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않은 손님
“지금, 우리가 농담하러 온 줄 아는 겁니까?”
도진의 선언에 가장 먼저 화를 낸 것은, 다름아닌 검증단의 단장이자 참의원인 후지타 미치코였다.
“이 자리에 모인 과학자들은 일본에서도 가장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검증할 능력이 없다며 회피할 생각 말고, 은하컴퍼니는 똑바로 검증에 응하십시오!”
도진의 말에 진심으로 분노한 듯, 영어로 더듬거리며 말하는 그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시뻘개졌다.
하지만, 도진은 분노한 후지타 앞에서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피하려는 게 아니라, 현실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말장난하지 말고······!”
“그럼, 저랑 내기 한 번 하시겠습니까?”
고함을 치려던 후지타의 말을 끊은 다음, 도진은 우주공항 뒤에 위치한 우주선을 가리켰다.
“저 우주선.”
“···뭐요?”
“저희 공단을 견학하면서 단 하나라도 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저 우주선을 일본에 양도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단순히 작동되는 걸 확인하는 게 아니라, 그게 어떻게 작동되는지까지 파악하는 조건에서요.”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그가 조금 전 꺼낸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후지타는 눈을 끔뻑이며 재차 물었다.
도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진심입니다. 원한다면 계약서라도 써드리죠.”
“그렇다면 당연히······!”
“단.”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덥석 잡아채려던 후지타를 향해, 도진은 검지손가락을 까딱였다.
“검증에 실패할 경우, 약속한 우주선 탑승은 없는 거로 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도진이 내건 조건을 듣자마자, 후지타는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도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단돈 5억엔으로 달과 지구를 오갈 수 있는 우주선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 정도면 나쁜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달은 커녕 지구궤도에 작은 위성 하나를 올리는 데에도 수백 억엔은 우습게 깨진다는 걸 생각하면, 5억엔이란 돈으로 착륙과 재이륙이 가능한 장거리우주선을 얻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실패한다면······.’
후지타가 걱정하는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만약 검증에 실패해 우주선에 탑승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총 5억엔을 주고 구입한 우주선 티켓은 종이조각에 불과해지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아무런 성과도 없이 본국으로 돌아간다면, 언론과 정치권에서 어떻게 자신을 두들겨 팰지는 뻔한 일이었다.
어쩌면, 계파경쟁에서 밀려 참의원 자리조차 보전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소한, 후지타 혼자만의 계산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일단 상의를 좀 해봐야겠소.”
그 말과 함께, 후지타는 몸을 돌려 검증단, 정확히는 검증단에 소속된 과학자들에게로 향했다.
그의 시선이, 과학자들 중 가장 윗사람이라 할 수 있는 동경대 석좌교수 코바야시 켄지 에게로 향했다.
“코바야시 교수님, 조금 전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으음······.”
후지타의 물음에, 코바야시는 고민하며 다른 학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들 또한 다른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정확히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 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들 같은 생각인가보군요.”
“교수님, 그게 무슨······.”
“지금 여기 나온 사람들의 수준으로는 원리까지 검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소.”
“정말···단 하나도 말입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코바야시의 말에, 후지타는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에, 코바야시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하나 정도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소. 상온초전도체라면 이미 초전도성을 발현하는 걸 확인했으니 말이오. 저 쪽에서 장비만 제공한다면 가능성은 있을거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후지타는 몸을 돌려 도진을 바라봤다.
그가 도진에게 내놓을 답은 정해져있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결과는 똑같단 말이다.’
물러나거나, 실패하거나. 라는 선택지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검증에 성공해 눈 앞의 우주선을 일본의 손에 쥐어주는 것.
그 것만이, 후지타의 참의원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조건을 따르겠소.”
“용기있으시군요, 좋습니다. 그럼, 저희를 따라오시죠. 공단 전체를 둘러보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테니까요.”
그 말에, 도진은 미소를 짓고는 아리아와 함께 일본의 검증단을 안내했다.
곧, 도진의 머릿속에 아리아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안내자님도 장난이 심하시네요.
‘뭐가?’
-저들이 해낼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으시잖아요? 현 지구의 기술로는 원리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텐데.
그 말에 대한 도진의 답은 명쾌했다.
‘난 제안을 했을 뿐이야. 저들은 받아들였을 뿐이고.’
그리고, 그들은 제안을 받아들인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었다.
***
사흘이 지났다.
그 긴 시간동안, 일본에서 온 검증단은 도진과 은하컴퍼니가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기술들을 검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장비라면 은하컴퍼니에서 뭐든지 제공해주었으니 환경은 완벽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대체···어떻게 만들어낸거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군요.”
“···말도 안 돼. 이게 대체 어떻게 작동하는 거지?”
이 좋은 환경에서 연구자들의 모든 능력을 쏟았음에도, 그들은 은하컴퍼니의 기술들이 어떤 원리로 동작하는 것인지 도저히 알아낼 수 없었다.
“···하나는 확실하군.”
“확실하다면······.”
물리학자인 사토 유키의 물음에, 코바야시 켄지는 상온초전도체 샘플을 가리키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건 우리가 아니라, 미국의 연구자라도 알아내지 못할걸세.”
“네?”
“이건···사실상 지구의 기술수준을 뛰어넘은 물건들이야. 그 것도 몇 단계나 말이지. 지구의 기술로 만들어진 거라면 최소한 지금의 기술과 접점이 있어야하는데···그런 걸 전혀 찾을 수 없어. 자네도 느끼지 않았나?”
“그건······.”
사토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주 전공이라 할 수 있는 핵융합이었지만, 은하컴퍼니가 주장하는 상온핵융합이란 건 대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도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단순히 상온초전도체의 존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 나노단위의 다중분자제어기술이 있다면 모르겠지만···지금 지구에서 그 정도 연산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할 리 없어.’
하지만 정작 그가 확인한 상온핵융합로는 누가 보더라도 멀쩡하게 전기를 생산하고 있었으니, 그의 입장에선 귀신이 곡할 노릇일 수밖에 없었다.
원리를 알아내지 못한 건 다른 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안 될 것 같소.”
“교수님, 그러면······!”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소?”
“교수님······!”
당황한 후지타가 닥달했지만, 돌아온 것은 공포에 질린듯한 코바야시의 표정이었다.
“이건 지구의 기술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에요. 외계인이 주었건, 신이 내려준 것이건, 아니면 악마랑 계약을 했건······”
“······.”
“아무튼, 우린 최선을 다했소. 5억엔을 배상하는 문제는 돌아가서 이야기합시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는 코바야시의 대답에, 후지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도진이 그들을 향해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 한 쪽 입꼬리를 올린 그의 표정이 후지타는 얄미워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검증은 실패했으니, 마음대로 하시오.”
이미 계약서까지 작성한 이상, 후지타가 도진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그 것뿐이었다.
“이런, 아쉽게됐네요. 조금만 더 힘내셨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는데.”
“크윽······!”
“그럼, 약속대로 우주선 탑승 일정은 취소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환불은 안 되는 거, 알고 계실거라고 믿습니다.”
대놓고 놀리는 듯한 도진의 장난스런 미소에 후지타는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도진을 주먹으로 후려칠 것도 아닌 이상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할 수는 없었다.
만약 주먹을 휘둘렀더라도, 튜토리얼 시스템의 보호를 받는 도진의 육체에 해를 입히진 못했겠지만 말이다.
“뭐, 그래도 아쉬운대로 발사장면이라도 보고 가시죠. 우주선이 정말로 발사가 가능한지도 검증하셔야죠?”
약올리듯 툭툭 내뱉은 도진의 말에, 검증단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전부였다.
***
콰아아아-!
결국, 일본의 검증단은 은하컴퍼니의 우주선, 스타쉽 베타의 이륙장면을 확인한 다음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은 이번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말입니다.”
“저희를 기억해주신다니 영광이네요. 감사합니다.”
후지타의 분노에 찬 목소리 앞에서도 도진은 생글생글 웃기만 할 뿐이었으니, 그는 결국 아무런 소득도 거두지 못하고 차에 몸을 실어야만 했다.
“어차피 본국으로 돌아가면 이 쪽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을텐데, 뭐하러 저런 말을 덧붙이는지 모르겠어요.”
“저런 말이라도 안 하면 속이 터질 거 같아서 그렇겠지. 아마 돌아가면 진짜 터질지도 모르겠지만 말야.”
멀어져가는 버스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는 아리아의 말에, 도진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보다, 슬슬 공장을 늘려야 할 거 같아.”
“음, 전자기역장 발생장치 말씀이시죠?”
“그래. 슬슬 방산쪽에 진출해야 할 때가 왔어.”
방위산업.
즉, 무기나 방어장비를 만드는 산업에 손을 뻗겠다는 말이었다.
‘우선순위가 조금 밀리긴 했지만, 결국 목적을 달성하려면 필수적인 요소지.’
도진이 지구의 문명발전속도를 비정상적으로 높이는 것은, 오직 10년 뒤에 찾아올 외계인과의 조우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때가 왔을 때 외계인의 노예나 우주를 떠도는 난민 신세가 되고 싶지 않다면 기본적인 무기기술의 연구는 필수였다.
전자기 역장은, 그 중 방어적인 부분에 초점을 둔 것이었고 말이다.
“이 나라에선 자체적인 사병을 꾸리는 게 쉽지 않을텐데요. 그렇다고 저희가 직접 군대를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건 방법이 없진 않으니까, 일단은 장비연구와 생산에 집중하는 게 좋겠어. 그러니까, 저기 빈 땅에 적당한 규모로 공장을······.”
도진이 도로 옆의 빈 땅을 가리키며 설명하던 그때였다.
“응?”
부우웅-!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 세단을 확인한 도진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아리아를 바라봤다.
“따로 손님이 있을거란 연락은 받지 못했어요.”
“그러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란거네.”
“어떻게 할까요?”
“얼굴은 보는게 좋겠지.”
도진과 아리아가 다가오는 세단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세단은 어느새 둘의 바로 앞에까지 다가왔다.
끼익-!
곧, 멈춰선 세단의 뒷문이 열리면서 회색 정장을 빼입은 금발머리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봐도, 한국 사람은 아니었다.
“반갑습니다, 권도진 대표님.”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걸음에 도진의 앞까지 온 그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입을 열었다.
“전 주한미국대사관의 정무참사관인 존 배내커라고 합니다.”
“주한미국대사관이라, 어쩐 일이시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내민 손을 마주잡은 도진의 물음에, 존은 유창한 한국어로 짧게 대답했다.
“권도진 대표님께, 미국으로의 귀화를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흠.”
이어진 도진의 대답 또한, 그리 길지는 않았다.
“굳이요?”
순간, 존 배내커의 몸이 움찔했다.
- 작가의말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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