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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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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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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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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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DUMMY

마빈은 자신과 연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 차례차례 작별인사를 했다.


“갑자기? 아쉽구나. 너만큼 성실한 녀석을 또 언제 볼지 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래. 평안한 여정이 되길 바란다.”


선뜻 베푼 호의로부터 시작된 여관 주인과 악수를 나누고.


“어디 가서 자랑하다 죽지만 말아라. 세상은 험하니까.”

“넵!”

“검술은 꾸준히 수련하고, 뭔가 스쳐 지나가는 생각 같은 거 있으면 절대 놓치지 말고. 알았지? 중요한 건 네 의지다.”


신신당부를 하는 렌델 경과도 인사하고.


“자. 여깄다.”

“감사합니다!”

“험하게 쓰지 마라. 몇 개는 갑자기 떠난대서 급히 마무리한 게 좀 있어. 헐거워진다 싶으면 딴 대장간에 맡겨보거나 새로 사는 게 좋을 거야. 그만큼 값은 깎았으니까 자 거스름. 조심히 다녀라. 세상은 험해.”


대장장이에게서 사냥도구를 비롯한 자잘한 무구를 구입하고.


“아쉽구나. 그동안 네 덕에 실적도 많이 올리고 좋았는데.”

“잘 가라 꼬맹아!”

“심심할 때 다시 도시 들러!”


경비대와도 유쾌하게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어어. 가는 거냐. 그동안 즐거웠다.”

“바빠서 배웅은 못 하겠다. 나중에 도시 들르면 꼭 와라. 그동안 겪은 여행얘기 좀 듣게.”


흑마법사와의 내통 건으로 뒤집어져 어수선한 모험가 조합과 용병 사무소에도 들러서 지인들과 짤막한 인사를 나누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꼬맹이 어디 가서 객사하지나 마라.”


“용병단 함부로 들어가지 말고. 넌 너무 순진해서 뒤통수 맞을라.”


“잘 가요 오빠! 나중에 꼭 다시 들러줘야 돼요?”


“잘 가렴. 나중에 건강한 모습으로 꼭 볼 수 있게 주신님께 기도드릴게.”


“나중에 우리 상단 만나면 내 이름 대. 숙식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고마워요 형. 형 덕분에 빵집에 취직했어요! 이젠 소매치기 안 하고 애들이랑 열심히 일할게요.”


그밖에도 일하면서 안면을 튼 이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고 감사인사를 들으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온 도시를 돌아다니며 조금이라도 교류가 있었던 이들에게 모조리 작별 인사를 마친 마빈은 마지막으로 성당으로 향했다.




***




“사제님 저 왔어요.”

“소식은 들었어요. 떠난다면서요?”

“네.”


메이헌은 마빈을 천천히 살폈다.


덥수룩하지만 나름 말끔하게 정리한 검은 머리칼 밑으로 웃는 상의 얼굴이 평소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어깨에는 마빈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상징이 되어버린 늑대가죽 망토의 머리가 걸쳐져 있고, 망토 밑으로는 새로 구입한 가죽갑옷과 흉갑이 번들거렸다.


허리띠에는 검과 손도끼가 양쪽으로 매여 있었으며, 품 안쪽에는 추가적으로 손도끼 하나가 숨겨진 발톱처럼 있으리라.


등에는 예비 무기를 비롯한 각종 도구와 건량, 피복 등이 작게 압축되어 간편한 행낭에 담겼다.


그러고도 남아 옆으로 비죽비죽 튀어나와 있는 것이, 영락없이 갓 세상에 나온 초짜 여행자의 행색이 따로 없었다.


메이헌은 얕보고 덤비는 놈이 있을까 우려했지만, 그래도 흑마법사에 악마까지 잡은 실력인데 문제없겠지 싶었다.


“자. 성수를 좀 챙겨 놨어요.”


푹신한 솜을 포장재 삼은 성수가 담긴 병이 담긴 주머니를 내주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은 참 별 같은 사람이에요.”


별안간 메이헌이 그렇게 말했다.

마빈은 이유를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반짝거리는 별에 비유했으니 뭐 특출나다 대단하다 그런 거겠지.


마빈은 별이 지상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마냥 아름다운 보석 같은 게 아니란 걸 안다. 핵융합 반응으로 화르륵 불타오르는 불덩이.


하지만 별의 일종인 태양이 자신의 몸을 불살라 지상의 수많은 생명체를 키워낸다는 점에서 본다면, 음,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많은 이를 도와준다는 좋은 말로 해석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보다 여행하는 데 앞서서 몇 가지 얘기해주자면......”


메이헌은 대재앙 때 활동했던 경험을 위주로, 악마나 악마숭배자 및 흑마법사들의 특징이나 대처법 등을 말해주었다. 아무래도 이번에 그쪽과 관련된 큰 일이 있었으니 유독 더 신경을 써주는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빈의 귀에 방 바깥쪽 멀리 예배당의 돌바닥을 걷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계십니까 사제님?”

“아, 들어오세요.”


발소리의 주인은 경비대장 루이스였다.


“여기 있었구나. 한참 찾았다.”

“무슨 일이신가요?”

“뭐긴. 포상도 안 받고 떠날 셈이냐? 네가 때려잡은 흑마법사에다가 시장님도 흑마법에서 구해줬잖니.”

“아 맞다.”


루이스가 큭큭 웃었다.


그런 대단한 일을 벌였음에도 까먹고 있었다니. 모험 자금을 모으겠다고 미친 듯이 일을 해대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거 물욕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사제님, 마빈을 데리고 가도 되겠습니까? 아직 얘기 다 안 끝났으면......”

“아닙니다. 충분히 했어요.”


메이헌이 마빈의 손을 마치 성물을 잡는 것처럼 조심스레 감싸 잡았다.


“앞길에 늘...... 주신의 은총이 있길 바라겠습니다.”


사제는 밖까지 둘을 배웅했다. 그는 언덕 아래로 힘차게 내려가는 마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주신께서 직접 계시를 내려 앞으로의 길을 잡아주신 아이라.’


어린 나이에 흑마법사 둘과 악마까지 잡은 저 아이가 과연 어떤 사람으로 자라날지.


사제의 눈에는 저 흥분을 주체할 수 없어 통통 튀는 발걸음이 한없이 거대하게만 보였다.




***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카트라그입니다.”


흰 갑옷 위로 하얀 서코트를 걸친 성기사가 지도를 확인하곤 말했다. 그 말에 무리를 이끄는 성기사가 지도를 재차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그나마 살아남은 대도시인가?”

“예. 저 밑에 몇 개가 더 있긴 한데 가장 북쪽에 있는 건 여깁니다.”


둘의 뒤로 마차 행렬이 끝없이 늘어져 있었다.


무언가를 가득 실은 마차들의 주변을 호위하는 수많은 병사와 기사들의 장비가 겨울 햇살을 받아 빛났다.


절그럭거리는 소리들 위로 기수들이 치켜세운 깃발들에는 교황청과 제국의 것이 뒤섞여 있었다.


이들은 제국 직할령과 주신 교단의 합동 재건 및 조사대였다.


남부 일대를 쓱 훑으면서 전체적인 실태를 조사하는 동시에 파괴된 곳을 재건하고 성직자도 배치하고 주변의 위험요소도 제거하는 등 여러 목적을 띠었다.


때문에 성직자와 호위대 말고도 여러 직급의 관료들에 인부, 건설 자재 등도 포함되어 있어 이렇게 규모가 컸고, 준비기간도 길었다.


‘이제야 남부에 손을 뻗다니.’


성기사 부대를 이끄는 대장, 벨싱턴은 속으로 한탄했다.


대재앙이 종료되었음을 선언한 지 어언 17년.

아직도 제국 남부는 버려진 상태였다.


스물에 달하는 지옥문이 열린 탓에 남부의 유명 가문들이 모조리 결딴나, 발언력이 약해 재건 요청이 늘 무시되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교단 역시 문젯거리가 한둘이 아닌지라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해왔고.


벨싱턴의 한탄은 그로부터 기인했다.


이번에 꾸려진 이 행렬은 순수한 선의로만 구성된 게 아니었다. 다분히 정치적 목적이 포함되어 있었다.


성직자들에게는 비밀스런 임무가 내려졌다.


‘주신께서 내리신 계시의 증거’를 찾는 것.


그게 현상이건, 물건이건, 사람이건 일대를 샅샅이 조사해 범상치 않은 흔적을 찾아야 했다.


권위가 흔들리고 있는 제국의 입장에선 그런 교단을 감시하여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다. 지금도 벨싱턴을 향한 따가운 감시의 시선이 등을 찌르고 있었다.


‘이 드넓고 엉망인 땅에서 어느 세월에 그걸 찾나......’


그가 윗선에서 들은 바로는, 이번 계시는 꽤 이례적이었다고 했다.


기이한 현상도, 기이한 꿈도, 교황에게 내리시는 신의 음성도 없었다. 그저 상서로운 빛줄기 하나가 현실에 내리쬔 게 전부였다.


주신께서 뭘 의도하고자 하시는지 알 길이 없는 방식으로 알려주시는 건 처음 있는 사례였다.


천벌이면 천벌을 내린다, 사도면 사도가 누구다 식으로 알려주시던 분께서 웬일로 침묵을 지키시는지.


“흥냐..... 거, 거긴 안 돼......”


군마보다 훨씬 작은 조랑말 한 마리.


그 위에는 칙칙한 회색 로브를 두르고 있는 누군가가 고개를 꾸벅이며 졸고 있었다.


여인의 등에는 주신 교단의 문양이 그려진 큼직한 깃발이 묶여 있었다. 다른 깃발과의 차이점이라면, 깃발 위쪽에 지지대가 있어 바람이 불지 않아도 깃발이 펴져 있어 문양이 잘 보인단 것.


“서기관님. 일어나세요. 슬슬 야영할 겁니다.”

“스읍, 아. 그래요? 어으 졸려......”

“그러니까 일찍 주무시라고요.”

“하지만 전 밤에 활동하는 게 좋아서. 히히.”


호위하고 있던 성기사의 말에 두꺼운 안경을 쓴 검은 머리의 여인이 졸다가 흐른 침을 슥 닦으며 실실 웃었다.


“이쯤 야영한다.”

“옛! 야영 준비!”

“야영 준비!”


힘찬 복명복창과 함께 행렬이 멈추었다.


“서기관 님.”

“아. 벨싱턴 경.”


야영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벨싱턴이 회색 로브의 여인에게 다가왔다.


“이쯤 되면 슬슬 말씀해 주시죠. 왜 귀하신 분이 갑자기 여기까지 따라오셨는지요.”


벨싱턴에게 있어서 주신의 침묵의 이유를 알 수 있는 창구는 눈앞의 여인뿐이었다.


“그냥 교황청에 계속 틀어박혀 있으려니까 답답해서 나온 여행이라니까요?”

“섭섭합니다. 성녀님.”


대재앙 종결 선언 이후 칩거하던 인물이, 주신의 계시의 증거를 찾는 임무가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튀어나왔는데 그게 어딜 봐서 여행이겠나.


“성녀는 무슨. 서기관이라고요.”

“아직도 입에 안 붙어서 말입니다. 여태껏 성녀로 부르다가 갑자기 정식명칭으로 부르려니 말이죠.”

“우후후.”


물에 던지면 바로 녹아버릴 듯한 웃음을 지은 서기관이 조랑말에서 내려 별도로 짐을 풀었다.


“엇차, 전 한숨 잡니다아~?”


서기관은 침낭을 꺼내더니만 등에 묶은 깃발을 풀지도 않은 채 번데기처럼 그 안에 파고들었다. 깃발이 직직 흙바닥에 끌리는 것에 벨싱턴이 이마를 짚었다.


“또 밤에 안 자려고요?”

“아유, 나는 올빼미 체질이라고요. 불침번도 대신 서주잖아요.”

“성녀님 하나 불침번 안 서도 별 차이 없는 규모잖습니까.”


성기사의 핀잔에도 서기관의 야행성 맹금류 같이 똘망똘망한 눈이 눈꺼풀 밑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육신의 눈 대신 다른 눈이 떠졌다.


서기관의 두꺼운 안경과 눈꺼풀 너머에, 빛나는 별바다가 펼쳐졌다.


그녀의 시선은 보석 가루 가득한 검은 비단 한가운데를 쭉 가로지르는 선 한 가닥을 쫓았다. 다른 별빛보다 강렬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남긴 궤적은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맺혔다.


‘과연 어떤 사람이려나?’


아직 대상과 만나려면 한참 멀었지만,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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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화 +3 24.09.08 721 3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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