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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청(卍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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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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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3. 단황소(蛋黃酥)

DUMMY

13.





제대로 밥도 먹지 못했다기에 백서군은 일단 장칠에게 밥을 먹였다.

거기에 당소군이 뭔가를 살짝 흩뿌리는 것 같기는 했지만, 모른 척했다. 당소군이 그에게 조치하겠다고 이야기했으니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간에 장칠이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도와주는 거니까.


‘왜 도와주는진 아직도 모르겠지만···.’


설마 자신에게 첫눈에 반하기라도 한 걸까.

그런 생각을 했던 백서군은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상황이 생길 일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기쁘겠지만, 서글프게도 백서군은 연애와는 담을 쌓은 인간이었다.


“밥은 맛있었나?”

“그, 그렇습니다.”


겁먹은 기색으로 답하는 장칠을 보며 당소군이 말했다.


“그 밥엔 독이 들어 있어. 한 달에 한 번, 내가 주는 해약을 먹지 않으면 그대로 죽겠지.”

“예에?!”


백서군도 당황한 기색을 보이고, 장칠도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당소군을 보았다.

당소군은 그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본가가 독과 암기로 이름을 떨쳤다는 건 알 테지. 백 점주 아래에서 제대로 일한다면 한 달에 한 번 해독약을 주겠어.”

“저, 정말입니까?”


장칠은 자신이 뭣도 모르고 당가의 독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얼굴이 울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가의 독은 백도무림에서도 알아주는 파괴력을 자랑하는 것들이 많다.

오죽하면 백도무림에서 당가와 척을 질 일은 하지 말라고 할까.

배은증원(倍恩增怨)이라 했다.

은혜는 배로 갚고, 원한은 그 이상으로 이자를 쳐서 갚는다는 뜻이다. 당가를 뜻하는 말 그 자체이니, 사람들이 당가 사람들과 적대 관계가 되려 하지 않는 이유다.


“한 입으로 두말은 하지 않아. 당가니까.”


당소군의 말에 장칠은 바짝 언 표정으로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걱정하지 말아요, 백 점주. 아무 효과도 없는 가루를 독이라고 속여 먹였을 뿐이에요.]

‘당가는 역시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건가?!’


당가의 특징이 그런 거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역시 실제로 접하니 감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무협지에서야 주인공에게 자주 개박살나는 엑스트라로 나온다곤 하나,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는 일이다.

백서군은 무협지의 주인공이 아니니 더 그렇다.


‘당가, 역시 조심해야···.’


백서군은 식은땀을 흘렸다.

당소군의 저 독수(毒手)가 자신에게 향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판이라는 걸 백서군은 다시금 깨달았다.


‘조심하자. 조심.’


여긴 중원이다.

자꾸만 흐려지려는 경각심을 일깨우며 백서군은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당 소저 입장에서 내게 굳이 거짓을 말할 이유는 없을 테니, 믿을 수밖에.’


당소군이 백서군을 속여서 얻을 이득이 뭐가 있겠나.

사천이라는 거대한 지역의 주인이라 불리는 사천당가의 대공녀가 부족한 게 있을 리 없으니, 그녀의 말이 거짓일 리는 없을 터였다.

바닥에 반쯤 혼이 나간 얼굴로 주저앉은 장칠에게 시선을 준 백서군이 말했다.


“오늘부터 바로 일할 수 있겠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시켜만 주십시오!”


장칠이 대가리를 땅에 처박았다.



***



장칠은 정말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당소군과 남궁화가 지켜보고 있는 탓도 있지만, 여기서 쫓겨나면 정말 갈 곳이 없어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자신이 먹은 당가의 독이 무서워서인 것도 있다.

백운관의 점주에게 충성하면 해독약을 주겠다고 했으니, 정말 말 그대로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야 해독약을 받을 수 있을 터다.


“열심이네요.”

“그래야지. 살고 싶으면.”


당소군의 말에 남궁화가 웃는다.


[실제로 독을 먹인 건 아니죠, 당 언니?]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에게 독을 쓸 정도로 본가는 타락하지 않았어.]


남궁화의 전음에 그리 답하곤, 당소군은 말을 덧붙였다.


[물론 백 점주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간다면 그땐 죽여버릴 거야.]


당소군의 말에 남궁화는 입가를 가렸다.

생각보다 더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말은 저렇게 해도 무림과 별 상관도 없는 사람을 독으로 죽일 만큼 당가는 타락한 집단이 아니다.

그런 집단이었으면 애초에 백도의 무가(武家)로 인정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무공이 백도의 다른 무문(武門)과 달리 이질적인 감은 있으나, 당가 역시 당당한 백도의 무가였다.


‘당 언니는 백 점주님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드신 걸까?’


피어오르는 의문이다.

백서군은 아무리 봐도 평범한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차를 달이는 솜씨가 대단하다는 건 남궁화도 인정하는 바였지만, 당소군이 저렇게까지 행동할 이유가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지 못한 걸 당 언니는 보고 있을지도.’


백서군이 음식을 들고 그녀들 쪽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의 앞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남궁화가 호기심을 드러내었다.


“이건 처음 보는 다과군요?”

“저번에는 재료가 없어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제가 자신하는 다과입니다.”


밥공기를 거꾸로 엎어 놓은 듯한 형상.

동그랗게 빚어진 떡 같은 모양새가 눈길을 끄는 것도 그러했지만, 안휘 땅에서도 보기 힘든 다과였다.

다관에 가더라도 느긋하게 차를 즐기며 다담(茶談)을 나눌 뿐이지, 다과를 즐기는 이들은 오히려 적었으니까.

그렇기에 신기하다.

남궁화가 호기심을 드러내는 이유였다.

당소군이 그것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녀에게 백서군이 가장 처음 대접했던 다과. 몰라볼 리가 없다.


“단황소··· 라고 했었죠?”

“예.”


팥앙금 사이에 오리알이나 계란 노른자를 소금에 살짝 절인 후 통째로 집어넣어 감싼 다음, 서로 다른 성분으로 만든 밀가루 반죽을 겹겹이 감싸 만드는 만큼 손이 제법 많이 간다.

노른자를 팥으로 감싸고, 그 위에 서로 다른 성분으로 만든 반죽을 총 두 겹을 감싸니 반으로 잘랐을 때 총 네 개의 층이 생기는 것이 특징이다.


‘애초에 계란 케이크니까.’


애초에 소(酥)라는 단어 자체가 현대 중국과 대만에서는 케이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당소군에게 처음 대접할 때는 이에 관해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여기서 현대에 관한 이야기를 쏙 빼고 대충 이야기에 살을 붙이면, 남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된다.

남에게 들려줄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게다가 당 소저를 이렇게 자주 보게 될 줄 몰랐으니.’


백서군이 말했다.


“저번에는 손에 들고 드셨으니, 이번에는 반으로 갈라서 드셔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좋아요.”


당소군이 약간 흥이 실린 손짓으로 같이 내어져 온 소도(小刀)를 들어 단황소의 중앙을 정확하게 반으로 갈랐다.

겉은 살짝 노란빛으로 구워진 것이 입맛을 자극한다.

그 안쪽은 살짝 하얀 빛깔을 띤 반죽이 검붉은 팥소를 감싸고 있었고, 그 아래로 내려가면 팥소 중앙을 차지하고 앉은 커다란 노른자가 그 자태를 드러낸다.


“보석 같네요.”

“이 노란 건 뭔가요? 계란은 아닌 것 같은데.”

“오리알의 노른자입니다.”

“오리알이요?”


남궁화가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치뜬다.

애초에 단황소 자체가 중국보다는 대만에서 좀 더 유명한 디저트다. 대만이라고 하면 보통 파인애플 케이크인 봉리소(鳳梨酥, 펑리수)가 유명하지만, 단황소 역시 그에 못지않게 대만에서는 흔한 간식거리다.

물론 이런 사실에 관해 백서군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명나라 시대의 대만은 부족 국가 중심의 소왕국들이 난립해 있는 상황이고, 중원에 비해 문명의 형성이 늦은 대만 땅이니 단황소 같은 디저트가 이주(夷州, 대만)에서 넘어왔다고 하면 헛소리 한다며 손가락질당할 게 뻔했다.


‘괜히 입 털지 말자.’


그런 생각을 누르며 백서군이 말했다.


“두 분이서 나누어 드셔도 양은 충분할 겁니다.”

“음, 나누어 주긴 싫은데요.”

“그럼 겨루기라도 할까요, 언니?”

“됐어. 이미 반으로 갈랐으니까.”


당소군이 반으로 가른 것 중 왼쪽 것을 남궁화 쪽으로 밀어주었다.


“먹어봐.”

“그럼 사양 않고!”


남궁화가 단황소를 천천히 입에 넣었다.

천도홍량을 평가할 때도 살짝 냉정한 면이 있는 그녀였으니, 괜히 또 평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가시방석 같았다.

단황소를 씹어 삼키고 차까지 한 모금 마신 후에야 남궁화가 만족한 듯한 숨을 내뱉었다.


“굉장해요! 저번에는 정말 재료가 없었던 게 아쉬울 정도로 맛있어요! 바삭바삭하고, 달콤한 게 좋네요! 게다가 오리알은 굉장히 짭짤해서 균형이 좋다고 해야 할까요? 저번에 못 먹은 게 아쉬울 정도예요.”


남궁화의 반응에 오히려 백서군이 당황할 정도였다.

그녀의 눈동자에 활기가 반짝반짝 도는 것 같았다.


“그, 그 정도입니까?”

“네!”

‘누, 눈부셔.’


안 그래도 아름다운 미모의 남궁화가 보내는 눈빛 공격은 실로 강렬했다.

당소군이 흐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나저나 명해루는 이래저래 거슬리는군요. 도대체 백 점주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건가요, 명해루주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가 없는 것처럼,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데도 별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은 법이지요. 물론 이유가 없진 않을 겁니다.”

“그런가요?”

“뭔가 심오해 보이는 이야기네요.”


백서군이 웃었다.


“딱히 심오할 것도 아니지요. 사람 마음이라는 건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인지라. 깊은 물속은 들여다볼 수 있어도사람 마음이란 좀처럼 알아내기 힘든 법입니다.”

“도가나 불문에서나 할법한 이야기네요.”

“음,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백 점주님은 음식 솜씨가 굉장히 좋으시네요. 비결이라도?”


남궁화의 말에 백서군이 웃으며 답했다.


“하남에 있을 때 까탈스러운 영감님에게 죽도록 깨져가며 배웠지요. 헌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사천을 찾으신 건 의아한 일이군요. 사천지회가 목적은 아니신 듯 한데.”

“전병지연에 대해 들어보신 적 없으신가요, 백 점주님?”

“저 같은 무지렁이가 강호에 대해서 뭘 그리 잘 알겠습니까.”


백서군은 무림 문파와 엮이는 걸 피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들을 수 있는 정보의 대부분은 보통, 어디서 어떤 문파가 어떤 날짜에 싸운다는 정보들이 대부분.

사천에 정착하면서부터 조금씩 소홀해져서, 최근 들어서는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만 듣고 어느 정도 흘려넘기는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무림인과 엮이는 빈도가 좀 줄었으니 조금은 마음을 놓아도 되겠다, 그리 생각했던 것이 안일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 결과가 지금인 것이고.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언제 어디서든 병기를 뽑아들고 칼바람 휘날리며 다관을 박살낼지 모르는 인간 병기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십여 명 넘게 백운관 안에 있다.

보기만 해도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기분이다.

전국구급으로 이름을 알린 네임드 깡패 집단의 후계자들이 이 자리에 모여있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당소군이 말했다.


“전병지연이라는 건, 당가 장인들이 만든 병기들의 주인을 가리는 비무대회예요. 저기 있는 팽 소협이나 악 소협 같은 경우는 전병지연에 참여하려고 온 거죠.”

“남궁 소저께서는···?”

“저 말씀이신가요?”


남궁화가 입가를 가리며 웃는다.


“저는 당 언니를 보러 왔을 뿐이에요. 이미 제게는 애검이 있는지라.”

“그것도 본가의 작품이잖니.”

“그것도 그렇죠.”


남궁화의 애검은 백설(白雪)이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 이름대로 눈처럼 흰 검집과 손잡이를 지닌 검. 척 보기에도 명장(名匠)이 솜씨를 부려 만든 게 분명했다.

병기 쪽에는 그리 지식이 깊지 않은 백서군이 보기에도 그러한데, 병기에 대한 지식이 대단한 이들이 보면 황홀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그런 감상마저 느껴질 정도로 남궁화의 애검은 만듦새가 대단했다.


“그나저나, 당 소저. 이번엔 태상가주께서 만든 병기는 안 나오는 건가?”

“할아버님은 애초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으세요.”

“쩝, 역시 그런가.”

“당 소저의 할아버님이시라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독왕(毒王)이라는 이름이 떠올랐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별호를 백서군은 들어본 기억이 없다.

당가하면 암기와 독, 그리고 그런 당가의 태상가주라면 그 별호가 알려져 있지 않을 리가 없다.

당장 무림과 거리가 먼 삶을 사는 백서군 같은 이들만 해도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이들.

강호 무림의 상층부에서 이미 무명(武名)을 떨친 고수일 터인데.


“천병제라고 불리신 분이세요.”

“우리 같은 말학후진(末學後進) 하고는 다른 차원에 계신 분이지.”


신주십삼좌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천병제 당무외.

백서군도 이름이라면 들어본 사람이다.

당가의 이단아, 풍운아로 불린 병기의 달인. 당가의 돌연변이라는 말까지 들었다는 천하 만명(萬兵)을 제 수족처럼 부리는 고수.

그래서 천병(千兵)이 아니라 천병제(天兵帝)라 불린 무인.

백서군도 그 이름이라면 알고 있다.

한 성(省)이 아니라 중원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고수.

사천에서 손꼽히는 사천십대고수만 하더라도 강호에서도 알아주는 무인인데, 그보다도 위에 있는 고수라면 말 그대로 천하가 그 이름을 안다.

신주십삼좌에서 물러났다고는 하나, 그 자리에 올랐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조 존경 받아 마땅한 무인.

아무리 당금의 중원 무림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백서군이라 할지라도 그건 마찬가지다.


‘···입조심해야겠군.’


구주십삼성이라는 이름도 유명세라면 적지 않지만, 신주십삼좌 앞에서는 그 이름이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팽가의 맹룡이 말학후진이라 이야기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백서군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런 분도 병기를 만드십니까?”

“네. 하지만 지금은 어디서 지내시는지도 알지 못해요. 잊을만 하면 가문에 얼굴을 비치시기는 하지만, 어디서 지내시는지는 가주님만 알고 있으실 정도라.”


그 정도면 전성기 때 쌓은 무명 때문에 은원이 적지 않게 쌓인 게 아닐까.

백서군은 거기에 관해서는 굳이 입을 놀리지 않기로 했다.


‘수다가 과하면 좋지 않지.’


괜히 입을 함부로 놀리다가 저승가는 수가 있다.

힘없는 일반인인 백서군은 더더욱 그렇다. 말 한 번 잘못했다가 칼 맞아 죽으면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법이다.

여기가 강호무림인 이상 더더욱.


“그렇군요. 친절히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 소저.”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여전히 맛있네요, 단황소. 혹시 한 접시만 더 될까요?”


수줍게 접시를 밀어놓는 당소군.

그녀의 앞에 놓였던 단황소가 담겼던 접시는 텅 비어 있었다.


‘생각보다 귀여운 면이 있을지도.’


백서군은 속으로 헛기침을 했다.

아까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너무 상반된 모습이라서, 좀 순수해서 귀여워 보인다는 생각을 한 자신이 묘하게 두려워진 탓이다.


‘정신 차리자, 정신. 홀리면 안 된다, 백서군!’


자신을 다그친 백서군이 빈 접시를 집어들었다.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



“흐음, 그래. 장칠 녀석이 백운관의 점소이로 들어갔다고?”

“미련하게 기웃거리다 붙잡혀가더니, 어떻게 백가 놈을 잘 구워삶은 모양입니다. 덕분에 일이 쉬워질 수도 있겠습니다.”


총관의 보고에 명해루주는 두 손을 비비며 눈을 빛냈다.


“당가의 대공녀에 청성의 장로까지 엮여 있는 곳이니, 우리 밑으로 집어넣으면 괜찮지 않겠나?”

“그냥 망하게 하시려는 게 아니셨습니까?”

“멍청한 소리. 알음알음 백운관을 찾는 유지(有志)들이 적지 않아. 본루가 부족한 점이 없을 텐데도 백운관만의 단골이 있지.”


명해루주의 눈은 냉정했다.

철저하게 손익을 따지는 상인의 눈이었다.


“그런 다관이라면 본루가 피해를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먹어치울 가치가 있어. 게다가 종종 들려오는 이야기가 무시하기 어렵더군.”

“어떤···.”

“경사에서나 맛볼 수 있을 법한 다과를 만들어 판다는 이야기 말일세.”


명해루주의 얼굴에 탐욕이 그득하게 맺혔다.


“그걸 본루로 가져온다면, 얼마나 더 큰 이득이 되겠나?”

“과연.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안 그래도 사천지회에 노점을 내는 가게들은 매출로 순위를 매기는 내기를 자주 하지 않나?”


정확하게는 사천지회의 노점 매출을 겨루는 내기다. 사천지회에 참여하는 가게들 간의 소소한 경쟁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명해루는 그 내기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당연한 일이다. 성도제일루의 위세라는 건 노점을 내도 변함이 없는 법이니까.

총관의 표정이 명해루주의 표정과 같아졌다.

눈앞의 고기를 본 개처럼 군침을 흘리는 듯한 얼굴.

총관이 고개를 숙였다.


“판을 깔아보겠습니다, 루주님.”

“흐흐. 잘 부탁하네, 총관. 자네만 믿어.”

“맡겨만 주십시오!”

“성공하면 술 한 잔 거하게 사겠네.”

“흐흐, 루주님께 술 한 잔 받으려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겠군요.”


자신들이 무조건 이길 거라 생각하며 벌써부터 술잔을 기울일 생각을 하는 총관과 명해루주의 대화.

백서군이 들었으면 김칫국 마시고 자빠졌네 라고 할 이야기가 흐르는 밤.

총관이 나가고 홀로 남은 명해루주는 창밖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자연스럽게 백운관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는 시선.

백서군의 냉랭한 눈빛이 다시금 떠올랐다.


-성도제일이라 해서 기대했는데, 별로군요. 탕원(湯圓)은 식사 후에 첨채(添菜, 디저트)로 먹는 것인데 재료를 과하게 쓰셨군요. 때로는 단순한 것이 좋을 때도 있는 것을.


빠드득.

명해루주는 이를 갈았다.


“감히 내 요리를 훈수를 둔 네놈을 반드시 무릎 꿇려주겠다, 백가 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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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9. 삼대포(三大炮) (2) +12 24.09.02 14,438 296 12쪽
19 18. 삼대포(三大炮) +15 24.09.01 14,448 29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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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 사천제일루라는 간판, 내려주셔야겠습니다 +16 24.08.28 16,893 346 13쪽
» 13. 단황소(蛋黃酥) +22 24.08.27 17,759 378 18쪽
13 12. 무슨 조치를 하려고 +15 24.08.26 18,084 36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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