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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청(卍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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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통천향(通天香) (3)

DUMMY

23.





“하늘에 닿는 향기라··· 거창한 이름이군요?”


남궁화가 호기심을 드러낸다.

중국의 차 가운데는 꽤나 거창한 이름을 가진 차들이 종종 있다. 광동오룡, 지금 시대에는 광동 청차(靑茶)라 불러야 할 광동의 차, 통천향이 그랬으니까.


“본래 사천에선 구하기 힘든 차입니다만. 취풍헌에서 파는 걸 얼른 구해왔지요.”

“제가 선물로 받은 구곡홍매도 그렇게 구하신 건가요?”

“취풍헌에선 다양한 차와 다기, 그리고 다구를 취급합니다. 흥풍상단이 운영하고 있는 곳이니, 혹시라도 다기나 다구에 관심이 생기신다면 가보시는 것도 좋겠지요.”

“흥풍상단? 사천에서 세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대상단 아니오?”


자기가 아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팽우현이 대화에 끼어든다.

백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사천삼대상단 중 하나지요.”

“거기서 차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를 냈다는 거군. 나랑은 평생 연이 없겠는데.”

“형님은 애초에 차보다 술을 더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지금은 냉차가 더 좋다.”

“어차피 본가로 돌아가시면 또 술병 끼고 사실 거잖습니까?”


팽윤호의 인정사정없는 팩트폭력에 팽우현이 흠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백서군은 형제들의 다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광동에서 재배하는 차인 만큼, 사천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건입니다. 흥풍상단이 있어서 다행이지요.”

“구곡홍매는 절강이더니, 이번엔 광동이군요?”


백서군이 빙긋 웃었다.

구곡홍매나 통천향이나 사천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차다.

용정차 같은 것이 아무리 중원에 널리 퍼져 있다곤 하나, 생산지는 절강성 항주뿐이니까. 수도인 경사, 즉 북경에서 항주의 차를 맛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수나라 때 만든 통제거(通濟渠)가 항주와 낙양을 잇고, 낙양에서 시작되어 북경까지 연결되는 영제거(永濟渠) 같은 대운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경항대운하(京杭大运河)지만.’


이름 그대로 북경과 항주를 일직선으로 잇는 길이가 1,700킬로미터가 넘어가는 말 그대로 대(大)운하다. 낙양을 기항지로 두었던 수나라 시대의 두 대운하와 달리, 직선으로 북경과 항주를 연결해두었으니 수운(水運)이 훨씬 용이하다.

명나라가 경제적, 문화적으로 이전 시대의 왕조들보다 훨씬 부유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나 할까. 물론 전 시대의 왕조들이 깔아놓은 밑밥이 없었다면 지금의 명나라도 없었을 것이다.


“사천에서 쉽게 찾기 힘든 차를 구할 수 있는 가게라. 명해루에서는 그런 쪽의 차를 취급하지 않는 겁니까?”

“명해루는 거대한 다원(茶園, 차밭)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천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테니, 사천에서 나고 자란 차 이외에는 취급하지 않지요.”


백서군의 백운관은 다관과 객잔을 겸하지만, 대신 명해루는 주루와 다루를 겸한다.

차를 원하는 높으신 분들과 술을 마시러 온 이들, 무림인들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업종 구성이라고 해야 할까.

백서군은 고급 차와 저렴한 차를 모두 취급하지만, 명해루의 차는 대부분이 노골적으로 고급이다.

높으신 분들이 아니면 팔지 않겠다는 뜻이다.


“게다가 사천에서 사천 차를 마시는 것보다, 다른 지방의 차를 마시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훨씬 이색적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사천에도 이름난 차는 많다.

당장 아미파가 자리 잡은 아미산의 이름을 따온 아미모봉(峨眉毛峰)이나 아미아예(峨眉峨蕊), 아미아심(峨眉峨芯) 같은 차도 있고, 청성산의 이름을 빌린 청성설아(青城雪芽)도 있으니까.

심지어 술 죽엽청과 이름과 한자까지 완벽하게 똑같은 죽엽청차(竹葉靑茶)도 있다.


‘처음엔 놀랐지. 이름까지 완벽하게 같은 차가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 했으니.’


죽엽청 하면 무협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술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쉽게 보기 쉬운 술은 아니다.

다른 것보다 약주(藥酒)니까.

산서성에서 만들어진 물건이 어쩌다 중원 어디를 가도 마실 수 있는 술이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백서군이 경험한 바로는 사천 땅에는 죽엽청이 없다.

기묘한 일이지만, 사천 땅에서도 하남 땅에서도 죽엽청을 본 적이 없다. 산서성의 전통 약주이기도 하니, 그쪽 땅에만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거기에 사천의 명차들을 취급하는 만큼, 쉽게 마실 수 없는 것도 크게 작용하겠군요?”

“그렇습니다.”


남궁화의 말대로다.

명차라는 건 누구나 맛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미산의 차는 아미파가 소중히 관리하는 다원(茶園)의 재산이고, 청성설아도 말할 필요도 없다.

죽엽청차 역시 아미산에서 나는 것이니, 차에 관해서는 아미파 역시 자부심이 적지 않다.


“명해루, 아미파와도 관계가 깊다고 들었어요.”

“저도 거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백서군은 볼을 긁적거렸다.

사실이다.

백운관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새로운 차를 찾고 다과를 개발하는데 시간을 쏟아야 하는데 다른 것에 신경 쓸 시간이 어디 있나.

명해루와 이번 일로 엮이고 싶지 않아도 엮였으니, 어떻게든 할 뿐이다.


“어쨌든, 오늘부터는 통천향을 팔아볼 생각입니다. 가격이 그리 적당하진 않겠지만 말입니다.”

“고급차이기 때문이겠죠?”

“싸게 사서 많이 판다고 해도 광동에서 들여오는 물건인 만큼, 수량이 많지는 않지요.”


백서군이 박리다매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유다.

사천에 풀리는 물량이 그렇게 많지 않은 탓이다.

광동에서 사천에 이르는데 드는 품이 적지 않기도 하니, 자연히 값이 높이 책정될 수밖에 없다. 품질이 좋지 않아 엽차(葉茶)나 향차(香茶) 같은 싸구려 차의 원료로 쓰이는 찻잎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명가나 명문의 제자가 아닌 이상은, 보통 엽차나 향차 같은 말 그대로 차 흉내만 낸 물건을 차랍시고 마시는 것이다.

백서군이 웃었다.


“한 잔, 드셔보시겠습니까?”


그 말에 남궁화가 눈을 반짝 빛냈다.


“차 달이는 거, 옆에서 봐도 되나요?”

“얼마든지요.”



***



통천향의 잎은 크고 길쭉하며, 나선형으로 살짝 돌돌 말려 있는 형태다. 위로 길쭉하게 뻗은 드릴 같은 모양새라고 해야 할까.

찻잎은 살짝 손만 대도 바스락대는 소리가 귓가에 꽂힐 만큼 잘 건조되어 있었다. 정성이 느껴지는 솜씨다.

차통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생강꽃 냄새가 독특하다.

생강꽃 냄새라는 게 쉽게 접하기 힘든 냄새인 만큼 이 특유의 향기야말로 정품 통천향임을 증명하는 증거 그 자체다.

향이 화려하다는 느낌보다는 수수한 타입이고, 마른 찻잎에서는 구수한 향기가 풍겼다.


“살짝 숯내가 나네. 탄배(炭焙)를 제대로 거친 물건이야.”


생강꽃 향기 사이에 살짝 숨어 있는 숯 특유의 탄내.

숯불로 18시간 이상 길게 찻잎에 불을 쪼이는 과정을 가리켜 탄배라 하는데, 완성된 차의 향과 맛을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한 보존 처리다.

원래는 홍배(紅焙)라 해서 전처리는 전기로 하고 후처리를 숯으로 하지만, 명나라 시대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자존심 강한 무림인들이 차를 만드는 데 뇌공(雷功)을 빌려줄 리도 없고 말이다.

어찌 되었든 6월과 8월, 두 달에 걸쳐 탄배 처리를 하는 것이 9월쯤 되어야 완성되니 그때쯤이 갓 완성된 햇차, 통천향을 마실 수 있는 적기다.

굳이 통천향만이 아니라 광동산(産) 봉황단총에 속하는 차들을 마실 적기가 그쯤이기도 했다.


“개완(蓋椀)을 사온다는 걸 또 깜빡했군.”


물론 명나라 시대에는 철저하게 수행자나 유사(儒士), 즉 선비 같은 이들이 차를 즐기는 데 일인용으로 썼던 개완보다는 차호(茶壺)가 선호되었기 때문에, 이래저래 개완은 찬밥 신세가 되었지만 말이다.

거기에는 이런 저런 이유가 있지만.

통천향 같은 차를 제대로 즐기려면 개완이 있는 게 맞았다.

아까 취풍헌에 들렀을 때 사오면 되는 것을, 몇 번을 까먹는지 모르겠다.


‘이쯤 되면 금붕어가 아닐까.’


속으로 자신을 질책하며 백서군은 자기로 만든 다관에 물을 따랐다.

찻잎은 여덟 개에서 열다섯 개 정도. 조금 부족한 듯 하여 잎을 조금 더 넣는다.

차호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찻잎을 넉넉하게 넣고 그 위에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부어 찻잎을 씻어내듯이 초탕(初湯)을 거친다.

찻잎을 뜨거운 물로 씻어내는 세차(洗茶) 과정이다.

백서군이 차를 달이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남궁화가 불쑥 물었다.


“백 점주님. 굳이 차를 두 번 세 번 우리는 이유가 뭔가요?”

“차를 깨우기 위함입니다. 초탕을 걸러 세차라고 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죠.”

“세차요?”


백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찻잎을 아무리 잘 말리고 보관한다고 해도, 찻잎에 돋는 솜털이나 아주 작은 먼지 한톨까지 제거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첫 번째 차를 달인 물은 그런 성분을 걸러내기 위한 작업이지요. 물론 찻잎의 종류마다 세차의 횟수도 달라집니다만.”

“다도라는 것도 생각보다 깊게 들어가면 어렵군요?”


백서군은 웃음을 흘렸다.

이런저런 걸 알아내기 위해서 스승님 밑에서 얼마나 굴렀는지 모른다. 한방차에 대해 알고 싶다고 번역도 안 된 의서 원서를 찾아보기까지 했으니 차에 미친 놈, 차친놈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통천향 같은 청차 종류는 한 번만 씻는 것이 좋습니다.”

“어째서요? 많이 씻으면 깨끗해지는 거 아닌가요?”

“그야 차의 좋은 성분이 빠져나가기 때문이지요. 아주 약간이라도 남아 있을 수 있는 불순물을 걸러내고 차의 좋은 성분만을 남기는 것. 잘 건조되어 잠자고 있는 차를 깨운다. 세차를 달리 성차(醒茶)라고 하는 건 그런 의미입니다.”


또 다르게는 윤차(潤茶)라고도 한다.

윤이 나도록 차를 물로 닦아낸다는 의미다.


“그런데 뭔가 물이 살짝 미적지근하게 느껴지는 건 제 착각일까요?”


눈을 반짝거리는 남궁화.

설봉이라는 이름과 달리, 그녀의 표정에선 호기심이 흘러넘쳤다.


“차를 씻어낼 때는 차를 우릴 때보다 조금 식힌 물을 씁니다. 너무 뜨거운 물로 씻어내면 차를 씻는 동안 우리가 마셔야 할 차의 맛 중 어느 정도 사라져 버린다고 하니까요.”

“차라는 건 생각 이상으로 세심하게 다뤄야 하는 거군요. 몰랐어요.”


백서군은 짧게 초탕한 찻물을 버렸다.


“아예 찻물을 버리는 건가요?”

“애초에 찻물로 쓸 물이 아니니 버리는 겁니다.”


애초에 차를 씻는 과정은 순식간에 이뤄진다.

짧게는 5초, 길게는 10초다. 채소를 물에 데치듯이 순식간에 해치워야 했다. 안 그러면 차의 좋은 성분을 미적지근한 물에 다 빼앗겨 버리니까.


-멍청한 녀석, 세차를 오래 하지 말라니까!

-아니 이걸 어떻게 5초, 10초만에 해치웁니까!

-그냥 차를 뜨거운 물에 데친다고 생각해! 적당히 물을 채웠다가 바로 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란 말이다!


스승님께 정말 죽도록 혼나가며 세차에 관해 배웠던 것이 떠오른다.

옅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로, 백서군은 뜨거운 물을 차호에 따랐다.

향긋한 차 달이는 냄새가 차호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온다. 현대 같았으면 속이 비치는 유리병 속에 금빛이 섞인 황색 찻물이 차오르는 게 보였을 테지만, 그걸 보여주지 못하는 게 아쉽달까.


‘나중에 노공께 유리공예가 가능한지 한번 물어봐야겠는데.’


라이브로 차 끓이기 쇼를 할 게 아니라면 사실 굳이 그런 건 필요가 없긴 하지만 말이다.

향긋한 생강꽃 향기가 노점 안을 흘러다닌다.

금빛 꽃이 핀 듯 담백한 노란빛의 찻물이 차호의 길쭉한 주둥이를 타고 흘러 나와 냇물처럼 찻잔 안으로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쏟아졌다.

달그락, 하고 백서군이 내민 찻잔이 남궁화의 앞에 놓였다.


“한 잔 드셔보시지요.”


남궁화의 눈이 곡선을 그린다.

싱그러운 웃음이 봉황의 입매에 떠올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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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통천향(通天香) (3) +10 24.09.06 13,134 287 12쪽
23 22. 통천향(通天香) (2) +13 24.09.05 13,262 263 12쪽
22 21. 통천향(通天香) +10 24.09.04 13,780 27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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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9. 삼대포(三大炮) (2) +12 24.09.02 14,440 29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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