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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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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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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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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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DUMMY

도끼로 박살내 만든 틈새.

마빈은 그 틈으로 안을 살폈다.


광도 약한 등불, 바닥에 그려진 사악한 마법진, 주위에 쌓인 시체, 한쪽 벽에 놓인 작은 감옥들과 철창을 잡은 손들, 진 위에 주저앉은 상태인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자까지.


음침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흑마법사에게 필수적인 규칙이라도 되는 걸까? 그 조합이 참으로 사특하여 당장이라도 박살내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


쾅! 쾅! 콰득!


마빈은 도끼를 연거푸 내려쳐 기어이 문짝을 박살냈다.


흑마법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대체 어떻게 여길 알아낸 거야!


문 안쪽에 그려진 흑마력을 차단하는 마법진 때문에 어지간히 수준 높은 사제가 아니면 감지조차 힘들 텐데!


‘왜 하필 지금!’


하다못해 대처라도 할 수 있었으면!


“아, 안 돼!”

“돼!”


마법진에 양손을 붙이고 있는 흑마법사는 입만 뻐끔거리면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마빈의 손도끼가 흑마법사의 미간을 향해 떨어졌다.


퍼석하는 두개골 박살나는 소리.

휙 돌아가는 흑마법사의 눈.

그리고 그 밑으로-


화아악!


형태가 일그러지면서 사악한 힘을 방출하는 마법진.


흑마법 의식을 유지하던 시전자가 사라지자 진을 흐르고 있던 흑마력이 폭주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마법진을 통한 흑마력의 분출은 폭약이 터지는 것과는 달랐다. 이미 의식을 막 완료한 거나 다름이 없던 참이라, 시전자가 이미 설정한 방향으로 폭주했다.


흑마력은 강둑 너머로 범람한 물결처럼 주변의 공기를 울리면서 솟아올랐다.


“으윽!”


마빈의 몸이 흑마력의 물결에 휩쓸렸다. 사악한 흐름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눈앞이 흐려졌다.


흐려진 시야가 회복되자.


“응?”


마빈은 자신이 드넓은 황무지 한복판에 있음을 깨달았다.




***




언덕을 오르는 메이헌의 마음은 급했다. 흑마법사가 이미 술수를 끝마쳤을지 모를 상황이었으니까.


‘제발 성당이 아직 멀쩡했으면 좋겠는데.’


도시가 넓음에도 어째서 흑마법사의 목표가 여기가 될지는 그만이 알고 있었다.


뒤를 따르는 오리얀트 시장이 질문했다.


“사제님. 왜 모든 기사를 이끌고 여기로 오라는 겁니까?”


빈민가에 투입된 기사를 제외한 남은 기사 넷을 모두 끌고 왔다.


“그야 흑마법사의 목표가 여기니까요.”

“그건 어떻게 아십니까?”

“성당 지하에 악마가 잠들어 있잖습니까.”

“예? 악마라니요?”


그건 대재앙 직전에 이곳 시장으로 부임한 그에게도 금시초문이었다.


시장의 반문에 메이헌이 걸음을 잠시 멈췄다.


“아니, 모르셨습니까?”

“처음 듣습니다. 혹시 예부터 내려오던 전설 같은 겁니까?”

“......아.”


사제는 이마를 짚더니 다시금 발을 옮겼다.


“대재앙 때 악마가 괴물을 몰고 쳐들어왔을 때를 기억합니까.”

“기억하지요. 제 팔을 앗아간 싸움인데.”


대재앙 직후 남부에 열린 수십 개의 지옥문.

개중 하나가 카트라그 근방에 열렸다.


거기서 튀어나온 악마는 곧장 주위의 토착 괴물과 지옥에서 나올 때 대동한 마수를 동원해 카트라그를 침공했다.


성문이 박살나고 성벽이 무너지고 모든 거리마다 죽은 시체가 가득했던 지옥 같던 때.


당시 수비대의 절반 이상이 쓸려나가고, 당시 성당에 있던 모든 성직자들이 전사했다.

마력 칼날을 새로이 각성한 종자 셋을 제외하면 기존에 있던 기사들도 죄다 장렬히 산화했을 정도의 격전이었다.


그렇게 절체절명이었던 카트라그가 무사할 수 있던 이유는, 도시를 찾아온 성기사단 덕이었다.


“그때 왜 근처에 성기사단이 있었냐면, 이미 받은 임무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사악한 의식이 치러진단 신고를 받아 악마를 포획해 돌아가던 길이었다.


원래라면 무사히 성당에 도착해 퇴마 의식으로 완전히 악마를 소멸시켰어야 했으나, 때맞춰 터진 대재앙 때문에 상황이 꼬여버렸다.


악마 소멸에 써야할 성물들은 카트라그를 침공한 악마를 제압하는 데 소비되었다. 헌데 당시 성기사단 부대가 갖고 있던 악마봉인함은 하나뿐.


“그래서 하나는 성당에 봉인을 한 거군요.”

“그렇습니다. 카트라그를 침공한 악마보다 약했던, 이미 잡아놓은 악마였죠.”


이 같은 조치는 대재앙 당시 세계 여러 곳에서 이뤄졌다. 강한 악마에게 재원을 집중하느라 약한 악마는 봉인으로 때워야 했던 것.


“아마 성기사단이 급히 떠나면서 사실 전달이 누락됐나 봅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그동안 한 번이라도 언급을 했어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사제님은 대재앙 종결 선언 이후에 오셨는데 그게 어디 사제님 탓입니까? 그리고 성기사단 분들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충분히 이해해요.”


악마와 괴물 무리를 막으면서 큰 피해를 입고 서둘러 황도로 복귀한 성기사단이다.


고의로 알리지 않았다기보단 만신창이가 된 도시 상황 상, 혼선이 일어나 미처 소식이 닿지 못한 것이리라.


“우선 제가 지하로 가서 봉인진을 점검할 겁니다. 그 뒤에......”


메이헌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표정을 굳혔다.


저 멀리 빈민가에서부터 발생한 흑마법의 흐름이 성당으로 향하고 있단 걸 고매한 사제인 그가 모를 수 없었다.


“이런!”


그가 언덕길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성당에서 갑자기 화륵 불길이 치솟았다. 마치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는 듯 울타리처럼 성당을 빙 둘러 붉게 타오르는 화염이었다.


“저, 저게 무슨 일입니까!”

“악마가 봉인을 깨고 있습니다!”




***




마빈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드넓은 땅에 어리둥절했다.


“뭐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하에 있었는데.


떠돌이 사제를 죽인 뒤 드러난 지하통로를 통해 지하 선착장으로 간 뒤, 조각배를 타고 흑마력 냄새를 따라 도달한 또 다른 석실.


거기서 흑마법사를 죽이자 발생한 흑마력 폭풍에 휘말린 뒤 눈을 떠보니 여기였다.


“강제로 순간이동 같은 거라도 했나?”


아무것도 없는, 사박거리는 건조한 갈색 흙뿐인 땅이라니. 하지만 순간이동을 했단 가정은 곧 취소해야 했다.


주위를 둘러본 마빈의 눈에 익숙한 것이 보였다.


“......”


저 멀리.


지평선 부근을 흐르고 있는 강 하나. 그 너머에 삐뚤빼뚤한 강철의 벽이 돋아나 있었다.


설마 이 세계에도 저렇게 밀도 높고 고층 건물이 가득 있는 발달한 문명이 있는 건가 싶었지만, 곧 어떠한 것을 보고는 그 가정 역시 폐기해야 했다.


도시 한가운데 우뚝 선 무언가.


위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좁아지는 형상을 하고 유리창으로 뒤덮여 햇빛을 찬란하게 반사하고 있는 초고층 빌딩의 자태.


“월드 타워.......”


수도의 유명한 랜드마크였다.


다시는 닿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전생의 풍경이라니. 설마 차원이동이라도 한 걸까?


“그럴 리가 없지.”


첫 번째로 지금 딛고 있는 이 땅.


사방에 산이 박혀 있는 돌투성이로 유명한 나라에 이런 윤기 있는 갈색 흙으로 가득한 평원이 있을 리가 없다.


아무리 전생에 살던 나라가 재개발에 집착했다고 해도 저 건물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지역을 이렇게 넓게 밀어버릴 리가 없지.


두 번째로 묘하게 빛바래 보이는 정경.


마빈의 좋은 시력으론 이 정도 거리도 깨끗하게 잘 보여야 함에도, 마치 멀리서 찍어 흐릿한 사진처럼 도시의 경광은 묘하게 색채감이 일그러져 있었다.


다음으로 셋째.


마빈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른 방향의 지평선 쪽에 자욱한 먹구름이 있었다. 아주 새까매서 대형 산불이 난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곳에서는 매캐한 흑마력의 냄새가 났다.


그리고 마지막.


마빈은 하늘을 보았다.

그곳에선 천사님을 만났을 때 느꼈던 온기가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작은 태양이 있었다. 맨눈으로 바라봐도 따갑지 않은 원형의 구체.


“이거, 혹시 내 심상 세계인가?”


렌델이 심상에 대해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


-심상 세계가 정확히 뭐냐고? 음...... 뭐랄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총집합체? 인상적인 걸 모아놓는 창고? 캔버스라고도 하던가? 쓰읍, 내가 마법사가 아니라서 정확한 정의를 설명하는 건 좀 약한데.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마법사가 더 잘 알 거야. 마법사는 자신의 심상 세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수련부터 한다고 들어본 적은 있거든. 아예 화가를 초청해서 그림수업도 한다던가?


-근데 기사는 그렇게까지는 안 하고, 몸을 쓰는 만큼 감각과 명상에 더 의존하는 편이지.


-마법사가 도르래를 달거나 두레박을 더 크게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연구해서 퍼 올린다면, 기사는 맨손으로 밧줄을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잡아서 끌어올릴 수 있을까, 라고 보면 돼.


렌델이 말해준 심상 세계에 대한 몇 가지 특징은 이러했다.


자신의 경험(물론 의지, 신념 등과 동의어다)의 영향을 받는다.


렌델의 경우에는 자신이 영감을 얻은, 낙뢰치는 날의 깜깜한 비 내리는 한밤중이라고 했다.

어떤 기사는 자신이 모시는 주군의 석상이 있다고도 하고, 어떤 기사는 굳건한 성벽이, 또 어떤 기사는 수련장이 마음속에 있다고도 한다.


그 다음으론 자신의 현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


정신이 흐트러질수록 당연히 심상 세계도 흐트러지며, 감정이 격해질수록 심상 세계의 특징에 따라 부정적일 수도 긍정적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곳은 자신의 심상세계가 분명해 보였다.


저 멀리 보이는, 다시는 닿을 수 없을 기억의 편린으로 이뤄진 도시.

천사님을 만난 꿈결 같은 기억을 증명하듯 빛나는 태양.

바로 직전에 흑마력에 휩쓸렸다는 걸 알려주듯 꿈틀거리는 먹구름.


“그럼 아직도 내 심상엔 별 게 없단 거야?”


아무것도 없는 흙뿐인 평지.


마빈은 내심 씁쓸했다.

그동안 봐온 게 얼마나 많은데, 그게 한 가지도 심상에 반영되지 않았다니.


그동안 겪어온 다양한 경험과 마음이 동하는 느낌은 다 수박 겉핥기였다는 말이 아닌가.


“그나저나 나는 왜 여기 있는 거람?”


마력 각성도 못했는데 벌써 심상 세계에 들어오다니. 설마 나쁜 기운인 흑마력에 기절해서 정신이 안으로 도피라도 한 건가 싶었다.


“빨리 나가서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들 구해야 하는데.”


그때, 지평선의 먹구름이 강하게 꿈틀거렸다.


-크크크큭! 드디어 자유로워질 때가 왔도다!


마빈은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도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 느낌이 든다는 참신한 경험을 했다. 참으로 사악하고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욱!”


마빈은 구토감을 참으며 잠시 비틀거렸다.


그러자 햇빛이 한층 더 강해지며 마빈을 포근하게 감싸 보호해 주었다.


“천사님?”


빛이 왠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 같았다.


“여기서 나가려면 어떻게 하나요?”


빛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마빈을 더 깊이 감쌀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천사님과 만났을 때 말 한 마디 없었음에도 말하고자 하는 걸 충분히 알 수 있던 것처럼, 이 빛도 그러했다.


생각해라.

결심해라.

퍼올려라.


“아.”


심상 세계는 자신의 마음 속.

스스로의 의지가 곧 모든 것이니.


소년이 입을 꾹 다물고 강하게 염원했다.

이곳을 나가 어서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


그러자 눈앞의 시야가 불을 끈 것처럼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이내 몸을 감싸는 불쾌한 흑마력의 느낌과 퀴퀴한 지하의 물 냄새가 마빈을 덮쳤다.


‘돌아왔다.’


“으으으으......”


귓가에 들리는 애처로운 신음들.

석실 안을 봤을 때 본, 감옥에 갇힌 채 철창을 잡고 있던 손들의 주인들이었다.


마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법진을 발로 쓱쓱 문댔다. 흑마력이 흐르고 있던 피로 만들어진 회로가 지워지면서 폭주가 줄어들었다.


흑마력의 폭풍이 줄어들자 갇힌 사람들의 신음도 잦아들었다.


“얼른 꺼내드릴게요!”


마빈은 흑마법사의 품을 뒤져 찾아낸 열쇠꾸러미로 감옥 문을 땄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소년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불쾌한 흑마력이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곳.

심상 세계에서 들은 사악한 음성이 들려온 곳.


그곳은 성당이 있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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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8화 +1 24.09.02 879 2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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