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서 카페로 힐링합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새글

만청(卍靑)
작품등록일 :
2024.08.15 20:13
최근연재일 :
2024.09.19 12:2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587,002
추천수 :
12,501
글자수 :
208,679

작성
24.09.17 12:20
조회
7,493
추천
231
글자
12쪽

35. 이건 이제 자네 걸세

DUMMY

34.



결과 발표의 날이 밝았다.

자리는 이미 꾸며졌다.

공증인이 워낙 유명한 고수들로 채워진 만큼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당연했다.

석요명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어 자리에 앉고, 그 뒤로 당효기와 무련사태가 모습을 나타냈다.

공증인으로 자리 잡은 세 고수들이 보이는 자리에 청성파의 벽운진인, 그리고 천병제 당무외가 자리 잡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오늘 뭘 발표하는 건가?”

“내기 결과 발표라는군.”

“이미 백운관의 승리로 끝난 것 아니었나.”

“결과야 그렇게 나왔지. 그런데 과연 명해루주가 받아들이겠나, 그걸?”

“그것도 그렇군.”

“다들 알잖나. 명해루주, 생각보다 성격 별로인 거.”

“음음.”


여기저기서 상인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다. 대부분이 명해루 밑에 있는 점포의 점주들이었다.

대부분이 명해루의 강압에 의해 그 밑으로 들어간 가게의 점주들.

당연히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입이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이유였다.


“그나저나, 진짜로 백운관이 이겨버릴 줄은 몰랐는데.”

“이러면 사천제일루 현판은 백운관이 가져가는 건가?”

“난 명해루주가 그걸 그냥 내줄 거 같진 않던데.”

“그도 그렇지. 그 사천제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양반 아닌가.”

“오죽하면 그 위치를 지키겠다고 딸까지 아미파에 팔아먹었다는 평까지 있지. 부모로 좋은 양반은 아닐세.”

“그나마 화영 아가씨는 된 사람이지.”

“음음. 화영 아가씨가 계실 때는 그보다 든든할 수가 없었어.”

“아미파로 떠나시고 나서는 더 견디기 팍팍해졌지.”

“빌어먹을.”

“그래도 이번에 백운관이 이겨서 속이 시원하군. 솔직히 이길 거라고 누구도 생각 안 했잖나?”

“그도 그렇지. 우리는 맞설 생각도 못하고 짓밟혔으니.”

“백운관 점주, 젊은 나이라 그런지 배짱이 대단해.”

“다들 백 점주가 보이면 박수나 쳐주자고.”


수군대는 점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명해루의 총관 조첨은 이마에 핏대가 솟는 것을 겨우 억눌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평가들이다.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당가나 아미파, 청성파와 관계 있는 가게가 아니면 전부 돈으로 찍어눌러서 강제로 밑으로 끌어들이거나 했으니까.

하지만 저런 평가를 듣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 백 점주일세.”

“다들 박수나 쳐주자고.”

“명해루를 상대로 이기다니! 대단하네, 백 점주!”


비무대 쪽으로 걸어오던 백서군은 사방에서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지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환영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사실 이런 박수갈채를 받을 정도의 일은 하지 않았다. 단지 백운관이 살아남기 위해 쓸 수 있는 수단을 전부 썼을 뿐.

그 덕분에 인지도도 제법 생겼고, 백서군이 솜씨 좋은 숙수 겸 다인이라는 것도 입소문을 제법 탔다.

아마 백운관의 위치가 외지다 해도 제법 방문객이 생길 게 분명했다.


‘이것저것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고 봐야지.’


남궁화와 팽가 형제, 그리고 과묵한 악심호와 당소군과도 스스럼 없이 대화를 나눌 만큼 친해졌다고 볼 수 있다.

오룡, 삼준, 삼봉, 이화로 구분되어 있는 구주십삼성 중에서 맹룡, 설봉, 암독화와 친분이라면 친분을 쌓았으니 나쁘지 않은 인맥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석요명으로부터도 제법 호평을 받기도 했고, 나름대로 친분이 생겼다면 생긴 셈이다.


‘석 대협 하고는 비즈니스에 가까울지도 모르지만.’


백서군은 비무대 아래에 걸음을 멈추었다.

명해루주가 아직 오지 않아서였다. 원래라면 올라가서 기다리는 게 맞지만, 웬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뭔가 커다란 걸 짊어지고 오고 있는 명해루주가 보였다.


‘···?’


비무대 위에는 석요명, 당효기, 무련사태가 이미 자리한 다음이다.

명해루주가 늦은 건 이해하기 힘들다.

강호의 명숙이랄 수 있는 세 명의 고수가 오로지 명해루주의 도착만을 기다리고 있는 셈인데, 그걸 감안해도 너무 늦었으니까.

시야에 들어온 명해루주의 모습을 확인한 백서군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명해루주쯤 되면 자신이 직접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시켜도 될 것을 왜 굳이 자신이 낑낑대며 짊어지고서 오고 있는가.


“현판?”

“저거, 사천제일루 현판이로군.”

“저걸 스스로 짊어지고 올 줄이야.”

“허허.”

“설마 저걸 자기 몸에 묶었으니 가져갈 거면 자기를 베고 가져가라고 할 생각인가?”


주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백서군이 가만히 표정을 구겼다.

의구심이 든 탓이다.


‘저 인간이 이렇게 순순히 결과에 승복할 리가 없는데?’


백서군은 다가오는 명해루주를 보았다.

행동 패턴이 다르다.

판타지 소설이었으면 도플갱어 같은 게 대신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중원, 그런 환상생물이 서식하기 힘든 무림이다.


‘설마 인피면구?’


하룻밤새에 누군가가 명해루주를 죽이고 거죽을 뒤집어 쓴 건 아닐까. 그런 불길한 생각도 들었다.

그 사이 백서군과 명해루주의 거리는 가까워져 있었다.


‘저 인간이 저걸로 또 무슨 비겁한 짓을 하려고 그러지?’


의구심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명해루주라면 무슨 개수작을 부릴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응?’


그런 생각을 하는 백서군은 자신의 손바닥 위에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에 의문을 표했다. 시선을 살짝 내려보니, 그곳에는 명해루의 현판이 있었다.


‘이걸 순순히 넘겨준다고? 진짜로?’


백서군의 머릿속이 의아함으로 뒤엉켰다.

명해루주가 말했다.


“가져가게.”

“갑자기 태도가 변하셨습니다, 루주님.”


백서군의 말에 명해루주가 웃었다.


“깨달은 게 있네. 내가 중요한 건 이깟 현판이나, 사천제일루라는 명예가 아니라는 것 말이야.”

“뭘 깨달으신 겁니까?”

“차나 요리나, 결국 먹어 주는 사람이 행복해야 제 값을 했다 할 수 있는 것일세. 그래야만 비로소 제 가치를 찾았다 할 수 있지.”


명해루주의 웃음이 씁쓸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명성과 명예, 돈에 눈이 멀어 그 간단한 이치를 망각했다네. 가난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그 생각이 강했던 게지. 집착은 고집을 낳고, 고집은 아집을 만들어낸다네.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서 서로 이해할 수 없게 가로막아버리지.”

“···그렇습니까.”

“딸아이가 아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이고, 패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네.”


온화하게 웃으며 명해루주가 백서군에게 포권을 했다.


“무림의 인사지만, 부디 받아주시게. 자네에게 이 설 모가 한 수 배웠네.”

“저야말로 그간 명해루라는 거대한 주루를 탈 없이 이끌어오신 루주님의 능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말만이라도 고맙군.”


서로 마주 포권지례를 마침으로서, 백서군과 명해루주는 서로를 보며 웃을 수 있었다.

백서군이 말했다.


“올라가시지요, 루주님.”

“그러세. 이제 홀가분하군. 내려놓으면 이리도 가벼운 것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깨달음이 너무 늦었어.”

“앞으로 잊지만 않으시면 될 겁니다.”

“그럴 걸세.”


나직하게 웃은 명해루주가 계단을 오른다.

백서군도 그 뒤를 따라 비무대 위로 발을 들였다.



***



“이제야 왔군.”


의자에 앉은 석요명이 따분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늦지 않나. 난 땡볕이 싫다네.”

“송구합니다, 석 대협. 기다리시게 하여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답하는 명해루주를 보며 석요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를 대하는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느낀 탓이다.

석요명이 말했다.


“굳이 이렇다 저렇다 할 이야기를 더 붙일 필요는 없겠지? 이미 서로 결과는 확인했을 터이니.”

“예.”

“예, 석 대협.”


고개를 숙이는 두 점주를 향해 석요명이 선언했다.


“승자는 백운관이다. 그리고 사전에 한 약조에 따라 사천제일루의 현판은 가져가겠다.”


백서군이 손에 들고 있던 사천제일루의 현판이 휘리릭 날아오르더니 그의 앞에서 떨어지듯이 멈추었다.

절묘한 허공섭물의 기예였다.

현판을 회수한 석요명이 명해루주를 보았다.


“명해루주. 불만 있나?”

“없습니다. 패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명해루주는 반발하지 않았다.

이미 받아들이기로 해서인지, 그의 얼굴에서는 일말의 후련함조차 보였다.

석요명이 웃는다.


“이상하군. 반발할 줄 알았는데. 설마 하룻밤새에 사람이 바뀌기라도 했나?”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잊고 있었던 것이라.”


석요명은 재미있다는 듯 턱을 괴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군. 본좌가 분명, 내기에서 패했을 경우에는 이 현판을 떼어내고 백운관에 새로 쓴 현판을 내려주겠다고 이야기 했던 것을 기억하겠지?”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석 대협.”

“그 약조는 유효하다. 백서군. 네가 바란다면 이 현판을 부수고 새 현판을 줄 수도 있다. 어찌 하겠나?”


그 말에 백서군이 허리를 굽혔다.


“저는 그 현판 그대로 받기를 원합니다, 석 대협.”

“이유는?”

“이번엔 단순히 제가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이긴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계략을 세워 승리한 것이지요. 정공으로 맞붙었다면 제가 어찌 사천제일, 명해루에게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겸양의 말이다.

하지만 자신을 과하게 낮추지도 않는다.

석요명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그래서?”

“여기에는 명해루의 시간이 깃들어 있지요. 부수는 것보다는 그대로 받는 것이 낫다 생각했습니다.”


백서군은 명해루주를 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명해루주가 자신에게 현판을 넘겨주었을 때만 하더라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의심했다.

하지만 이후 나눈 대화에서 진심을 느꼈다.

그렇다면 굳이 현판을 부수거나 할 필요는 없다.


“제가 얕은 꾀로 승리하기는 했습니다만, 그렇다 해서 명해루가 사천제일루라는 사실에 변함은 없습니다. 제가 짊어지기엔 좀 무겁긴 하겠으나, 이 현판에 얹어진 세월을 한 번 견뎌보려 합니다.”

“그거 재미있는 소리군. 다음 대의 사천제일이 되겠다는 뜻인가?”

“그 정도는 되어야 이 현판을 내걸 자격이 되지 않겠습니까?”


석요명이 나직하게 웃는다.


“그것도 재밌겠군. 전서응 한 마리를 주지. 사천제일이라는 이름을 내걸기 충분하다 생각되면, 그놈을 통해서 내게 소식을 전하게. 그때 오지.”

“전서응까지 주실 필요는···.”

“작은 선물이라 생각하게.”


백서군이 고개를 숙였다.

석요명이 말했다.


“승자는 백운관이다. 다른 의견, 있나?”


석요명이 당효기와 무련사태를 보았다.


“없습니다.”

“빈니 또한.”

“좋다. 그럼 이제 끝내도록 하지. 사천지회에서 모두가 새로운 성취나 결과를 얻었기를 바란다. 이상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석요명이 선언했다.


“해산!”



***



“···이건 이제 자네 걸세.”


명해루주는 비무대 위에 남겨져 있던 사천제일루의 현판을 백서군에게 넘겨주었다.

그것을 넘겨받은 백서군의 몸이 살짝 휘청였다.


“정말 주셔도 괜찮은 겁니까?”

“그건 족쇄 같은 걸세. 이름에 집착하게 되면, 저도 모르게 그것에 눈이 멀어 다른 걸 소홀히 하게 되지. 자네 덕분에 그걸 깨닫게 되었어.”

“제가 말입니까?”


백서군의 말에 명해루주가 웃었다.


“자네 덕분에 눈을 떴으니 가져가시게. 백 점주. 그 현판은 이제 본 루에 필요 없으니까.”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소개해줄 사람이 있네.”

“예?”


백서군의 옆으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긴 머리를 땋아 내린 백색 궁장의 여인, 설화영이 서 있었다.

명해루주가 말했다.


“내 딸이라네. 영아, 인사 드리거라.”

“설화영이라고 합니다. 허락해주신다면, 백운관에서 배우고자 합니다.”


그 말에 백서군의 이마를 타고 삐질, 하고 작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명해루주가 말했다.


“자네에게 도움이 될 걸세. 명해루는 이제 이 아이의 것이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림에서 카페로 힐링합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이 변경될 예정입니다! +7 24.09.12 1,511 0 -
공지 멋진 제목을 허락해주신 에르훗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24.08.19 2,790 0 -
공지 연재 시각은 월~일, 12시 20분입니다 +1 24.08.15 14,457 0 -
37 37. 운남(雲南) NEW 21분 전 379 6 12쪽
36 36. 영아를 잘 부탁하네 +18 24.09.18 5,451 146 14쪽
» 35. 이건 이제 자네 걸세 +22 24.09.17 7,493 231 12쪽
34 34. 가져가게 +51 24.09.16 8,705 245 15쪽
33 33. 결과 +18 24.09.15 9,658 257 12쪽
32 32. 오표일배(五票一盃) (2) +19 24.09.14 10,418 260 12쪽
31 31. 오표일배(五票一盃) +19 24.09.13 11,349 291 12쪽
30 29. 류심(流心) +19 24.09.12 12,412 329 12쪽
29 28. 내가 뭘 본 거지? +16 24.09.11 12,575 318 12쪽
28 27. 그 입 닥쳐라, 석가야 +19 24.09.10 12,725 376 12쪽
27 26. 홍당자파(紅糖糍粑) (3) +11 24.09.09 12,833 290 12쪽
26 25. 홍당자파(紅糖糍粑) (2) +19 24.09.08 12,806 282 12쪽
25 24. 홍당자파(紅糖糍粑) +12 24.09.07 13,276 293 14쪽
24 23. 통천향(通天香) (3) +10 24.09.06 13,738 294 12쪽
23 22. 통천향(通天香) (2) +14 24.09.05 13,876 274 12쪽
22 21. 통천향(通天香) +10 24.09.04 14,397 285 12쪽
21 20. 재미있겠네요 +19 24.09.03 14,669 296 12쪽
20 19. 삼대포(三大炮) (2) +12 24.09.02 15,069 306 12쪽
19 18. 삼대포(三大炮) +15 24.09.01 15,083 303 12쪽
18 17. 사천제일루라는 간판, 내려주셔야겠습니다 (4) +22 24.08.31 15,603 305 15쪽
17 16. 사천제일루라는 간판, 내려주셔야겠습니다 (3) +15 24.08.30 16,114 309 13쪽
16 15. 사천제일루라는 간판, 내려주셔야겠습니다 (2) +19 24.08.29 16,751 338 13쪽
15 14. 사천제일루라는 간판, 내려주셔야겠습니다 +16 24.08.28 17,616 359 13쪽
14 13. 단황소(蛋黃酥) +23 24.08.27 18,502 391 18쪽
13 12. 무슨 조치를 하려고 +15 24.08.26 18,827 381 12쪽
12 11. 이야기 좀 해보실까 +9 24.08.25 19,410 413 12쪽
11 10. 이게 인맥이란 거다 +16 24.08.24 20,117 416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