는 마력의 흐름이 보인다고 했다. 마력을 각성한 이의 특징이다.


“그래서 네 말도 있고, 즉결처분은 관뒀다.”


갓 깨달음을 얻은 이의 심상은 막 알에서 깨어난 것처럼 잠시 외부의 영향에 유약해진다.


더구나 마빈은 경험을 빠짐없이 축적하는 독특한 사람. 굳이 눈앞에서 피를 볼 필요는 없다 판단해 마빈의 결정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정말로 용서할 수 있겠니?”

“덕분에 마력도 각성했으니까 퉁치죠 뭐.”

“이 물러터진 녀석. 칼 들이댄 사람을 그렇게 휙 봐줄 생각이 들어?”

“하하. 좋은 게 좋은 거죠 뭐.”


마빈은 그냥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녀석.’


다룰마는 이번 대의 사도가 냉소보다 자비를 우선시한단 것이 흡족했다. 아무리 험한 세상이라 한들, 피 맛이란 건 멀리할수록 좋으니.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다룰마는 마빈이 좋아할 소식을 전해주었다.


“좋은 소식 하나 알려줄까? 유물 대여가 허용되었어. 이제 바닷속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을 거야.”

“정말요!?”


비명처럼 쫙 음성이 높아졌다. 잠시 벗어놓았던 모험을 부르짖는 소년의 일면이 도로 덧씌워졌다.


마빈은 다룰마의 옆구리에 답삭 달라붙었다.


“얼른 가요 얼른!”

“알았다 알았어. 밀지 마.”


한껏 들뜬 마빈은 물을 휘저으며 어서 궁전으로 가자고 다룰마를 보챘다.


오늘은 얻는 게 많은 날이었다.




***




인어 여왕 궁전 깊숙한 곳에는 인어들의 보물이 한데 모인 수장고가 있다.


그 한가운데에 거치된 갑옷 한 벌.


흉갑, 정강이 보호대, 장화.


흉갑은 해저의 어마어마한 수압을 견디게 해주는 기능, 정강이 보호대는 다리를 움직이지 않아도 자유로이 물속을 유영할 수 있도록, 장화는 물을 땅처럼 딛을 수 있도록 해준다.


참으로 아이템 효과 같단 감상도 잠시.


“인간한테 물속 관광시켜주는 용도의 물건은 다 파기했다고 했죠? 이건 왜 남아 있나요?”

“그야, 이건 옛날에 인어족 사도께서 썼던 물건이거든.”


먼 옛날. 당시의 사도가 임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악적들과 싸우느라 온갖 저주에 피폐해져 있었다.


근육은 비쩍 말라 뼈가 보였으며 곳곳이 말라죽은 해면처럼 부스러져 물을 박차 수영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둘러보고 싶구나.


생의 끝을 바라보는 사도의 마지막 소원.


세상을 구한 그의 염원을 이뤄주기 위해 당대의 인어 장인들이 총동원되어 위대한 영웅의 삶의 끝을 장식할 무구가 만들어졌다.


세상을 한 차례 구한 영웅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아무리 몸이 허약한 이라도 물속에서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주는 신비한 마법이 담긴 물건.


마빈은 그런 무구를 엄숙하게 받아들었다.


위대한 사도 중 하나면서 선대의 얼이 담긴 유물을 가벼운 태도로 받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으니.


“조심히 쓰고 오겠습니다.”


진지한 표정에 다룰마는 ‘같은 사람 맞나?’하는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으흐흐!”


유물을 차려입고 궁전 밖으로 나가자마자 실없는 웃음을 헤벌쭉 흘리는 마빈을 본 다룰마는 그럼 그렇지 하고 피식 웃어버렸다.


“엇, 아차차차.”


마빈은 여왕에게서 전해들은 유물의 기능 중 하나인, 물속을 땅처럼 거닐 수 있는 장화의 능력을 발동했다가 휘청거렸다.


“이거 적응하려면 좀 걸리겠네요.”


약 한 시간 뒤.


“이야호!”


시간이 걸리겠단 말이 무색하게도, 인어들은 돌고래처럼 휘리릭 곡예를 부려가며 물속을 인어 못지않게 유영하는 마빈을 볼 수 있었다.


끼루룩 끼루룩!


그 곁에는 자유로이 헤엄치던 돌고래들이 덩달아 붙어 있었다.


“돌고래가 저렇게 많이 몰리다니.”

“정말로 나쁜 인간은 아닌가 봐.”


수많은 시선을 받으며, 마빈은 높다란 소라껍질 형태의 궁전 주위를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상승했다.


어느새 반짝거리는 해저 빗해파리 떼가 마빈의 곁에 몰려 아름다운 빛의 곡예가 펼쳐졌다.


젊은 인어들은 처음 보는 대규모의 빛의 군무에 감탄을, 나이든 인어들은 해룡의 손님이 펼치는 모습에 아름답던 과거를 추억할 수 있었다.


저 광경은 과거 인어 왕국이 지상에 있었을 적, 물속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펼치던 장면과 흡사했으니.


‘역시 배우는 것 하나는 빠르구나.’


다룰마도 다른 인어들처럼 경탄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의 관점은 다소 달랐다.


그가 가진 용의 눈은 해저생물이 발하는 무지갯빛 대신, 마력과 하나가 된 듯한 마빈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어린 사도의 몸을 들락거리는 복잡한 마력의 흐름이 유물에 부여된 마법에도 영향을 미쳐 성능을 증대시키고 있었다.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라 했었나.’


마력을 쓰는 방식은 마력을 각성하는 순간 떠오른 심상에 큰 영향을 받는다.


아무리 남의 것을 뺏지 않으려는 이도 굶어 죽을 위기가 되면 머릿속이 흐려지기 마련이며, 목숨이 경각에 달리면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사람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여러 명가의 마력 수련법이 잔잔한 수면처럼 마음을 잘 다스리는 데 중점을 두고 되도록 평온한 곳에서 마력 각성을 하라 강조하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마빈의 각성은 제법 신기한 사례였다. 살기가 넘나드는 험한 전투 상황에서 평화로운 장면을 먼저 떠올릴 줄이야.


‘그러고 보니 그분도 평화를 추구하셨지.’


저 유물의 전 주인은 물 밖의 일임에도 사도로서 좌시할 수 없다며 기꺼이 육지로 나갔다.


‘그분도 흡족해하시겠어.’


인어는 풍장처럼 생전에 아끼던 물품과 함께 시신을 물속에 내버려두고 후에 물건과 유골을 수습하는 식으로 장례를 치른다.


시신은 사라져도 물건에 죽은 자의 영이 일부 깃들어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는 믿음.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마빈이 입고 있는 유물이 뭔가 더 광택이 도는 것 같았다.




***




“기분이 어떠냐?”

“심장이 터질 거 같아요.”


마법 관문을 앞에 두고 마빈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갈 곳은 바다 한복판이라 인간의 접근이 없고 얕은 대륙붕 지역이라 대형 마수도 출몰하지 않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이었다.


인어들은 그런 곳에서 채취를 하며 해저 도시에 자원을 공급한다.


“그렇게 평화로운 곳이면 왜 거기로 도시를 안 옮기나요?”

“말하자면 길어.”

“저 긴 이야기 좋아해요.”


다룰마가 피식 웃었다.


“도시를 옮기려면 자재랑 인력이 많이 필요하잖니.”


그런데 자재를 모으는 건 마수와 인간 때문에 위험한 판국이고, 안 그래도 인구도 줄은 상황에서 남은 이들을 더 혹사시킬 순 없는 노릇.


“그리고 얕은 곳에도 마수가 아예 없는 건 아니거든. 가끔 세력 싸움에 패배한 작은 놈들이 흘러들어오기도 해서 말이야. 싸울 인력도 변변찮고, 해룡께서도 골골대고 계시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다룰마가 씁쓸한 기색으로 말했다. 누군들 이 컴컴한 곳에서 나가고 싶지 않겠는가.


사실 마빈에게 설명한 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 일’만 없었다면 사정은 훨씬 나았을 텐데......


“무거운 얘기는 이쯤 하고, 이만 가볼까? 네가 많은 걸 눈에 담고 강해지는 게 우리를 도와주는 거니까.”

“네! 열심히 봐드리죠!”


마법 관문을 넘자, 확연히 따뜻해진 물이 제일 먼저 살갗을 훑고 지나갔다.


얕고 따뜻한 열대 바다의 흐름을 기분 좋게 느낀 마빈은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을 마주했다.


어떤 바다 생물이 내뿜은 공기방울이 눈앞을 스쳐갔다.


그 너머, 비취빛을 띠는 바닷물 아래로 온갖 색색의 산호와 해초가 넘실거리고 그 사이를 누비는 다양한 어류가 가득한 생태계가 펼쳐졌다.


말 그대로 그림 같은 광경이었다.


“뭐 하니? 어서 가보지 않고.”

“옙!”


높은 회복력으로 인해 지치지 않는 체력.

사방에 깔린 온갖 새로운 것들.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장비까지!


마빈은 기대에 부푼 가슴을 안고 눈 내리는 걸 처음 본 강아지처럼 이곳저곳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바다가 마빈을 향해 손짓했다.

이리 오라고. 나를 경험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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