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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청(卍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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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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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통천향(通天香) (2)

DUMMY

22.





벽운진인은 느긋한 걸음걸이로 성도의 거리를 걸었다.

제자들은 미리 우진에게 통솔을 맡겨 보내고 느지막이 이제야 성도에 도착한 참이다. 애초에 벽운진인이 지켜본다고 해서 제자들의 실력이 갑자기 급상승하지는 않을 터이니,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벽운진인이 지켜본다는 것에 부담을 느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일부러 늦게 내려온 것이다.

그마저도 장문 사제인 벽공(碧空)이 성화를 부리지 않았다면 벽운진인이 사천지회 이튿날인 지금 도착할 일 같은 건 없었을 터였다.

아무리 빨라도 사흘째나 나흘째에 당도했을 테니.

청성파라는 대문파의 장로 치고는 심하게 게으르다고 할 수 있지만, 청성파의 십대 장로 가운데 가장 외부로 많이 나도는 사람이기도 했으니 그 정도는 청성파 내부에서도 쉬쉬하며 넘어가는 것이다.

벽운진인이 청성파에 공헌한 것이 적지 않았으니까.


“요란하군.”


사천지회가 열리는 성도다.

당연하지만,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소란스러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벽운진인이기에 어지간하면 청성산을 떠나려 하지 않는 것이고, 성도에 오더라도 백운관을 찾아 고적(孤寂)함을 즐기곤 하는 것이었으나.


“오늘은 백운관도 문이 닫혀 있겠어.”


사천지회에 나갔을 터이니, 당연한 일이다.

백서군에게 자리를 만들어준 것이 벽운진인이니, 모를 수가 없다.

벽운진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걸음을 옮겼다.


“지금쯤 바쁘겠구먼.”


사천지회는 대성회(大成會)다.

그런 만큼 대목이다.

사천지회가 벌어지는 비무장 근처에 노점을 내는 가게의 숫자는 한정적이지만, 그 한정된 숫자의 가게들은 과장 없이 일주일 매상만으로 1년을 버틴다고 하기도 할 정도다.

그만큼 손님이 넘치는 환경.

사천 각지에서 온 이들 중에는 성도의 번화가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도 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사천에서 성도만큼 번화한 곳을 찾기란 꽤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젊은 후기지수들도 볼 수 있겠고.”


청성산에 있으면 항상 청성파 제자들 말고는 볼 일이 없다.

고적함을 즐기는 벽운진인이 장문 사제, 벽공진인의 강권에 강호행을 거듭하는 것도 후기지수들을 볼 수 있으니 강호로 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장문인인 벽공진인이 사천지회에 벽운진인을 내려보낸 것도 그런 연유다.


“음, 그 전에 노점부터 가봐야겠구먼.”


백서군이 무슨 고생을 하고 있을지 모르니, 한 번 가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벽운진인이 땅을 박차며 그의 신형이 버들잎처럼 허공에 떠올랐다.

청성 비전의 신법, 세류표(細柳飄)였다.

세류표의 신법으로 떠오른 벽운진인의 몸이 사천지회의 비무장이 있는 방향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



사천지회가 벌어지는 비무장에 마련된 귀빈석에서 당효기는 턱을 괸 채 무서운 표정으로 비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가에 상대를 몰아붙이고 있는 딸, 당소군의 모습이 맺혔다.


‘왜 말을 듣지 않는 것이냐, 왜···.’


분명히 나서지 말라고 했건만, 당소군이 기어이 비무에 나갔다.

원래 나가기로 되어 있던 당일곤을 대신해서.


‘아군(兒君)아, 어찌 이 아비의 마음을 모른단 말이냐.’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당소군은 당효기가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한다는 것을 모르는 듯 했다.


‘저러다 내상이 악화되기라도 하면 백독연을 수련하느라 받아들인 독이 제 몸을 해치는 독이 될 것인데···.’


독을 다루는 독인(毒人)의 말로는 항상 처참하다.

독공이 깨어지면 그간 익히면서 체내에 담아두었던 독기가 역류하여 전신을 녹여버리기 때문이다.

그건 독에 대한 내성을 기르더라도 소용이 없다. 수십, 수백 종의 독이 혼합되어 전신으로 쏟아지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독공이 깨진 순간, 독기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힘과 능력이 사라지니 한 줌 핏물로 녹아 죽는 것이다.

그렇기에 독을 다루더라도 용독술(用毒術) 정도에 그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당장 백도에서 독문(毒門)의 종가(宗家) 소리를 듣는 당가만 하더라도 백독연의 수련을 거부하고 암기에만 몰두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편이니까.


“표정이 좋지 않으십니다, 당 가주.”


무련사태의 목소리에 당효기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딸과의 관계가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그 심정이 자신도 모르게 표정으로 드러난 듯 싶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되돌아가는 당효기를 보며 무련사태는 속으로 불호를 외웠다.


‘당 가주의 시름이 깊어보이는구나.’


그리고 그 시름의 원인이 당소군이라는 것도 명확해보였다.

당소군이 왜 당효기에게 있어 시름의 근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당효기가 무서운 표정을 짓는 이유가 그녀 때문이라는 건 명확했다.

당효기의 눈은 여전히 비무대 위의 당소군에게 못박혀 있었으니까.

자식을 향한 염려라고는 보이지 않는 무심한 눈동자에 무련사태는 한숨을 삼켰다.


‘자식을 저런 눈으로 대한다면, 어찌 자식이 마음을 열겠는가.’

“아미타불.”


저도 모르게 불호를 내뱉은 무련사태는 상대를 이긴 당소군이 비무대를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당당하게 걷고 있는 당가의 대공녀.

그녀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



아침부터 바쁘게 장사를 하고, 겨우 찾아온 휴식 시간.

브레이크 타임을 의미하는 휴(休)자가 적힌 목패를 문짝에 걸고 잠시 노점의 문을 닫은 백서군은 땀을 닦으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아침부터 손님이 엄청 많았지.’


어제 삼대포의 퍼포먼스가 여기저기 입소문을 타고 퍼지기라도 한 건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난리도 아니었다.

백서군만으론 손이 부족해서 장칠도 도와야 했을 정도다.

당장 조금만 시선을 돌려봐도 반쯤 넋나간 모양새로 앉아 있는 네 남정네가 눈에 띈다. 다들 반쯤 시체가 된 듯한 표정들이었다.

장칠이 탁자 위에 엎어진 채 말했다.


“점주 어른, 이러다 죽는 거 아닙니까?”

“안 죽는다. 살아봤는데, 사람 목숨이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게 아니더라고.”


지나친 노동으로 인한 피로가 계속 누적되다 보면 사람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거나 하지만, 백서군은 그 정도로 빡세게 사람을 굴리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손님이 넘쳐도 너무 넘친다는 것.

백서군이 오늘은 정말 죽겠다 싶을 정도로 손님들이 많았다. 장칠이 우는 소리를 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점주, 내, 냉차···.”

“끄응.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냉차를 요구하는 팽우현이다.

백서군은 덜덜 떨리는 다리를 짚고 일어나, 주방에서 금방 냉차, 천도홍량을 만들어 왔다.

팽우현 것만 아니라 장칠의 것과 자신이 마실 것까지 포함해 총 다섯 잔이었다.

네 사람에게 천도홍량을 나눠준 후, 백서군은 의자에 앉아 차를 홀짝거렸다. 냉차를 홀짝거리고 있으니 정신이 좀 드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오늘 남궁 소저하고 당 소저가 안 보입니다?”

“빨리도 물어보시오.”

“저희만 왔을 때 물어보셔야 했던 거 아닙니까, 점주님.”

“그럴 시간이 없었잖습니까.”


백서군의 말에 팽가 형제와 그 두 사람과 늘 함께하는 악가(岳家)의 섬뢰창(閃雷槍) 악심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실제로도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렸던 건 사실이니까.


“아마 오늘은 못 올 거요. 당 소저.”

“그렇습니까?”


냉차를 마시고 회복한 팽우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운이 좀 나는 모양이었다.


“아마 오늘부터는 좀 보기 힘들 거요. 전병지연이야 애초에 사천지회 다음에 열리는 것이니 시간이 넉넉하지만, 당 소저는 오늘부터 사천지회에서 도전자들을 상대해야 하거든.”

“어제는 어떻게 오셨던 겁니까?”

“첫날은 그냥 말 그대로 사천지회의 개회를 알리는 날입니다. 혹시 모르셨습니까?”

‘어떻게 알았지?’


백서군은 무협지에 대한 지식이야 풍부하지만, 여긴 소설 속이 아니다. 실존하는 무림이다. 엮이기 싫어서 관심을 끊고 산 탓에 무림, 그리고 이런 비무대회에 관한 지식은 일천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사천 땅을 무대로 하는 소설은 별로 읽어보지도 않았다.

읽어봐도 이런 사천지회 같은 대회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도 많았고. 그러니 백서군이 모른다고 하더라도 할 말은 있는 것이다.


‘그래봤자 변명에 불과하지만.’


팽윤호의 말에 백서군이 뒤통수를 살짝 긁었다.


“제가 무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성도에서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비무제인데. 조금은 알고 계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팽윤호의 말에 악의는 없다.

말 그대로 백서군이 순수하게 거기에 관심이 없어서 몰랐다는 것에 놀랐다는 투였다. 백서군이 남궁화에 대해 물어보려는 찰나, 닫힌 노점의 문이 열렸다.


“첫날은 어찌 되었든, 비무 없이 넘어가는 유일한 날이기도 하죠.”


구슬이 은쟁반 위를 구르는 듯한 또랑또랑한 목소리.

남궁화다.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백서군이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남궁 소저.”

“비무를 지켜보고 오느라 늦었네요. 아직 개점을 안 하신 건가요, 백 점주님?”

“쉬는 중이었습니다. 밖에 패가 걸려 있지 않았습니까?”

“아, 그 휴(休)가 적힌 목패가 그걸 뜻하는 거였군요? 이런 가게는 처음이에요.”


백서군은 멋쩍게 웃었다.

당연하게도, 이 시대에는 브레이크 타임 같은 개념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오면 받고, 없으면 쉰다. 그게 당연한 시대니까.

백서군처럼 오히려 손님이 몰리는 대목인 사천지회에 가게를 냈는데도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장사가 지나치게 잘 돼서 오전 장사만 해도 재료가 순식간에 동나는 탓이다.


“장사가 너무 잘돼서 차를 제외하곤 대부분 재료가 순식간에 동이 나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장사가 너무 잘 되어도 문제군요.”


남궁화는 뻗어버린 네 남정네를 지나쳐 주방 입구와 가까운 곳에 앉았다.

그 걸음걸이 자체가 굉장히 우아했다.


“삼대포와 기존에 있던 다과들만으로도 매출이 대단하기는 하네요. 저도 냉차 한 잔 주시겠어요?”

“곧 가져다드리지요.”


딱 한 잔 만들 정도의 시럽과 재료만 남은 천도홍량을 만들어 내온 백서군은 잔을 남궁화에게 건네주고, 근처의 의자에 대충 주저앉았다.

브레이크타임을 만들어서 쉬는 게 아니라면 쉬지도 못할 정도로 사람이 쏟아져 들어오니, 참으로 문제다.

노점의 창문 너머로 여전히 사람들이 몰리는 명해루의 노점이 보인다.


‘저 손님들을 끌어들일 수단이 필요하기는 한데···.’


어찌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이 문득 들었다.


“고민하는 얼굴이신데요, 백 점주님.”

“명해루의 저 많은 손님들을 저희 쪽으로 어떻게 끌어올 수 있을까를 고민 중이었습니다. 저희가 쉬는 시간에도 명해루는 계속 장사를 하고 있으니까요.”

“준비한 게 하나는 아니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이제 2일차일 뿐입니다, 남궁 소저.”


원래 필살기 같은 건 남발하는 게 아니다.

백서군이 준비해둔 건 당연히 삼대포 하나만은 아니지만, 2일차는 삼대포와 다른 다과들만으로도 충분히 견딜 만 했다.

물론 브레이크타임이 있기 때문에 매출이 그렇게 드라마틱한 수준까지는 나오지 않겠지만, 사천지회에 온 손님들의 수는 경이로울 정도다.

객잔이 아니라 다관만 하고 있었다면, 어쩌면 한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리고 새 차도 개시해야 하니,”

“새 차요?”


남궁화의 물음에 백서군이 빙긋 웃었다.


“통천향이라는 이름, 들어보셨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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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1. 통천향(通天香) +10 24.09.04 13,778 273 12쪽
21 20. 재미있겠네요 +19 24.09.03 14,040 285 12쪽
20 19. 삼대포(三大炮) (2) +12 24.09.02 14,438 296 12쪽
19 18. 삼대포(三大炮) +15 24.09.01 14,449 29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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