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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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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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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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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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DUMMY

대륙 남동부.


대륙 남서부의 엘프 대수림만큼 빽빽한 숲 지대가 형성되어 있어 짐승과 괴물의 천국이라 부르는 곳.


그러나 지금은 그 이름값이 다소 퇴색되었다.


굵다 못해 거대하단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 나무 대신 높은 건물이, 숲을 누비던 네 발 동물들 대신 두 발 동물들이 들어찼다.


새소리와 바람소리 대신 호객꾼의 외침과 마차바퀴의 덜컹거림이 가득한 도시.


누구도 이전에는 이 번화한 곳이 나무덩굴과 수풀이 빼곡한 수림지대였단 걸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이곳 수림에서 오래 전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이들은 여전히 이곳의 주인이었다.


짐승의 면모를 간직한 이들.

흔히들 수인(獸人)이라 부르는 종족이었다.


한때는 원시인 취급 받던 그들이었으나, 현재의 이 도시를 본다면 누구도 그 사실을 믿지 못할 것이다.


각양각색의 운송수단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대씩 들락거리고 온갖 상인과 손님들이 뒤섞이며, 새로이 떠오르는 상업의 심장이라고도 불리는.


초거대상업도시 아파프레판.


그 초대형 상업도시이자 수인 왕국의 수도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한 건물.


사치스러운 부조와 장식들로 겉면을 장식한 건물은 희귀한 동식물이 가득한 온실이 감싸고 있었고, 그 정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대륙의 진귀한 물건은 여기에!’라는 커다란 간판이 달려 있었다.


이 건물의 용도는 두 가지였다.


각종 물건이 팔리는 대형 상점.

그리고 수인의 왕이 기거하는 궁전.


그야말로 상인 이미지가 굳어진 수인을 대표하는 건물이라 할 수 있었다.


“흐흠. 오늘도 기록 경신이로구나.”


카이비안 제국의 황도보다도 비싸다는 얘기가 돌 정도로 사치스러운 궁전의 집무실에 앉아 장부를 들여다보는 수인 왕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돈다발을 한손으로 만지작거리는 푸른 털의 직립보행 늑대.

그는 늑대 특유의 음흉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흐뭇하게 자신의 왕국이 일궈낸 성과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처리를 하던 와중, 그는 수하에게서 지급이라고 쓰인 편지를 한 통 받았다. 그는 금빛 장신구를 잔뜩 낀 손으로 편지를 뜯어보았다.


부스럭


‘카이비안 제국이라.’


사회의 혈관과도 같은 상인은 정보원으로서의 역할도 겸할 수 있다.


수인들 특유의 끈끈한 부족사회 전통이 계승되어 성립된 충성심과 곳곳에서 물자와 운송이 필요하게 된 시대는, 상인들을 유능한 정보원으로서 기능하도록 만들었다.


‘오색 빛깔이라......?’


제국의 정계에서 이전에 관측된 교황청의 상서로운 현상을 새로운 주신의 사도의 출현으로 여기고 있다는, 기밀 중 기밀이었다.


수인 왕은 나이가 들어 하얗게 탈색된 가슴 부위의 털을 만지작거리며 정보통이 보내온 귀중한 정보를 곱씹었다.


‘또 격변의 때가 오겠군.’


그는 푸른 털과는 정반대의, 자신의 풍성한 붉은 머리털을 쓸어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의 번화한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대재앙으로 대륙이 망하기 직전까지 몰렸다가 간신히 살아난 이 시대에 보기 드문 풍요의 현장.


저 모든 게 자신의 결단과 동족들의 노력의 결과물이다.


‘올해로 43년째인가.’


먼 곳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43년 전, 제국의 복속전쟁에서 패배하여 목이 잘린 선대 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던 때를 보고 있었다.


-새로이 등극한 젊은 왕아. 언제까지 그런 미개한 부족사회에 만족할 것이냐?


지금은 암군이라 불리는, 전대 황제의 제안.


-너희의 날카로운 발톱에 금칠을 하고 털에 색색의 보석을 달아보는 게 어떠냐?


상업을 배워 문명인이 되어라.


포악한 강자의 치세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황제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측근들과 함께 수요와 공급의 대들보 아래 돈이 돈을 낳는 체계를 배웠다.


-우리는 상업국가가 되겠다.


그전까지의 수인의 문화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는 황제를 등에 업고 숙청을 해가면서 끝끝내 정책을 추진했다.


몸은 약하지만 똑똑한 머리를 가진 수인들을 상인으로 교육시키고,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부족들을 상행 호위로 붙였다. 강직한 성향의 부족들을 이용해 상업에 필수적인 신뢰를 구축하는 것도 필수.


더구나 그들은 좋은 상품도 가지고 있다. 수림에 존재하는 각종 약용식물과 괴물 사체, 그리고 금속 광산.


이 세 가지 품목을 집중적으로 개발하여 그들은 황제의 암흑 통치기에도 큰 피해 없이 살아남았다. 비슷한 위치의 생산자인 엘프가 돌연 쇄국을 한 것도 호재였다.


제국 내전, 황제의 몰락 이후 벌어진 대재앙, 북부 야만인과의 전쟁까지. 대륙을 휩쓴 전화는 수인에겐 또 다른 기회를 줄 뿐이었다.


그 혼란 속에서 수인 왕국은 꾸준히 왕국의 살을 찌웠다.


그렇게 양지 음지 가릴 것 없이 재물을 한껏 끌어 모아,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아진 수인들은 세상을 뒤흔들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이는 현재진행형이었다.

세상은 대재앙 이전으로 원복 되지 못했으니까. 덕분에 수인의 돈주머니는 날이 갈수록 두둑해지기만 했다.


어떤 이들은 수인들을 암군의 부역자, 줏대 없는 기회주의자, 비열한 전쟁상인 등으로 욕했으나, 결과를 보라.


‘살아남는 자들이 강한 것이다.’


생존에는 수단이 중요하지 않다.


동족이 안전하고 부강해질 수 있다면, 그깟 질투 가득한 욕설 정도야 얼마든지 먹어주마.


그러나 안주해서는 안 된다.

생존경쟁이란, 멈추는 순간부터 도태되는 것.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늘 털을 곤두세우고 바삐 뛰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라.’


상권이란 것은 유행과 권력에 민감하다.


이 혼란한 시대에 신의 힘을 등에 업은 강자가 우뚝 선다면, 그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재편되리라.


그렇다면 수인이 취해야 할 행동은 하나.


‘사도에게 붙어야 한다.’


좋게 말하면 후원 내지 투자.

나쁘게 말하면 아부나 결탁.


과거의 수인은 인간보다 그다지 특출 난 게 없어 사도에게 무언가를 제공하기 힘들었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


대륙이 엉망인 시대, 가장 많은 재화와 영향력을 보유한 집단이 그들이다.


만일 상서로운 현상이 정말로 사도의 임명이고, 사도가 누군지 모습을 드러낸다면 수인족은 기꺼이 사에게 붙을 것이다.


하지만......


수인 왕은 머리털을 꾸욱 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사도. 강자. 수인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 이 단어들에서부터 자연스레 누군가가 연상되었다.


수인족을 처참하게 굴복시킨 전대의 암군.

선왕을 비롯한 여러 부족장들을 처참하게 죽여 수인을 굴복시켰던 괴물.


‘황제.....!’


망각의 토사 속에 파묻었던 오랜 옛날의 기억이 그를 괴롭혔다.


강자의 출현이 또다시 우리에게 압제를 가한다면 어떡하지? 수인에 대한 편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어. 사도가 인간이면 어떡하지? 그가 수인에게 우호적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인간은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하는 것들을 가만두지 않아. 돈 많은 우리들을 벌써부터 경계하고 있는 마당인데...... 만약, 우리를 싫어하는 놈들이 바람을 넣으면?


한참을 드넓은 집무실 구석에서 꼬리를 가랑이 사이에 넣고 웅크려 있던 그는 가까스로 몸을 가누었다. 그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과거 황제가 그에게 속삭였던 어떠한 말이 기억난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야......!”


그렇게 중얼거린 수인 왕은 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깃펜을 사각사각 움직이는 푸른 손에는, 머리칼에서 묻어나온 피처럼 붉은 털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




본격적으로 바다 탐사를 시작한 마빈은 다룰마가 정신적으로 지칠 정도로 사방팔방을 쏘다녔다.


‘......인간 애들은 원래 다 이런가?’


뭉쳐 다니는 은빛의 거대한 물고기 떼 한가운데로 돌진하질 않나, 깊어질수록 물 색깔이 변하는 게 신기하다고 수면과 해저를 왔다갔다하다 짧은 잠수병에 걸려 헤롱거리질 않나.


곳곳의 암초에 뚫린 구멍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아싸!’ 하면서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고, 거대한 블루홀을 보자마자 일주일 굶은 사람이 음식에 달라붙는 것처럼 굴기도 했다.


자원 채취를 하러 나온 인어들을 만나는 때가 다룰마의 유일한 휴식시간일 지경.


‘누가 보면 내일 당장 죽는 줄 알겠네.’


그만큼 마빈은 1분1초를 온갖 체험으로 꽉꽉 눌러 담았다.


그날 밤.


마빈은 대양 한가운데에 불쑥 솟아오른 평탄한 무인도의 해안에 앉았다.


사방에는 가리는 것 하나 없이 저 멀리까지 펼쳐진 망망대해가, 머리 위에는 별무리의 연회장이 펼쳐졌다.


‘똑같은 밤하늘인데, 정말 다르네.’


반짝이는 별의 모습은 저 멀리 대륙에서 본 밤하늘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잔잔한 파도의 합창에 맞추어 자작자작 타오르는 모닥불 무용수에, 선선한 바닷바람의 속삭임과 까슬거리는 모래의 자극이 함께하고 있다.


한낱 바다 여행의 일부마저도 이리 새로운 요소들로 가득한데,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겪을 모험의 나날들은 어떨까?


한밤중 해안가라는 이름의 공감각적 협주곡을 감상하며, 마빈은 하염없이 검은 도화지에 미래를 그려나가다 까무룩 잠들었다.




***




“잘 가!”


끼룩끼룩끼룩


수십 마리의 범고래 떼가 마빈의 작별인사에 화답하면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으 추워.”


현재 마빈이 있는 곳은 서쪽 대양의 북쪽 극지방이었다.


얼음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물 온도에 마빈이 살짝 떨었지만 ‘사도의 마지막 여정’이라 이름 붙은 유물은 체온을 어느 정도 유지시켜 주는 기능이 있어 쌀쌀한 것에 그쳤다.


“범고래는 친절하네요.”


마빈은 사냥을 함께한 범고래 가족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다큐멘터리에서 몇 번 모습을 본 게 전부였던 거대한 해양 포유류와 함께 헤엄을 치는 날이 올 줄이야.


“범고래는 바다 생물 중에 꽤나 지성이 높지. 영악하기도 하고.”

“영악요? 쟤네들이요?”


다룰마가 짓궂게 웃었다.


“극지방에서 눈치가 제일 좋은 놈들이야. 슥 보고 센 것 같으면 가만히 있고 아니면 그냥 사냥감 취급이지.”


다른 곳은 대부분 해양 마수가 사망원인 1위인데, 유독 극지방만 사망원인 1순위가 범고래다.


“그런 녀석들하고 초면에 그렇게 즐겁게 노는 건 너밖에 없을 걸?”


충격적인 사실을 들은 마빈의 표정을 보며 다룰마가 킬킬거렸다.


“어? 저거 봐요!”


수면에 떠 있는 거대한 얼음의 그림자에서부터 뭔가 희뿌연 것이 스르륵 내려오고 있었다.


“오. 죽음의 얼음손이네. 이 시기엔 잘 안 생기는 현상인데 운이 좋은걸.”

“죽음의 얼음손이요?”

“바닷속에서 생겨나는 고드름이라 생각하면 돼. 저 하얀 게 다 물이 얼어붙는 거야.”


고농도로 응축된 낮은 온도의 염수로 인해 생기는, 브라이니클(Brinicle) 현상이었다.


“만질 생각은 마라. 아주 차가워서 순식간에 얼어붙.......”


다룰마의 말이 도중에 끊겼다.


얼음 밑 여기저기에서 바다 아래를 향해 자라는 고드름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도 죽순이 자라는 것처럼 아주 빠르게.


‘설마?’


그의 눈이 어두운 바다 저편으로 향했다.


어둠 저편에서부터 꿈틀거리는 거대한 무언가가 물살을 만들어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마수다.”


그 말에 마빈이 창을 꺼내 들었다.

해양 마수의 뼈로 만든 단단한 창대가 착 손에 달라붙었다.


“웬일로 여기저기 다녀도 마수가 코빼기도 안 보이나 싶더니만. 마빈, 실전 뛸 준비는 됐니?”

“당연하죠.”


간만의 싸움에 마빈이 호승심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새로운 지역에서 그 지역의 적과 싸우는 규칙을 체험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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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24.09.13 451 16 13쪽
38 38화 24.09.12 514 21 12쪽
37 37화 +1 24.09.11 565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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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화 +1 24.09.09 713 2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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