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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청(卍靑)
작품등록일 :
2024.08.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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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운남(雲南) (2)

DUMMY

37.





운남성이 어떤 지방인가.

삼국지를 기준으로는 옛 남만(南蠻) 땅이다. 칠종칠금의 고사로 유명한 맹획, 정글과 독천(毒泉)으로 뒤덮인 땅.

물론 나관중의 창작이라 되어 있지만, 실제 무림의 남만과 운남성은 거리가 멀다.

북고남저(北高南低),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지형이니까.

대부분의 지역이 고산이나 고원지대라 그리 덥지 않은 땅이다. 괜히 운남(雲南)인 게 아니다.

그리고 이 운남성의 경계 밖을 일컬어 남만이라 부르는 것이다.


‘실제로는 가공의 지역이라서, 그 영역이 겹치는지는 확답할 수 없지만.’


어찌 되었건, 운남성 하면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차’다.

특히 보이차는 운남성에서 재배한 물건이 아니라면 보이차라는 이름을 쓸 수 없을 정도다. 그만큼 보이차 자체가 운남성을 대표하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커피를 키울 수 있는 곳도 중원에선 운남 한 곳뿐이긴 한데.’


만약이라도 백서군이 커피 종자를 찾게 된다면 운남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중원 전역을 뒤져봐도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기후 조건을 갖춘 곳은 운남밖에 없으니까.

어찌 되었건, 보이차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건 청나라 시대 즈음이고, 명나라 시대에는 운남의 소수민족들이 마시는 그저 그런 차로 알려져 있었으니 위상 자체가 다르다.

그러니 보이차가 품귀 현상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 애초에 사천성과 운남성은 지척이다. 아무리 운송에 차질이 생긴다고 해도 보이차 재고 부족 현상이 발생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운남이 지금 난리통이란 말씀이십니까?”

“예. 흑차를 관리하는 차창(茶廠) 쪽에서 크게 불이 나서, 차들이 엄청나게 불타버렸다는 듯 한데···.”


듣기만 해도 골치가 아파지는 소리다.

차창이 무엇이냐.

차를 보관하는 창고라는 이름이지만, 사실상 차를 제조하는 공장이다. 다원과 차창, 이 두 가지 조직이 서로 상호작용을 해야만 차가 탄생하는 것이다.

백서군은 이마를 꾸욱 눌렀다.


“운남 흑차, 그 판납(版納) 땅에서 생산하는 차들은 전부 못 쓰게 된 겁니까?”

“상단에서도 사람을 보내어 조사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차창이 불탔을 정도면 보통 큰 일이 아닌 듯 한데···.”

“송구합니다.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흥풍상단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곤란한 상황일 것이다.

백서군처럼 주기적으로 차를 구입해 가는 고객 앞에서 치부를 드러낸 셈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나마도 백서군이 취풍헌의 주인인 점주 노인과 친한 관계가 아니었으면 들려주지도 않았을 이야기였다.


“당분간은 결국 흑차를 구하기 어렵다는 뜻이군요.”

“운남에 직접 가시는 건 그만두시길 권합니다.”

“차창이 불탔다는 건 그만한 원인이 있어서인 듯 한데, 어떤 일입니까?”

“태족과 회족 사이에 분쟁이 생겨서, 지금 차창이 불타오를 지경까지 사태가 번졌다는 모양입니다.”


태족(傣族)과 회족(回族)이라면 운남에 사는 소수민족들이다.

서로 활동 영역이 달라서 부딪힐 일도 없을 소수민족들끼리 붙어서 분쟁이 생겼다니,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일까.

백서군은 골치가 아파오는 걸 느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만, 서로 차창을 공격할 정도면 보통 일은 아닌 듯 합니다.”


백서군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꾸욱 눌렀다.


‘회족하고 태족이라···.’


운남 쪽을 오가는 상인들과 교류가 적지 않다 보니, 태족과 회족에 대한 것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회족은 중원에 자리를 잡은 한족화된 무슬림 집단.

태족은 운남성 경계 밖, 흔히 남만이라 부르는 지방으로 이주하지 않고 갈라져 중원에 남은 민족이다.


-게다가 태족은 아예 문자를 또 따로 씁니다. 언어도 달라서 익히는 데 애먹었지요.

-한어를 안 씁니까?

-쓰는 부족이 있기는 한데, 그래도 역시 자기들 언어를 더 자주 쓰지요. 아주 애먹었습니다.


중원의 일부인 운남에 살면서도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민족.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두 민족이 충돌했으니, 과격한 방향으로 상황이 격화되는 게 이상하지는 않다.

문제는 그게 차를 제조하는 공장, 차창까지 불태울 정도까지 번졌다는 것.


‘골치 아프군.’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쑤시는 기분이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나면 흥풍상단 쪽에 부탁해서 커피 원두를 찾아볼까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이러면 예정이 늦춰질 수도 있다.

백서군은 이마를 꾹 눌렀다.


“그럼 운남 흑차는 구하기가 어려워지겠군요.”

“점창파도 이래저래 골치 아픈 모양입니다.”

“점창파가요?”

“예.”


운남성의 대문파라고 하면 점창파 하나밖에 없다고 할 만큼 운남성은 무림에서도 다소 소외되어 있는 지방이다.

곤륜파야 그래도 마교를 상대하는 최전선이라는 상징성이라도 있지, 점창파는 중원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빠른 쾌검을 구사한다는 타이틀 말고는 사실상 가진 게 없다.

사천이야 당가도 있고, 아미파도 있으니 청성파가 적당히 꼽사리 껴서 가도 상관없는 반면에 운남은 중원에서의 지명도도, 무림에서의 지명도 점창파라는 대문파 하나에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음, 그건 그렇다 치고··· 혹, 운남으로 가는 상행이 있습니까?”

“운남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다관에서 파는 주력 상품 중 하나가 흑차입니다. 구할 수 없으면 직접 가서라도 구해와야지요.”

“위험할 겁니다.”

“형편이 별로긴 한데, 그래도 호위 한둘 정도는 구할 수 있을 겁니다.”


백서군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곤 인사를 했다.


“여하튼, 정보 감사합니다. 어르신께 백가가 왔다 갔다고 전해주실 수 있으면 전해 주십시오.”

“어르신께 뭔가 따로 부탁드리실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안부 인사를 전해달라는 것뿐이지요. 흑차 재고가 모자란다는 말을 듣고 온 건데, 그런 이유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닙니다. 취풍헌의 이름에 부끄러운 사태가 벌어진 탓에 송구할 따름입니다.”


청년이 거듭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

흥풍상단이나 취풍헌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기분일 것이다. 그동안 평범하게 잘 공급되던 차 재고가 갑자기 분쟁으로 인해 물량이 부족해질 줄 누가 알았겠나.

녹림의 도적들이 털어간 것도 아니고, 장강의 수적들이 약탈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되었으니 말 그대로 환장할 노릇일 터였다.

백서군이 나가려 하자, 청년이 말을 덧붙였다.


“혹, 운남에 가시거든 점창파 무인들과 동행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작게라도 인연이 있으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고개를 숙여 보인 백서군이 취풍헌을 나선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청년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골치 아프군. 당분간 운남 쪽으로 사람을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는데, 이게 해결이 될는지···.”



***



“내상은 그래도 좀 좋아졌구나.”


당무외의 목소리다.

당소군은 자신의 손목에서 손을 떼는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대로 괜찮을까요, 할아버지?”

“요상에 계속 신경 쓰고 있으면 괜찮다. 지금 당장 네가 사천을 떠나 비무행을 떠날 것도 아니지 않으냐?”

“···네.”

“하지만 이대로 내상을 오래 방치했다간 좋지 않은 결과를 부를 게다.”


당무외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얼굴이었다.


“쯧, 효기 그 놈은. 제 딸이 아픈데도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다니, 매정한 놈이로고.”

“가주님은 바쁘시니까요.”

“딸보다 가문이 우선이라. 어찌하겠느냐. 노부가 그리 키운 것을. 다 노부의 잘못인 게지.”

“할아버지 잘못이 아닌 걸요.”

“자식의 잘못은 부모의 잘못인 게다. 무고가 제대로 키우지 못했으니 그 모양인게지.”


아직 미혼인 당소군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당가의 대공녀인 그녀가 정략혼으로 다른 세가에 간다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여자가 한 문파의 수장 자리로 군림하는 게 허락되는 건 극소수 문파 뿐이니까.

구파일방 중에서는 아미파가 대표적이다.


“본가의 독상이라는 게 독특한 구석이 있어서, 함부로 요상단을 쓰지 못하는 것도 문제로구나.”

“독가(毒家)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노부는 그런 점이 싫었다.”


당무외의 웃음이 씁쓸했다.

당가에서 나고 자랐으나, 독과 암기보다 천하 만병(萬兵)을 제약없이 다룬다 해서 천병제라 불린 사내.

당가 사람이면서 가장 당가 사람답지 않은 무인이다.

독에 대한 지식은 해박하나, 정작 그 자신은 독을 쓴 적이 한 번도 없는 인간. 당가 무인이면서 독과 관련된 별호가 아예 없는 건 당가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도 당무외가 유일했다.


“독공으로 대성하지 못하면 결국 죽을 때 고통스럽기만 하니, 그런 고통을 감내하고서라도 독공의 끝을 봐야 할 이유가 있더냐.”

“그건 독을 다루는 독문의 숙원이니까요.”


당무외는 혀를 찼다.

당가 역시 독문인 만큼, 독공의 끝을 추구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단지, 당무외 본인이 그걸 싫어할 뿐.


“무리는 하지 말거라.”

“···네.”


당소군이 별채를 나선다.

그 뒷모습을 보며 당무외는 묘한 의문을 품었다.


“백운관에서 분명 노부의 모습을 봤을 텐데. 아무 말도 안 하는 건가, 우리 손녀는?”



***



당무외와 대화를 마치고, 당소군은 당연하다는 듯이 당가타의 정문을 나섰다.


“아가씨, 또 외출이십니까?”

“그래.”

“단규라도 데려가심이.”

“됐어.”


당소군은 칼 같이 말을 잘라버리고서는 당가타의 정문을 지났다.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수문 무사들은 헛웃음을 흘렸다.


“성격 참··· 여전하시군.”

“살벌하시지. 어릴 때부터 줄곧 대공녀라는 자리에 중압감을 느끼고 계시니 더욱 그럴 테지만···.”

“뭐, 그건 이해하지만 말이야.”


수문 무사 두 사람의 입가에 쓴웃음이 흐른다.

나이 차이가 열 살 가까이 나는 대공녀와 이공자. 그런 탓에 어린 나이부터 대공녀는 어깨에 짊어진 게 이상할 정도로 많았다.

게다가 이복남매이기까지 했으니 오죽할까.

어렸을 때부터 당소군이 짊어지고 있던 중압감이라는 건 적은 게 아니었다. 그 어린 나이부터 당가를 대표하는 대공녀 자리에 있었으니까.


“언제쯤 저 얼음 같은 표정이 풀어지시려나.”

“모르지.”

“그래도 외출이 좀 잦아지신 걸 보면 뭔가 우리가 모르는 일이 있는 게 아닐까?”

“나중에 단규에게 물어보는 것도 괜찮겠어.”

“그 녀석, 무뚝뚝해서 제대로 대답도 안 해줄 텐데.”

“그래도 물어볼 사람이 없잖나.”

“그것도 그렇군.”


당소군의 최측근이라고 해봐야 단규, 그리고 그녀를 10년 가까이 모신 시비 둘이 전부일 정도였으니까.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그녀의 외출이 잦아졌다는 점일까.

무공 수련을 하는 시간이 아니면 그녀가 당가타를 나서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니까.

수문무사들은 팔짱을 낀 채 하늘을 멀거니 올려다보았다.


“남자라도 생기셨나···?”

“태상가주님 귀에 들어갔다간 경을 칠 소릴.”

“하지만 그거 아니면 이유가 생각이 안 나는데.”

“대공녀 귀에 들어가면 사지 한두군데 부러지는 걸론 안 끝날거다.”


왼쪽에 선 사내의 말에 오른쪽에 선 사내가 생각만 해도 으슬으슬하다는 듯 팔을 쓰다듬는다.


“운남 쪽이 시끄럽다던데, 그쪽 일이 사천까지 넘어오진 않겠지?”

“신경 끄라고. 어차피 본가가 관련된 일도 아니니까. 우리는 이 정문만 지키면 돼.”

“그것도 그렇지.”


당가타의 정문을 지키는 수문 무사들의 머리 위로 조각구름이 흘러내려간다.

운남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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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 홍당자파(紅糖糍粑) +12 24.09.07 13,792 30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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