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Grawingen
작품등록일 :
2024.08.08 14:31
최근연재일 :
2024.09.18 19:2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43,038
추천수 :
1,664
글자수 :
249,485

작성
24.08.23 21:20
조회
1,013
추천
41
글자
13쪽

18화

DUMMY

스스로가 지정한 주말에 성당을 방문한 마빈은 웬일로 굳게 닫힌 성당 문짝과 그 주변을 엄중히 지키는 경비대를 마주해야 했다.


“무슨 일이에요?”

“사제님께서 성당에 누구도 출입하지 말라 하셨거든. 지금 성당에 안 계셔. 무슨 조사를 한다고 며칠 비운다고 했었나.”

“아아. 그래요? 그럼 수고하세요!”

“그래.”


마빈은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번 휴일은 일부러 오전에 할 일을 몰아서 끝내고 저녁 때 왔는데 허탕이라니.


‘뭐 하지?’


마빈은 뒷목에 두 손을 깍지 끼고는 심심한 표정을 지은 채 터덜터덜 걸었다. 탐구심 가득한 소년에겐 할 일이 없는 것이야말로 세상 지겨운 수업과 같았다.


그냥 오늘은 여관 가서 일찍 쉴까?


‘아니야. 기껏 여관에서 근력운동도 다 하고 왔는데. 다시 들어가는 건 뭔가 시간낭비 같아.’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 하듯, 일단 밖으로 발을 뗀 이상 뭐라도 하고 가야 된다는 강박이 마빈의 걸음을 느리게 만들었다.


“흠......”


언덕을 천천히 내려가던 마빈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머물렀다.


길 하나를 마주보고 극명하게 갈리는 두 지역.


한쪽은 마빈이 평소에 다니는 벽돌집들이 가득한 일반적인 거리였고.

한쪽은 회색과 갈색, 검은색이 얼룩덜룩하게 기워진 천조각 같은 미로였다.


백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조직들이 저마다의 이권을 빼앗기 위해 다퉈대고, 코앞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온갖 죄악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이들이 들어찬 곳.


너무나도 혼란스럽고 뒷수습도 힘들어 도시 경비대조차 반쯤 방임하고 있는 처지인 장소.


카트라그의 초거대 빈민가였다.

도시의 한 지역을 차지하고도 모자라, 성벽 밖까지 뻗어 나가 도시를 반 정도 감싸고 있는 음침한 곳.


온 도시를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던 마빈도 이곳만큼은 발을 들이지 않고 있었다.


두려워서? 아니었다.


-저긴 나중에 가야지.


무릇 음지는 질척이고 귀찮은 일이 잔뜩 발생할 게 불 보듯 훤한 곳이다. 그러니 양지에서 즐길 거 다 즐긴 뒤에 가보자 해서.


‘근데, 어지간한 건 다 봤긴 했지?’


온 도시를 누비는 바쁜 생활을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도시 구경이 단조로워졌다.


짐 옮기러 가는 가게는 다 한 번씩은 방문해본 가게고.

하역 작업도 똑같은 사람 보면서 똑같은 상단의 깃발이 걸린 상선에서 늘 비슷한 양만큼 내리고.

거리 구경도 질릴 대로 해 어디 집의 벽돌이 무슨 모양인지도 기억할 지경이었다.


못 가본 곳은 도시의 시장이 사는 저택 내부뿐인데, 귀족의 거처가 구경하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일 리가.


겨울이라는 계절도 컨텐츠 고갈에 한몫했다.


사람들이 밖에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 추위와 눈 때문에 산을 누비기도 힘들었으며, 그렇다고 이 험한 시대에 축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슬슬 새로운 볼거리에 목이 말랐다.

아슬아슬하면서 위험한 영역에 발을 들인다는 독주조차 벌컥벌컥 들이킬 수 있을 정도로.


‘이런 걸 도파민에 미친놈이라고 하나?’


솔직히 맹수를 보고서도 긴장보단 킥킥대는 몸이 정상은 아니라고 자각하고 있긴 했다.


‘시간도 남겠다, 살짝 구경이라도 하고 올까?’


늘 차고 다니는 허리춤의 검을 고쳐 매며, 마빈은 욕망을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과연 저 어두컴컴한 뒷골목에서 무슨 모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




빈민가는 날이 어두워지면 더 활기차게 변한다.


세상을 굽어보는 주신의 눈이 없는 시간이야말로 범죄를 은닉하기에 최적이니까.


하물며 경비대마저 포기하고 밖으로 나오지만 못하게 막고 있는 실정인지라, 누군가의 눈물과 노력을 뜯어먹고 사는 이들이 창궐할 수밖에.


남의 것을 갈취하고자 하는 악의를 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주민들은 밤이 되면 집 안에 틀어박힌다.


하지만 바람과 물이 새는 비루한 껍데기조차 뜯어내고 속살을 집어삼키려드는 이들은 있었다.


“응애! 응애!”

“아아악! 안 돼!”

“이거 안 놔? 뒈지고 싶어?”


조용해야 할 밤의 고요를 날카로운 비명과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깨뜨렸다.


그러나 구원을 바라는 요청은 그저 공허하게 흩어지기만 했다. 이곳에서 남을 돕는다는 것은 지극히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는 사치스런 행위였으므로.


“내기할래? 몇 분 만에 지쳐 떨어지나.”

“난 3분.”

“난 5분.”


이 일을 벌이고 있는 남자들도 그걸 알기에 일종의 유흥처럼 비극을 감상하고 있었다. 자식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여인이 과연 얼마 만에 굴복할까?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선행에 값을 지불하는 것을 개의치 않아하는 이가 있으리라고는.




***




어두침침한 빈민가 골목길 앞에 멈춘 발.


쌀쌀한 겨울바람에 실려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여인의 비명과 아기의 울음.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듣고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 조합이었다.


골목길을 바라보는 마빈의 입매가 하늘을 향해 스르륵 올라갔다.


‘무슨 일일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기가 울음을 세 번 터뜨리기도 전에 이미 마빈의 다리는 골목길 안으로 몸을 이끌고 있었다.


전생에, 봉사활동하러 온 사람이 e북 리더기로 틀어주고 갔던 한 책의 문구가 문득 떠올랐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분명 선행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를 돕는 건 멍청한 짓이라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그들이 모두 상종할 수 없는 악인이라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선행에 따르는 위험부담이 너무나 커져버린 사회가 되었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니까.


그들이라고 어찌 사람으로서 사회의 근간을 이룬 협동심과 측은지심이 없을까.


그저 기껏 선행을 했더니 악의로 보답 받을 수도 있을 누군가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픈 연약한 심성을 가졌기에, 그리 반응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건 또 다른 방향의 측은지심이라 해도 좋으리라.>


책의 내용대로, 그는 뉴스에서 선의를 악의로 보답 받았단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해본 바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자극적이기에 자주 방송에 노출되는 것일 뿐, 세상은 아직도 선의로 차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당장 그가 있었던 보육원이 누군가의 기부로 운영되는 곳이었으며, 루게릭 병이 심화된 이후 입원한 요양병원도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사적 복지서비스였다.


그곳을 드나드는 종교인들의 대가 없는 봉사활동도 숱하게 경험했고, 가끔 뉴스에 나오는 훈훈한 선의도 여럿 봤었다.


그런 걸 보고 들을 때마다 부러웠다.


소액기부를 하는 것도.

적극 몸을 움직여 남을 돕는 것도.

자본을 들여 남을 돕는 시설을 짓는 것도.


다리 없이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며 유일한 꿈인 여행을 떠나기 위해 쥐꼬리만한 돈을 쪼개 저축해야만 했던 그에게 선행이라는 건 쉽사리 이루기 힘든 사치였다. 루게릭 병 진단을 받은 이후에는 영영 불가능해졌고.


대신 그 때마다 상상을 하곤 했다.


만약 내가 저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움직였을까? 나는 일이 끝난 후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며 멋쩍게 웃는 걸로 제 갈 길을 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게 큰돈이 주어진다면 아까워하지 않고 생판 모르는 남에게 베풀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머릿속에서만 굴려대던 한낱 망상이었던 것을 현실로 이룰 때가 왔다.


단순히 힘겨워하는 사람들의 짐을 들어주거나 일을 잠시 맡아주는 등의 소소한 수준을 넘어,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위기를 겪는 이를 돕는 ‘큰 선행’을!


마빈의 입꼬리가 연신 씰룩였다.


위기에 빠진 사람 앞에 짜잔 하고 등장하는, 멋진 장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니!


“응애! 응애!”


낡아빠진 판잣집 앞.


울고 있는 아기를 품에 안은 남자와, 그 다리를 움켜잡은 젊은 여인, 멍하니 주저앉은 노파, 그리고 주위를 포위한 남자 다섯이 있었다.


“아이씨, 형님, 그냥 패면 안 돼요?”

“안 돼. 새꺄. 내기했어. 안 때리고 애새끼 뺏어오기잖아. 최대한 다리 흔들어 보라고.”

“근데 빨리 수거 해오랬잖아요? 이렇게 시간 끌어도 돼요?”

“우리 말고도 투입된 애들 많으니까 상관없어.”


“야! 애새끼는 더 낳으면 되는데 뭘 그리 아까워해! 애비 없으면 내가 낳게 해줘?”

“크하하하!”


제발 아기를 돌려달라는 어머니의 호소를 가볍게 짓밟는 혐오스런 잡담.


얼음을 얹었다 뗀 것처럼 뒷목이 일순간 싸늘해졌다가 화끈거렸다.


‘인신매매범.’


마빈은 빈민가에 발을 들이진 않았어도 도시의 어둠에 대해서는 자주 들어왔다. 밀수, 밀주 유통, 강도질, 살인, 인신매매, 심지어 식인까지.


“빨리 떼어내 새꺄. 앞으로 다섯 집은 더 돌아야 돼.”

“근데 아기는 왜 가져오래요?”

“몰라. 어디 앵벌이로 키우려나보지.”

“그런 것치고는 걷지도 못하는 어린애만 모으던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아기를 건드려?

그것도 포대기에 싸여 있는 갓난애를?


칼집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며 마빈이 모퉁이를 돌아 나왔다.


“멈춰.”


몸에 전율이 흘렀다.

묘하게 부끄러우면서도 뿌듯한 이 감각이란!


빈민가 내부의 치안을 말해주듯 단검 하나씩은 쥐고 있는 남자들이 마빈을 돌아보았다.


“뭐야 넌?”

“어, 마빈이잖아?”

“그게 누군데?”

“왜 있잖아, 북부인 강도 죽였단 사냥꾼 놈. 저 늑대가죽 보니까 맞네.”


개중 한 명이 마빈을 알아봤다.


“뭐? 그럼 저놈 빈민가 밖의 놈이란 거냐?”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단검을 잡은 손아귀 위로 힘줄이 도드라지고 턱이 경직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같은 빈민가 사람을 팔아치우는 놈들에게 갑자기 ‘다 같은 빈민가 사람’이라는 동질감이 생겨서는 아닐 것이다.


저들은 ‘아기를 납치하는 장면’을 발각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밖으로 새어나가게 하면 안 돼! 당장 죽-”


다른 이들이 형님이라 칭하는 대머리 덩치의 고함은 중간에 뚝 끊겼다.


“흐어, 끄, 에......”


흐릿한 횃불이 전부인 어둑한 골목길.

거길 쭉 가로지르는 붉은 물줄기 하나.

깔끔하게 경동맥이 잘려나간 놈이 쓰러졌다.


“씨, 씨발 죽여!”


4대 1.

하지만 수적 우위도 급이 맞는 상대에게나 통하는 법이다.


“케, 케엑......!”

“으아아악!”


허공에 휘저어지는 단검을 피해 목에 칼날을 꽂는다. 어설프게 막으려는 팔을 가르고 비명을 지르는 입을 향해 칼을 우겨넣는다. 턱이 쪼개지고 심장이 꿰뚫린다. 폐에 구멍이 나 쉭쉭대다가 풀썩 쓰러진다.


군더더기를 최소화한 마빈의 칼질에 네 명이 바닥에 쓰러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음. 검술 도장을 다닌 보람이 있네.’

기사 아저씨하고 대련을 꾸준히 해서 그런지 팔이 더 잘 움직여지는걸.


“괜찮나요?”

“네, 네. 감사합니다.”


여인이 아기를 꼭 안은 채 감사를 표했다. 그 옆에 있던 노파가 마빈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리석은 선택을 했구나.”


오래 산 이의 힘없는 목소리에는 짙은 무기력함이 묻어나왔다.


“이래봤자 바뀌는 건 없어.”


여인이 아이를 붙잡고 발버둥칠 때조차 남의 일이라는 것처럼, 쓰러져 썩어가는 고목처럼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던 노파.


“......”


마빈의 미간에 깊은 계곡이 생겨났다.


노인의 눈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썩어 넘어진 고목이 아니었다. 베어지고 넘어지고 불타기까지 한 새까만 잿가루 덩어리였다.


......그건 루게릭 병이 심해진 뒤로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이 마주했던 눈이기도 했다.


높이 올라갈수록 추락의 아픔은 크다고 했던가.

빈민가에서부터 새로운 모험이 시작될 거라 기대하며 떠오른 마빈의 마음에 묵직한 무게추가 달라붙었다. 그 표면엔 현실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쨍그랑.

어디선가 추락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할머니.”


마빈은 쓰러진 깡패들의 옷으로 칼에 묻은 피를 닦으며 말했다.


“오래 사신 분이라 세상사를 잘 아시네요. 맞아요. 세상은 너무나 커서 한 명의 노력만으로 바뀌진 힘들지요. 근데요.”


대충 피를 닦고 칼집에 집어넣었다.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더라고요.”


다리가 없다는 것보다 더한 불행이 찾아오진 않으리라는 근거 없는 생각이 깨진 이후로, 그의 머릿속 깊숙하게 박힌 생각이었다.


퀴퀴한 빈민가의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까 전에 놈들이 한 대화에서처럼, 빈민가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아기들을 강탈하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를 한층 더 푸르게 빛내며, 마빈은 골목길 깊숙한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모험이 좋은 사도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5 45화 NEW 12시간 전 105 6 13쪽
44 44화 +1 24.09.17 204 10 13쪽
43 43화 +2 24.09.16 263 13 12쪽
42 42화 24.09.15 319 13 12쪽
41 41화 +4 24.09.15 330 16 11쪽
40 40화 24.09.14 386 14 13쪽
39 39화 24.09.13 424 16 13쪽
38 38화 24.09.12 492 21 12쪽
37 37화 +1 24.09.11 545 24 14쪽
36 36화 +2 24.09.10 622 34 11쪽
35 35화 +1 24.09.09 688 27 12쪽
34 34화 +3 24.09.08 721 36 13쪽
33 33화 +1 24.09.07 719 35 12쪽
32 32화 24.09.06 739 31 13쪽
31 31화 +1 24.09.05 832 29 12쪽
30 30화 +1 24.09.04 848 29 11쪽
29 29화 +1 24.09.03 872 32 11쪽
28 28화 +1 24.09.02 879 29 12쪽
27 27화 +1 24.09.01 882 34 12쪽
26 26화 +1 24.08.31 892 33 12쪽
25 25화 +2 24.08.30 904 35 12쪽
24 24화 +2 24.08.29 927 40 12쪽
23 23화 +1 24.08.28 927 35 13쪽
22 22화 +2 24.08.27 930 40 13쪽
21 21화 +4 24.08.26 977 40 12쪽
20 20화 +2 24.08.25 969 41 13쪽
19 19화 +2 24.08.24 984 39 12쪽
» 18화 +1 24.08.23 1,014 41 13쪽
17 17화 +1 24.08.22 1,045 38 12쪽
16 16화 +2 24.08.21 1,070 43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