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발해국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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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아르
작품등록일 :
2024.08.1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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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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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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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기 5화. 그걸 해결해도 소용이 없다.

DUMMY

-


철기가 다 닳기 전의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


백단은 이 한겨울, 추위에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표사들에게 무공을 가르치라고 명했다.


“모두 가부좌를 틀어라.”


모든 일반인은 가주좌를 틀고수인手印(선정인)을 취했다.


백단은 표사들을 위시爲始로, 앞에서 그들에게 역근세수경의 구결을 가르쳐주었다.


“너희는 지금부터 나의 역근세수경을 배운 다음 황보세가의 내공심법을 익힌다.”


역근세수경은 신체를 닦고, 개선하는 외공에 가까운 토납법.


기를 쌓는 효율 자체는 느리지만 신체를 강건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더욱이 이를 잘 갈고닦으면 백단처럼 준準 공령지체에 오를 수 있다.


‘뭐, 그건 나만 가능했던 거지만.’


물론 그것은 백단의 세계관(사고방식)이 달랐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특수한 경지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유명한 달마도 역근세수경을 배웠던 무공 고수(···?)였던만큼 속도는 느릴 뿐 성장 역치 자체는 높았다.


그는 역근세수경으로 먼저 그들에게 기를 깨치고 만들고 신체라는 토대를 단단히 만들 생각이었다.


“자, 모두 내가 알려준 구결대로 호흡해라. 표사들은 각각 두 명씩 맞아 그들에게 진기도인을 해주거라.”


“예.”


200명의 남성, 여성들이 그가 가르쳐준 구결대로 호흡하기 시작했다. 표사들은 그들 사이에서 양손을 두 사람의 등에 대고 진기도인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허공의 기가 미비하지만, 유동하기 시작했다.


“호?”


초절정에 오른 백단은 그것을 기감으로 감지하고 흥미롭다는 탄성을 내뱉었다.


‘과연, 200명이나 되는 사람이 한꺼번에 좁은 장소에 내공심법을 운용하면 천지의 기가 유동하는구나!’


천지의 기는 마치 바닷물과 같다. 거대한 파도가 치기도 하고, 때론 홍수가 난 강처럼 거세게 흐르기도 한다.


이는 매우 큰 강과 같다. 그런 강에 하나의 돌(한명의 인간)을 던진다고 약간의 파문만 일뿐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돌들이 쌓여 댐을 만드는 것처럼, 200명의 인간이 좁은 장소에서 호흡하니 천하의 기에 비해선 티끌과도 같은 작은 파문이나, 인간 개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꽤나 유의미한 유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 내공심법은 일종의 자기 개선이다. 스스로 기를 깨우치고 천하의 한조각임을 자각하며 자연지기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무공.


그런데 개인이 다수가 되니 천하의 기가 움직인다. 마치 수많은 작은 의지들이 모여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수의 의지가 모여 거대한 힘을 이룬다라···.’


어떤 깨달음과 같은 것이 백단의 머리를 스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어? 방금 기를 느낀 것 같습니다!”


“응? 뭐라고?”


머릿속의 깨달음이 흩어지며 백단이 당황하며 인파를 바라봤다. 그곳에선 한 중년의 남성이 매우 적지만, 분명히 기를 다루며 내공심법을 운용하고 있었다.


“허···. 참으로 빠르구나. 너는 재능이 있는 모양이야.”


“그런가요?”


“그럼! 그렇고말고! 기를 깨치는 건 그리 쉬운 게 아니다.”


“나에게 무공의 재능이···.”


중년의 남성이 묘한 표정으로 제 몸을 훑으며 만지작거릴 때 백단은 묘한 표정을 바라보며 중년의 남성을 바라봤다.


‘이상한데. 이렇게 빨리 기를 깨우친다고?’


저 남자가 재능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기를 깨우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곧 자연지기가 200명의 일반인과 무림인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 200명이 내공심법을 운용하고 100명의 표사들이 진기도인을 해주니 반경 수미터의 기가 그들에게로 집약되고 있다.


‘과연 그렇게 된 거로구나.’


지금 저곳은 다른 곳보다 기의 밀도가 월등하게 높았다. 저곳은 지금 일시적인 자연지기의 저수지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무공은 다수가 함께 배울수록 더 빨리 익히는 걸지도 모르겠구나.’


거기다가 그뿐만이 아니라 평소 그들은 표사들에게 진기도인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기를 한번 경험해보기도 했으니 더 빨리 익힌 거군.’


절대다수가 고뿔에 걸렸었고, 무공의 도움으로 이겨낸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기를 경험했고 기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자각하고 있었다.


“어! 저도 기를 느꼈습니다!”


“저도 느꼈습니다!”


“캬! 이게 기로구나!”


그렇게 줄줄이 기를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그리고 채 일주일도 안되서 그들 모두 기를 깨우쳤다.


200명의 일반인들이 단숨에 기를 다루는 삼류 무인으로 승극한 것이다.


“······.”


몇 년이 넘도록 기를 느끼지 못했었던 백단은 그들을 보며 왜인지 모르겠으나 속이 쓰렸다.


‘시발. 나는 5년이 넘도록 기를 못 느꼈는데.’


어째서인지 패배감을 느낀 백단은 배가 아팠다.


-


아무튼 그렇게 기를 익히자 그들은 추위에 쉽게 저항하고 고뿔 정도는 손쉽게 몰아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의외의 효과도 나타났는데 그런 바로 노동력의 향상이었다.


“읏차!”


“아니, 자네 바위를 어찌 그리 손쉽게 드나?”


“이게 다 내공을 써서 그런 거 아니겠나? 자네도 황보세가의 심법을 운용해보게!”


“오오? 과연! 그 큰 바위가 손쉽게 들리는구나!”


기를 다룰 수 있게 되자 그들은 평균 성인 남성 이상의 괴력을 발휘하며 모든 일에 능률이 상승한 것이다.


한명한명이 기를 다루니 일개 개인이 너댓명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곧 그들은 넘치는 활력과 덜해진 추위에 백단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표국주님 말일세. 사실 좋은 분이 아닌가? 나는 평생 무공 따위 배울 일 없을 줄 알았는데.”


“그러게, 말이야. 설마 우리에게 무공을 가르쳐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암. 누가 이리 쉽게 무공을 가르치게 두겠나?”


무공은 의외로 기득권이 독점하고 있는 초능력에 가까웠다.


아무리 속가제자를 받는다고 해도 돈을 받고 가르쳐주는 것이 무공이다.


그러고도 배울 수 있는 무공은 한정되어있다. 제대로 된 비전 무공은 대부분 가문의 직계에만 알려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때문에 평범한 일반 백성들은 평생을 무공을 배우지 못한다. 익히려야 익힐 수 있지만 그래봐야 글도 모르는 그들이 스승 없이 자력으로 무공을 성취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백단은 무공을 과감하게 그들에게 풀었고 표사들이란 스승까지 붙여준 것이다.


그것도 고작 추위를 이겨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거기에 그들은 강해지기까지 했다.


본디 강함이란 중독성이 있다.


더 강해진 근력, 더 활력 넘치는 몸, 병마를 이겨낼 수 있는 신체는 그들이 어제 자신보다 나아졌음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였다.


그들은 나날이 강해지는 자신에 중독되었다. 이는 곧 백단에 대한 칭송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생각해봐. 사실 따지고 보면 표국주님이 일을 제일 많이 하시잖아?”


그리고 백단은 그들 중 가장 솔선수범해서 식량을 구해오고 있었다. 거기다 직접 삼매진화로 소금을 구워 한솥 가득 이고 오기까지 했다.


그는 300명이나 되는 인원의 식食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대로 정말 수많은 산짐승과 어류들을 사냥해온 것이다.


그들은 비록 고기와 물고기 밖에(?) 못 먹고 있었지만, 배를 곯는 일은 없었다.


“표국주님은 사실 괴팍할 뿐, 속은 우리를 생각하시는 게 아닐까?”


“역시 표국주님! 우리를 아무 생각 없이 이곳에 데리고 왔을 리가 없다니까!”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그들은 모두 기를 다룰 줄 알게 되었고, 곧 사물에 기를 흘려 넣는 이류 무인들마저 나오기 시작했다.


거기에 백단이 하도 짐승들을 사냥해오니 생가죽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곧 원시적이나마 모피 옷들이 잔뜩 만들어졌고 의衣는 그들 사이에서 완전히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점점 백단에 대한 평가가 수직상승할 때, 그가 그들을 불러 모아 명했다.


“너희도 이제 기 다룰 줄 알지? 돌을 자르고 옮겨라.”


“예?”


“돌 자르라고.”


“······.”


“너희들 모두 이제 기를 다루는 삼류 무인에 몇몇은 이류 무인이라지? 그럼 더 일해야지.”


백단은 늘어난 노동력을 결코 놀릴 생각이 없었다.


“너희도 내 집 마련을 하려면 열심히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 자 어서 표사들과 함께 땅을 파고 일하렴.”


백단은 다시 악마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


그렇게 의衣의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여전히 주住의 문제가 남아있었다.


백단은 주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와중 무림인의 효율적인 사용법(?)에 알게 되었고 곧 그들을 공사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너희는 지금부터 땅을 파 도로를 만들고 집을 지을 부지를 다진다.”


“예···?”


표사들은 난데없는 백단의 명령에 당황해했다.


“저희보고 지금 토목에 뛰어들란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아니, 이런 말씀은 없으셨잖습니까!”


표사들은 백단의 명에 격렬하게 반항했다.


“표국주님께서 저희에게 저 천것들에게 무공을 가르치라 할 때 말씀하셨지 않았습니까?! 저희가 집을 짓기 싫으면 무공을 가르치라고!”


―――그렇다.


백단이 표사들에게 무공을 가르치라고 명할 때 내세웠던 명분은 바로 그들이 ‘공사판에 뛰어들기 싫으면 무공을 가르쳐라.’ 였다.


표사들도 자신들이 문명의 이기를 영위하며 살려면 그들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어쩔 수 없이 무공을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무공을 가르쳤는데 이제 와서 뭐라고?


“맞습니다! 저희는 무공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저희가 공역을 해야 하는 겁니까?”


“왜냐하면 너희가 공사에 합류하면 일의 능률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백단은 그들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여기서 땅을 가를 수 있는 절정 무인이 스물이요, 바위를 가볍게 옮기는 자들이 서른명이 있다. 남은 자들은 돌을 손쉽게 자를 수 있으니 내 어찌 너희를 그냥 놀리냐.”


무림인들은 검기를 다뤄 바위를 손쉽게 자를 수 있었다.


곧 백단은 그들이 일백명의 석공보다 몇십배는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류 무인만 하루 굴려도 만들 수 있는 석재벽돌이 몇 개냐. 못해서 수백개는 나올 것 같은데.’


보통의 석공이 돌을 자른다고 치자. 그렇다면 드는 도구며 사용되는 모래며 기름이며, 얼마나 품이 많이 드는가? 그러고도 제대로 된 돌을 다듬는 데 걸리는 세월은 한세월이다.


그런데 이류 무인은?


검기만 씌워 칼만 휘두르면 뚝딱, 석제 벽돌이 나온다.


마름돌은 기본이요, 방석은 가볍게 만들 수 있다.


백단의 눈에는 그들이 전부 현대 21세기의 중장비, 그 의인화로 보였다.


그의 눈에서 느껴지는 끈적하고 음험한 진심을 엿본 표사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이러다간 진짜로 공사판에 끌려간다!’


‘안돼! 온종일 돌을 자를 수는 없다!’


그들은 일생을 바쳐 배운 무공이 고작 돌이나 자르는 데 쓰일 수 없다! 라는 사명감에 그들은 필사적으로 백단의 명을 거부할 명분을 찾았다.


“저, 저희는 저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표사 중 한명이 소리쳤다. 이에 다른 표사들도 옳다구나 하고 동조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토인(길리미 : 니브흐)들이 간간이 습격해오지 않습니까!”


“저희가 저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고작 돌을 나르고 자르는 데 저희의 힘을 낭비할 수 없습니다!”


백단은 그렇게 항변하는 그들에게 한마디 했다.


“내가 너희 전부를 보호할 수 있다.”


“······.”


―――사실이었다.


백단은 초절정의 고수다. 거기다가 가히 무한에 가까운 내공을 다루는 규격 외의 초절정이다.


(백단은 보통의 초절정 고수보다 훨씬 강했다.)


그들 전부를 합해도 백단 한명만도 못할 것인데, 그가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하면 그들 모두를 보호할 수 있었다.


“하, 하지만···.”


표사 하나가 떠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그는 백단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움찔 몸을 떨었지만, 이내 각오를 다진 듯 굳건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의 무공이 이런 하찮은 일에 쓰인다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표사는 검을 내려놓고 죽음을 각오하고 백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희는 협俠을 무武를 배운 자들입니다. 더 높은 깨달음, 어제보다 나은 자신을 위해 무공을 공부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어찌 저희가 저런 돌 자르는 일에 평생을 바쳐 수련한 무공을 사용하라 하십니까!”


무공! 그것은 무림인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인생의 철학이었다. 무공은 곧 무림인의 삶이요, 그들의 전부이니 그들의 자존심이었다.


표사가 머리를 땅에 피가 날 정도로 쾅! 박았다.


“저희가 표국주님의 야망에 반하여 따라온 것은 맞으나, 이리 심한 모욕을 당하며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부디 저희의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그러고도 부족하시면 제 목 하나로 명을 거둬주십시오.”


그는 순교자가 되길 자처했다. 자신을 희생해 모든 무림인을 구원(?)하기로 한 것이다.


“허!”


백단은 이에 혀를 차며 생각했다.


‘당했군. 외통수야.’


여기서 그의 목을 베면 그는 순교자가 된다. 목까지 벤 상황에서 표사들을 억지로 동원하려고 하면 반란이 일어날 것이다.


여기서 명을 거둬도 문제다. 그가 그의 기개(?)에 못 이겨 명을 거둔다면 이는 그 자체로 전례가 되리라.


‘그렇다고 죽이긴 싫은데.’


백단은 권력을 ‘누리고’ 싶은 거지, 권력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는 빤히 절을 한 표사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검을 뽑았다.


터벅.


그가 걸음을 옮기자 모든 표사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백단이 검을 들고, 엎드린 표사가 눈을 질끈! 감았다.


―――콰아앙!


이윽고 백단이 검을 휘둘러 대지를 갈랐다.


“어?”


엎드린 표사는 거대한 굉음 이후에도 자기 목이 붙어있음에 당황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말없이 바닥을 향해 칼질을 하는 백단이 보였다.


그가 한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대지에 거대한 상흔이 그어졌다. 네모반듯하게 직선으로 대지를 갈라가던 그는 이내 주위 바위로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바위가 조각나며 원기둥꼴 조각으로 갈라졌다.


그는 그것을 이고 말없이 크레이터 너머로 넣었다. 그리고 발을 휘둘러 바위를 부수며 쇄석으로 만든 다음 허공섭물로 그것을 크레이터에 붓기 시작했다.


표사들은 그의 행동에 당황했다. 갑자기 사람 하나 잡을 것처럼 굴다가 지금 이게 무슨 행동이란 말인가?


결국 모든 표사를 대표해 순교자를 자처했던 표사가 일어나 그에게 물었다.


“표국주님. 지금 뭐하십니까?”


“도로를 판다.”


“···예?”


표사들은 전부 벙찐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이 도로를 파고 지반을 다지는 것이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 내가 하는 수밖에.”


백단은 태연하게 대답하곤 계속해서 땅에 크레이터를 만들고 기둥을 박고, 쇄석을 붓기를 반복했다.


“이곳 땅은 기후가 습하고 지반이 물렁물렁해 깊이 파, 기둥을 심고 단단히 기반을 다지지 않으면 수렁이 된다.”


냉대 습윤 기후에선 흔히 말하는 라스푸티차 현상이 일어난다. 이를 위해선 땅을 깊게 파, 기둥을 파묻어 지반을 단단히 다져야만 제대로 된 도로를 만들 수 있었다.


“그, 그렇군···. 아니 어째서 표국주님이 이런 걸 하십니까!”


“할 수 있으니까.”


백단이 표사들을 바라봤다.


“내가 조금만 수고하면 백명, 천명이 백일을 수고해야 할 일을 반각도 안 되어 끝낼 수 있다. 그러니 마땅히 내가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사실이었다.


백단은 초절정에 올라 그의 검 한 번이면 수백미터의 길이의 땅을 팔 수 있었다. 그 하나만으로 포크레인 백대와 동등한 능률을 발휘하는 것이다.


“나는 왕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니 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권력을 위해서, 미래의 내 궁전을 위해서 조금 고생해야 한다면 싼 대가다.’


백단은 진심으로 왕이 되어 온갖 미녀와 권력과 보화를 누리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 도로를 파야 한다면 그는 도로를 팔 것이요, 성을 쌓아야 한다면 성을 쌓으리라.


“······.”


“너희는 나 대신 호법을 서라. 나는 나의 백성들을 도와 도시의 틀을 만들겠다.”


“···표국주님.”


표사들은 황망히 백단을 바라봤다.


그렇게 백단은 낮이 되면 백성들을 위해 도로를 파고, 지반을 다졌으며 성벽을 쌓을 돌을 잘랐다. 밤이 되면 그는 수백마리의 짐승과 어류를 사냥해 그들을 먹였다.


그렇게 백단은 며칠 동안 잠도 안 자며 그들을 위해 일하고 식량을 구했다.


그 모습을 본 표사들은 자괴감을 느꼈다.


“표국주님마저 저리 흙을 묻히시는데 우리는 고작 무얼 한단 말인가!”


그들은 백단에게 반해서 따라온 자들이었다. 그의 야망과 호걸스러운 면모에 이끌려 이곳까지 온 자들.


표사들은 백단이 저리 열심히 일하는데 정작 자신들은 그깟 자존심 하나로 이리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러웠다.


“표국주님. 인제 그만 잠을 자시고 저희를 이용하여 주소서.”


결국 표사들은 백기를 들며 백단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저희가 표국주님을 대신해 땅을 파고, 돌을 다듬겠습니다.”


“좋다.”


그렇게 표사들은 공사판에 투입되어 고작 한 달 만에 그럴듯한 도시의 부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


그리고 두 달이 지난 현재.


“······.”


표사들의 거의 모든 병장기가 상해버렸다. 공사에 쓰이던 농기구들도 모조리 다 이가 빠졌다고 한다.


물론 이가 빠진 철기야 다시 갈면 쓸 수야 있다. 이를 수리할 대장장이도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이가 빠졌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단이 오빠. 이제 어떡하지? 이대로 가면 철기가 바닥날 거야.”


“게세르. 철기를 수급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껴야 합니다.”


―――그들은 철을 만들 수 없다.


철기는 소모품이었다. 지금 그들이 가진 철기는 곧 그들의 철의 전부.


수리는 할 수 있는데, 소모는 막을 수 없다. 철을 보충해 새로운 철기를 양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철을···. 아껴야지.”


‘어떡하지?’


백단은 지금까지 문제는 있었지만 어떻게든 잘 해결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아주 조금씩 가진 자원을 소비해가며 수명을 연명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철이 없으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철은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문명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물건이다.


도끼가 있어야 나무를 베고, 칼이 있어야 나무를 다듬을 수 있었다. 쟁기가 있어야 땅을 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그 철이 소모되기 직전의 상황에 부닥쳤다.


“일단, 표사들을 제외하고 전부 철기를 회수해.”


백단은 명령을 내려 남아있는 철기를 회수하고, 철기의 사용에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걸론 안돼.”


백단은 철기를 대신할 어떤 대체 물질의 필요성을 격렬하게 느꼈다.


“철광을 찾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철기를 사용할 수는 없어. 그렇다면···.”


백단의 머릿속에서 인류 역사 수만 년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윽고 무언가를 떠올린 그가 결연한 표정으로 읆조렸다.


“역시 석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군.”


“···오빠? 농담이지?”


“게세르···? 진심이십니까?”


“나는 진지하다. 우리는 석기石器를 사용한다.”


백단은 철을 아끼기 위해 석기시대로의 회귀를 선택했다.


“아아.”


희령은 결국 참지 못하고 뒤로 쓰러져 기절했다.


하라는 빠르게 붓을 놀리며 공책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하여 게세르가 이르길 철 대신 돌을 사용하라 명하셨으니 이는 현문우답賢問愚答일 것이다. 게세르는 미쳤다. 미친놈이 틀림없다.”


-


그렇게 사할린의 석기 문명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설마 이때의 결단이, ‘그런 결과’로 이어질 줄은 백단도 희령도 하라도, 다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주인공은 굉장히 야망과 권력욕이 강한 캐릭터입니다.

다만, 굉장히 소시민적이다. 라는 설정이죠. 거기에 현대인적 감성까지.

그 케미에서 나오는 발상은 정말 기괴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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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건국기 17화. 모든 길은 로마…, 가 아닌 중경中京으로 통한다. 24.09.06 38 1 26쪽
40 건국기 16화. 보이텍Wojtek 혁명 24.09.05 38 1 28쪽
39 건국기 15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완) 24.09.05 29 1 25쪽
38 건국기 14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3) 24.09.04 31 1 20쪽
37 건국기 13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2) 24.09.04 34 1 16쪽
36 건국기 12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 24.09.03 38 1 20쪽
35 건국기 11화. 백단과 비녀羆女 24.09.03 36 1 14쪽
34 건국기 10화. 박달나무 아래 곰이 쓰러지다 24.09.03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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