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홍당자파(紅糖糍粑) (2)
25.
“청성파다.”
“어디로 가는 거지?”
“벽운진인까지 계시는데?”
청성파의 행진은 당연히, 수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곳은 사천의 중심, 성도다.
청성파가 활보한다 해도 이상한 것은 없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그 선두에 선 것이 사천십대고수 벽운진인이기 때문일 터였다.
이름 높은 고수.
그 풍모만으로도 절로 존경심이 솟구치게 한다. 사천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중원 어디를 가도 청성파의 운검이라 이야기하면 모를 사람이 없다.
험지 중의 험지인 사천 땅에 자리를 잡았다곤 하나 청성파는 구파의 일원이었으니까.
그런 청성파의 벽운진인이 청성파 제자들을 이끌고 어디로 향한다는 건 그만큼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지?”
“명해루 쪽인가?”
“명해루 반대편에 있는 노점 쪽으로 가는 것 같은데?”
“뭐?”
사람들의 시선은 청성파 제자들과 벽운진인으로부터 떠나지 않았다.
그 벽운진인이 명해루가 아니라 백운관으로 들어가는 순간, 사람들은 놀라서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백운관으로 들어간다!!”
“명해루가 아니라 백운관으로?”
“이해가 안 되는구만. 왜 백운관이지?”
“명해루가 몇 배는 더 낫지 않나.”
“어허, 모르는 소리. 백운관에서 파는 다과도 못 먹어봤으면 말을 하지 말게.”
“다과가 뭔 소용인가? 다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에잉, 쯧쯧. 이래서 다과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는구먼. 다과는 배를 채우려고 먹는 게 아닐세. 못 배워먹었어.”
“뭐라?!”
여기저기가 소란스러웠다.
명해루와 백운관의 대결에 대해서는 이 거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신주십삼좌의 반설괴 석요명, 당가주 당효기, 아미파 장문인 무련사태가 공증을 선 대결.
공정하지 않다면, 이 세 사람이 다른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물론, 애초부터 공정할 리가 없는 대결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천제일이란 이름을 가진 명해루와 성도 외진 곳에 자리한 구멍가게 수준이나 다름없는 백운관.
누가 이길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 않았나.
“백운관이란 이름은 처음 들었는데. 그렇게나 괜찮은 곳인가?”
“원래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었지. 사천지회에 얼굴을 내밀지도 않아서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을 거요.”
백서군이 성도에 정착하고 나서는 조용히 지냈던 만큼, 백운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애초에 성도는 대도시다.
사천의 중심이자 사천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그런 도시의 규모만큼이나 크고 작은 가게도 당연히 많다.
백서군의 백운관 같은 작은 다관은 알고 싶어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까지 조용히 살던 사람을 굳이 내기까지 걸어서 끌어냈다는 건가? 명해루도 참.”
“시비를 건 건 명해루 쪽이라지만, 받아들인 백운관 점주도 정상은 아니군.”
“그러게나 말이야. 나 같으면 그냥 명해루 밑으로 들어갔을 것 같은데.”
“그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지. 명해루가 가게를 몇 개나 집어삼켰는지 기억은 하쇼?”
“내가 그걸 어찌 아나?”
“모르면 말을 마시오.”
“지금 시비 거는 건가?”
“오, 지금 여기서 결판을 내자고? 그것도 좋지!”
이야기를 나누던 무림인들이 살벌한 상황을 연출한다.
주변의 동료들이 말려서 서로 병기를 뽑아드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
사천지회가 벌어지는 비무대 근처 곳곳에 경비를 서고 있는 아미파와 사천당가 무인들의 눈을 피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사천을 대표하는 세 문파의 체면을 상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간 끌려갈 게 뻔했으니까.
“청성파가 백운관으로 들어갔다.”
“우리도 한 번 들어가보는 건 어떤가.”
“명해루보다 나은 점이 없어 보이는데?”
“밑져야 본전인 거지. 들어가보자고.”
청성파의 행진은 타지에서 온 무림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청성파 제자들이 들어간 백운관으로 무림인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
청성파 제자들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다관 안이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중원 전체로 확대하면 그 인지도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렇다 해도 청성파다. 어딜 가도 이름만 대면 아는 무당이나 소림 정도는 아니라 해도 여기는 사천 땅이다.
청성파의 이름값을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니 타 문파에서 온 이들이라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천 땅은 당가의 영역이기도 하니까.
청성파와 아미파, 당가가 한데 묶이니 타지에서 온 다른 문파의 제자가 체면을 상하게 하면 참지 않는다.
그러니 다들 행동을 조심하는 것이고.
게다가 노점 안에는 당소군이 있었다. 사천을 떠받치는 세 대문파의 무인 중 당가의 대공녀와 청성파의 장로 중 한 명이 서 있으니, 모두가 입을 다물 수밖에.
“음? 당 소저 아닌가.”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맞이하는 게 백서군이 아니라 당소군임을 확인한 벽운진인이 가장 처음 한 말이었다.
벽운진인을 맞이한 당소군 역시 예의를 갖췄다.
“당가의 소군이 진인을 뵙습니다.”
“허허. 신기한 일이로군. 노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겐가?”
당소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겠다는 듯 했다.
벽운진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천지회에서 도전자들을 물리치고 바로 이곳으로 온 것이 분명했다.
‘당가의 대공녀가 노점에서 일이라···.’
당가주의 귀에 들어가면 노발대발 할 일이 아닐까.
어쩌면 알고도 눈 감아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당가의 눈이 몇 개고, 귀가 몇 개인데 대공녀가 이곳에서 일한다는 것조차 모를까.
알고도 모른척 한다는 게 맞을 터였다.
“그 친구는 있는가?”
“진인, 오셨습니까!”
당소군이 대답하기도 전에, 백서군이 주방에서 뛰쳐나왔다.
뛰쳐나온 백서군이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벽운진인에게 인사했다.
그를 본 벽운진인이 흐뭇하게 웃었다.
“자네 차나 한 잔 마시려고 왔네. 통천향, 있는가?”
“물론 준비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다과가 있는데, 내올까요?”
“새로운 다과라면 언제나 환영일세. 도소도 준비해주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백서군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벽운진인이 가장 좋아하는 다과가 도소라는 건 백서군만 아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주변 사람들이 다 들으라는 듯이 떠드는 것도 결국에는 홍보의 일환이다.
사천십대고수가 관심을 가지는 다과.
무슨 맛일지 궁금해서라도 먹어보려고 하지 않겠는가.
‘이것도 마케팅이라면 마케팅이지.’
대(對) 무림인용 마케팅이라고 해야 할까.
고수면 고수일수록, 그리고 그 고수가 칭찬을 하면 할수록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중원, 특히 무림의 유행이라는 건 고수가 선도하는 법이다.
이름을 떨친 고수라면 더더욱 그렇다. 현대 사회로 치면 인플루언서들이나 유명 연예인, 아이돌 마케팅과 같은 이치.
‘이제 노공께 부탁드린 것만 오면 되겠군.’
백서군도 아예 생각없이 명해루에게 싸움을 건 건 아니다.
명해루는 규모에서 백운관을 압도한다.
그럼 백운관이, 백서군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덩치 큰 상대를 때려눕히려면 정공법으로는 승부가 되지 않는 법이니까.
덩치 큰 상대를 쓰러뜨리고 싶다면 꾀를 내야 하는 법이고, 백서군의 꾀주머니에서 나온 첫번째 계책의 중심이 바로 벽운진인이었다.
“장칠! 안내해드려라!”
“예, 점주 어른! 진인, 이쪽으로 오시지요! 모시겠습니다!”
벽운진인이 안내를 받아 안으로 향한다.
백서군은 바로 주방으로 들어와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됐다.’
벽운진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백서군은 밖의 동태를 살폈었다.
청성파의 제자들과 벽운진인이라는 조미료라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대로였다.
‘노공께서 언제 오시려나.’
대장간을 찾아갔을 때도 얼굴이 보이지 않아, 준비한 그림과 편지와 다과만 놓아두고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었다.
원래라면 직접 만나 용도에 대해 설명하고 만드는 장면을 본 다음 되돌아와야 했는데, 그게 불가능했으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일부러 돈도 넉넉하게 놓아두고 왔는데, 그게 노공에게 제대로 전해졌을지가 고민이었다.
성도에서도 외진 곳에서 지내고 있는 노공이니 돈을 누가 훔쳐갔을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무림이라는 바닥은 기상천외한 일이 횡행했으니까.
차를 달여 장칠에게 주어 벽운진인에게 보내고, 당소군에게 먹였던 물건을 준비했다.
“후우.”
구운 떡 위에 마지막으로 콩고물을 골고루 뿌리고 흑설탕을 졸여 만든 소스를 끼얹었다.
삼대포는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메뉴.
그리고 그렇게 끌어들인 사람들에게 내놓은 메뉴로 선정한 것이 사천 음식의 매운 맛을 적당히 중화해줄 디저트.
달콤한 디저트가 발달한 사천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것을 선정하다 보니 시간이야 걸렸지만, 홍당자파 정도라면 충분할 것이다.
그릇을 들고 백서군이 주방을 나섰다.
***
“이게 뭔가?”
벽운진인은 자신의 앞에 놓인 구운 떡을 보고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단순히 노릇노릇하게 굽기만 한 게 아니라 콩고물을 뿌리고 그 위에 설탕즙으로 보이는 걸 또 뿌렸다.
가만히 보기만 하는데도 단내가 풍긴다.
입에 저절로 침이 고일 지경이었다.
“홍당자파라고 합니다.”
“홍당자파?”
콩고물이 뿌려진 떡 위를 수놓은 흑설탕즙의 빛깔이 일반적인 흑설탕의 빛깔보다 조금 더 어둡고 붉은 빛깔이 섞인 듯이 보인다.
홍당(紅糖)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게다가 사천은 설탕을 자급자족한다. 오죽하면 첨피압(甛皮鴨)이라고 하는 악산(樂山)의 명물 요리 중 하나는 완성한 오리고기 구이에 아예 설탕을 졸여 만든 것을 오리의 껍질에 발라 완성하는 요리다.
달콤한(甜) 껍질(皮)을 가진 오리(鴨) 요리.
물론 백서군이 그걸 만들 일은 없다. 그는 차와 다과가 전공이지, 요리 쪽은 얼추 적당히 먹을 만한 걸 만드는 정도 수준이니까.
“처음 보는 다과로군. 매 번 올 때마다 새로운 게 나오는 느낌이라 싫지 않구먼.”
“진인께서 오늘 제가 만든 홍당자파를 드시는 첫 객(客)이십니다.”
“그건 기쁘군.”
빙긋 웃은 벽운진인이 찻주전자를 검지로 톡 쳤다.
그러자 허공에 떠오른 찻주전자가 금빛 찻물을 그의 찻잔 속으로 쏟아낸다.
세밀한 내공의 제어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설정이 반드시 따라붙는 고급 기술, 허공섭물이었다.
‘검지로 굳이 안 쳐도 충분히 가능할 텐데.’
무림인이라는 종자들은 묘한 구석에서 이해할 수 없는 고집이 있으니, 백서군 입장에서는 그러려니 할 뿐이다.
조금 식은 통천향을 천천히 마신 벽운진인의 입이 열렸다.
“통천향은 맛이 오묘해. 노부가 백운관을 찾는 이유 중 하나지. 따뜻할 때와 식었을 때의 맛이 서로 다르니니, 어찌 안 그러겠는가.”
따뜻할 때의 통천향은 매운 향기와 꽃향기가 섞여 있다.
식은 뒤에는 이 두 가지 맛보다는 달콤한 맛이 우선된다. 그만큼 서로 다른 매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른 찻잎에서는 콩 향기가 살짝 섞인 향기가 나고, 우리고 나서는 매운 맛과 꽃 향기가 동시에 나며, 식은 뒤에는 오히려 단맛이 나니 세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백서군이 고개를 숙였다.
“진인께서는 좋은 차를 알아보는 감각을 갖고 계십니다.”
“후후, 아부하지 마시게.”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벽운진인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통천향의 다른 이름은 투천향(透天香), 하늘을 꿰뚫는 향기다. 차를 마시면 그 향기가 하늘을 향해 솟는 것 같으니, 마치 백회혈(百會穴)이 열리는 듯 하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차를 즐기는 다회(茶會)도 정기적으로 열린다고 하니, 그만큼 통천향이 매력적인 차라는 뜻이다.
“그럼, 맛을 좀 볼까?”
벽운진인이 찻잔을 놓고 젓가락을 집어든다.
홍당자파로 향하는 그의 젓가락 끝으로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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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홍당자파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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