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서 카페로 힐링합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새글

만청(卍靑)
작품등록일 :
2024.08.15 20:13
최근연재일 :
2024.09.17 12:20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551,856
추천수 :
11,844
글자수 :
197,044

작성
24.08.25 12:20
조회
18,650
추천
397
글자
12쪽

11. 이야기 좀 해보실까

DUMMY

11.




점소이를 찾으러 식반행에 찾아갔지만, 돌아온 대답은 냉랭한 거절이었다.

성도의 식반행 수장은 명해루주를 무시할 수 없는 위치라고 이야기하며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드러냈다.


-하필이면 명해루주랑 척을 졌소, 척을 지기를. 아무리 청성파가 당신 뒤에 있어도 이런 식으로는 힘들 거요. 청성파가 언제까지 당신을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웬만하면 명해루주와 합의를 보시오. 차라리 숙이고 들어가는 게 더 편한 일일 거요.

-나는 지금 좋은 마음으로 권유하고 있는 것이니 고려해보시오.


말이야 좋은 말로 권유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백서군은 식반행 수장의 말에서 그와 명해루주의 관계가 어떨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성도제일루. 나아가 사천제일루라고까지 불리는 명해루주의 심기를 거스르느니, 차라리 백서군의 요청을 묵살하겠다는 것이다.


“하긴, 사천의 번루 가운데선 가장 번듯하고 규모가 큰 곳이니 그럴 법도 하지.”


번루, 달리 말하면 대형 종합 상가다.

나라에서 직접 운영하는 거대한 종합 상가고, 거기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찰 경쟁이 필요하다.

송나라 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왕조가 바뀐다고 해서 기존에 있던 시스템을 모조리 갈아엎는 건 당연하지만 꽤나 비효율적이니까.

식반행이나 주행, 번루가 남아 있는 것도 그런 연유일 터다.


“일단 가게부터 꾸며야겠지.”


백서군은 천천히 벽운진인과 당소군의 도움으로 얻을 수 있었던 자리로 돌아왔다.

사실 이미 가게 내부의 설비 자체는 잘 되어 있는지라 백서군이 그리 손댈 건 없었다. 백서군이 백운관에서 쓰던 물건들만 몇 가지 가져오고, 재료만 구비해놓으면 준비는 끝이다.

사람이 없으니 혼자 모든 걸 처리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흠일 뿐.


“···어마어마하게 바쁘구만.”


탁자를 치우고, 의자를 닦고, 아궁이에 올린 솥을 기름까지 뿌려 달군 다음 식혀서 닦고 햇빛에 건조한다. 그런 작업에 한참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달려 있으려니, 배가 고파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다녀오기는 귀찮은데, 여기서 뭐라도 해먹을까.”


밖을 흘깃 본다.

여기저기서 향긋한 냄새가 난다. 명해루의 이름이 걸린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게, 괜히 몇 배는 더 배가 고파오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가봐야 쫓겨날 게 뻔한 자리에 굳이 기어들어가는 취미는 없다.

백서군은 명해루에서 낸 가게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



“혼자 준비 중이라고?”

“예, 아가씨. 아무래도 사람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습니다.”


호위 담당인 외원(外院) 무사 단규의 목소리.

당소군은 가만히 이마를 찡그렸다.


“어째서?”


그녀의 물음에 단규가 자신이 조사한 것에 대한 것을 소상히 털어놓았다.

단규의 이야기를 전부 들은 당소군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결국 명해루 때문이라는 소리인데.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말이야.”

“그렇습니다.”

“명해루와 백 점주 사이의 관계가 그렇게 좋지 않나?”

“예. 보고서에도 적혀 있습니다만, 백운관 점주 백서군이 성도에 정착하려 할 때 가장 훼방을 크게 놓은 자가 명해루주입니다.”


당소군은 눈을 가늘게 치떴다.

기분이 좋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단규.”

“예, 아가씨.”

“백 점주.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겠어.”

“백서군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단규가 놀랐다는 듯이 되물어온다.

불경한 행동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당소군의 행동이 그만큼 그에게 당혹스러웠다는 방증이다.

당소군은 함부로 사람을 자기 울타리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

가문에서 붙여준 단규만 하더라도 그녀의 신뢰를 얻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오직 그와 몇몇 시비만이 당소군의 처소, 암화각(暗花閣)에 드나들 수 있다.

당가의 혈족들을 제외한다면, 그녀의 울타리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단규와 몇몇 시비가 전부일 만큼.

그렇기에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냉심독화, 나찰독녀라고까지 불리는 이 차가운 심성의 대공녀가 백서군 같은 인간에게 관심을 둔다는 사실 자체에.


“단규. 나는 한 입으로 두말은 하지 않아. 입 밖으로 내뱉으면 지켜야 해. 그게 당가야. 그리고, 알고 있었을 텐데?”

“그건 그렇습니다만.”


당소군은 자기 사람을 만들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한 걸 철저하게 파악하려고 한다.

그의 주군인 당소군이 백서군에 대한 조사를 명했을 때부터, 단규는 백서군이 어떤 식으로든 당소군에게 얽혀들 수밖에 없으리라 예상했던 것도 그런 연유다.


“그러면, 어찌할까요? 백 점주를 드러나게 돕는 것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백 점주, 무인들과 엮이길 꺼리는 듯 했지.”


당소군을 마주할 때도 그러했지만, 백서군은 담담한 듯 조심스러웠으며 때로는 대담한 듯 보이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무림인들을 응대하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

분명 하남에서 지낼 때 몸에 익힌 기질일 터였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도울 수 없다면, 식반행이나 주행 쪽에 압력을 넣는 건?”

“명해루가 설치지 못하도록 입을 막아버릴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좋아. 안 그래도 거슬렸으니.”


백운관을 알게 된 이후부터, 당소군은 명해루에 한 번도 걸음하지 않았다.

애초에 차나 술을 멀리 하는 경향이 있는 그녀다.

친우들이 끌어내지 않는 한 굳이 주루와 다루를 겸하는 명해루에 걸음하는 일 같은 건 없을 터였다.


“그리고 아가씨. 남궁 소저로부터 전갈이 있습니다.”

“화에게서?”

“예. 사천지회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후기지수들끼리 모이는 자리에 한 번 정도는 얼굴을 비춰달라고 하셨습니다.”


당소군이 혀를 찬다.


“몇 군데나 왔지? 이번 전병지연.”

“안휘 남궁세가, 운남 점창파, 감숙 공동파, 섬서 화산파와 종남파, 호북 제갈세가와 무당파에서 왔습니다.”


쟁쟁한 이름들이다.

강검(强劍)으로 이름을 알린 남궁세가야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고, 점창이나 공동, 화산과 종남에 무당파면 중원의 검문(劍門) 중에는 다들 손꼽히는 명문이다.

제갈세가야 흑도의 사마세가와 자웅을 겨루는 신산귀모(神算鬼謀)의 가문.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당연히 그녀와 함께 구주십삼성으로 손꼽히는 이들이 왔을 터였다.


“가봐야겠지.”


올해는 공교롭게도 사천지회와 전병지연이 겹친다.

당가의 장인들이 자신들의 솜씨를 자랑하기 위해 만든 무기를 내놓고, 그 주인을 찾는 비무를 벌이는 비무대회가 바로 전병지연이다.

남궁화를 비롯해 성도를 찾은 구파일방 무인들의 목표 역시 전병지연일 터였다.


“청성이나 아미파 쪽은?”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 합니다.”

“본가 장인들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 텐데. 신기해.”


당가 장인들의 실력은 정평이 나 있다.

중원 서쪽 끝자락에 처박혀 있다시피 한 사천 땅인데도, 보도나 명검을 찾는 이들이 끊임없이 사천을 찾는다.

당가 장인들에게 그만큼 애병의 제작을 맡기고자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당소군이 일어났다.


“가봐야겠어. 화가 찾는다면 어쩔 수 없지.”

“모시겠습니다.”



***



“주인장! 여기 차 한 사발 더 주시오! 이거 맛 죽이는구만! 크하핫!”

“차를 술처럼 들이켜지 말라고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형님.”

“이리 시원한 차가 있는데 한 사발이 대수겠느냐?”


호탕한 웃음을 짓는 청년의 어깨 위에서 대도의 손잡이가 쇳소리를 내면서 흔들거린다.

칼날과 자루의 경계선을 구분하는 도격(刀格, 코등이)이 호랑이처럼 생겨 먹은 모양새가 심히 인상적인 대도를 짊어지고 다니는 이들은 중원에서도 손에 꼽는다.

그런 만큼, 정체가 익히 알려져 있다.

백서군도 저 호랑이 모양의 도격(刀格)을 지닌 칼, 맹호도(猛虎刀)가 어느 가문의 것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큰 키, 장대한 체구, 그리고 호방한 성정. 팽가의 맹룡(猛龍)인가.’


백서군이 강호 사정에 그리 밝지는 못하다 하나, 그래도 별호가 그 인간의 성정과 기질을 어느정도 반영한다는 건 알고 있다.

맹룡(猛龍)이라는 별호로부터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니, 아마도 싸움이 시작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적에게 달려들어 두쪽을 내놓는 성정일 터였다.

더구나 팽가라고 하면 황보세가와 함께 무협 소설에서 대표적인 근육뇌 집단이었다.

말보다 주먹. 말보다 앞서는 칼.

무협 소설에서 황보세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은 호한(好漢), 의협심이 많은 사람이다. 반대로 팽가에는 성정이 폭급하다는 꼭 따라붙는다.

같은 근육뇌여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원.’


배도 고프고, 밥이나 먹을까 해서 백운관으로 돌아가던 길에 백운관 앞에서 기웃거리던 이 양반들과 맞닥뜨린 게 컸다.

관병도 아니면서 허리와 등에 병기를 짊어지고 있으니 딱 봐도 나 무림인이오, 하고 드러내는 복색.

백서군이 얌전히 백운관의 문을 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무림인도 제대로 못 알아보는 눈깔을 갖고 장사를 할 거면 깔끔하게 접는 게 낫다. 안 그러면 인생이 통째로 접히는 수가 있으니까.


“주인장! 이거 이름이 뭐라고 했소? 차가운 차 말이오!”

“천도홍량이라 합니다, 대협.”

“대협? 크하하하!”


등에 맹호도를 찬 청년, 팽가의 맹룡이 호탕한 웃음을 짓는다.


“아직 대협 소리를 들을 정도의 위명을 떨치지는 못했소! 오룡삼준이라는 이름에서 아직 벗어나질 못했지. 그래서 아직도 소협(小俠)이라오!”

‘귀가 아플 정도군.’


목청이 얼마나 좋은지, 적당히 말하는 것 같은데도 귀가 아프다는 느낌이다.

물론 백서군은 그런 생각을 표정으로 드러낼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럼 소협. 뭔가 더 시키실 것이 있으신지.”

“하하! 이 차나 한 사발 더 주시오. 이 사천 땅에 와서도 매일 같이 뜨거운 물만 들이켜고 있으려니 아주 죽을 맛이었단 말이지. 부탁드려도 되겠소?”

“더 부족하신 게 있으시다면 말씀하시지요.”


백서군이 흘깃 일행을 살핀다.

등에 창을 멘 사내가 하나, 맹룡과 같은 맹호도를 등에 멘 사내가 둘이었는데 팽가 사람으로 보이는 그 둘은 난처해 보이는 웃음을 짓는다.

차를 술처럼 들이켜는 맹룡의 행동에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맹룡이 찻잔을 들어 남은 천도홍량을 훌훌 털어 마시더니 탁, 하고 잔을 내려놓았다.


“이런 차를 파는 곳은 중원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소. 혹, 주인장이 만든 거요?”

“예.”

“허어. 그렇군. 남궁 소저가 백운관이라는 곳에 가볼 일이 있으면 한 번 정도는 마셔도 좋을 것 같다고 권한 이유를 알 것 같소.”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백서군의 반응에 맹룡이 웃었다.


“아무튼, 이 차 한 사발 더 주시오. 너희도 뭐 더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말해라. 돈은 내가 낼 터이니.”

“그래도 남궁 소저나 다른 분들이 오시길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형님.”

“이러다가 당 소저한테 걸리면 또 작살날 겁니다.”

“커, 커허험. 당 소저 이름이 거기서 왜 나오느냐?”


맹룡과 형제들의 대화를 뒤로 하고, 백서군은 다시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밖을 흘깃 쳐다보는 백서군의 눈에 주렴 밖에서 안쪽을 염탐하듯이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주방으로 들어가서 천도홍량을 한 주전자 분량을 만들어서 맹룡과 그 일행에게 가져다주고 난 다음, 백서군은 주방으로 들어가 밖으로 돌아나왔다.


“젠장, 이 날씨에 루주님은 왜 여길 염탐하라고···.”


중얼중얼 불만을 토해내며 안쪽을 염탐하던 사내의 목덜미를 잡아챈 백서군이 서늘하게 웃었다.


“뭘 그리 훔쳐볼 게 있다고 안을 훔쳐보고 있는지 이야기 좀 해보실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림에서 카페로 힐링합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이 변경될 예정입니다! +7 24.09.12 1,405 0 -
공지 멋진 제목을 허락해주신 에르훗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24.08.19 2,706 0 -
공지 연재 시각은 월~일, 12시 20분입니다 +1 24.08.15 13,686 0 -
35 35. 이건 이제 자네 걸세 NEW +20 21시간 전 5,042 193 12쪽
34 34. 가져가게 +49 24.09.16 7,356 223 15쪽
33 33. 결과 +17 24.09.15 8,592 238 12쪽
32 32. 오표일배(五票一盃) (2) +18 24.09.14 9,513 245 12쪽
31 31. 오표일배(五票一盃) +18 24.09.13 10,562 277 12쪽
30 29. 류심(流心) +19 24.09.12 11,702 317 12쪽
29 28. 내가 뭘 본 거지? +16 24.09.11 11,918 311 12쪽
28 27. 그 입 닥쳐라, 석가야 +19 24.09.10 12,082 365 12쪽
27 26. 홍당자파(紅糖糍粑) (3) +11 24.09.09 12,222 282 12쪽
26 25. 홍당자파(紅糖糍粑) (2) +19 24.09.08 12,214 272 12쪽
25 24. 홍당자파(紅糖糍粑) +12 24.09.07 12,674 285 14쪽
24 23. 통천향(通天香) (3) +10 24.09.06 13,134 287 12쪽
23 22. 통천향(通天香) (2) +13 24.09.05 13,262 263 12쪽
22 21. 통천향(通天香) +10 24.09.04 13,780 273 12쪽
21 20. 재미있겠네요 +19 24.09.03 14,044 285 12쪽
20 19. 삼대포(三大炮) (2) +12 24.09.02 14,442 296 12쪽
19 18. 삼대포(三大炮) +15 24.09.01 14,453 292 12쪽
18 17. 사천제일루라는 간판, 내려주셔야겠습니다 (4) +22 24.08.31 14,949 293 15쪽
17 16. 사천제일루라는 간판, 내려주셔야겠습니다 (3) +15 24.08.30 15,447 296 13쪽
16 15. 사천제일루라는 간판, 내려주셔야겠습니다 (2) +19 24.08.29 16,070 324 13쪽
15 14. 사천제일루라는 간판, 내려주셔야겠습니다 +16 24.08.28 16,897 346 13쪽
14 13. 단황소(蛋黃酥) +22 24.08.27 17,766 378 18쪽
13 12. 무슨 조치를 하려고 +15 24.08.26 18,094 366 12쪽
» 11. 이야기 좀 해보실까 +9 24.08.25 18,651 397 12쪽
11 10. 이게 인맥이란 거다 +16 24.08.24 19,314 401 14쪽
10 09. 천도홍량(天桃紅凉) (5) +13 24.08.23 19,388 415 13쪽
9 08. 천도홍량(天桃紅凉) (4) +7 24.08.22 19,391 408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