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Grawingen
작품등록일 :
2024.08.08 14:31
최근연재일 :
2024.09.18 19:2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43,019
추천수 :
1,663
글자수 :
249,485

작성
24.09.01 11:20
조회
881
추천
34
글자
12쪽

27화

DUMMY

카트라그의 성당은 도시 사람들에게 특별한 곳으로 취급되었다.


대성당이라 부를 정도까진 아니지만 제법 규모가 있다는 것, 언덕 위에 있어 모두가 볼 수 있는 위치라는 점, 대재앙 당시 도시 곳곳이 난장판이 되고 시장 저택까지 함락되는 와중에도 이곳만은 끝끝내 지켰다는 상징성까지.


그런 곳이 지금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물! 물 더 가져와!”

“안 돼, 성당이!”


사람들은 자기 집이 타는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계속해서 물을 끼얹고 있었지만 이건 일반적인 불길이 아니었다. 악마가 봉인을 깨기 위한 과정에서 생긴 사악한 현상이었다.


그 증거로 이렇게나 이글거리는데도 연기는커녕 그을리거나 무너지는 부분 하나 없었다.


“이걸 어찌 하나......”


오리얀트 시장은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불길을 뚫고 성당으로 들어간 메이헌 사제의 등이 아직도 눈에 훤했다. 제발 사제님이 무사하셔야 할 텐데!


“시장님! 여기 계셨습니까!”


저 아래에서부터 빈민가로 파견된 기사들이 바삐 올라오고 있었다. 온통 피로 범벅된 기사들 사이로 복장이 다른 소년이 눈에 띄었다.


“왔는가? 빈민가는 어떻게 되었나?”

“흑마법사는 모두 처리했습니다. 헌데 무슨 일입니까? 성당에 불이라니요.”

“설마 빈민가 조직 놈들의 짓입니까?”


시장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 밑에 악마가 있고 메이헌 사제가 놈을 막기 위해 들어갔다고.


그 말을 들은 마빈의 눈이 번득였다.


악마.


이 세상의 적.

세계를 침탈하려는 침략자.

약자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악독한 괴물.


성경은 물론이고 세간에 퍼진 악마에 대한 수많은 전설들은, 악마는 인세에 사는 모든 지적 생명체들의 적이라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이는 대재앙 증명되었다. 이제는 한낱 전설이 아니라 실제 역사로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게 저 밑에 있다고?’


성당 밑의 악마라.


그 독특한 단어의 조합에 전생에 해보았던 게임이 떠올랐다. 그때 도끼 휘두르는 야만전사로 자주 즐겼었는데.


도시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화끈한 모험의 기회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숨어 있을 줄이야!


마빈이 불길에 휩싸인 성당으로 다가갔다.


“마빈, 뭐하는 거냐?”


환상 마법에 당해서 그런지 다소 지쳐 보이는 렌델이 뒤에서 불렀다.


“사제님을 도와드리려고요.”

“뭐? 기사도 아니고 신성력도 못 쓰는 네가 뭘 어떻게 하겠다고? 얼른 물러나라. 다쳐.”


마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심상 세계를 살피고 온 뒤 깨달았다.

내 심상이 이렇게나 빈곤했구나.


황무지의 휑한 광경은 가구도 뭣도 없이 텅 빈 방을 보는 것처럼 무언가를 채워 넣고 싶도록 만들었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욱 열심히 활동해야겠지. 그 어떤 위험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게 뭐건 간에 마음속의 공허함을 마주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마빈이 물통을 뒤집어 물을 끼얹고는 주저하지 않고 새빨간 불꽃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귓가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달구어진 공기에 뻑뻑해진 눈을 깜박이며 성당 안을 살폈다.


지하창고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예배당으로 통하는 정문을 제외하면 다른 문은 꼭 닫고 다니는 메이헌이 저렇게 문을 열어놓을 정도로 급했단 것이겠지.


지하실로 향한 마빈의 눈에 술통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는 게 보였다. 평소 술통이 쌓여 있던 곳에는 작은 문 하나가 있었다.


그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마빈에게 봄날의 따스함이 쏟아졌다.


메이헌 사제가 몸에서 빛을 뿜으며 굵고 튼튼한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된 문 앞에 서 있었다.


신성력으로 만들어낸 반투명한 장벽 너머로 피부를 따끔하게 찌르는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다.


떠돌이 사제와 흑마법사에게서도 느꼈던, 하지만 그보다 몇 배는 더 노골적인 흑마력. 악마의 힘을 빌린 게 아니라 진짜 악마의 힘이었다.


쩌저적


한계가 온 건지, 봉인을 이루는 쇠사슬이 가닥가닥 쪼개져 떨어지고 있었다. 쇠사슬이 조각날수록 밖으로 비어져 나오는 흑마력은 점점 강해져 갔다.


“......!”


마빈의 마음속이 한 차례 요동쳤다.


심장의 뒤편을 망치로 두드리며 위쪽으로 치고 올라가는 느낌과 함께, 한없는 따스함과 청량감이 마빈의 몸을 가득 채웠다.


‘이건, 신성력이잖아?’


메이헌 사제가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걸 보았을 때 느꼈던 힘이자 천사님에게서 느껴지던 힘.


신성력은 신실한 사람한테 주신이 내려준다고 했다. 하지만 마빈은 천사님이 고맙기는 하지만 양심적으로 생각하면 그다지 독실한 신자는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천사님이 나랑 함께하는 거야!’


“마빈? 얼른 나가요!”


뒤늦게 메이헌이 마빈의 존재를 눈치 채고 외쳤다.


“걱정 마세요 사제님. 도와드릴게요.”

“뭐? 이건 형제님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쨍!


세월이 흘러 약해져서일까? 악마의 기운은 기어이 봉인을 뜯어내고 말았다.


덜컹!


사제의 신성력이 밀려나며 문이 활짝 열렸다.


왜일까. 분명 사악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곳인데도 위험하다는 생각보단 얼른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정말 위험을 잘 못 느끼는 정신병이라도 있는 건지.


‘아무렴 어때.’


마빈은 옛적에 결심했던 대로 행동했다.

마음 가는 대로!


불끈거리는 허벅지를 느끼며 돌바닥을 박찼다. 신성력으로 이뤄진 안락한 곳을 벗어나 사악한 기운이 감도는 악마의 공간 안을 향해.


쿵!


들어오기 무섭게 사냥감을 가두는 함정처럼 문이 도로 닫혔다. 무슨 밤송이로 가득 채운 구덩이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사방을 장악한 악마의 기운이 피부를 따끔하게 찔러댔다.


[어머나, 귀여운 꼬마 손님이구나.]


갑자기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헐벗은 여인이 나타났다.


“우웩 징그러.”


그러나 마빈의 눈은 허상 너머, 거대한 촉수가 뭉친 괴물을 보고 있었다. 웬 말미잘이야?


마빈이 검을 뽑았다. 북부인 용병 데릭손에게서 얻은 전리품이 부러진 첫 번째 전우를 대신해 서늘하게 빛났다.


[뭐? 귀엽게 생긴 녀석이 버릇이 없구나. 이 누나가 혼내주......]


악마는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마빈의 검이 환영의 팔을 훑었다. 같은 위치에 있던 분홍색 촉수가 잘려나가며 푸른 안개를 내뱉었다.


[이노오오옴!]


환영이 사라지며 석실 중앙을 차지한 촉수 덩어리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촉수 하나하나가 길게 늘어나며 소년을 붙잡으려 들었다.


마빈은 몸을 비틀어 피하며 반격을 가했다. 눈살 찌푸려지는 소리와 함께 촉수가 썩둑썩둑 잘려나갔다.


‘어우, 손맛 좋은데?’


칼날에 적당히 걸리는 육질과 경쾌한 파육음.


짐승이나 사람을 벨 때보다도 좋은 떨림이 고스란히 손과 팔을 타고 흐르며 감각신경을 전율케 했다.


살육이라기보다는 요리재료를 손질하는 듯했다. 만일 이곳이 부엌이었다면 도마 위를 노니며 도도독하는 소리를 즐겼을 느낌이었다.


감탄도 잠시. 마빈은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촉수를 피하느라 얼른 뒤로 빠져야 했다.


지금은 희미해진 바닥의 악마 봉인진을 밟으며, 소년은 기상천외한 각도로 뒤틀어 들어오는 촉수들을 용케 피해냈다.


‘으아아아, 이게 몇 개야!’


일반적인 생명체는 선보일 수 없는 촉수들의 기괴한 움직임에 기겁하면서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팔다리.


머리가 아니라 척수반사적으로 판단하여 움직이는 버릇이 아니었더라면 진작 큰일이 났을 것이다.


수십 개의 촉수가 바닥을 뒹굴 즈음.


“헉, 허억.”


마빈의 숨소리가 슬슬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너무 많이 움직여서라기보단 사방을 채운 흑마력 탓이었다.


검은 연기를 내뿜는 공장 굴뚝에 머리를 디민 것처럼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몸이 무거워졌다.


[솜씨는 좋지만 언제까지 버틸지 보자!]

‘앗!’


잘려나간 촉수 하나가 발목에 엉겨 붙어 회피를 방해했다. 곧바로 찔러 털어냈지만 그 틈에 촉수 하나가 마빈을 강타했다.


쿵!


급히 칼을 들어 막았으나 충격을 모두 막아내기에는 무리였다. 석실 벽이 거칠게 나뒹군 소년을 받아냈다.


망치로 후려친 듯한 알싸한 고통이 등을 타고 흘렀다. 마빈은 입술을 앙다물고 일어났다.


[흐흐흐, 첫 제물이 이리 싱싱하다니.]


느릿하게 공간을 점유하며 다가오는 악마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네놈을 집어삼키고 이 일대를 내 영역으로 만들어주마!]


심상 세계에서 들었던, 사악한 음성이 뇌를 징징 울렸다. 그러나 마빈은 악마의 목소리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다리를 건드려?’


빠득


다리는 그에게 심장과도 같았다.

또다시 그걸 잃는단 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다.


죽는다 한들 다리는 멀쩡하게 죽고 싶었으며 잡아먹힌다 한들 다리는 맨 나중에 먹어줬으면 싶을 정도로.


살아남아 다리를 보전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눈앞의 악마 놈을 족쳐야 한다. 그런 강렬한 의지가 마음속 깊이 뻗어나갔다.


의지의 손길이 심상 세계의 태양까지 닿자, 심상 세계를 비추던 햇빛이 한층 강해졌다. 맑은 폭포수 같은 천상의 힘이 안에서 콰르르 차올랐다.


사막 한복판에서 떠돌던 조난자가 끝끝내 버티다 물 한 모금을 머금는 것처럼, 생겨난 상처가 사르르 사라지며 활력을 되찾았다.


‘어떻게 상대할지 대충 알 것 같아.’


마빈은 수많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처럼 휘몰아치는 촉수들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한겨울 보육원의 어느 날이었다.


90년대, 한적한 지방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보육원의 사정은 그다지 좋진 않았다. 종교단체의 후원이 있어도 외딴 곳까지 모두 풍족하게 재원이 가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날은 함박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도시가스가 아니라 기름보일러를 쓰던 보육원에 하필이면 기름이 떨어져 버렸다. 폭설로 길도 끊긴 상황. 보육원 사람들 전부가 이불을 덮고 펭귄처럼 붙어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밤을 지내야 했다.


그 와중에도 다른 이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다.

이불을 뺏겨 나동그라진 다리 없는 소년.


유일하게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 보육원의 원장님과 딱 붙어 추운 겨울밤을 견뎌내야 했다.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차가워 쉽사리 잠들지 못하던 밤, 소년은 냉골이 된 원장실의 창문 너머로 보이던 나뭇가지를 하염없이 응시했었다.


무심한 달빛을 배경으로 무성한 가지를 가차 없이 흔들면서 창문 틈새로 흐느끼던 한겨울의 삭풍.


그 바람을 머금은 나뭇가지를 움켜쥐었다.


다른 날보다 유달리 차가웠던 그때의 겨울바람이 섞여 들어간 비단폭이 마빈의 머릿속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쉬익!


칼날의 궤적이 반원을 그렸다.


살점은 물론이고 마음의 한 귀퉁이마저 떨어져나갈 것 같은 매서운 검격이 촉수 세 개를 단번에 날렸다.


그 어떤 틈이건 파고드는 바람처럼, 칼날의 각도를 미세하게 조정해 가며 촉수의 사이사이를 파고들었다.


뭐든지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어깨에서 흔들거리는 늑대 머리와 허리의 검집을 균형추로 삼아 촉수를 회피했다.


창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귀곡성을 내지르는 바람처럼, 살점 가지의 숲을 헤치며 석둑석둑 노래했다.


마빈이 처음으로 표출한 자신의 심상은, 과거의 한이 깃든 슬픈 바람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모험이 좋은 사도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5 45화 NEW 12시간 전 103 5 13쪽
44 44화 +1 24.09.17 202 10 13쪽
43 43화 +2 24.09.16 262 13 12쪽
42 42화 24.09.15 319 13 12쪽
41 41화 +4 24.09.15 329 16 11쪽
40 40화 24.09.14 385 14 13쪽
39 39화 24.09.13 424 16 13쪽
38 38화 24.09.12 491 21 12쪽
37 37화 +1 24.09.11 545 24 14쪽
36 36화 +2 24.09.10 622 34 11쪽
35 35화 +1 24.09.09 687 27 12쪽
34 34화 +3 24.09.08 721 36 13쪽
33 33화 +1 24.09.07 718 35 12쪽
32 32화 24.09.06 739 31 13쪽
31 31화 +1 24.09.05 830 29 12쪽
30 30화 +1 24.09.04 848 29 11쪽
29 29화 +1 24.09.03 871 32 11쪽
28 28화 +1 24.09.02 879 29 12쪽
» 27화 +1 24.09.01 882 34 12쪽
26 26화 +1 24.08.31 892 33 12쪽
25 25화 +2 24.08.30 904 35 12쪽
24 24화 +2 24.08.29 926 40 12쪽
23 23화 +1 24.08.28 927 35 13쪽
22 22화 +2 24.08.27 929 40 13쪽
21 21화 +4 24.08.26 977 40 12쪽
20 20화 +2 24.08.25 969 41 13쪽
19 19화 +2 24.08.24 984 39 12쪽
18 18화 +1 24.08.23 1,013 41 13쪽
17 17화 +1 24.08.22 1,045 38 12쪽
16 16화 +2 24.08.21 1,070 43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