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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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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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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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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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DUMMY

흰 휘장을 걸친 기나긴 마차의 행렬이 카트라그의 북문을 넘었다.


“환영합니다 형제님들.”

“고생하십니다 사제님.”


제국의 관료들은 시청으로 향했고 교단에서 파견된 이들은 성당에 머물렀다.


그들은 여기 머물며 보급을 하고 정보를 수집하다가 남부를 순회하며 현황조사와 재건을 하게 되리라.


목적이 다른 한 명은 빼고.


“안녕하세요 메이헌 사제님.”

“아. 성녀님! 대재앙 종결 선언 이후 오랜만에 뵙습니다.”

“성녀가 아니라 서기관. 신성력도 못 쓰는데 무슨 성녀에요 제가.”

“하하. 서기관 님의 업적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성녀라 부를 겁니다.”


벽난로의 장작 타는 소리와 따뜻한 약초 차 향이 방 안을 채웠다.


“남부는 오랜만에 오시죠?”

“네. 대재앙 때 악마 여럿 잡아족치러 온 이후로는 처음이네요.”

“거참 말투는 여전히 거치시네요.”

“오래 살다 보면 부드러워지는 사람 따로 퉁명스러워지는 사람 따로라던데, 저는 거칠게 되는 쪽인가 봐요.”


교황청 상황은 어떠냐, 이곳 상황은 어떠냐 하는 신변잡기를 늘어놓던 둘은 말할 거리가 떨어지자 잠잠해졌다.


차를 한 모금씩 음미하는 짧은 시간 이후. 서기관은 안경을 슬쩍 내리며 지나가듯 말했다.


“어린 새가 새장을 넘어 날갯짓했다.”


메이헌은 볼품없는 회색 사제복을 입은 그녀를 흘끔 보았다. 그렇게 서로를 빤히 쳐다보다가.


“푸핫. 아. 역시 이런 화법은 적응이 안 돼요.”


서기관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반면 메이헌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 그대로였다.


“......역시 대주교 후보셨던 분이네요. 이 상황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아 하다니.”


서기관은 실내에서도 등에 동여매고 있던 깃발 아래에 달린 종을 흔들었다. 아무리 움직여도 소리가 나지 않던 것이 딸그랑하고 맑은 음을 냈다.


메이헌은 그 소리로부터 발생한 신성한 이적이 방 전체를 감싸는 걸 파악하고 난 뒤에야 미소지을 수 있었다.


“새장이라. 성녀님께서도 신기한 꿈이라도 꾸신 겁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메이헌 사제님도 특별한 경험을 한 모양이네요?”

“그럼요. 성녀님께서 하신 말 자체가 제가 겪은 이적의 내용이니까요.”


새장과 새. 꿈을 통해 주신의 뜻을 이행한 메이헌이 빙그레 웃었다.


“교단 사람들한테 방금 상황은 전해들었어요. 여기 있던 악마를 퇴치했다고요?”

“예. 일단 제가 한 걸로 포장은 했습니다만, 언젠가는 진실을 밝혀야지요.”


그렇게 말하는 메이헌의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다. 성당을 멀리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원흉이 사라졌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메이헌은 빈민가에 오가는 시간을 늘릴 수 있었다. 예전에는 병마에 고통 받는 빈민이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빈민가와의 싸움으로 다친 이들이 목적이었다.


이번에 이렇게 병력도 지원이 되었으니, 카트라그의 평안은 더 빨리 찾아오리라.


“이제 슬슬 황도로 복귀하는 게 어때요?”

“황도요?”

“네. 카트라그는 이제 남부 재건의 중심지가 되겠죠. 성직자들도 여길 중심으로 활동하게 될 거고요. 지금껏 카트라그에서 열일 하셨으니까 이제 다른 방향의 일을 모색해 보는 게 어때요?”

“다른 방향의 일이라......”


메이헌이 천장을 바라보며 한탄하듯 말했다.


대재앙 종료 선언 직후, 그는 전장에서 복귀해 카트라그 근방에 있던 고향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의 고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는 피난민이 되어 카트라그로 흘러든 고향 사람들을 보살피고 슬픔도 추스를 겸, 주교 직위도 내려두고 봉인지기를 자처하여 줄곧 이곳에 머물러 왔다.


‘많은 일이 있었지.’


그는 카트라그에서 보내는 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여러 가지 일이 스쳐 지나가고, 회상의 끄트머리는 당연히 최근 있었던 큰 사건을 향해 날아갔다.


‘마빈.’


열다섯 살에 흑마법사와 악마를 퇴치하고, 주신께서 살펴보시는 대단한 아이. 주머니 속의 송곳은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시 두각을 드러내리라.


그러나 세상은 아직도 어둠으로 가득 차 있으니, 갓 꽃을 피우기 시작한 자그마한 꽃망울을 화분에 옮기려 들거나 부스러뜨리려는 이들은 수두룩할 터.


‘다시 대주교 직위에 도전해야겠어.’


새장 안에 갇히기 싫어하는 활달한 아이를 돕기 위해서라도 권력에 다시 복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야지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써봐야겠습니다.”




***




한편. 카트라그에서 출발한 배는 항구도시의 초입으로 접어들었다.


“와......”


마빈이 입을 헤 벌렸다.


눈동자가 세상을 담을 듯이 크게 확장되고 난간을 잡은 손에는 힘이 꽉 들어갔다.


세계여행을 하겠단 꿈을 위해 돈을 모으느라 직장과 집만 반복하던 전생의 삶에는 바다나 계곡으로 피서 한 번 못 가본 적 없었다.


매체에 나오는 시원해 보이는 장소에 욕망이 들끓는 것을 ‘나중에 세계여행 하면서 한꺼번에 보자’하고 참으면서 얼마나 몸이 달아올랐었는지.


그 갈망하던 곳에 드디어 도착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푸른 물.

비릿한 냄새와 철썩대는 파도소리.

인간의 세 감각을 짜릿하게 자극하는 장소가 저 강 너머 있었다.


넓은 강폭이 급격히 확장되며 저 멀리 하늘 밑까지 푸른 면이 펼쳐졌다.


파도가 꿈틀거리는 모습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파란 털가죽처럼 보였고 그 바람에 실려 오는 해풍의 냄새는 벌써 바다 한복판에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을 선사했다.


“어이 촌놈. 처음 보는 바다는 어떠냐?”


제프가 지팡이를 짚으며 마빈이 있는 선수로 다가왔다. 난간에 가득 앉은 갈매기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었다.


마빈은 잠시 입을 뻐끔거리다가 팔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정- 마알- 대단- 해요!!!”


난간의 갈매기들이 놀라 끼룩대며 흩어졌다.


제프는 아낌없이 제 감정을 표현하는 마빈에게 픽 웃어주고는 오래 전에 지겹도록 봤던 저 먼 수평선을 응시했다.


“바다라......”


노인의 주름진 눈이 바다를 떠나 그 주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항구도시를 향해 복잡한 감정을 머금었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다시 왔구나. 정말로 바다에 운명이 묶인 건지.’


바닷사람들에겐 이런 미신이 있다. 바닷가의 인간은 인어의 자손이라 끝내는 바다로 돌아와 짠물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그럴 리가.’


제프는 그 미신을 믿지 않았다.

정말로 바다 사람들이 인어와 친척이라면, 인어에게 그토록 잔인했을 리 없을 테니까.


‘그리운 시절이었지.’


인어족.


출항하는 배에 붙어 무사항해를 위한 노래를 불러주고, 어부와 함께 고기잡이를 하며, 가끔은 바다 괴물과 같이 싸워주기도 하는 등 이웃사촌 사이였던 바다의 동반자.


이루어질 수 없는 인어와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를 부르는 음유시인들이 넘치고, 바닷가에선 사람이 많은 모습을 묘사하는 표현 중에 피부 반 비늘 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친숙한 종족이었다.


그러나 희대의 암군인 전대 황제가 바다에 손을 뻗으며 균형은 무너져 내렸다.


-인어 어획을 허가한다.


이전까지는 그 누구도 인어를 잡아 판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목 아래로 비늘이 덮여 있고 귀 대신 지느러미가 자리 잡고 있단 걸 제외하면 사람과 똑같이 생겼고 말까지 통하며 서로 돕고 사는 그들을 뭐하러 잡는단 말인가?


그러나 인어 왕국이 모종의 이유로 멸망하고, 황제가 인어 어획 칙령을 선포하는 것도 모자라 잡은 인어를 직접 거금에 사들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정신적인 굴레는 벗겨지고 말았다.


음습한 욕망을 지닌 이들이 인어 포획에 뛰어들었다. 배신을 상상하지도 못했던 인어들은 줄줄이 그물에 잡힌 물고기 신세가 되었다.


이곳 항구도시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제프를 비롯한 이들이 항의했지만, 이미 지엄한 인물의 허가라는 명분을 등에 업은 욕심쟁이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 결과는 바닷사람 모두가 짊어져야 했다.


인어가 자취를 감춘 뒤, 바다엔 괴물이 들끓기 시작해 작금의 인류는 강제적인 해금령이 떨어진 신세가 되었으므로.


제프는 이를 갈았다.


‘그 미친놈들만 아니었다면......’


그 빌어먹을 새끼들만 아니었다면 바다가 위험해질 이유도, 자식 일가가 탄 배가 바다 괴물에게 습격당해 죽을 이유도 없었을 텐데.


아무튼 멀리까지 무역을 하며 번성하던 항구는 이웃을 팔아먹은 대가로 영락했다.


도시 곳곳에는 주인이 떠나 관리가 전혀 안 돼 식물에 뒤덮이거나 반쯤 무너진 저택이 즐비했다.


“할아버지. 짐 내릴 거 있으면 도와주고 가볼게요.”

“응? 아니야 됐어. 떠나는 애한테 일을 시키는 사람이 어딨냐.”

“그래도 손이 남는데.”

“어허 괜찮대두. 그리고 뭐 옮길 것도 없어.”


그 황제가 이 녀석처럼 착한 인물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권력을 가진 자가 착할 수는 없으니까 불가능하려나.


제프는 다시 수평선을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쫓겨나기 전까진 인어들 여럿 구해줬었는데. 그 애들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




제프와 헤어진 마빈은 항구도시를 지나쳐 바로 바닷가로 향했다.


TV에서만 봐왔던 하얀 백사장이 있었다.


팍팍거리는 모래 박차는 소리와 함께 마빈은 해안을 내달렸다.


입은 쩍 벌리고 있었지만 마빈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음속이 뻥 뚫리는 이 감상을 바람에 싣기에는 목소리라는 수단은 너무나도 모자랐으니까.


저 푸른 물의 위를 달려 나가다 보면 하늘의 저편에 닿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바다를 낀 채, 마빈은 모래 위를 정신없이 질주했다.


어느새 항구도시는 저 멀리 새끼손톱보다도 작게 보였다.


소년은 사박거리는 모래와 파도 소리에 취해 계속 아래로, 아래로, 해안을 따라 달음박질쳤다.


얼마나 뛰었을까.


등이 땀으로 축축해졌을 무렵이 되자 배낭을 내던지곤 백사장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양팔을 펼치고 눈을 감자, 그동안 강렬한 시각에 가려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쏴아아 몰려들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따스한 햇살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이 끝날 것을 예고했고, 선선한 바람을 타고 파도의 속삭임이 귓가에서 킥킥 웃어댔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기분 좋은 환경에 취해 살짝 낮잠에 빠졌던 건지, 마빈이 눈을 떴을 땐 낮의 하늘과는 정반대의 색깔이 온 세상을 덧칠하고 있었다.


‘와......’


등줄기와 어깨를 타고 전율이 흘렀다.


저 멀리 물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는 붉은 구체가 마빈의 푸른 눈동자를 말갛게 물들였다.


겨울 한밤중에 피워 올린 벽난로 불빛 같은 처량한 붉은색이 하늘에 나무껍질처럼 촘촘히 낀 구름을 물들였다.


점차 바람이 쌀쌀해지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마빈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하늘을 붉게 덧칠하는 둥근 팔레트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의 심상에 자그마한 새싹이 돋아났다. 새싹은 무럭무럭 자라나 한 뼘 굵기의 줄기를 가진 작은 나무가 되었다.


찰랑이는 파란 잎사귀는 바다를 가위로 하나하나 잘라 매달아놓은 것 같았고, 가지 끝에 매달린 과일은 수평선 아래로 얼굴을 숨기는 태양을 닮았다.


가지를 뒤덮은 푸른 나무껍질은 노을을 받아 검푸른색과 주홍색이 뒤섞인 부드러운 구름 같았으며, 대지의 표면에 살짝 드러난 구불구불한 뿌리는 일렁이는 파도와 흡사했다.


그러한 나뭇가지 사이를 서글픈 냉기를 머금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갈색의 대지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라난 나무 한 그루.


참으로 조촐했지만 대지는 드넓고 하늘은 높으니. 앞으로 채워갈 것은 많고도 많으리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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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24.09.13 424 16 13쪽
38 38화 24.09.12 491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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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화 +2 24.09.10 622 34 11쪽
» 35화 +1 24.09.09 688 27 12쪽
34 34화 +3 24.09.08 721 36 13쪽
33 33화 +1 24.09.07 718 35 12쪽
32 32화 24.09.06 739 31 13쪽
31 31화 +1 24.09.05 832 29 12쪽
30 30화 +1 24.09.04 848 29 11쪽
29 29화 +1 24.09.03 871 32 11쪽
28 28화 +1 24.09.02 879 29 12쪽
27 27화 +1 24.09.01 882 3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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