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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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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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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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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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0화

DUMMY

스물네 쌍의 눈.


만취하여 흐리멍덩한 시선부터, 조금 덜 취해 경계하는 눈들.


나는 번개 같이 검을 뽑아, 문을 등진 채 카드패에만 집중하고 있던 놈의 목을 그었다.


스물셋.


다음으론 목이 그인 놈이 있던 테이블 위로 올라가면서 벌떡 일어나는 한 녀석의 가슴을 걷어차고 동시에 칼을 휘둘러 다른 놈의 가슴팍을 베었다. 스물둘.


“씨발 저 새끼 뭐야!”

“죽여!”


사방에서 휘리릭 단검이 날아왔다.


와장창!


재빨리 테이블 위에 납작 엎드려 단검들을 피했다. 쏟아진 술병과 컵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테이블 위에서 풀쩍 뛰어내리며 한 놈의 머리를 걷어찼다.


“이 새끼가 어디서!”


한 녀석이 의자 다리를 앞세우며 날 저지하려 들었다. 의자 다리 사이로 몸을 비틀며 파고들어가 몸통에 칼을 찔렀다. 스물하나.


뒤에서 들어오는 섬뜩한 느낌.

쪼그려 앉으면서 뒤에서 단검을 휘두르려는 놈의 허벅지를 베고 그대로 위로 올려서 슥삭. 스물.


직후 바닥을 한 바퀴 굴렀다.

나를 덮치려던 놈들이 바닥에 우당탕 나뒹굴었다. 일어나면서 칼을 지팡이 삼을 겸 한 놈의 목덜미에 푹. 그리고 일어나면서 옆으로 쓱.

열여덟.


또 단검이 날아왔다. 가죽 망토의 귀퉁이를 잡아서 쭉 펼쳤다. 단검은 잘 무두질된 늑대 가죽에 박혔지만 관통하지 못하고 코등이에 걸려 덜렁였다.


“뒈져!”


그새 또 덩치 하나가 뒤를 덮친다.

좁은 주점 구조라 뒤 잡히기 참 쉽구나.


바로 겨드랑이 밑으로 칼을 넣어 뒤편을 찔렀다. 단검을 막느라 망토를 한쪽으로 치운 덕에 중간에 걸리는 건 없었다.


목소리가 들린 위치로 키를 가늠해 칼끝을 심장 부위로 향했다. 부드럽게 살과 뼈를 파고드는 감각이 손 전체에 퍼진다. 열일곱.


근딜보단 원딜이 더 위협적이지?

나는 의자 하나를 들어 단검 투척 자세를 한 놈에게 힘껏 던졌다. 녀석이 이크 몸을 수그렸다.


내가 던진 의자의 뒤를 따라 홀을 가로지르면서, 술에 취한 채 덤벼드는 놈 둘의 배와 가슴을 베어 내장을 비어져 나오게 했다. 전투불능 확인. 열다섯.


태탱!


정면에서 날아오는 단검 둘을 칼을 대각선으로 기울여 검면으로 튕겨냈다.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 단검투척도적의 면상을 칼 손잡이 끝으로 후려갈겼다. 그대로 칼을 손 안에서 빙글 돌려 역수로 잡고 허리를 굽힌 녀석의 배를 푹. 열넷.


“으아아아! 이 새끼 죽여어어!”


아. 아직은 아니다.

놈은 배에 박힌 칼을 붙잡고 악을 썼다.


북부인들에게서 노획한 얇은 손도끼를 품에서 꺼냈다. 평소에는 주머니칼처럼 썼지만, 지금은-


퍼석!


-사람의 골통을 깨는 용도로 쓰기로 하자.


칼을 뽑으면서 그대로 수평베기. 가까이 다가온 붉은 칼날 조직원 둘이 팔과 손에서 피가 튀었다. 어딜 취한 상태에서 덤비려고.


“아악!”

“위에서 더 내려오라 그래!”


나는 테이블 하나를 덥석 잡아 계단 쪽으로 던졌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병과 잔이 바닥에 나뒹굴고 궤적에 있던 조직원들이 뒤로 물러섰다.


혼란을 틈타 손이 베인 녀석의 경동맥을 마저 베었다. 다음으론 팔이 베인 놈의 낭심을 걷어찬 뒤 낮아진 입에 푹. 열둘.


또 단검이 날아왔다. 아까처럼 망토를 이용해 막았다. 어떤 놈이야? 눈을 부릅뜨고 달렸다. 앞을 가로막는 놈 하나를 또 베었다.


“이, 미친! 켁!”


단검을 날린 놈이 등을 보였다. 나는 망토에 박힌 단검을 뽑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등에 칼이 박혀 넘어진 놈에게 얼른 뛰어가 확인사살.


“후.”


롱테이크 영화의 한 장면을 찍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숨 하나 차지 않았다. 근데 싸구려 칼인데도 신기하게 잘 드네. 요즘은 바빠서 잘 관리도 못했는데.


살아남은 놈들을 쓱 훑어보았다.


술 냄새는 피 냄새로 덮었고 아직 죽지 않은 두어 놈이 내장을 붙잡고 흐느꼈다. 2층 난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놈들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건물이 무협 객잔에서 나올 법한 가운데가 뚫린 구조였다. 어쩌면 이 난리는 건물이 언젠간 맞이했을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이, 이 미친 새끼. 이게 무슨 짓거리야!”

“쓰레기 청소.”

“왜! 씨발 왜 갑자기 쳐들어와서 지랄인데 미친 사냥꾼 새끼야! 우리가 너 건드린 적도 없는데!”

“있는데?”


있다고 하니까 악을 쓰던 녀석이 잠잠해졌다.

다른 녀석에게 뭐라고 말 좀 해보라고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지만 소용없었다.


“뭐냐 이게 지금?”


대신 위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곰이 사람 말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굵직한 저음이었다.


영화에서 악역으로 캐스팅하기 딱 좋은 목소리다. 실제로도 악역이었으니 세상은 참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한다 싶었다.


끼익 끼익


낡은 층계참이 묵직한 무게에 비명을 질렀다.


“대장!”

“이 새끼, 넌 뒈졌어!”


나를 안내한 꼬마가 ‘붉은 칼날 대장은 엄청 위험해요!’라며 계속 경고한 인물, 하워드.


보디빌더 대회에 나가도 될 법한 역삼각형 근육질 몸매에 얼굴과 팔에 가득한 흉터라. 참 조직 보스에 어울리는 외형이었다.


“야. 설명해.”

“그, 사냥꾼 놈인데. 갑자기 쳐들어와서 이 난립니다.”

“그래? 이게 미쳤나.”


맹수 같은 외모에 어울리는 맹수 같은 표정.

저절로 호기심이 든다. 붉은 칼날이라는 범죄조직을 이끌기 전엔 뭐 하는 사람이었을까?


외부 피난민? 아니면 카트라그 빈민가 태생? 어느 쪽이건 참 적성에 맞는 직업을 골랐구나 싶었다. 만약 지구였으면 좀 더 좋은 직업을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계단을 내려온 대장이 애매하게 세워진 채 계단에 기대어진 테이블을 밀어 치웠다.


“왜 이랬냐?”

“아기들 납치한다며.”

“고작 그걸로? 네 애도 아닌데 뭔 상관이지?”


붉은 칼날의 대장은 한쪽 눈을 찡그렸다.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한밤중에 여기저기에 조직원 우르르 풀어서 수거해오는 게 일반적인 납치는 아니잖아? 그것도 말도 못하는 애들을.”


거지에게 들려서 동정심을 유발하려고 납치한다기엔 카트라그 사람들의 인심은 박했다. 사람들도 빈민가 조직의 수법을 다 알기 때문이다.


“말해. 왜 그랬어?”

“흐흐흐.”


철그럭


그가 양손을 부딪쳤다.

솥뚜껑같이 큼직한 손에 두꺼운 건틀릿.


멋들어진 판금 장갑은 아니었고, 가죽장갑 위로 쇠사슬을 둘둘 만 형태였다. 방검장갑으로서의 기능은 나름 있어 보였다.


“뭐겠어. 돈이지 돈. 남의 애새끼 하나에 은화 한두 장이면 남는 장사 아니냐.”


근데 말이야, 하고 그가 말을 덧붙였다.


“우리 의뢰주께서 비밀을 엄수하라 하셔서. 어차피 우리 애들도 죽였겠다, 곱게 살아나가진 못할 거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곰이 돌진했다.

시야의 절반을 순식간에 먹고 들어오며 건틀릿을 내뻗는 녀석.


나는 뒤로 물러나면서 그 와중에 내 뒤통수를 치려던 붉은 칼날 조직원 하나를 베어 죽였다.


검을 허공에 휘둘러 새로이 발라진 피를 대장의 얼굴에 튀겼다.


“윽!”

놈이 눈을 깜박이면서 왼손으로 가드를 올리고 오른손으로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피를 튀기면서 들어올 거라 생각한 건가.

하지만 아니지!


“대장 다리!”


나는 손도끼를 던져 대장의 무릎을 노렸지만 부하들의 고자질에 아쉽게도 빗나갔다. 하지만 나는 애초부터 하나만 던질 생각이 없었다.


퍽!


“끄악!”


대장이 다리를 움직여 도끼를 피하기도 전에 품에서 새로 꺼낸 도끼를 반대편 무릎으로 날렸다.


역시 검술 도장에서 배운 기사 아저씨의 충고가 한몫했다.


-다리를 노릴 때 실패했으면 곧바로 반대편을 노려라. 한쪽 다리를 움직이면 다른 다리가 기둥처럼 고정되니까 피하기 힘들거든.


상대의 자세가 무너졌지만 나는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크악!”

“물러나! 악!”

“지금 대장이랑 싸우는 거 아녔어!?”


대신 부하 수를 줄이는 데 먼저 집중했다. 그러면서 간간이 대장에게 의자를 집어던져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다리 한쪽이 망가진 놈은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이, 개새끼야아아!!”


곰 같은 놈이 고통을 참고 기어이 몸을 일으켰다. 무릎에 박힌 도끼를 내던지고 눈을 부릅뜬 채 다리를 절면서 다가오는 게 정말로 상처 입은 짐승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해.


“이 새끼!”


후웅!

못 맞추는데.


“죽어라!”


나는 의자를 들어 마주 휘둘렀다. 강철 주먹이 의자를 박살냈다. 나무 파편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그 옆의 탁자를 방패삼아 들고 대장에게 밀어붙였다.


컥하고 억눌린 신음과 함께 나보다 머리 하나는 큰 덩치가 맥없이 뒤로 넘어가 탁자에 깔렸다.


“이, 개새-”


욕하지 마세요. 욕은 나쁜 거야.

나는 대장의 입에 칼을 깊숙이 집어넣고 지그시 눌렀다. 녀석은 켁켁거리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무시무시한 겉모습과는 달리 싱거웠다.


역시 짐승이나 사람이나 기동력부터 끊어내야 한다니깐. 무딘 벌목 도끼 하나로 뒷다리 힘줄 하나 끊는 것도 힘들던 곰보다는 사람이 훨씬 쉬웠다.


“대, 대장이 죽었어!”

“씨발 튀어!”


살아남은 조직원들이 도주를 시작했다.

나는 놓칠 생각이 없었다.


남은 잔당이 어딘가에 숨죽이고 있다가 예상치 못할 때 튀어나와서 방해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고 싶진 않으니까.


“으악!”


그때, 뒷문으로 막 빠져나가려는 조직원 하나가 문짝을 부수며 도로 튕겨 들어왔다.


“마빈! 거기 있냐!”

“살아는 있어?”


절그럭거리는 갑옷 소리와 낯익은 목소리들.


“경비아저씨들!”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애들이 신고했나? 아니면 빈민가 사람들?

마침 잘 됐다.


“거의 다 잡았으니까 튀는 것들만 잡아줘요!”

“알았다!”


1층은 포위되었고 밖으로 나간 몇 놈이 소란과 함께 잡히는 소리가 들렸다.


자, 이제 위층으로 가볼까.


다음 생은 부디 악한 기억은 잊고 선한 사람들로 태어나길.




***




“세상에.”

“이걸 다 혼자 했다고?”

“싸움 솜씨가 기사님들이랑 견주어도 되겠는데?”

“소문 못 들었어? 렌델 경이랑 대련할 때 막상막하래.”

“와, 진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비대는 낡은 주점의 홀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사방에 낭자한 핏자국과 시체들.


가끔 빈민가에서 생기는 조직 간 싸움에서 이런 꼴을 본 적은 있지만, 이걸 혼자서 만들었다는 게 믿기 힘들었다.


“야 이거 봐!”


한 경비대원이 소리쳤다.


“맙소사. 멧돼지 하워드잖아?”

“얘도 죽였다고?”


붉은 칼날의 우두머리이자 나름 빈민가에서 한가락한다는 싸움꾼 중 하나가 테이블에 깔린 채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콰장창!


“으아아아!”


홀 위쪽, 2층 내부 발코니에서 누군가 쿵 떨어졌다.


“어금니다!”

“살아 있다! 묶어!”


무협 영화에서처럼 탁자를 부수고 나뒹구는 놈은 붉은 칼날의 부대장인 어금니라는 별명을 가진 녀석이었다.


“마빈 괜찮냐?”

“네! 위에는 다 처리했어요!”


마빈은 난간 아래 경비대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한 스물 정도 되니까 치우실 때 고생 좀 할 거예요!”

“......어. 그래.”


피칠갑이 된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실실 웃으면서 말하는 마빈의 모습에 경비대원들은 팔에 소름이 돋아났다.


친근한 녀석이 갑자기 너무 멀게 느껴졌다.


마빈은 주점 카운터로 내려와 진열되어 있는 싸구려 술들을 개봉해 손과 얼굴을 씻었다.


“후.”


목표를 완수하여 개운했고 다른 이에게 웃어도 보았지만, 눈매는 여전히 굳어 있었다.


‘아직도 기분 나빠.’


밖에서 붉은 칼날의 본거지 건물을 바라보았을 때 느낀, 코앞에서 모욕을 받는 것만 같은 불쾌감.


왜 이러지?


바쁘게 뛰어다닌 몸에 휴식도 줄 겸 잠시 앉아 있는데, 마빈의 밝은 귀에 경비대가 소곤거리는 잡담이 들려왔다.


“근데 이놈들 갑자기 웬 미친 짓이지?”

“그러게. 걷지도 못하는 아기만 강탈하다니.”

“구걸할 때 동정용으로 쓰려던 거 아냐?”

“요즘 누가 그런 거에 적선하냐?”


“그럼 왜지? 무슨 흑마법 제물로 쓰려는 것도 아니고.”

“야,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마. 도시에 흑마법사라도 들어왔단 얘기냐?”

“아니 말이 그렇단 거지.”


마빈의 눈이 번뜩였다.


‘흑마법이라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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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24.09.13 424 16 13쪽
38 38화 24.09.12 491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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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1 24.08.31 892 3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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