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발해국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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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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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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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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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기 6화. 스톤펑크Stonepunk

DU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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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 수만 년···, 아니 인류의 발생 초창기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자.


삼백만년 전 인류가 처음으로 다루었던 도구는 석기石器였다. 석기는 인간의 발톱과 이가 되었으며, 신체의 연장선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석재는 중세까지도 아주 중요한 재료로 취급받았다. 철이 부족한 가난한 지역에서는 여전히 석기가 사용되었고, 성의 재료까지 석재를 다듬어 사용하지 않았는가!


‘생각해보면 그래.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어.’


아니, 생각해보면 현대에도 주야장천 건축 재료로 채굴되는 것이 바로 석재였다. 독특한 가구를 만들 때도 석재가 사용된다. 예술에도 사용되는 것이 바로 석재다.


‘돌은 21세기까지 쓰이는 만능의 재료!’


그것은 21세기 현대까지도 채석장이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철기에 집중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눈을 돌리는 거야.’


단백표국은 철을 생산할 능력은 있어도 철광을 찾을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철기에 허송세월을 낭비하며, 그나마 남아있는 철기를 소모하기보다 인류사의 흐름에 되짚어 석기를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


철을 찾을 수 없다면, 그래서 철기를 생산할 수 없다면.


“차라리 석기 시대부터 다시 되짚어 문명의 단계를 밟아간다!”


―――그게 백단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제부터 석기를 사용한다. 그렇게 정했다.”


백단의 발표에 희령과 하라, 단배표국의 인원들은 모조리 침묵했다.


그가 내놓은 해결책이 그들로선 가히 상상도 못 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표국주님.”


“뭐냐?”


“혹시 미치셨습니까?”


“······.”


단백표국의 인원들도 철기를 생산하지 못할 줄은 몰랐다. 그들도 탐광꾼의 존재를 깜빡 잊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의 대표가 어떻게든 해결책을 제시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야 왕이 되겠다고 하신 분이니까!’


‘표국주님은 강하시니까!’


‘게세르님이니까!’


백단이 아무리 실책을 저질러 신망을 잃어가고, 이상적인 리더에 대한 환상이 깨져나간다고 할지라도 엄연히 그들의 수장이었다.


표국주 백단. 혹은 게세르 백단.


그는 이상한 존재였다.


그는 단 한 번도 그들에게 숙청을 가한 적 없고, 배를 곯게 한 적 없으며, 오히려 손수 모범을 보여 도시의 공사에 한몸 보태기까지 했다.


실책을 남발하더라도 적어도 함께 고통을 나눠 인 리더였고, 자신의 실수에 책임은 지는 리더라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입장에서 이런 리더는 드물었다.


단 한 번의 숙청도 없이, 설령 힘으로 겁박할지언정, ‘끝까지 그들을 챙겨주는’ 리더가 어디 있단 말인가?


비록 그것이 그의 야망에서 비롯된 추악한 권력욕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아무리 그들이 뒤에서 욕을 할지언정.


그들은 은연중 기대하고 있던 것이다.


‘혹시나, 어쩌면. 이번에도.’


백단이 어떻게든 해결해줄 거라고···.


그런데 석기라니! 난데없이 저 토인들처럼 석기를 다루라니!


“그냥 탐광꾼을 데려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어디서?”


“네? 그거야 저 누르간에서···.”


“길리미들을 뚫고, 말이냐?”


“······.”


단백표국은 현재 니브흐인들과 척진 상태다. 사할린의 위쪽은 니브흐인들의 영역. 백단이라면 몰라도 표사들만이라면 그들의 게릴라 전술에 당할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표국주님이 가서 데려오면 되는 거 아닙니까?”


“내가 내 왕국이 될 땅을 버리고 떠나라고?”


“······.”


백단은 이젠 숨기지도 않고 대놓고 이곳을 왕국이자 제 땅이라고 표현했다.


그 원색적인 표현에 단백표국 사람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저 말인즉슨, 바꿔 말하면―――···.


“나는 내 백성을 두고 못 간다.”


권력! 지금도 간당간당한 제 쥐꼬리만 한 권력을 놓기 싫다는 뜻!


그들을 신경을 쓰는 척하면서도 너희가 배반할지 누가 알아? 라고 하면서 그들을 감시하겠다는 의미였다!


그 속내를 파악한 단백표국은 전원 침묵했다.


“아, 이참에 내 칭호도 새롭게 바꾸면 좋겠군. 표국주. 게세르. 너무 중구난방이잖아?”


철을 아끼기 위해 토인들이나 다름없는 생활방식(석기 시대)으로 회귀하겠다고 폭탄선언까지 한 마당에 백단은 거기서 한술 더 떠 자신의 칭호를 새롭게 정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젠 대놓고 원元에 대한 역심···, 아니 권력욕을 숨기지 않은 백단이 말했다.


“게세르···. 이건 이제 진절머리가 나. 그럼 왕王? 아냐. 그건 너무 식상해. 나만의 국가이니 독특한 표현이면 좋겠는데···.”


단백표국 전원은 앞에서 대놓고 자신의 칭호를 두고 고민하는 백단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한편 백단은 저 혼자 상상의 나래에 빠지며 왕의 칭호에 대해 고민했다.


‘저 중동에선 술탄, 유목민족은 칸이라고 하잖아. 옛 한반도의 삼국들도 왕을 부르는 명칭이 다 달랐고. 일본도 천황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세운 국가도 나만의 독특한 칭호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


세계 각국의 왕을 이르는 표현이 다 다른 만큼 백단도 자신의 국가만의, 독자적인 호칭을 원했다.


그는 고민하다가 그의 옆에서 붓질하고 있는 하라를 보며 물었다.


“어디 좋은 표현 없니. 하라야?”


“미친놈이 어떻습니까?”


“뭐라고?”


“아니,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바이가 어떻습니까?”


하라는 공책으로 백단의 행동과 발언 전부를 기록해나가며 그에게 말했다.


“아바이?”


“예. 큰, 아버지, 어르신, 존경스러운 등등의 뜻이 함축되어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바이라···.”


백단은 아바이란 단어를 몇 번 입안에 굴려본 뒤 씨익 웃으며 단백표국 전원을 향해 손을 뻗어 선포했다.


“너희는 나를 이제 ‘아바이’라 부르라.”


“······.”


“대답.”


백단이 검을 휘둘러 허공의 구름을 갈랐다.


“예! 아바이!”


그러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튀어나오며 그들이 물개박수를 쳤다.


그 모습을 보던 희령은 백단의 뒷모습에서 누군가의 모습을 엿보았다.


“어, 어머니···?”


그녀는 백단의 뒷모습에서 설화령의 그림자를 보고 그만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하라는 그녀를 황급히 부축하면서도 붓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하여, 게세르가 말하길 나를 아바이라 지칭하라 일컬었다. 아무도 호응을 안 하자 그가 검을 휘둘러 그들을 겁박하였다. 그러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아바이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백단의 흑역사는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


그리하여 석기를 만들기로 했는데 문제가 있었다.


“···그, 여긴 사암沙巖 밖에 없는뎁쇼?”


백단이 주위의 암석 중 적당히 큰 것을 가져와 단백표국에서 그나마 가장 돌에 대해 잘 아는 자를 불렀다.


한때 축성을 해본 경험이 있는 농민 출신이었다.


“뭐? 사암이라면 그, 뭐다냐. 모래가 퇴적되어 생긴 암석?”


“예? 퇴적이요···?”


“아니, 아니다.”


백단은 뇌의 기억력을 최대한 일깨워 사암을 떠올렸다.


‘사암이라면 모래가 퇴적되어서 생긴 돌이잖아?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지?’


“하여튼 사암은 부드럽고 가공하기 쉬워 건축자재로는 많이 이용됩니다만, 도구로 쓸 만큼 튼튼하지 않습니다.”


그는 몰랐으나 돌은 정말, 수만가지의 종류가 있다.


퇴적암, 변성암. 그 안에서 또 수십갈래로 나뉘는 게 바로 암석.


오죽하면 암석학이라는 학문이 따로 생길 정도일까.


심지어 같은 암석이라도 나는 곳에 따라 그 성질과 색감마저 달랐다.


그런 만큼 돌들마다 각자의 쓰임새가 있고, 또 석기로 만들 수 있는 돌들도 한정되어있다.


“그 말은?”


“저희는 석기조차 만들 수 없습니다.”


“······.”


백단은 몰랐으나 사할린은 점토와 모래, 펄과 늪, 습지가 많은 땅이다.


하물며 그들이 자리 잡은 곳은 바다와 가까운 하천! 그들이 사는 땅은 당장 다음 해 라스푸티차 현상조차 걱정해야 할 정도로 무른 땅이란 의미다.


그곳에 있는 돌들은 모조리 사암 따위의 퇴적암밖에 없었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백단과 희령, 하라와 농부 사이를 감돌았다.


“아니야. 아닐 거야.”


백단은 처음에 농부의 말을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그는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젓다가 머리를 바위에 박았다.


“으아아! 그럴 리가 없어! 철기도 못 만드는데 석기도 못 만든다고! 이런 씨!”


그다음은 그는 석기조차도 만들 수 없다는 현실에 분노하며 실성한 듯 소리쳤다.


“그래도 돌이잖아. 어떻게 석기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농부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어떻게든 협상하고자 했다.


“그, 그것이 사암으로 건물은 지을 수 있어도 단단함을 요하는 것들, 예를 들어 도로나 도구 따위를 만들어봐야 그 효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어? 그렇다면 내가 개고생하며 판 도로들은?”


“···그,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가라앉지 않을까요?”


“으아아아!”


자신이 했던 그 모든 개고생이 다 의미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이내 나무에 머리를 박으며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나는 왜 이따위 곳에 온 거지? 왜 하필 국가를 건국해도 이딴 곳에···.”


백단은 스타팅 포인트(···?)를 이딴 곳에 잡은 자신에 절망하며 우울해했다.


“하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한참을 우울해한 백단은 깔끔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럼 목기木器 시대로 시작하는 수밖에.”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있던 하라는 미친놈을 보며 물었다.


“게세···, 아니 개새···, 아니 아바이. 제정신입니까?”


“하라야. 나는 제정신이다.”


그렇게 말하는 백단의 눈은 풀려있었다. 뭐랄까, 꼭 약을 거하게 빤 사람처럼 말이다.


솔직히 말해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단이 오빠. 정신 차려!”


희령이 다급하게 백단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아무리 오빠가 멍청해도 거기까지 가면 안 돼! 그러면 정말 반란이 일어날 거야!”


“하지만 희령아···. 여긴 돌조차 쓰레기다.”


“오빠는 왕이 되겠다며! 그렇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야지!”


희령이 백단의 눈을 마주 보며 소리쳤다. 그녀의 푸른 호수와 같은 눈에 절망한 백단의 모습이 담겼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야지!”


“희령아. 우린 이제 가망이 없어.”


백단이 허망하게 사암 덩어리에 손을 대며 머리를 박았다. 쿠웅! 그의 고갯짓에 사암 바위에 거미줄과 같은 금이 그어졌다.


그의 마음속에 깊은 절망과 함께 그의 기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피부가 벌게지더니, 일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앗 뜨거?!”


희령은 손에 치미는 불길에 기겁하며 백단을 놓았다. 그는 전신이 불타오르며 사암마저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주화입마?!”


희령은 그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지, 지금 돌로 석기조차 만들 수 없어서 심마에 든 거야?!”


그녀는 백단이 돌조차 쓰레기인 이곳의 현실에 너무 절망하며 주화입마에 들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하라 역시 그 모습에 눈을 크게 뜨며 그 과정을 낱낱이 기록했다.


백단은 기가 역류해 혈관이 터져 피눈물을 흘리며 사암을 바라봤다.


그의 불길에 뜨겁게 달궈진 사암이 보였다.


“이따위 돌 따위···!”


그가 분노하며 주먹으로 사암을 후려쳤다.


―――까앙!


그리고 청명한 소리와 함께 돌이 깨져나갔다.


“응?”


“에?”


“어?”


백단이 불에 타면서도 난데없이 들린 청명한 소리에 주먹을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희령도 하라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었다.


“어, 어허?”


백단의 추태를 끝까지 황망하게 바라보던 농부는 그가 깨뜨린 돌 조각을 주워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더니 눈을 비비곤 다시 돌을 바라봤다.


그리고 경악하며 소리쳤다.


“아니! 이럴 수가!”


“무슨 일이냐?”


“그, 그것이 도무지 믿을 수 없지만···. 그···.”


농부는 자신이 본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돌을 백단에게 내밀며 설명했다.


“아바이님이 돌을 불태우신 뒤 돌의 성질이 변했습니다.”


“하?”


“이거, 찰돌(규암)이 되었는뎁쇼?”


백단이 주화입마에 휩싸여 불태운 사암은 놀랍게도 고열에 영향을 받아 일종의 전진변성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하천에서 나온 사암답게 석영과 모래 소량의 점토를 포함한 하천 사암은 그의 삼매진화에 녹아 일종의 세라믹화, 혹은 회곽묘의 그것처럼 콘크리트화하여 일종의 인공 규암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철도의 쇄석, 도로부터 시작해서 건물의 벽과 바닥, 계단에까지 두루두루 쓰이는 화강암 못지않은 고강도, 고경도의 산 · 알칼리에도 강한 암석이 말이다.


그러나 백단은 그 사실을 알 수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이건 석기로 쓸 수 있느냐?!”


“차고 넘칩니다요. 아니 건축 재료로도 이만한 재료는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그래?”


백단의 몸에서 서서히 불길이 꺼졌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규암의 덩어리를 바라보다가 하천에 널린 사암들을 바라봤다.


“희령아.”


“어, 어? 왜 단이 오빠?”


“우리 삼매진화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지?”


“그 일단은 다들 무공의 기초를 배워서 모두 가능할···. 잠깐만! 설마!?”


“그래. 그렇단 말이지···?”


백단의 눈에 하천에 널린 사암들은 더 이상 쓰레기 같은 돌들로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무궁한 가능성을 지닌 황금 덩어리였다.


-


그 즉시 백단은 300명의 인원을 총동원해 하천에 널린 사암을 모조리 인공 규암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300명의 인원이 뻘뻘 땀을 흘리며 삼매진화를 일으키니 사암들은 다들 질 좋은 인공 규암으로 재가공되었다.


백단은 그걸로 온갖 석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돌 자귀부터 돌 쟁기, 돌 톱부터 돌 식칼까지.


그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백단은 인공 규암이 지금까지 써왔던 사암보다 훨씬 좋은 재료라는 것을 알자마자 도시를 모조리 뒤엎고 규암으로 다시 지으라고 명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까지 해 온 것도 있는데 어떻게 다시 지으라는 말씀이십니까!”


“무립니다. 표국···. 아니 아바이님! 다시 짓기 이전에 저걸 언제 다시 허물라는 말씀이십니까!”


백단은 반발하는 단백표국 전원을 보며 등 뒤로 검을 한번 휘둘렀다. 그의 검짓 한 번에 그들이 지은 모든 도시의 형체가 모조리 허물어졌다.


“되는데?”


“······.”


백단은 한번 마음먹은 것은 절대로 무르지 않았다.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한다.’


그는 첫 도시이자 수도가 완벽하길 원했다.


아주 튼튼하고 단단한 기반 위에 서길 바랐다.


물론 그 과정에 백성들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 도시는 내가 세울 국가의 반석이 될 거니까.’


그는 도시를 더 좋게 (백단의 표현대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과감히 지금까지 진행한 도시의 공사를 무無로 되돌렸다.


한순간에 모든 성과가 0이 되어버리자 단백표국 전원은 황망하게 도시를 바라보다가 백단을 바라봤다.


그들이 왕으로서 섬기길 바라 따라온 이 남자는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폭군이었다.


“걱정 마라. 나도 공사를 도울 테니. 그런 의미에서 표사들은 앞으로 나와라.”


백단은 표사들을 앞으로 모이게 하고 그들에게 특별히 만든 석기를 지급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검이다.”


“네? 톱이 아니라요?”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이상한 나무 몽둥이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은 검이라기엔 차라리 나무로 만든 둔기에 가까웠다. 몽둥이의 양날에는 반달돌칼이 자잘하게 박혀 있었다.


“그것은 돌로 만든 검이다. 아주 쓸만한 검이지. 숙달된 전사가 쓰면 말의 머리조차 자를 수 있다.”


백단이 그들에게 만들어준 것은 바로 마쿠아후이틀!


아즈텍 제국에서 사용했던 석기 시대의 검!


그는 표사들에게 이를 만들어 나눠준 것이다.


“너희도 이제 철기를 반납하고 이걸 써라.”


“······.”


“앞으로 철기는 나와 희령과 하라만 관리한다.”


“···그, 그럼 저희는 이걸로 무얼 합니까?”


“뭘 하긴? 돌 잘라야지.”


“······.”


그들의 왕, 아니 아바이는 폭군 중의 폭군이었다.


-


어찌되었건 백단은 자신이 약속한 대로 공사를 도왔다.


그가 한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포크레인 백대 이상의 능률을 발휘하니 공사는 금방 진척되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토대를 다지고, 보름 만에 주거지가 건설되었을 때쯤 그들 사이에서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아니? 평소보다 돌이 잘 잘리다니?!”


마쿠아후이틀을 휘두르던 일반인 중 한명이 평소보다 부드럽게 잘린 돌에 의아해하며 이를 표사에게 보고했다.


이윽고 표사와 몇 날 며칠을 관찰해본 결과 그들 사이에서 돌을 더 잘 자라는 그룹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는 곧 백단의 귀에 들어갔고 그들은 백단 앞에 검기를 시현해 보였다.


“하앗!”


“허어!”


백단은 부드럽게 잘린 인공 규암을 보며 감탄했다.


“너의 검기에는 미약하게 의념이 깃들어있구나.”


“의념이요?”


“그래. 무공의 기초가 되는 그 의념이 말이다.”


백단은 일반인의 검기를 보고 의외라는 듯 말했다.


“설마, 돌 자르는 데 특화된 검기를 발현하는 자가 나올 줄이야.”


백단이 하도 표국의 인원들을 석공으로 부려 먹다 보니 그들 사이에서 돌을 자르는 데 특화된 검기를 다루는 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것은 그들 나름대로 돌을 편하게 자르기 위해 고안한 기술에 가까웠으나, 더 넓은 시야에서 보면 새로운 무공의 창시나 다름없었다.


‘이거···? 쓸만하겠는데?’


백단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영감이 들었다.


‘이렇게 돌을 자르는 데 특화된 인원이 나오면 이들만 부려 먹어도 효율이 배가 되잖아?’


그는 이를 전문 석공(?) 조합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돌을 잘 자르게 된 인원들을 모아 크게 치하하며 이제는 금이나 비단보다 귀하게 된 철기를 하사했다.


“너희에게 철기와 함께 성을 하사하마.”


“가, 감사합니다.”


난데없이 표사도 못 받는 철기와 평민으로서 감히 바라지도 않았던 성씨까지 받게 된 석공들은 어찌 되었든 그의 은혜에 크게 감동하며 고개를 숙였다.


“너희는 이제부터 석공石工씨다.”


“···잘못 들었습니다?”


“너희의 성은 이제부터 석공石工이라고.”


“······.”


그렇게, 돌 다루는 것 하나만큼은 기술이 100년은 앞서있다고 평가받는 발해국의 석공세가는 이렇게 탄생했다.


-


그렇게 석공세가가 탄생하고 난 뒤 도시의 공사는 더더욱 가속도를 붙어갔다.


백단의 까다로운 요구―도로는 수십리는 파 돌기둥을 묻고 하나하나 다져야 한다던가, 방에는 반드시 온돌이 있어야 된다던가, 보일러실을 따로 만들어두라던가 등등―에도 불구하고 그 속도가 점점 빨라져 보름이 더 지났을 때는 그들 거의 모두가 집을 가졌을 정도였다.


그때 그들 사이에서 또 한 번 새로운 발전이 일어났다.


“에이! 이러다가 평생 돌만 굽게 생겼네! 이렇게 불만 지피다가 내 기가 모조리 다 날아가다니!”


“그렇다고 방법이 있나. 우리에게 화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잠깐만···. 화덕이라고?”


계속해서 삼매진화를 통해 사암을 인공 규암으로 가공하던 인원들이 가혹한 노동을 줄일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게세···. 아니 개새···. 아니 아바이님! 저희가 이번에 새로 가마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규암과 사암을 이용해 가마를 만든 것이다.


단열재로 뛰어난 성질을 지닌 사암과 규암 벽돌을 이용해 아예 전문적으로 인공 규암을 생산해내는 가마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기가 아닌 고작 돌을 굽는 가마를 발명해낸 것이다!


어떻게든 돌을 덜 구워보려고 말이다.


“호오? 이걸로 인공 규암을 얼마나 만들 수 있지?”


“벽돌만 본다면 하루 수천장도 거뜬합니다.”


“그럼 너희들도 함께 구우면 두배로 규암 벽돌을 만들 수 있겠네?”


“···예?”


“장하다. 너희에게 내 친히 성을 하사하니 너희는 이제부터 화산火山 씨다.”


“······.”


“이걸로 그 지긋지긋한 길리미(니브흐)들을 막을 성벽을 축조할 수 있겠군.”


그렇게 발해국에 또 하나의 무공 가문이 탄생했다.


삼매진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화산파는 그렇게 돌을 굽다 시작되었다.


-


백단은 무림인, 일반인 가리지 않고 성벽을 쌓아 올리는 것을 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확실히 무공을 배우니 도시를 짓는 속도가 빨라졌군.”


무공을 배운 뒤로 고작 200명의 인원은 가히 2,000명이나 다름없는 효율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도시를 짓는 과정 자체가 기를 소모하고 무공을 사용하는 과정인지라 그들은 더더욱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들 모두가 이류 혹은 일류 무인 급의 실력을 지니기 시작했다.


그것이 돌 자르고 굽는 데 특화된 방향이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오히려 좋지!’


백단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전문적인 석공 집단이 양산되었으니 됬다.’


어차피 그는 국가를 건국하려는 거지, 무림세가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다.


무공은 그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었다.


“드디어 식량 생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되었구나.”


백단은 드디어 도시에서 눈을 떼고 그들에게 ‘약속’한 ‘식食’의 문제를 해결할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이곳의 땅은 척박하다. 제대로 된 농사조차 짓기 힘든 소금땅(다시 한번 말하지만 백단이 만들었다)이다.’


사할린에서 제대로 된 농사는 ‘당장’ 불가능하다.


물론 조금만 위나 옆으로 가도 3등급짜리 곡창지대가 될 가능성이 높은 늪과 습지가 있지만 거기까지는 모르는 백단이었다.


‘농사가 불가능하다면, 이미 있는 걸 작물화하면 돼.’


그는 오히려 이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짓는 걸 포기하고 다른 것에 눈을 돌렸다. 그의 시야에 한 톨의 도토리가 눈에 담겼다. 그 위로 한그루의 신갈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전생에서 읽은 적이 있었지. 도토리는 인간 최초의 주식이라고.”


‘나는 현대인이다. 이 시대의 상식이 아닌, 더 우월한 미래의 지식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거야.’


백단이 씨익 웃으며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상태로 선정인(손) 위에 도토리 한 알을 올려놓고 기를 집약하기 시작했다.


“도토리는 수확성이 좋지. 거기다가 탄수화물도 풍부하고 칼륨에 단백질도 풍부해. 자라고 열매를 맺는데 한 십년은 걸리는 게 단점이지만···.”


그가 도토리를 휘감은 기를 단 하나의 률로 직조하며 강기를 자아냈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맛있게 자라라.


그러자 그 률에 속박당한 도토리가 미친 듯이 떨리더니 이내 작은 싹을 내었다.


“나한텐 무공 치트가 있지.”


백단은 특유의 운기조식으로 식물의 생장을 빠르게 할 수 있었다.


그는 이것을 이용해 도토리를, 신갈나무를 작물화할 생각이었다.


‘중세의 눈으로 보지마. 21세기 최신의 지식으로 보는거다!’


미래인의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식을 이용한, 중세의 사람이라면 가히 상상도 못 할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게 바로 현대인 치트지!’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는 신갈나무라고 하기엔 이상했다. 상수리나무보다도 도토리가 많은 것이 저 중동의 대추야자만큼이나 도토리가 맺혀있었고, 굴참나무만큼이나 코르크가 발달해있었다.


그가 나무에 천천히 손을 대 보았다.


두근! 식물을 타고 흐르는 기가 맥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나무로 나는 내 백성들을 먹여 살린다.”


그가 가볍게 나무를 손으로 툭 쳤다. 그러자 비처럼 도토리가 땅으로 쏟아졌다. 그는 그 중심으로 걸어가 다시 가부좌를 틀며 운기조식을 행했다.


그러자 땅에 떨어진 도토리들이 싹을 피우며 자라나기 시작했다.


백단은 그 작업을 몇번이고 반복했다. 도토리가 산을 이룰 때까지 말이다.


-


―――그리고 1년 뒤.


“퉤엣.”


희령은 그의 앞에서 도토리를 뱉으며 말했다.


“써요. 맛없어요.”


그녀의 뒤에선 억지로 도토리를 먹으려다가 토하거나 뱉고, 물을 들이켜는 사람들이 한가득하였다.


백단은 아무 말 없이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몰랐으나, 도토리에는 탄닌이 함유되어 있었다. 쓴맛과 떫은 맛을 내는 탄닌을 제거하지 않으면 도토리는 너무 떫어 먹을 수조차 없었다.


도토리가 작물화되지 못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스윽스윽.


백단이 옆에서 들린 붓질 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곳에선 하라가 공책을 들고 열중하고 있었다.


“하라야. 뭐하니?”


“개새···. 아니 아바이의 전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도토리의 전설은.


훗날 발해 참나무라고 명명지어질 이 나무의 도토리를 최초로 발견(?)해 발해국의 역사를 통째로 뒤바꾸어버린 그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희령이 도토리를 뱉고, 백단이 자괴감에 몸부림치고, 하라가 붓질할 때.


서서히 그가 키운 참나무 밑으로 한 마리의 애벌레가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애벌레는 군대를 다녀온 21세기의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아는, 팅커벨이라고 불리는 산누에나방의 애벌레였다.


애벌레는 사각사각, 잎을 갉아 먹었다. 한참이나 잎을 갉아 먹은 애벌레는 이내 고치를 틀었다.


그렇게 하나, 둘, 셋. 이윽고 수천 수만개의 고치가 숲을 가득 메웠다.


고치는 담록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며 은은하게 광택을 내고 있었다.


그 밑에는 셀 수조차 없는 무지막지한 량의 도토리가 쌓여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거대한 그림자가 슬금슬금 다가와 도토리를 한입에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커다란 손으로 도토리를 삼키는 그 생물의 이름은 곰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체역사란 '만약'이라는 가정에서 재미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가는 생각했습니다.

만약 역사속 무공이 실제한다면, 그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한 사할린에서 국가를 건국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지!


물론 사할린은 똥땅이라 현대인 치트가 없으면 역시 무리겠지요.

대체역사에서 현대인 치트는 무적! 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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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건국기 26화. 종이 만들기 +2 24.09.12 41 1 15쪽
49 건국기 25화. 방어선 재구축과 건국建國 +2 24.09.11 48 1 16쪽
48 건국기 24화. 전후처리, 내정의 시작 24.09.11 35 1 15쪽
47 건국기 23화. 완벽한 승리 24.09.11 36 1 24쪽
46 건국기 22화. 전쟁…? 24.09.10 32 1 28쪽
45 건국기21화 만반의 준비와 백리장성 24.09.10 32 1 23쪽
44 건국기 20화. 후회와 미련 사이 24.09.09 40 0 12쪽
43 건국기 19화. 악마와 악마 24.09.09 34 1 22쪽
42 건국기 18화. 남경南京 24.09.06 46 1 16쪽
41 건국기 17화. 모든 길은 로마…, 가 아닌 중경中京으로 통한다. 24.09.06 39 1 26쪽
40 건국기 16화. 보이텍Wojtek 혁명 24.09.05 38 1 28쪽
39 건국기 15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완) 24.09.05 29 1 25쪽
38 건국기 14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3) 24.09.04 32 1 20쪽
37 건국기 13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2) 24.09.04 34 1 16쪽
36 건국기 12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 24.09.03 38 1 20쪽
35 건국기 11화. 백단과 비녀羆女 24.09.03 36 1 14쪽
34 건국기 10화. 박달나무 아래 곰이 쓰러지다 24.09.03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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