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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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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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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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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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DUMMY

사람들은 뱃놀이에 대해 환상을 갖는다.


뱃전에 앉아 주위를 바라보면 온갖 아름다운 풍경이 반기고, 선선한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가며 왠지 자연 속에 녹아든 것 같은 느낌을 느끼리라 기대할 것이다.


마빈이 탄 배는 그러한 낭만을 충족시켰다.


고즈넉하게 강 위를 슬금슬금 나아가면서 이마를 스쳐가는 강바람과 눈이 녹지 않아 흑백이 되어버린 경치를 보는 기분이란.


문제는 느려도 너무 느렸다.

바람에 의지하는 큼직한 수송선은 강의 흐름을 타고 있음에도 거북이걸음과 비견될 수준이었다.


“심심해......”


마빈은 배 난간에 팔을 걸친 채 하품했다.


주변 경치를 보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늘 똑같은 일만 반복되는 선상 생활은 참 지겨웠다.


아무리 돌아다니고 구석구석을 수색하듯 구경했지만 어디까지나 좁디좁은 섬 같은 배 안.


고작해야 반나절만에 할 일이 없어지니 그저 뒹굴뒹굴 게으름이 골수까지 치미는 일상을 강제로 보내야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 풍경을 보는 것이 그나마 마빈을 위로해주었지만, 그마저도 저 대자연에 직접 뛰어들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봐야 하니 원.


지겨움에 입을 반쯤 벌린 채 시간을 죽이고 있는 소년의 주변에는 크고 작은 새들이 난간에 앉아 마빈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거참 신기한 일이야.”

“어떻게 새들이 저렇게 얌전히 앉아 있담?”


선원들이 멀리 떨어져서 그 진기한 광경을 구경했다.


조금만 다가가도 후다닥 날아가 버리는 새들이 신기하게도 마빈이 가만히만 있으면 알아서 모여든다니.


일부 불운한 녀석들은 잡혀 선원들의 한 끼 식사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새들은 계속 저렇게 모여들곤 했다.


“뭐, 저 녀석이 동물하고 친한 건 도시에서도 유명했어. 말이랑 소를 그렇게 잘 몬다며?”

“나도 그 소리는 들었지. 그 겁 많은 참새들이 몸에 앉아 있단 걸 누가 봤다던데?”

“신기하네. 동물이 무슨 돌이나 나무 취급을 하는 건가?”

“저래서 사냥을 잘하는 건가 봐.”

“그럴 지도 모르겠네. 한겨울에도 사냥을 했었다니까.”


마빈은 갑판 저편에서 대화를 나누는 선원들의 말을 듣곤 눈동자를 슥 굴려 새들을 보았다. 말똥말똥 눈을 뜬 채 고개를 갸웃대는 것이 퍽 정감이 갔다.


“우쭈쭈.”


손을 내미니 한 발짝 물러서면서도 고개를 슥 들이미는 것이 제법 귀여웠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네.’


인부들이 나눈 대화처럼, 마빈은 동물이 잘 따르는 편이었다.


심부름을 하려고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보면 참새가 슬쩍 날아와 제 둥지인 것처럼 머리에 앉기도 했고, 짐수레를 끄는 소나 말이 마빈을 유독 잘 따라준 덕에 보수를 더 받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카트라그로 향하는 길에서 겨울인데도 산짐승들이 제법 많이 보였던 게 기억났다.


‘조금 미안한걸.’


정말로 동물들이 친근하게 느껴 다가온 거라면 그걸 냅다 잡아먹었단 얘기 아닌가.


전생에서 본 여러 영상들에서 일명 드루이드라고 불리는, 기이할 정도로 야생동물의 경계심을 사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본 바, 마빈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파다다닥!


마빈의 뒤편에서부터 나무바닥을 밟는 발소리가 들리자 새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뭐하냐? 멀미하는 거 아니지?”


베델라 상단주, 제프였다.


단정하게 자른 수염과 깔끔한 복장. 정말로 한 상단의 주인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겨 첫 만남 때 봤던 엉망인 주정뱅이의 모습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멀미 아니에요.”

“그럼 왜 하루 종일 난간에 그러고 있냐?”

“심심해서요.”


제프가 피식 웃었다.

맨날 도시를 뽈뽈뽈 돌아다니던 녀석이 이런 좁은 배에 갇혔으니 답답할 만도 하지.


“걱정 마라. 오늘 저녁쯤에는 마을에 도착할 테니까.”




***




제국을 관통하는 강줄기들은 제국의 동쪽이자 대륙을 동서로 가르는 용의 등뼈 산맥에서 시작된다.


개중 하나인 유베나 강은 제국 남부를 가로지르는 대표적인 강.


산맥에서 시작된 강은 굽이굽이 흐르다가, 카트라그를 관통해 살짝 북서쪽을 향해 내달리다 도중에 북쪽과 서쪽으로 갈라진다.


그 세 갈래길 지점에 위치한 게 바로 뮬레타라는 이름의 마을이었다.


서부, 남부, 북부로 각각 향할 수 있는 강줄기를 품에 안고 있는 요지이니 응당 번화한 도시가 있어야 하건만.


이곳은 그저 나루터 몇 개만 존재하는 자그마한 마을에 불과했다.


“물안개네요?”


마빈이 난간 너머로 손을 뻗어 하도 짙어 코앞도 잘 보이지 않는 물안개를 휘저었다. 축축한 물 입자가 손에 잔뜩 들러붙어 미끈거렸다.


“그래. 여기는 아직도 이러네. 이상한 일이야.”

“왜 이상한데요? 날이 따뜻해지면 물안개가 생길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그것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


제프가 입에 문 파이프 끝을 질겅질겅 씹었다.


선원들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돛을 내려 속도를 줄이고 정박 준비를 시작했다.


“뮬레타는 예전엔 카트라그보다 번화한 대도시였어. 대재앙 때 웬 악마새끼가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번화했던 도시는 주춧돌만 남기고 싹 사라졌다가 도로 사람이 정착했다. 그러나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순 없었다.


“이 빌어먹을 안개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이 일대에는 낮밤과 계절과 지형에 상관없이 자욱한 물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그 탓에 수상사고가 빈번했고 악마가 남긴 저주가 아니냐며 사람들이 정착을 꺼려 발전이 멈춰버렸다.


“그래도 정박시설은 제법 괜찮지. 저주니 뭐니 해도 교통의 요충지라는 건 변함이 없거든. 어두울 때 억지로 움직이면 사고가 나니까 그나마 밝은 낮에 가겠다고 정박했다 가는 배가 많아.”

“그럼 저희도 정박했다 가는 건가요?”

“그래. 그리고 여기는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라.”

“왜요?”

“왜긴. 위험하니까 그렇지.”


파괴된 도시에 여기저기에서 모인 피난민이 몰리고 국가의 손길도 덜 미치니 자연스럽게 범죄의 온상으로 변모했다.


저주받았단 소문에다 통행하기에 나쁜 물안개, 마을 근방을 둘러싼 숲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진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가 왜 숙박시설이 발달한 게 아니라 정박시설이 발달한 거라 했겠어? 배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배만 댔다가 날 밝으면 떠나니까 그렇지.”


배에서 내린 선원들을 상대로 범죄가 하도 발생하다 보니 이곳을 지나는 선박은 이곳에서 보급한다는 것 자체를 상정하지 않았다.


“벽 같은 건 세워 놨네요?”


선착장 주변은 벽을 두르고 망루를 세워 작은 요새처럼 보였다.


“내가 만들라고 했거든. 용병도 배치했고.”


단순히 배에서 내린 이를 습격하는 걸 벗어나 아예 배까지 쳐들어와 도적질을 하는 경우도 있어 상단이 참다못해 만든 시설이란다.


‘이놈 눈빛이 심상치 않은데.’


마빈의 눈이 재밌는 놀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번들거리는 게 무조건 저 벽 너머로 넘어갔다가 사건 몇 개는 물고 올 것만 같았다.


저 저, 실실거리는 거 봐.


“오늘은 가만있어라. 괜히 기 드센 깡패 놈들 들이닥치면 피곤해. 너 말고 다른 사람도 있으니까 오늘은 배에 얌전히 있어다오. 너도 피로 목욕하고 싶진 않을 거 아니냐.”


제프는 마빈의 머리를 꾹꾹 눌렀다.


“네에 알겠어요.”


그렇게 샐쭉 웃는 마빈의 시선은 이미 물안개 너머 음영만 살짝 엿보이는 마을과 그 주변을 둘러싼 숲을 향해 있었다.





***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막대기 휘두르기. 또 하나는 비밀기지 만들기라고들 한다.


아마 선사시대의 인류가 안전한 거처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쏘다니던 본능이 머리에 각인되어 그런 건지도 모른다.


마빈도 남자인 바, 본능을 벗어나지 못했다.


소년에게 동굴이란 낭만 그 자체였다.


일일이 산을 뒤져서 찾아야 한다는 것도 맘에 들었거니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을 헤치고 나가 그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온갖 기이한 돌덩이라는 장관을 구경하는 재미란!


특히나 동굴 입구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그 은은한 빛과 연기 냄새를 쐬면서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보면 얼마나 마음이 평안해지는지.

아, 밖에 비라도 오면 더 좋았고.


그렇기에 마빈은 동굴이라면 발견하는 족족 불타는 모험심으로 쳐들어가곤 했다.


고향 마을 주변 산을 누비며 발견하는 동굴은 모조리 그의 ‘비밀기지’로 탈바꿈했었다. 기존에 살던 짐승과 대판 싸운 건 사소한 이야기.


당연하게도 카트라그로 향하는 대형 상단을 만나기 전에도 산을 만났다 하면 동굴 찾기부터 하느라 꽤나 시간을 잡아먹었다.


이곳 뮬레타의 분위기도 동굴과 흡사했다.


물안개 때문에 습한 데다 마을 전체가 사실상 빈민가라 음침하기까지 하니, 그 특유의 분위기가 마빈을 어여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셈이었다. 카트라그의 빈민가에 선뜻 발을 들인 것 역시 그러한 심리가 어느 정도는 작용했으리라.


‘......그래도 여기선 참아야겠지?’


지금 마빈은 혼자가 아니었다.

겁도 없이 들어가 사고를 쳤다가 자칫 잘못하면 같이 온 일행도 공격당할 수도 있는 노릇.


모험을 하자는 마빈과 상황을 고려하라는 마빈이 머릿속에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 둘은 손을 꽉 잡고는......


‘시비 안 걸리게 변두리만 살짝 구경하면 되겠지?’


합의를 했다.




***




겨울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어둠과 함께 몰려드는 추위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고, 그에 따라 인식의 범위도 좁힌다.


‘엇차.’


마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경비들의 시선을 피해 발소리 없이 부둣가를 벗어났다.


선착장과 마을을 분리하는 목책 밖으로 나서기 전, 마빈은 강물 쪽을 바라보았다. 밑에서 물고기라도 헤엄치고 있는지 수면이 크게 일렁였다.


마빈은 그 물결을 향해 빙긋 웃으며 손을 살짝 흔들어주고는 살그머니 목책을 기어올라 바깥으로 나왔다.


“히히.”


차가운 밤공기 때문에 손에 호호 입김을 불면서도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얼른 구경하고 돌아가야지!


그렇게 뮬레타 마을의 외곽 오솔길을 따라 산책을 하던 와중.


팍! 팍!


거친 땅 파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노인이 홀로 밭을 갈고 있었다.

힘든 것도 모르는지, 밤늦게까지 구부정한 몸으로 반복해서 밭을 가는 노인의 옆모습은 딱 봐도 사연이 깊어 보였다.


마빈은 주위를 살폈다.


제법 널찍해 그리 경사지지는 않은 언덕에는 넓은 밭고랑이 파여 있었는데, 절반 정도에는 까맣게 변해버린 농작물이 썩어가고 있었다.


너덜너덜하지만 잎사귀 형태를 보아하니 필라베리였다. 겨울에 흔히들 심는 작물이라 고향 마을은 물론이고 카트라그 주변 농경지에서도 자주 본 식물이었다.


“필라베리는 어지간해선 안 죽는데?”


마빈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노인의 괭이질이 우뚝 멈추었다.

밤은 소리가 멀리까지 퍼지기에, 마빈의 자그마한 중얼거림을 용케 들은 모양이었다.


그의 조용한 눈이 이쪽을 향했다.

마빈은 눈이 마주치자 꾸벅 인사했다.


잠시 마빈을 응시한 노인은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힘겹게 괭이질을 이어 나갔다.


“할아버지.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머리 위에 큼직한 물음표가 떠 있다면 어울릴 분위기를 어떻게 지나쳐.


“......외부인이오?”

“네. 배 타고 지나가다가 잠시 들렀어요.”

“이 늙은이에게 뭐가 궁금해서 그러오?”


추레한 행색과는 다르게 제법 고풍스러운 말투였다. 마빈의 호기심이 더욱 상승했다!


“왜 이렇게 늦게까지 혼자 밭을 갈고 계세요? 저기 썩은 것도 안 치우시고.”

“......”


노인은 대답 대신 주변의 밭을 천천히 훑었다. 그의 눈은 죽은 작물이 있는 곳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이 저주받은 땅에서 뭐라도 해야 하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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