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발해국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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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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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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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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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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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기 7화. 키문카무이Kim-un-kamuy

DUMMY

-


백단이 인공 규암을 만들어낸 뒤 단백표국은 대석기시대를 맞이했다!


“도로에 깔 방석이 부족합니다.”


“그럼 잘라 구워 쓰라.”


도로에 아낌없이 석재를 사용하고.


“집에 기둥으로 쓸 석재가 없습니다.”


“그럼 역시 돌을 잘라 쓰라.”


한낱 민초의 집에도 호화롭게 석재를 사용하니.


“식칼이 없어 요리를 못 합니다.”


“돌을 날카롭게 갈아 쓰라.”


이제는 하다 하다 주방 식기구에까지 돌을 쓰는 지경에 다다랐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백단을 포함하는 단백표국 전원이 무림인이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한낱 돌검에조차 기를 두를 줄 알았으니 돌은 두부보다도 손쉽게 자를 수 있었다.


돌은 예로부터 단단해 성벽의 축조에서부터 건축, 예술에까지 다방면으로 쓰였다.


그러나 그만큼 가격이 비쌌다. 좋은 돌은 한정되어 있었고, 돌을 다듬는 건 그만큼 공력功力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돌을 옮기려면 그 두배의 노동력은 쏟아부어야 했다.


그러나 백단은 여기에 무림인이라는 변수를 끼얹자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돌은 더 이상 다듬기 어려운 공력이 많이 드는 재료가 아니었다. 두부보다 손쉽게 채를 썰어 옮길 수 있었다.


돌이 무겁다? 그렇다면 돌을 벽돌만큼 잘게 잘라 옮기면 된다. 여차하면 절정 고수를 동원해도 되고, 그 자리에 있는 돌을 바로 캐내서 사용하면 된다.


여기에 더해 백단은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제시했다.


“돌을 구워 좋은 돌로 만들라.”


구석기 시대의 뗀석기에서 발전된 것이 신석기의 간석기다. 백단은 그다음 단계를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바로 돌의 물성을 물리적으로 변성시키는 것!


사암이라는 흔한 퇴적암을 인공 규암으로 만들어 더 우수한 내구성과 수명, 내마모성과 화학적으로도 강한 석재를 만들어낸 것이다.


비록 시작은 무공의 삼매진화에서 시작되었더라도, 결국 가마를 만들어내 인공 규암을 무한히 양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석기 시대에 최첨단 소재 공학이 도입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 석기 시대에서 가장 진보된 석기 기술을 가지게 된 것이다.


거기다가 백단 특유의 현대인적 지식으로 재가공된 기존의 공구들은 몇 배의 효율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한 삽의 삼각형 손잡이부터, 호미, 쟁기, 반달돌칼부터 비파형 돌칼, 아즈텍 제국의 마쿠아후이틀까지.


그들은 곧 석재로 건축된 도시를 손에 넣었다.


라스푸티차 따위는 걱정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다져진 로마식 가도부터 시작해서, 석재기둥이 세워진 온돌 딸린 300가구의 주택, 10리(1,000m) 마다 세워진 석등(가로등 개념으로 백단이 세웠다. 정작 기름은 없다)까지.


그리고 그 가운데는 가장 커다란 백단의 주택(언젠간 성으로 개조한다고 아주 크게 부지를 잡았다)이 있었으니 자연적으로 이어진 강과 산맥을 따라 거대한 규암 벽돌로 성벽을 쌓아 올렸다.


강이라는 천연 해자와 산맥, 능선에 둘러싸인 이곳은 천혜의 요새였다. 그 자체로 성읍이자 성채요, 도시이니 이미 이곳은 300명이 사는 성채 도시나 다름없었다.


···너무 사람이 없어 황량한 것이 너무 크게 도시를 지은 게 아닌가 싶지만.


“드디어 나의 국가가 건국되었구나!”


고작해야 성채 도시 하나를 지었을 뿐이지만 백단은 진심으로 감읍하며 고개를 숙였다.


-


그에게 성채 도시는 일종의 증거였다.


그가 스스로 ‘국가의 왕이다. 라고 주장할 수 있는 눈으로 보이는’ 증거 말이다.


그는 이에 진심으로 감격해하며 단백표국 전원을 불러 모아 말했다.


“이 도시를 앞으로 중경中京이라 하라. 이는 곧 이곳에 모든 영토의 중심이 될 것인즉슨, 내 나라의 수도로 삼겠다.”


백단은 도시의 이름을 중경이라 명명하며 건국을 선포했다.


“이제부터 나는 중경을 다스리는 왕王=‘아바이’다. 너희는 나를 아바이라 부르며 따르라. 너희가 나의 첫 백성들이다!”


“예! 아바이!”


대놓고 자신을 왕이라 칭했으나 단백표국은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들 모두 미증유의 감동과 기대, 그리고 흥분에 휩싸여있었다.


그야 그럴 것이 그들은 애초 백단의 야망에 반해서 따라온 자들이었다. 애초 그들은 백단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이곳으로 온 자들이다.


그가 아무리 이곳에서 실책을 남발하고 힘과 권력을 좀, 아니 아주 많이 남발했다고 하지만 그들은 은연중 알고 있었다.


그가 은연히 백성 전부를 보살피고 있던 것을.


백단은 백성 그 누구도 버리지 않았다. 누구 하나 숙청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그들의 식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지켰고 끊임없는 길리미들의 자잘한 습격에도 잠을 안 자고 그들을 보호했다.


그는 폭군이었으나 한편으론 그 누구보다 상냥한 성군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너희와의 약속을 완벽히 완수하고자 한다.”


―――내가 너희의 마지막 문제, 식食을 해결해주겠다.


그들은 제가 지은 대도시의 풍경을 등진 백단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들은 기대했다.


과연 그들의 왕이 무엇을 가져왔을까. 또 고기를 가져왔을까? 아니면 계란을 가져왔을까? 아니면 물고기를 가져왔을까?


모두의 시선이 백단을 향했을 때 백단이 등 뒤로 손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죽은 눈을 한 희령이 커다란 주머니 하나를 들고 오더니 그대로 땅에 쏟아버렸다.


“이게 내가 너희에게 베푸는 식食이다.”


땅에 와르르, 쏟아진 그것들은 바로 도토리였다.


“······.”


죽음보다 더한 침묵이 그들을 휘감았다.


‘어, 거짓말이지?’


‘에이.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


그들은 혹시나 하고 백단을 바라봤다.


“뭐하냐. 맛들 안보고.”


백단의 눈은 기대와 흥분으로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아아. 진심이었어!’


‘게세르···. 아니 개새끼 아바이.’


‘아바이! 지금 저희보고 빈민들이나 먹는 도토리를 먹으라는 겁니까!’


그들은 필사적으로 표정을 유지했으나 속으로 경악했다.


도토리가 무엇인가? 도토리는 보통 돼지 따위나 먹는 가축의 사료! 혹은 빈민들이나 흉년 때 먹는 열매가 아닌가!


백단은 몰랐으나 이 시대 도토리의 인식은 정말 최악이었다.


맛도 없지, 떫지, 흉년이 들 때 풍년이 드는 열매지. 보통 멧돼지나 좋아하는 가축의 사료로 쓰이는 것이 바로 도토리였다.


그런데 지금 백단은 그걸 제 백성들에게 베풀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정말로 본의 아니게) 제 백성들을 개돼지 취급한 것이다!


아니, 심지어 개도 밥에 섞인 도토리를 안 먹고 뱉는다!


백단은 개도 안 먹는 도토리를 그들에게 주었다. 이걸로 밥 해 먹으라고.


“···하하. 하하하. 잘 먹겠습니다. 아바이!”


그러나 그들은 백단 앞에서 감히 항거할 수 없었다. 백단은 이곳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가진 자.


가진 힘만으로 그들 전부를 몰살할 수 있는 고수 중의 고수다.


그들은 억지로 표정을 유지하며 도토리를 씹었다.


까끌까끌한 껍질 사이 떫은 맛이 확 올라왔다. 그들의 표정이 굳어갈 때 함께 도토리를 맛봤던 희령이 퉤! 하고 도토리를 뱉었다.


“퉤엣―!”


희령의 침이 묻은 도토리가 땅을 몇 바퀴 구르더니 백단의 발치에 닿았다.


“써요. 맛없어요.”


그녀가 나서서 그리 말하자 어떻게든 표정을 유지하던 백성들도 이내 도토리를 뱉어내며 물로 입을 헹궜다.


“어우! 떫어라!”


“우웩! 우웨엑!”


“가르르!”


모두가 물을 마시며 도토리를 뱉고 토하는 광경을 본 백단은 조용히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그 옆에서 하라는 열심히 붓을 놀렸다.


-


백단은 회심의 도토리(?)가 실패로 돌아간 뒤 바로 간부 회의를 소집했다.


희령과 하라가 자리에 앉자 백단은 턱에 손을 괴고 진중한 표정으로 의제를 말했다.


“어떻게 하면 도토리를 백성들에게 먹일 수 있을까?”


“아니! 도토리를 안 먹인다는 전제가 없는 거야?! 오빠?!”


콰앙! 희령이 탁자를 쳤다. 그녀의 주먹에 규암으로 만들어진 탁자가 그대로 반토막 났다. 그녀는 백단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도토리 말고 다른 걸 키우면 되잖아! 왜 도토리에 고집하는 건데!”


“하지만 애써 키운 도토리가 아깝잖아!”


“애초 도토리를 키우지 않았으면 됐잖아!”


백단은 희령의 말에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여기서 그나마 작물화할만한 게 도토리밖에 없었는데 어떻게 하라고!”


“그러게, 누가 여기로 오래?! 여기로 오빠가 왕 되겠다고 사람들을 데려왔으면 어떻게든 곡식을 키워 먹일 생각을 해야지! 누가 도토리를 먹일 생각을 해!”


“크윽!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도토리가 어때서! 도토리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잖아!”


백단은 희령의 말에 내심 가슴에 찔리면서도, 전생의 도토리묵과 도토리 국수를 떠올리며 필사적으로 그녀에게 항변했다.


“아니, 이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문제가 아니잖아!”


“잠깐만요. 희령. 여기서 잠시 제가 말해도 될까요?”


희령이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이에 손을 들어 희령 대신 입을 연 하라.


“혹시 아바이. 도토리를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어? 응?”


난데없는 하라의 질문에 백단은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도토리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말했다.


“아니, 도토리는 나름 먹을만한 견과류잖아? 제대로 요리하면 맛있는 재료고.”


“아···. 과연. 거기서부터 잘못된 거군요.”


하라는 이제야 문제를 알았다는 듯 이마를 '탁' 치고 공책에 붓을 한번 놀리고, 희령에게 말했다.


“희령. 아무래도 도토리에 대한 개색···, 아니 아바이와 저희의 인식이 조금 다른 듯합니다.”


“인식이 다르다고?”


“예. 아바이는 그, 아무래도 도토리를 진심으로 ‘사람의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희령. 당신이 가진 도토리에 대한 인식을 말해주시겠습니까?”


“가축의 사료. 빈민들이 흉년 때나 먹는 구황 작물. 땔감.”


“들으셨습니까? 아바이?”


희령이 백단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아바이는 도토리를 ‘사람의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저희에게 있어 도토리는 ‘가축의 사료’입니다. 아바이는 지금, 백성들한테 가축의 사료를 먹으라 지시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라의 말을 들은 백단은 크게 당황하며 소리쳤다.


“아니,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그런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저희에겐 그렇게 들렸다는 게 문제입니다.”


하라가 한숨을 쉬었다.


“설마 도토리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세상에. 오빠. 설마 저 하늘이라는 다른 세계에선 도토리를 먹고 살았던 거야?”


“아니, 도토리는 나름 별미인데···.”


이는 전적으로 현대인과 중세인의 인식 차이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먹을 것이 풍족한 21세기에선 도토리는 나름 ‘슈퍼 푸드’이자 ‘건강식품’ 혹은 ‘별미’로 주목받는 식품이다.


그러나 ‘식량 생산이 문제’인 중세에서는 도토리는 ‘최후의 수단’ 혹은 ‘가축의 사료’였다.


중세인들도 맛있는 밀이나 쌀을 먹지 도토리는 안 먹는다.


구황 때나 먹는 그런 열매가 바로 도토리이다.


“허어···. 아무튼 그런 속사정이 있었구나.”


백단은 그제야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이건 그거네. 귀리나 감자, 토마토와 같은 사례.’


―――아니, 이해한 것처럼 보였다.


예전에 영국의 사전에 귀리는 ‘일반적으로 말에게 주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사람이 먹는 음식’이라고 적혀있었다.


조금 남방 지방, 혹은 먹고살만한 지방에선 귀리는 그야말로 가축 사료 그 이상으론 취급 안 했다는 소리다. 왜냐하면 맛이 없었으니까.


감자도 처음에는 땅에서 나는 작물이라고 천대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자가 천대받았던 것은 초창기 감자는 맛이 없었다는 이유였다.


19세기 미국에서는 토마토를 먹으면 죽는다는 도시 전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져,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먹지 않았다.


백단은 도토리를 이와 같이 보았다.


‘떫은맛을 빼고,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면 문제가 해결되겠군. 감자도 그랬잖아?’


그는 도토리를 맛있게 요리하는 법(정확히는 탄닌을 제거해)을 개발해, 그가 직접 앞장서 먹는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보았다.


‘어? 그런데 도토리를 어떻게 요리하지?’


그런데 백단은 도토리묵이나 국수는 먹어봤지, 도토리를 요리하는 과정을 몰랐다.


“그럼 하는 수 없군.”


“오빠···!”


“아바이···!”


희령과 하라는 드디어 백단이 도토리를 포기하고 다른 작물을 기를 거라고 생각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백단은 그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씨익, 웃고는 의제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도토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법을 개발하는 수밖에.”


콰앙! 하라가 부러진 탁상에 머리를 박고, 희령이 그대로 엎어졌다.


땅에서 일어난 희령이 백단을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아니! 도토리를 포기하라고!”


“이제 와서 도토리를 포기할 수 없잖아! 지금까지 내가 기른 도토리가 얼마인지 알아!”


그가 기른 도토리만 해도 벌써 하나의 산을 쌓을 정도로 많았다.


“아니! 그러니까 도토리는 가축의 사료라니까! 차라리 다른 걸 키워!”


“그거 다 편견이다! 도토리는 맛있는 음식이라고!”


“아악! 진짜!”


“아바이는 답이 없다. 그는 도토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백성을 개도 안 먹는 도토리나 먹는 돼지로 본다.”


하라가 음산하게 중얼거리며 붓을 공책에 마구마구 휘갈겼다.


백단은 제 머리를 쥐어뜯는 희령을 무시한 채 고심에 빠졌다.


“어디, 도토리를 요리할 줄 아는 사람이 없으려나?”


“아니! 그러니까! 좀! 도토리를! 포기! 하라고!”


하라가 참지 못하고 검을 뽑으려 할 때였다.


콰왕―――!!!


갑자기 문이 열리며 표사 한명이 다급하게 달려와 그에게 한쪽 무릎을 꿇더니 보고를 올렸다.


“개색···, 아니 아바이! 큰일입니다!”


“뭐냐. 또 길리미들의 습격이냐?”


“아닙니다! 그것이! 남쪽에서 새로운 부족이 나타났습니다!”


“뭐라?!”


-


백단과 희령, 하라는 다급하게 성의 옹성 위로 올라갔다.


“저기, 저곳입니다!”


표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과연, 일련의 무리가 성벽 밖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오오! 과연! 길리미(니브흐)가 아니구나!”


그들은 한눈에 봐도 수백명은 넘어 보였다.


‘어림짐작으로 한 700명 안팎인가?’


백단은 눈에 기를 집중해 그들의 수를 꿰뚫어 보곤 그들을 살펴보았다.


그들 무리는 성벽이 썩 신기했는지 저들 언어로 웅성거리며 이쪽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전형적인 동양인의 생김새가 아니라 서양인들과 닮은 외모의 사람들이었다. 백단은 그들이 누구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구이(아이누)!”


저들은 바로 사할린섬에 사는 세 부족 중 하나. 아이누였던 것이다!


“내가 대화할 테니 너희는 나서지 마라!”


백단은 그리 말하고 옹성에서 뛰어내려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의문의 아이누 부족은 백단이 높은 성벽에서 뛰어내렸을 때 놀라더니 그가 이내 아무런 상처 없이 그들 앞으로 착지한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아니, 당신 괜찮으시요?”


“나는 괜찮다.”


“아니!? 우리 말을 할 줄 알다니! 혹 귀하는 누구시오?”


그들 사이의 대표로 보이는 거한이 행동거지를 조심스럽게 하며 백단에게 물었다.


“나는 저 중경을 다스리는 아바이, 백단이라고 한다. 너희는 누구인가?”


“우리는 ‘키로로(아이누어 : 힘)’라고 불리는 부족이고 나는 포로(크다)라고 하오. 본디 이곳은 우리 부족이 살던 땅인데 저 위의 스메렌쿠르(아이누인들이 니브흐인들을 지칭할 때 쓴 표현)와 악마의 군세에 쫒겨 남쪽으로 밀려났오. 그러다가 이번에 이렇게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오.”


“흐음. 그렇군.”


‘본디 이곳에 살던 토착 아이누인이란 말이지?’


“그런데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와 보니 웬 돌로 된 신기한 건축물이 다 있구려. 혹시 그대는 카무이(신/신령)요?”


“응? 신이라고?”


백단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키로로라는 아이누 부족장처럼 보이는 인물이 말했다.


“몇 해 전 이곳은 허허벌판이었소. 옛 우리의 터전이 있었지만, 모조리 짓밟혔소. 그런데 몇 년 만에 이곳에 이런 웅장한 벽이 세워진 것은 분명 카무이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오. 혹 그대는 카무이 혹은 카무이의 가호를 받는 자가 아니오?”


“나는 신이 아니···. 아니 잠깐만.”


‘이거 좋은 기회 아닌가?’


백단은 이 포로라는 자가 자신을 카무이(신)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상황을 이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즈텍 제국의 상황이랑 비슷하잖아 이거?’


아즈텍 제국은 처음 제국을 방문한 스페인인들을 보고 ‘케찰코아틀’이라고 보았다는 ‘썰’이 있다. 물론 카더라인만큼 사실이 아니었으나 백단은 거기까지 몰랐고 단지 이 상황이 그 ‘썰’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카무이를 자칭해서 이들을 꿀꺽 삼킬 수 있지 않을까?’


포로는 물었다. 백단이 카무이냐고.


이 말은 즉, 포로 더 나아가 키로로라는 부족 전체가 백단을 카무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카무이다.”


그는 이 착각을 정정하기보다 오히려 이 착각을 이용해 그들 부족을 흡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역시 그렇구려. 그렇지 않다면 저런 웅장한 벽을 지을 수 있을 리 없지.”


“저 안에는 내가 다스리는 백성들과 저 벽 따위보다 훨씬 대단한 나의 도시가 있다.”


“호오?”


이에 포로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 말해보라는 듯 백단을 바라봤다.


그는 포로의 시선을 선망의 시선이라 착각하고 콧대를 세우며 그의 도시를 자랑했다.


“저 도시는 모든 것이 석재로 이루어져 모두가 튼튼하고 따듯한 집을 가지고 있다. 저 안에는 많은 식량과 가죽, 또 석기가 존재하지. 또 나와 병사(표사)들의 보호 아래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렇구려.”


“너희 역시 나의 가호를 받을 수 있다. 어떤가? 그대가 나에게 귀의하겠다고 한다면 저 도시에 받아들여 줄 수 있다만?”


백단은 포로에게 손을 뻗으며 제안했다.


그 손을 뻔히 바라본 포로는 손을 맞잡지 않고 백단을 보며 물었다.


“혹시 그대는 ‘어떤’ 카무이요?”


“어? 응? 뭐라고?”


“그대가 카무이라면 담당하는 영역이 있지 않겠소? 그대는 어떤 카무이요? 치캅 카무이(올빼미의 신령)? 키로누프 카무이(여우 신령)? 그대는 어떤 카무이요?”


“어···. 어···.”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말문이 막힌 백단.


‘뭐라고 하지?’


“어···. 음. 나는 음. 그래. 만인의(아이누) 카무이다.”


“그렇구려.”


‘통, 통한 건가?’


백단의 어설픈 변명이 통한 건지 포로는 끄덕이더니 백단의 손을 붙잡았다.


이에 그가 미소를 짓는 순간 포로가 말했다.


“참, 약해 보이는 이름이구려. 도시를 우리에게 넘기시오.”


“···뭐라고?”


백단은 한순간 제가 잘못 들었나 당황했다. 그러나 포로는 분명히 제대로 말했다는 듯 도리어 그의 맞잡은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강하오. 그대는 약하오. 그대가 우리를 가호하는 것보다 ‘우리의 카무이’가 그대를 가호하는 것이 더 안전할 거요. 도시를 넘기고 우리의 밑으로 오시오. 그렇다면 우리가 저 간악한 스메렌쿠르에게서 보호해주겠소.”


“하!”


포로의 제안을 들은 백단은 어이가 짧게 헛웃음을 내뱉곤, 이내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우읏?!”


그러자 포로의 손이 구겨지며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지금, 뭐라고, 그랬냐?”


백단은 포로의 말에 진심으로 분개했다.


‘이곳은 나의 도시, 나의 나라다. 그런데 감히 하찮은 중세 미개 원주민 따위가 내 도시를 넘기라고 해?!’


그가 나라를 세운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였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강대한 제국을 일궈, 온갖 미녀와 금은보화를 취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뭐? 감히 하찮은 토인이 뭐라고 지껄여?


백단이 힘을 주자 포로의 손이 그대로 으스러졌다. 포로가 비명을 지르며 제 손목을 움켜잡고 바닥을 굴렀다.


“다시 한번 말해봐라. 뭐라고 지껄였느냐.”


백단이 서슬 퍼런 목소리로 묻자 흠칫 몸을 떤 포로. 그러나 그는 기죽지 않은 태도로 그에게 맞받아쳤다.


“도시를 넘기고 우리의 밑으로 들어오라 했소!”


“하. 하하!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군.”


백단은 어이가 없어 머리를 한번 쓸어 뒤로 넘기곤 칼을 뽑아 그의 목에 갖다 댔다.


“마음이 바뀌었다. 너는 죽인다.”


그는 포로를 죽이고자 마음먹었다.


“너를 죽이고 네 부족을 흡수하겠다.”


“크, 크크. 과연 그대가 그럴 수 있을까?”


“하! 이게 끝까지!”


백단은 검 끝으로 포로의 턱을 들어 올리며 그에게 마지막 자비라는 듯 말했다.


“지금이라도 내개 복종하겠다고 하면 살려주마.”


‘이 시대 인구수는 곧 국력이니까.’


이건 백단의 진심이었다. 그는 되도록 부족들을 온건하게 흡수해 체급을 불리는 것을 원했지, 무력 합병(?)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겠소. 당장 항복하시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카무이’가 그대를 벌할지니.”


포로는 손목을 부여잡은 손을 놓더니, 이내 하늘을 향해 경배하듯 손바닥을 펴고 절하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자꾸 우리의 카무이라는데 그게 무―――!”


백단이 반사적으로 검면을 들어 옆구리를 방어했다. 그러자 가냘픈 다리가 그의 검면을 후려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백단이 그대로 >자로 꺾이며 옆으로 밀려 나갔다.


‘어느 틈에? 아니 그보다 이 여자. 기를 사용했다.’


백단은 곰 가죽을 뒤집어쓴 여인이 기를 운용해 자신을 날려버린 것에 경악하며 그녀를 바라본 순간.


“그분이 오신다.”


옆에서 포로의 목소리와 들렸다.


그리고 백단은 실로 오랜만에 죽음의 직감을 느꼈다.


‘어? 이 느낌은?’


그리고 백단은 그 직감이 어딘가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꼭, 흑룡을 보았을―――’


“오빠! 뒤에!”


“아바이! 뒤를 보십쇼!”


희령과 하라의 비명과 같은 외침 직후 그는 허공을 날았다.


‘―――때···.’


그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가히 5m나 되는 거대한 곰이 있었다.


그리고 콰앙! 그는 성벽에 굉음과 함께 틀어박혔다.


-


포로나이스크에는 아이누 부족이 살았는데 그들은 키로로(힘)라 불리며 이름처럼 일본인들에게 복종하지 않았으며, 화끈한 성격과 복수심,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어 위키백과]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드디어 아이누 부족이 등장했습니다! 

대체역사 하면 역시 미래 지식으로 신으로 추앙받는 것은 약속된 전개!(클리셰!)


고로 넣었습니다. 역시 현대인 치트는 사기군요. 사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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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발해국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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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건국기 33화. 발해 강철, 다가온 위기 24.09.17 25 1 18쪽
56 건국기 32화. 해군의 양성, 철 수확 24.09.16 21 1 19쪽
55 건국기 31화. 문화의 발전, 철광의 발견 +2 24.09.16 35 1 23쪽
54 건국기 30화. 사할린 공용어 24.09.13 41 1 25쪽
53 건국기 29화. 양식업과 언어 24.09.13 27 1 23쪽
52 건국기 28화. 양식업…을 시작하기 전에 24.09.13 30 1 13쪽
51 건국기 27화. 종이 = 꿀 24.09.12 36 1 16쪽
50 건국기 26화. 종이 만들기 +2 24.09.12 41 1 15쪽
49 건국기 25화. 방어선 재구축과 건국建國 +2 24.09.11 48 1 16쪽
48 건국기 24화. 전후처리, 내정의 시작 24.09.11 35 1 15쪽
47 건국기 23화. 완벽한 승리 24.09.11 35 1 24쪽
46 건국기 22화. 전쟁…? 24.09.10 32 1 28쪽
45 건국기21화 만반의 준비와 백리장성 24.09.10 31 1 23쪽
44 건국기 20화. 후회와 미련 사이 24.09.09 39 0 12쪽
43 건국기 19화. 악마와 악마 24.09.09 34 1 22쪽
42 건국기 18화. 남경南京 24.09.06 45 1 16쪽
41 건국기 17화. 모든 길은 로마…, 가 아닌 중경中京으로 통한다. 24.09.06 38 1 26쪽
40 건국기 16화. 보이텍Wojtek 혁명 24.09.05 37 1 28쪽
39 건국기 15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완) 24.09.05 29 1 25쪽
38 건국기 14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3) 24.09.04 31 1 20쪽
37 건국기 13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2) 24.09.04 33 1 16쪽
36 건국기 12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 24.09.03 38 1 20쪽
35 건국기 11화. 백단과 비녀羆女 24.09.03 35 1 14쪽
34 건국기 10화. 박달나무 아래 곰이 쓰러지다 24.09.03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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