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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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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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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밧줄을 끊은 코끼리

DUMMY

2. 밧줄을 끊은 코끼리


내가 염소를 치던 장소는 여러 개의 언덕이 연달아 솟아있는 구릉 지역이었다.

한쪽 면은 오르막이고, 반대편은 절벽으로 되어 있는 특이한 지형이어서 출입구 역할을 하는 오르막 쪽만 경계하면 외부의 위협 없이 방목하기 좋은 지형이기도 하다.

목양견의 도움을 받으면 10살짜리가 염소치기를 시작해도 괜찮을 정도로 말이다.


“컹컹!”


절벽 아래에서 언덕 위로 다시 돌아온 내게 덩치 큰 목양견이 내게 달려왔다.

지난 7년 동안 내 유일한 친구이자 동료가 되어주던 녀석이었다.

목양견은 내 주변을 겅중겅중 뛰면서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살펴보더니 내게 몸을 붙이고 낑낑거렸다.

피냄새 때문에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나는 녀석을 다독인 후 마을을 향해 염소 무리를 몰기 시작했다.


추락 사고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야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완전히 어두워지고 난 다음이었다.

예상하기는 했지만, 돌아가자마자 폭언이 쏟아졌다.


“어디서 게으름을 피우다가 이렇게 늦은 거야! 해가 떨어지면 염소에게 위험한 것 몰라!”


염소 무리의 주인인 빌은 제때 염소가 나타나지 않자,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당장이라도 한 대 칠 것처럼 주먹을 쥐고 내 눈앞에 흔들어댔다.


그러나 아침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고, 욕을 먹으면 주눅이 들어서 눈치를 보던 레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마를 까고 내 상처를 보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걸 보라고요!”


머리카락의 일부는 피에 젖어서 떡이 져 있었고, 일부러 닦지 않고 내버려둔 핏자국은 얼굴을 지나 가슴까지 흘러 있었다.

그제야 제대로 내 모습을 빌은 주춤했다.

그냥 보기에도 보통 상처가 아닌 것으로 보였을 테니 말문이 막힌 것이다.


“추락하는 염소를 잡으려다가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을 뻔했습니다.”


“염소는?”


역시 이자는 인간이 덜됐다.

다친 사람보다 염소부터 걱정하다니.

나보다 염소가 더 귀중하다고 생각해도 대놓고 이건 아니지.


“같이 떨어졌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죽은 후더군요.”


“죽은 염소는? 설마 안 챙겨왔단 말이야!”


빌은 다시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는 곧 말꼬리를 내렸다.

정색하고 노려보는 내 시선 때문일까?


이 사람.

입이 거칠고 손도 함부로 쓰는 주제에 비겁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가스라이팅 당해서 사실상의 노예가 되어가던 17살 소년의 눈이 아니라 알 것 다 아는 현대인의 눈으로 보니 확실했다.

이 사람은 강약약강이다.

강하게 나가면 수그러드는 종류의 인간.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나 힘을 쓰는 비겁자였다.


“퉷!”


나는 일부러 그의 앞에 피가 섞인 침을 내뱉었다.

빌이 움찔했다.

겨우 이 정도의 행동에도 긴장하다니 비겁한 것이 아니라 겁이 많은 거였을지도?


어린 시절부터 밧줄에 묶여서 지낸 코끼리는 성체가 된 후에도 밧줄을 끊지 못하고 그냥 묶여서 지낸다고 한다.

밧줄 따위는 단숨에 끊어버릴 수 있음에도 말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밧줄에 묶여서 자라던 코끼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빌 역시 평소와 다른 나를 보고 무엇인가 느꼈던 것이 틀림없다.

저런 사람이 자기보신에는 예민한 법이니까.


“뭐해요?”


갑작스러운 소란에 모습을 나타낸 사람은 빌의 아들 잭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나약한 빌과 달리 잭은 타고난 불량배였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절반 정도는 그가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머지 절반은 촌장의 아들이 저지르고 있고.

마을 젊은이들은 둘의 부하나 다름없었다.


그런 놈이 반쯤 노예화되어 가는 집안의 일꾼에게 어떻게 대할지는 뻔하다.

맞은 것으로 치면 빌보다는 그의 아들인 잭에게 맞은 것이 훨씬 많았다.

더구나 잭은 주기적으로 염소를 강탈해 가기도 했다.

그에 대한 책임은 내게 지우고 말이다.


“이놈이 늦어서 훈계하던 중이었다. 너, 앞으로 조심해. 내가 두고 본다.”


빌은 억지로나마 체면을 차리려는지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염소 무리를 몰고 헛간으로 향했다.


* * *


“저놈의 시끼. 태도가 불손하네.”


잭은 헛간으로 향하는 레온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잭의 말에 빌은 약간 기세가 살아나서 투덜거렸다.


“머리가 좀 굵어졌다고 요즘 태도가 반항적이기는 했다.”


“그거 다 매가 부족해서 그런 겁니다. 아버지. 저놈, 날 잡고 제대로 두들겨 패죠? 성질이 꺾일 때까지 계속 맞다 보면 알아서 주제파악을 할 겁니다. 아니면 아예 팔 하나를 병신으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싶은데. 목초지까지 걸어 다니는 것에 지장없게 두 다리만 멀쩡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 그럴까?”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아들의 말에 빌은 잠깐 말을 더듬었다.

그러나 잭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술 더 떴다.


“말 나온 김에 내일 당장이라도 애들 불러서 손 좀 볼게요. 아버지는 애들 먹이게 염소나 한 마리 내 주시면 됩니다.”


“조심해라. 저놈 눈에 살기가 돌더라.”


빌은 걱정이 되었다.

물론 아들인 잭에 대한 걱정은 아니었다.

원체 거칠고 힘이 좋은 아들이 부하들까지 몰고 다니니 아직 여물지 못한 녀석 하나 손보는 것은 별것 아니다.


그의 걱정은 촌장에 대한 것이었다.

레온을 자신에게 맡긴 것이 촌장이었기 때문이다.


밥이나 먹이면 된다면서 레온을 맡긴 이후로 별소리 없어서 잊고 있었지만, 그래도 트집 잡힐 만한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빌은 레온을 병신으로 만들기 전에 촌장에게 말은 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 *


헛간은 오물 냄새와 염소 냄새가 섞여서 언제나 묘한 악취를 풍겼다.

하루의 1/3을 이런 곳에서 지낸다면 냄새가 몸에 밸 수밖에 없다.

아무리 고약한 냄새라도 오래 맡으면 무뎌진다지만 헛간의 악취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악취 따위에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혼자가 되자마자 손가락을 튕겨서 다시 상태창을 불러냈다.

절벽 아래에서 상태창을 살펴보았지만 알아낸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구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이고, 켜고 끄고 하는 방식도 같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다시 내 눈앞에 불러낸 상태창은 유토피아를 처음 시작할 때 주어지는 기본 상태창이었다.

소위 말하는 오리지날, 순정이다.

이름과 레벨, 한 칸짜리 인벤토리가 표시된 것이 전부였다.


유토피아에서는 이 상태에서 돈을 지불하면 추가 기능을 붙여 준다.

인벤토리의 확장, 별도의 창고, 스킬과 아이템에 대한 설명, 현 상태에 대한 보다 세밀하고도 구체적인 분류와 설명, 심지어 레벨도 수정할 수 있게 해 준다.


상태창 뿐만이 아니었다.

스킬과 아이템 역시 조건을 갖추고 돈을 지불하면 구입할 수 있다.

스킬의 종류도 다양해서 온갖 것이 다 있다.

비싸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상태창이나 인벤토리를 볼 수 있는 스킬조차 있을 정도다.

심지어 아주 비싸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인벤토리에 있는 물건을 훔치는 스킬도 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내 앞의 상태창은 심플하기 그지없었다.


레온 쉐이드

레벨 7

그리고 인벤토리가 한 칸


그게 전부였다.

영락없는 순정, 돈 한 푼 들이지 않은 기본적인 상태창이다.


나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쉐이드라는 성에 잠깐 시선을 두었다가 레벨을 확인했다.


레벨 7.


평범한 도시인이 레벨 5다.

프로 스포츠 선수급으로 훈련한 사람은 레벨 10 정도.


레벨 7이라면 평범한 도시인과 프로 스포츠 선수의 중간쯤 되는 셈이다.

운동을 한 티가 나는 일반인,

아니면 노동으로 단련된 보통 사람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17살이라고 하지만 명색이 목동이다.

무릿매 하나로 늑대도 쫓아낼 수 있다.

레벨 7이라면 납득할 만했다.


물론 레벨이 반드시 강함의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이 그렇듯 칼을 하나 드는 것만으로도 레벨 5의 차이 정도는 간단하게 뛰어넘는다.

프로 복서라고 하더라도 칼 든 일반인을 보면 도망쳐야 하지 않던가?

그래서 유토피아에서는 다들 무술 수련에도 열심이었다.


유토피아에서의 무술 수련은 허수아비를 치는 것이 아니었다.

실전이 곧 수련이었다.

모든 감각은 현실과 거의 동일하지만 죽지는 않는 가상현실.

포인트를 따는 것에 특화되었던 스포츠 무술은 금방 사장되었고, 대신 사람을 죽이는 기법을 수련하는 무술 수련이 유행했다.

특수 부대에서 수련한다는 살인 기법은 물론이고 중세 유럽 무술이니, 일본 고류 무술이니 하는 것이 새로운 주류 무술로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유토피아에서 뜨기 위해서 제법 열심히 무술 수련을 한 축에 들어간다.


나는 염소를 도축할 때 쓰던 도축칼을 집어 들었다.

염소의 멱을 따고, 피를 빼고,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발라낼 때 쓰는 칼이다.

용도에 따라 각각 다른 칼을 쓴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런 시골에 그렇게 다양한 칼이 있을 리가 없으니 그동안은 이 한 개의 칼로 다 해 왔다.

덕분에 손에 착 감기는 것이 오랫동안 사용해서 길이 든 칼다웠다.


이 도축칼로 염소가 아니라 사람의 멱을 딸 수 있을까?

가상 현실이 아니라 실제 세상에서?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은 의지의 문제지 기술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의지의 문제라면 17살의 레온이 지구에서의 나보다는 낫다.

도축은 살인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나는 집어 든 도축칼을 허공에 떠있는 상태창에 들이댔다.

정확히는 인벤토리 부분에.


도축칼은 허공으로 녹아들어가듯 사라졌다.

대신 상태창의 인벤토리에 작은 칼 모양의 이미지가 생겼다.

게임에서와 동일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계약이었지만, 적어도 말한 것은 지키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약속은 어떻게 이행하겠다는 것일까?


나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그는 내가 유토피아에서 구매한 것을 모두 주겠다고 했다.

자신들이 준비한 것도 더 추가해 주겠다고도 했다.


어떻게?


나는 조용히 생각을 거듭했다.

아침이 될 때까지.


* * *


잭은 평소에 자신을 따르던 똘마니 둘을 데리고 레온이 염소를 치는 언덕을 향해 갔다.

혼자 가도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기회가 생겼을 때에 자신이 얼마나 거친 놈인지도 과시하고 염소도 나누어 먹이고 하면서 아래 놈들을 관리해야 했다.


“이번에도 레온 녀석이 염소를 해 먹은 것으로 하는 거요?”


“그래. 그 녀석이 자발적으로 선물한 것으로 할 거다.”


“그러면 20마리는 확실히 넘겠는데? 레온 녀석 어쩌냐.”


“그놈은 이미 잭 형님네 노예였어. 아직 주제파악이 덜 된 것 같기는 하던데, 오늘만 지나면 누가 주인님인지 확실히 뼈에 새기겠지 뭐.”


잭은 킬킬거리며 몽둥이를 만지작거리는 마을 동생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놈들은 머리가 나쁜 것 같으면서도 눈치는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놀러가는 것 같은 기분은 거기까지였다.


퍽!


서로 웃으며 대화하던 마을 동생들 중 한 명이 갑자기 고꾸라졌다.


머리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솟아나는 피.

피에 젖은 채 근처에 떨어져 있는 주먹만 한 돌멩이.


그냥 돌멩이도 아니었다.

무릿매용으로 손질된 돌맹이였다.


다급하게 주변을 살핀 잭은 언덕 위 먼 곳에서 길게 늘어뜨린 무릿매를 다시 돌리기 시작한 레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뭔가 하기도 전에 다시 돌멩이가 날아왔다.

손으로 던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돌멩이를 뒤늦게 발견한 마을 동생이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날아온 돌멩이는 마을 동생의 팔목을 부숴놓았다.


하나는 머리에 맞고 의식불명, 다른 하나는 팔목 골절.

이러고저러고 말을 나눌 것도 없었다.


잭은 레온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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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보물은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보물이다 +12 24.09.03 5,448 210 12쪽
13 13. 마석을 구할 수 있는 다른 방법 +13 24.09.02 5,430 204 12쪽
12 12. 미궁 지하 2층 +7 24.09.01 5,584 212 12쪽
11 11. 미궁 지하 2층을 가기 전에 +17 24.08.31 5,649 2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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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미궁 지하 1층 +17 24.08.26 6,935 22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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