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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청(卍靑)
작품등록일 :
2024.08.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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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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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2. 무슨 조치를 하려고

DUMMY

12.




운도 더럽게 없지.

백서군에게 뒷덜미를 잡힌 사내, 장칠은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에 루주에게 불려갔을 때만 하더라도 싱글벙글이었던 장칠은 자신이 이런 따분한 일에 투입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못마땅해 했다.

아무리 백운관에 당가의 대공녀가 드나들고, 청성파의 벽운진인이 다녀간다고 해도.

그렇다 해도 작은 규모의 다관일 뿐이지 않나.

그런 곳을 굳이 염탐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장칠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을 안 하겠다 이건가?”


그와는 별개로, 백서군 앞에서 자신이 명해루에서 왔다는 사실을 들켜선 안 되었기에 장칠은 당연하게도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뭐, 안 봐도 명해루에서 보내서 온 거라는 건 알겠소만.”


뜨끔, 하고 가슴 한쪽이 찔린다.

하지만 장칠은 최대한 태연한 척 고개를 치켜들었다.


“내가 명해루와 관계있다는 증거, 있소?”

“성도 바닥에서 장사 하루이틀 하는 줄 아나. 백운관 같이 작은 다관 안쪽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들여다 보는 미친놈이 세상 어디 있다고.”


가슴 한쪽이 인두로 지진 것처럼 화끈하다.

장칠이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던 탓이다.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알겠는데,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맙시다. 그쪽 루주 양반 마음에 안 드는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그러니까, 나는 명해루 사람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끝까지 잡아뗄 생각이오?”


백서군이 장칠을 딱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그가 뭐라 더 말하려는 순간, 여인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백 점주님?”


고개를 돌린 백서군이 바로 허리를 꺾었다.


“남궁 소저 아니십니까.”

“후후, 그렇게까지 인사하실 필요는 없는데.”


남궁화는 백서군이 허리까지 90도로 꺾으며 인사를 하는 것이 재미있었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본 장칠의 표정이 까맣게 죽었다.

백서군이 아니라 남궁세가 사람에게 그가 명해루 사람이라는 게 까발려졌다가는 어떻게 될지 앞날이 불 보듯 훤했으니까.

장칠이 도망치기 위해 등을 돌리는 순간, 백서군이 사정없이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어딜 도망가.”

“끄악!”

“남의 가게 안을 대낮부터 그렇게 염탐을 하고 있었으면, 사과라도 하든가. 어디서 온 놈인지는 밝히고 가야 할 거 아냐?”

“염탐이요? 백운관을요?”


남궁화의 반문에 백서군이 그렇다고 답했다.


“혹시, 백 점주님과 척을 진 곳이라도 있나요?”

“아마 명해루일 거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굳이 말을 안 하니 확증이라곤 할 수 없지요.”

“심증뿐이란 거군요.”

“그렇다고 그냥 놓아줄 수도 없으니, 이거 참 곤란하군요.”


백서군이 팔짱을 낀다.

이대로 보내자니 사이다가 부족하고, 그렇다고 관아로 끌고 가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사적 제재를 가하기엔 백서군이 무공과 연이 없는 몸이었다.


“참, 먼저 온 일행이 있을 텐데. 보셨는지?”

“맹룡 소협이라면 안에 계실 겁니다.”

“잘 왔군요! 다행이에요.”


남궁화가 박수를 치면서 환하게 웃는다.

흰 피부가 햇빛을 받아서 유리알처럼 빛나는 게, 후광이라도 두른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 사람이 문제군요. 당 언니를 부르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뭘?”

“당 언니!”


남궁화가 당소군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마자, 호랑이처럼 등장한 당소군이 살짝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백서군을 보고는 표정을 풀었다.

표정 변화가 정말 극적이었다.


“아, 백 점주. 나와계셨군요.”

“안녕하십니까, 당 소저.”

“이 인간은 뭔가요?”


당소군의 시선을 받은 장칠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남궁세가의 설봉, 그리고 당가의 대공녀.

두 여인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다관의 주인, 백서군.

장칠의 머릿속이 난마처럼 뒤엉켰다.


“일단 무슨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니, 한 번 들어보는 것도 괜찮겠군요.”


백서군의 시선이 장칠을 향했다.


“빠짐없이 털어놓는 게 좋을 거요. 그래야 정상참작을 해줄지 말지 결정할 수 있을 테니.”

“무슨 사정이 있는지 한 번 들어보도록 하죠.”


당소군의 눈동자에 녹색 안광이 약하게 맺혔다.


“그래야 제대로 판단하든 말든 할 테니까요.”


장칠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



자리를 옮겼다.

백서군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백운관 뒤편의 별채, 그의 사택(私宅)이었다.


“정갈하게 되어있군요. 여길 들어오는 건 저와 화가 처음인가요?”

“외인을 제 집에 들인 적은 처음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백서군의 집까지 들어온 이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그만큼 백서군의 교우 관계가 좁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백운관에서 보내는 탓도 적지 않게 있다. 애초에 다관과 집이 붙어 있는 구조이기도 하고, 객잔이라 생각지 않는 이들도 많으니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따로 별채를 지어 손님을 받을 만큼 백운관은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니었으니까.

남궁화가 창밖의 차나무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들어오는 길에 보인 묘목들은 차나무인가요, 혹시?”

“예. 얼마 전부터 기르기 시작한 겁니다.”

“다원(茶園, 차밭)이 아닌 곳에서 차나무를 기르는 건 처음 봐요.”


그야 백서군은 다농(茶農)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다.


“취미로 기르는 겁니다. 차를 맛보려면 몇 년은 걸리겠지요.”

“저번의 냉차는 조금 아쉬웠지만 굉장히 좋았어요. 차나무가 다 자라면 그때 차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그때 남궁 소저께서 사천에 오신다면요.”

“좋습니다.”


얼음장 같은 미모와는 정반대의 활달한 성격.

처음 보았을 때와는 이미지가 반대라고 해야 할까. 물론 평소에는 조용한 성격인 듯 싶었지만, 백서군이 남궁화를 잘 아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백서군은 중앙에 장칠을 앉혔다.

그를 둘러싼 세 사람의 시선에 완전히 주눅이 든 얼굴이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상세하게 털어놔 보시오.”

“제대로 이야기 하지 않으면 사지가 잘려나가도 원망하지 마.”


백서군의 말 뒤로 따라붙은 당소군의 한 마디에 장칠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른 인간도 아니고 당가의 대공녀가 직접 하는 말이다. 그 무게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장칠의 앞에 자연스럽게 앉은 당소군이 차가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시작해. 한 점이라도 거짓이 섞인다면 손가락을 마디마디 꺾어놓겠어.”


장칠이 겁에 질린 얼굴로 탁자에 머리를 처박았다.


“저,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장칠.

장씨 가문의 일곱째라는 이름을 갖고 태어난 사내는 슬하에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두 아이는 아직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고, 장칠이 일해서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끼니를 때우지 못할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장칠이 한 달에 받는 돈이라 해도 기껏해야 은자 한 냥.

백서군이 기억하는 바, 당대의 4인 가족 기준 한 달 생활비가 은자 두 냥에서 세 냥이다. 은자 한 냥 가지고 한창 자랄 나이인 아이들이 굶지 않도록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더구나 장칠 본인도 밥을 먹어야 하니, 한 냥으로는 부족할 터였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해본 적도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고.

게다가 점소이로 취직한다고 그날 바로 돈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장칠의 입장에서는 명해루주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은자 석 냥. 지금 네 녀석이 받는 돈의 3배를 주겠다. 그러니 백운관을 감시하다가 무언가 알릴 만한 것이 있으면 즉시 와서 보고해라. 루에 출근하지 않아도 좋다. 놈을 감시해라. 건수가 있으면 바로 내게 보고하고!


사정을 털어놓은 장칠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런 사정이 있다고 해도, 백서군 입장에서는 처분이 애매하다.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

하지만 그런 사연을 일일이 들어주고 사정을 봐준다면 세상이 어지러워질 것이다. 무림인이 아닌 백서군이라 해도 알 수 있다.

온정주의에는 결국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사정은 아니긴 하지만.’


아이가 굶고 있고, 아프기까지 하니 백운관을 감시하라는 명해루주의 명령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찌하시든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아예 포기한 기색이다.

백서군은 장칠이 털어놓은 사정을 듣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점소이 월급이 많지는 않은 편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은자 한 냥이나 챙겨주는 건 명해루 같은 곳이라 가능한 것이다. 백서군을 견제하는데 은자 석 냥을 투자한 것을 보면 그만큼 백서군이 거슬린다는 의미일 터.

물론 장칠이 은자 석 냥을 바로 일시불로 받지는 않았을 터였다.


“은자 석 냥. 바로 받았소?”

“임무가 끝나는 날 주기로 하셨소. 그 약속만 믿고 온 거요.”

“바로 돈도 주지 않고 일단 보냈다···. 사실상 버림패로 쓴 느낌이네요.”


남궁화가 옆에서 날린 한마디에 장칠이 다시금 고개를 푹 숙였다.

명해루의 점소이가 된 지 이제 갓 한 달이 지났을 정도라고 했으니, 사실상 버림패로 쓴 게 맞았다.

당소군이 입을 열었다.


“사정이 딱하긴 하지만, 이 자의 처분은 저나 화가 아니라 백 점주가 결정할 일인 듯 해요.”

“그래서 고민 중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백서군은 진심으로 고민 중이었다.

명해루주는 정말이지 쫌팽이가 따로 없다는 생각도 들고, 이런저런 명해루주에 대한 욕설이 떠오르던 도중.

남궁화가 박수를 쳤다.


“차라리 아예 이 분을 점소이로 들이시는 건 어떤가요, 백 점주님?”

“이 자를요?”

“괜찮은 생각이네. 방금 생각해낸 거야?”

“후후, 그렇죠.”


남궁화가 입가를 가리며 웃는다.

백서군이 턱을 매만진다.


“이중 첩자처럼 써먹자는 말씀으로 들립니다만···.”

“정확해요. 명해루주에게 사실상 이용당한 사람이니, 백 점주님께서 잘만 대해주신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걸 본인 앞에서 이야기하는 건 좀 우스운 일이긴 합니다만.”


백서군의 말에 당소군이 장칠을 본다.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다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다.

장칠과 백서군의 눈이 마주쳤다.


“하나만 물어봅시다.”

“말씀하십시오.”

“내가 당신을 백운관의 점소이로 받아주면, 제대로 일할 자신 있소?”

“바, 받아주시는 겁니까?”

“물론 당신의 의향에 달렸소. 물론 명해루주에게 가서 따진다거나 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거요.”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해 백서군 혼자서 죽어나가는 지경이었으니, 반쯤은 노예 계약이라고 해도 사람 하나쯤은 있는 게 좋다.

사정이 딱하기도 하니, 잘 대해 준다면 적어도 백서군을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소군이 버티고 있으니 배신하려고 했다간 언제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일이고.

장칠이 머리를 처박는다.


“아이들에게 배불리 먹일 돈을 가불해주신다면, 정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런 조건을 내걸 때가 아닐 텐데? 지금 자기 상황이 어떤지 자각도 못하는 건가?”


당소군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

무공에는 문외한인 백서군이라 하더라도 모를 수가 없는 유형화된 기세.

순간적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 소저.”

“···아.”


백서군의 부름에 당소군이 기세를 거둔다.

남궁화가 웃는 소리가 들린다.


“언니가 이러시는 건 처음 봐요.”

“흠, 흠.”


고개를 돌리는 당소군의 볼이 묘하게 붉어져 있는 것 같았다.

장칠이 다급하게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받아만 주신다면 정말 개처럼 일하겠습니다!!”

“음···.”


백서군은 장칠을 보았다.

명해루를 정말로 배신하고 백운관에 충성을 다할 수 있을까.

조금은 걱정이다.


“···일하는 걸 보고 결정하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없는 일로 할 테니 그리 알도록.”

“예, 점주 어른!”


당소군이 백서군을 보았다.


-[이대로는 믿기 힘드니, 조치를 취해두겠어요. 괜찮겠죠, 백 점주?]


백서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작은 의문을 품었다.


‘무슨 조치를 하려고 그러지···?’


묘한 무서움이 밀려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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