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무림세가 데릴사위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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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거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3 15:21
최근연재일 :
2024.09.0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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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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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1화

DUMMY

아이는 상인의 아들이었다.

평범한 상인은 아니고, 다소 몸집이 있는 화현상단이란 곳의 독자(獨子)였다.


덕분에 나라의 주인이 뒤바뀌려하는 복잡한 세간사정과는 반대되게, 상단 안에서 금지옥엽처럼 컸다.


주판(籌板)을 튕기며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아이가 다가가면 만사를 제치고 웃으며 안아주시던 아버지.

현모양처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빚어내신 듯한 어머니.


그 두분의 사랑은 끝이 없이 솟아났다.

아니, 솟아날 줄 알았다. 바보같이 말이다.


무료함을 참을 수 없었던 아이는 상행을 떠나는 두 분에게 떼를 썼다.

상단이 떠나가라 울어제끼는 아이에게 두 분은 결국 두손두발을 다 들고, 상행에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는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간다는 생각에, 그저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 날이 아이의 생에서 마지막으로 찾아온 무료함인줄도 모르고 말이다.


"살수다!!"


풀 숲에서 튀어나온 살수들이 목청껏 외치던 상단의 무사들의 목을 두부 베듯이 썰어냈다.

열명이 조금 안되는 무사들은 간단히 상행을 박살내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목전에 섰다.


ㅇ, 왜 이러는 겁니까!?"

"그쪽들이 더 잘알텐데?"


전신을 흑빛으로 물들인 흑의인(黑衣人)은 무심하게 일갈했다.


"사파와 관련된 모든 자들을 척살하라는 명을 받아서 말이야."

"그게 무슨...!"

"하현상단. 너희들이 정파의 배신자인 서문세가와 지속적으로 은밀한 거래를 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그저 약초와 미물을 팔았을 뿐인데, 어찌 이러시는겁니까!"


아버지의 말을 들은 흑의인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올라갔다.


"약초와 미물이라...그 독초와 독물들을 사용해서 서문세가가 남궁세가의 무인을 셋 해쳤다."

"ㅇ...예!?"

"이에 대남궁세가 가주의 명에 따라 이번 사건과 관련된 모든 악적들을 토벌한다."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표정 변화 하나 없는 사내가 검을 고쳐잡았다.

사내의 검 끝에서 푸른색의 빛이 얕게 일렁였다.


"죽어라."


미치도록 푸른 기운이 검에 담겼고, 아버지가 급하게 아이와 어머니의 앞에 나섰다.

아버지가 앞에 있으니 검이 보이지 않아야하는데...검기는 여전히 아이의 눈에 보였다.


아버지의 배를 뚫어버린 채로.


"커헉...!"


아버지를 뚫고 들어온 검은 멈출 줄 모르고 전진해왔다.


어머니는 순간 당신의 운명을 깨달았는지 마지막 순간, 품 안에 있던 아이를 던져 그가 검에 꿰뚫리는걸 막아내셨다.

본인의 배가 검에 꿰뚫리는 그 순간까지도.


허나 어머니의 희생은 아이의 생명을 살렸을 지언정, 삶은 망가뜨리고 말았다.


"!?"


실처럼 흩날리는 푸른 색의 기운이 순간 길어지며 아이의 얼굴 쪽으로 날아왔다.

푸른 색의 검기는 그 청아하고 맑은 색과는 정 반대로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아아아아아악!!"


잔존한 예기 만으로도 아이의 두 눈은 빛을 잃었다.

시야를 잃었다는 공포보다 앞서서 그를 괴롭혔던건 끔찍한 고통이었다.


"아아..끄윽..."


고통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며 비명이 절로 나왔다.

눈물과 피가 섞여 흐르며 옷을 적시는 듯 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아이의 귀 속에 흑의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형님, 아이는 어찌하시렵니까?"

"..."

"후한을 없애려면 죽이는게 맞겠지만...꽤나 쓸만한 얼굴인데, 팔면 은자 한냥정도는..."

"닥쳐라!"


갑작스레 들리는 흑의인의 갈(喝)에 아이는 움찔거렸다.

아이를 향해 한 말이 아니었지만, 본능적인 공포가 몸을 덮쳐왔다.


"네가 그러고도 대남궁세가의 자제라고 할 수 있겠느냐. 우리는 간악한 흑도세력을 패한 것이지, 인의를 져버린 것이 아니다."

"...죄송합니다."

"뒷처리는 세가에 돌아간 뒤에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 처리한다."

"예."


아직 죽이지는 않는다는 뜻이렸다.

그 말을 들은 아이의 정신은 곧바로 끊어졌다.


충년(沖年 : 10살 안팎의 나이)의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일이 하루만에 벌어졌다.


**


흑의인들의 마차 짐칸에서 깨어났다 기절하길 반복한지 사흘 째.

아이는 또 한번 고통 속에서 깨지려는 정신을 붙잡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더 기절하는 순간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것 같았다.


평생 처음 겪어보는 수난과 끔찍한 현실 속에서 아이는 또 한번 소리없이 피눈물을 흘렸다.

흐느끼지는 못했다. 흐느꼈다가 아이가 깨어났다는걸 안 흑의인들이 해할까봐 두려웠다.


그렇게 숨을 죽이며 공포에 몸을 떨고 있을 때쯤.


"웬놈이냐!"


흑의인의 격양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산의 밤바람이 뒤틀리기에 의아해서 찾아와봤거늘, 꽤나 발칙한 짓을 하고 있었구나."

"뭔 개소리를 하는거냐!"


스르륵하며 예기가 서린 병장기를 뽑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오면 안될 곳이긴 하나, 영 찜찜해서 말이지."

"베어라!"


그와 함께 흑의인들의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병장기들끼리 부딪히고, 사람의 주먹이 맞부딪히는 소리.


평생 들어보지 못했으나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소리들이었다.


"철검십이식(鐵劍十二式)?"

"크흑!"

"허...오대세가의 수장이라는 것들이 이런 더러운 짓거리들을 하고 다니는구나. 너희의 창천(蒼天)이 이리도 혼탁한 것이었더냐?"


그와 함께 딱 세 번.

검끼리 튕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시야를 잃은 아이는 그저 소리만으로 사태를 파악하려 노력했으나,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소리만이 들려오는 칠흑 속에서, 아이는 최대한 몸을 웅크려 자신을 가리려는 찰나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아이가 있다니."


사내가 부른게 본인이라는걸 깨닫자마자 아이의 어깨가 새차게 떨렸다.


"아..."


분명히 비명을 지르려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도 않는다.

저항도 못하고 이렇게 죽는걸까 하는 순간.


"...?"


무언가가 볼에 닿았다.

보이지 않기에 그것이 무언이지 몰랐던 아이는 공포에 몸을 떨었으나, 곧 의아함을 느꼈다.


칼이면 차갑고 딱딱해야할텐데...이건 따스하며 딱딱하지 않았다.

그는 곧 그게 사람의 손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불쌍한 것...부모와 눈을 전부 잃었구나."


손길의 주인은 아이를 안아들면서 말했다.


"마신께서 너를 구하고자 나를 보냈나보구나."


아이를 안아든 사내의 온기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어미의 혈온(血溫)이래로 닷새만에 느낀 온기였다.


"허? 옥당혈이 지나치게 열려있구나. 극양지체(極陽肢體)이군. 태생또한 기구하며 특별한 아이인고..."


아이는 사내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무림의 무조차도 몰랐던 아이에게 옥당혈이니, 극양지체니 하는 것들은 전부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단어들이었다.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그 다음 말이었다.


"아해야, 나를 따라오겠느냐?"

"..."

"먹여주고, 재워줄 곳을 마련해주마."


아이는 잠긴 목소리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손길의 주인은 언뜻, 미소를 지은 듯 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아이는 갈라지는 목소리를 애써 끼워맞추며 입을 열었다.


"백...유강.."

"그래, 유강아. 이제부터 너는 천마신교의 교인(敎人)이다."


그날, 아이는 천마신교에 입교했다.


**


식인을 한다느니, 실제 악마가 산다는 무림의 소문과는 다르게, 천마신교또한 사람사는 곳이었다.

그저 강자존에 따른 상명하복이 절대적이고,


"으아아아악!!"


사람을 극한까지 굴리는 사람 사는 곳이었지만 말이다.


외공단련을 위해 근육을 찢고, 독의 내성을 기르기 위해 독물을 섭취한다.

독물과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숲에 후기지수들을 때려넣고 살아남는 자만을 내교제자로 받아들인다.


정파의 수련법과는 근본부터가 다른, 사특하고 가혹하지만 상당히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훈련들.


아이는 그곳에서 자신의 숨겨져있던 무(武)의 재능을 발견했다. 수련을 하던 아이를 스승님께서 눈여겨보고, 제자로 들여주시기도 했고.


그분께 배운 무공을 통해 잃어버린 시야를 내공으로 대체하는 법을 터득했고, 검에 바람을 실어 사람을 베는 방법을 배웠다.

마인 특유의 광폭함을 억누르는 방법도 배웠고, 가슴 속의 뜨거운 응어리를 억제하는 방법까지 습득했다.


그리고...자신의 가족을 해한 씹어먹어도 모자라지 않은 자들이 정파 무림세가의 최고봉, 남궁세가(南宮世家)라는 것 까지도 알게되었다.


진실을 안 아이는 분노에 이성이 마비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정의를 숭상하고, 평화를 지킨다는 정파라는 것들의 위선에 토악질이 났다.


그렇게 아이의 인생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빌어먹을 남궁세가를 포함한 정파의 위선자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것과, 천마신교를 무림의 지배자로 만들어 은혜를 갚겠다는 것.


그 마음만을 가지고 몸을 단련했다.

분노와 원망을 머금고, 아이의 무공은 점점 더 성장해갔다.


마교의 여섯기둥인 육가(六家)와 호법전의 어린 마인들을 모두 뛰어넘었다.

마교제일 후기지수를 정하는 쟁투에서 이를 증명했고, 강자존의 법칙에 따라 소교주의 약혼자까지 되었다.


아이는 점점 마인이 되어갔다.

어느덧 마인의 대표고수가 된 아이, 이제는 사내라고 불릴만한 나이가 된 남자는 마영대(魔影隊)라는 부대를 만들었다.

그는 대주로서 다른 마인들과 함께 무림에 나섰고, 무림에는 마교발호라는 거대한 재앙이 샘솟았다.


구파일방이 흔들렸고, 오대세가가 뒤틀렸다.


사람들의 비탄섞인 비명에 숭산이 불탔고, 무인들의 피와 눈물에 무당산이 잠겼다.

화산파의 나무에는 더 이상 매화가 피지 않았고, 곤륜의 지맥은 끊어져 도(道)가 멸종했다.


그런 마인들이 날뛸 때, 그는 자신의 불행의 원흉인 남궁세가에 이빨을 드러냈다.

마교를 토벌하겠다고 나서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쳐 죽였다.


남궁의 성씨를 가지고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죽였다.

직계든, 방계든, 사생아든, 입양아든 상관없었다.

함정을 깔고, 매복했다 공격하고, 천라지망을 펼쳐 씨를 말렸다.


남궁검화 남궁화련.

뇌검봉 남궁소소.

소가주 남궁명.

무공을 배우지 않고 학사로써 살아가던 남궁진천까지.


남궁의 이름 아래 살아가는, 살아갔던 모든 이들을 죽였다.


스승님께 배운 풍영추혼심공(風影追魂心功)은 그들의 발목을 묶었고, 신풍체안대법(神風替眼大法)이 잃어버린 시야를 대신하여 그들을 추적했다.

추적끝에 붙잡은 적을 끝없이 타오르는 화염으로 불태웠다.


결국 남궁세가의 모든 가솔들을 자신의 손으로 묻었고, 사내는 복수의 끝에 서서 정파에게 풍염멸마(風炎滅魔), 신교에게 봉사검마(奉事劍魔)라는 두 별호를 얻었다.


그는 신교에서 누구나가 인정하는 존재로 거듭났다.

마도제일검, 마도팔존, 천하십좌.


그를 칭송하는 모든 단어들이 그를 천하제일검으로 추대하고 있었다.


소교주와의 결혼또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전쟁 중인걸 감안해서 비밀리에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어쨌든 천마신교의 소교주의 결혼식이니만큼, 신교가 시끄러워질 수 밖에 없었다.


"결혼이라..."


충년(沖年)에 불과했던 아이는 사내가 되어 이립을 마주보고 있었다.

사내는 자신이 걸어온 마도(魔道)를 돌이켜봤다.


강해지기 전에는 눈병신, 강해진 후에는 복수귀, 지옥에 떨어질 놈, 악마보다 더한 악마등...

단어라는 형태의 칼날이 그의 가슴 속에 박혀 존재감을 드러냈다.

남들이라면 참 개같이 살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랐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행했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


결혼식이 사흘 남았을 시점.

사내는 빌어먹을 남궁세가의 잔당들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천산으로 오고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복수의 마지막 편린이 제발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사내는 미소를 지었다.


혼자 가려했으나 기어이 쫓아오겠다는 마영대를 데리고 천산의 중턱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주. 사흘 뒤 결혼이네요?"


마영대 부대주, 진문이 사내의 옆에 다가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사흘 뒤에 결혼하는 사람이 피를 봅니까?"

"소교주님의 명령이시다. 항명할셈이냐?"

"치사하게 소교주님을 꺼내시네."


아마 천마신교에서 가장 신앙심이 적은 놈은 이놈이 아닐까.

본교의 하늘이나 다름없는 사람을 저리 대할 수 있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까라면 까야지, 뭐 어쩌겠습니까."


그렇게 말한 진문은 부대원들에게 사내가 내린 명령을 보충설명하며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할거면서 투덜거리기는.'


녀석을 보는 사내의 눈빛은 답지않게 호선을 그렸다.

이단아인 그가 유일하게 친근하게 대하는 마영대원들, 그 중에서도 진문은 조금 특별했다.


"저기, 대주."

"음?"


잡념에 빠져있던 그는 진문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진문은 무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게...말입니다...?"

"뭐냐."

"사실...제가 어제 알아낸게 있는데..."

"답답하게 오물거리지말고 말해라. 화 안낼테니까."


사내의 꾸짖음에 진문은 결심했다는 듯 결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열려고 했다.


-휘이이익!!


"!?"

"!"


순간적으로 생존본능이 위험경보를 울렸다.


"피해!!"


저 멀리서 날아온 묵색의 검기를 사내와 진문은 반사적으로 피해냈다.

허나 그 뒤에 있던 대원들은 그럴 반사신경을 가지지 못했다.


"끄아아아악!!"

"얘들아!!"


잘려나가는 대원들의 핏방울들이 사내 볼에 튀었다.


"대주!! 남은 애들이라도!!"


사내는 목소리에 내공을 실은 다음 소리쳤다.


[마영대 전원, 집결하라!!!]


허나 돌아오는 이들은 없었다.

사내의 눈을 대신하여 세상을 탐지하던 신풍체안대법(神風㬱眼大法)으로도 대원들의 기척이 감지되지 않는다.


그 말은...


"제길!!"


사내가 옆에 있는 나무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대주, 방금 그 검기, 묵색이었습니다..."

"그래."


그는 감정을 추스리며 검을 뽑았다.


"남궁세가의 것이 아니다."


사내보다 남궁세가에 대해 잘 아는 자는 없다.

남궁세가의 검기는 청색, 백색, 혹은 아예 뇌기를 머금는다.

허나 방금 전의 검기는 달랐다.


그가 아는 한, 짙은 묵빛의 검기(劍氣)를 사용하는 문파는 천하에 단 한 곳 밖에 없다.


-휘이익!!


눈 앞에서 얼굴을 가린 수십명의 흑의인들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전부 익숙한 기운들이다.


"...이게 무슨 짓이지."


사내는 솟아오르는 분노를 검끝에 담아 휘둘렀다.


"호법원!!!"


마도육가(魔道六家), 만마전(萬魔殿), 원로원과 더불어 마도 사대세력으로 불리는 호법원이 마영대에 칼을 들이밀었다.


사내는 그 즉시 기운을 운용했다.

이에 질세라, 흑의인들도 검을 뽑아 사내에게 돌격해왔으나, 감히 상대할 수준이 되지 못한 적들이다.


"갈!!!"


검풍이 휘몰아치며 적들의 신체가 반으로 갈라진다.

허나 호법원의 그 누구도 비명은 커녕 신음 하나 흘리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였다.


녀석들은 문답무용으로 검을 휘둘렀다.

사내는 찔러오는 검을 쳐내면서도 머릿속으로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살초가 없어.'


정확히는 사내에게만 살초를 펼치고 있지 않다.

즉, 목표는 사내를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죽이는 것.


갑작스런 호법원의 배신인건가.

아니면...그 위에 있는 자들의 뜻인건가.


"지랄마라..."


검에서 시작된 신선의 바람은 그의 목을 노리던 호법원의 대원들을 모조리 썰어버렸다.

핏빛으로 물든 설산의 한복판에 착지한 사내는 복잡한 머리를 쥐어뜯었다.


"도대체 이게 뭐냔 말이다..."


부하들이 모두 죽었다.

심지어 남궁세가도, 정파놈들도 아니라 천마신교의 호법원에 의해서.


호법원은 명령없인 절대 움직이지 않는 단체이며,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존재는 현재 신교 내에서 단 한명 뿐이다.

사내의 약혼녀인 소교주.


'도대체 왜...?'


당장 사흘 뒤에 결혼의 연을 맺을 약혼자를 왜 죽이려하는가.

신교에게 충성을 다하고, 은혜를 갚기 위해 살아왔던 자신을 왜?


"제길..."


머리가 복잡해 죽을 것 같은 순간.


-파아아앙!!


"!?"


아까보다도 더욱 선명한 묵빛의 검강(劍罡)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방심하고 있던 탓에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며 각오를 하는 순간.


"대주!!"


진문이 사내의 쪽으로 달려들어 그를 밀쳤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천산의 만년설이 흙과 함께 어지러이 흩날렸다.


"진문!!"


황급하게 몸을 일으킨 사내는 곧바로 진문을 찾았다.

그 정도의 검강을 맞고 몸이 정상일리가 없다. 사내는 빠르게 진문을 찾아내어, 그의 복부에 손을 올리고 기운을 밀어넣었다.


"대주..."

"입 다물어. 지금 진기를..."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상체와 하체 사이로 흐르는 바람은 그에게 녀석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 설명해줬다.

단전은 커녕, 녀석의 복부 자체가 반으로 잘렸다.


"..."


답이 없다.

이건 대라신선이 현세에 내려와도 고개를 저을 상처였으니까.


"대주...내 말...똑바로 들어요."


하체와 상체가 두동강난 녀석은 피를 토하면서도 말을 이어갔다.


"탈교(脫敎)...하세요."

"...뭐?"


입에서 피를 쏟으면서도 진문은 말을 이어갔다.

죽더라도 반드시 전해야된다는 듯이.


"정파가..아닙...니다..대주를...그렇게 만든.."

"..."


사내는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어지러워졌다.


"따로...조사를..해봤..."

"뭐..?"

"신교...가...행한 일.."


진문이 진기를 불어넣던 사내의 손을 꽉 쥐었다.


"대주...반드시...탈교하십..시오."


그 손은 평소의 녀석답지 않게 너무 약했다.


"빌어..먹을...이럴 줄..알았으면...대주..랑.. 술이나 마실..."

"...진문?"


손에 느껴지던 힘이 사라졌다.

대법이 느끼기에, 녀석은 더 이상 진문이 아닌 그저 시체 한덩이가 되어있었다.


"진문..."

"..."

"답하거라. 진문!"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감정팔이는 다 끝났나."


들어본 목소리와 익숙한 풍향(風香).


천마신교의 십대고수중 한명이자, 사내의 대원들을 몰살시킨 장본인.

좌호법, 위소헌이었다.


"..."


사내는 진문의 육신에서 손을 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소헌이 자신의 애검을 사내에게 겨누며 말했다.


"반항하지말고 받아들이거라. 모든 것은 본교의 하늘을 위해서이니."

"..."


사내는 받아들이는 대신, 검을 꺼냈다.

고요히 불어오던 바람에 한 줄기의 불꽃을 담아내면서.


**


밝은지, 어두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원래도 눈에 뵈는게 없었지만, 지금은 명암마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사내의 허리춤에는 검이, 등에는 도가 착용되어있었다.

그가 도를 꺼낼 때는 오직, 생사결을 펼칠 때 뿐이었다.


"소교주님."


사내는 피투성이인 몸을 이끈채로 천마신교의 만마전에 발을 들였다.

대부분은 사내의 피가 아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사지가 잘리고 단전이 박살난 좌호법이 들려있었다.


"이건 저를 향한 선물이셨습니까."

"감히 신성한 만마전에서 무슨!!"


우호법, 심지어 좀처럼 움직이지않던 대호법까지 소교주의 뒤에 선 채로 사내에게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사내는 그들을 신경도 쓰지 않은채로 만마전의 복도를 계속 걸었다.

그의 목적은 오직 정면에 앉아있는 여인이다.


본교의 작은 하늘이라고 불리지만 이미 죽은 교주를 대신해 실질적인 하늘의 위치에 있는 여인.

사내의 약혼녀, 천마신교의 지존, 천세아에게 말이다.


"오늘, 제 신앙이 흔들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런...본교의 충실한 교인, 봉사검마의 신앙이 흔들릴 정도의 일이라니. 대체 무슨 일인가?"


그녀는 웃고있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다름이 아닌, 조소(嘲笑)였다.


사내는 좌호법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발로 밟아 머리통을 으깨버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경직된 목소리로 소교주에게 물었다.


"...왜 마영대를 멸하신겁니까?"

"그대가 죽지 않았으니 마영대는 멸하지 않았지 않는가. 그대가 마영대며, 마영대가 곧 그대이다."


"남궁세가라고 생각했던 자들은 본교의 마인들이더군요. 심지어 호법원의 특무부대원들이 아니었습니까?"

"대단한 통찰력이군. 그대의 신풍체안대법은 잃은 시야 뿐만 아니라 심안(心眼)까지 눈을 뜨게 해주는건가?"


"소교주님."


사내는 점점 끓어오르는 살심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 감정에 공명하며 끓어오르는 열양지기가 만마전을 덮어갔다.


"무엄하다!!"


우호법이 즉시 호통을 치며 칼을 뽑으려 했으나, 천세아의 오른 손이 올라가며 그의 행동을 저지했다.


"과연...극양지체(極陽肢體)를 품은 사내의 양기는 대단하군. 만마전의 기둥에 불을 붙이다니 말이야."

"...당신이셨습니까."


진문이 죽기 직전 말했던 것.

복수심에 눈이 멀어 차마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것.

그 끈적한 진실이 눈 앞에 있었다.


"당신이 제 인생을 꺾으셨던 겁니까?"

"..."


소교주는...아니.


"그래."


천세아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름돋는 담담함에 사내는 구토감을 느꼈다.


"...어째서 그런 짓을 벌인겁니까?"

"그야 네가 극양지체니까."


천세아는 뭐 그런 당연한걸 묻느냐는 어조로 말했다.


"너도 알고 있지? 내가 극음지체라는걸. 너랑 똑같이 이립안에 죽을 몸이야."

"..."

"물론 나는 천마신공을 익혔고, 마음만 먹으면 태양화리같은 영물의 내단을 먹을 수도 있지. 하지만 가장 좋은건 역시 극양지체를 가진 사람의 기운을 흡수하는게 제일 좋다고 하더군."


기운을 흡수한다.

즉, 자신을 죽이겠다는 말이다.


"혹시 몰라 하오문에 돈을 풀고 조사하도록 했지. 그러자 안휘성의 화현상단이란 곳의 적장자가 극양지체라는 정보를 가져오더라?"

"..."

"그냥 쓸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랬다가 마교에 반감을 품어 자살이라도 하면 큰일이잖니? 어린 아이라도 원수는 기억하는 법이니까."


세상이 뒤틀렸다.

머리가 핑핑 돌고, 전신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요동쳤다.


"그래서 정파의 놈들이 공격한 척하고 위대한 천마신교가 너를 구해준걸로 속였지."

"..."

"남궁세가에서 신교로 입교한 아이들을 사용했어. 너도 알다시피, 소교주의 몸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면 기꺼이 순교를 택하는게 우리 교인들이잖아?"


천세아는 천마좌에서 내려왔다.


"근데 네가 생각보다 유능하네? 무공도 고강하고, 머리도 나쁘지 않아."


우호법이 건넨 천마신검을 쥐고, 사내를 향해 걸어온다.


"너의 스승인 마불이 말하길, 양기가 절정에 달하는 이립에 기운을 흡수하는게 제일 효과가 좋을거라고 하더라고."

"..."

"그래서 살려놨어. 뭐, 사실 쭉 죽이지않고 교인으로 살게할까도 생각해봤지만...이제 내 몸도 한계라서 말이야."


진실은 이다지도 잔혹했다.


"자, 슬슬 네 양기를 거둬가려하는데."


천세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피식 웃어보였다.


"얌전히 내어놓지는 않을거 아니야?"


칠흑빛의 운철을 머금은 천마신검의 검 끝이 사내의 목을 가리켰다.


"그러니 너 또한 도를 들고 온거 아닌가."


그 말과 함께 그녀의 몸에서 극성의 마기가 뿜어져나왔다.

모든 마공의 정점이자, 본류.

천마신공(天魔神功)이 그녀의 몸을 순환하며 마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심지어 마기 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태생인 극음지기까지 함께 터져나왔다.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그녀의 모습은 마신(魔神)이 현세에 강림한 듯한 모습이었다.


-까득...


이가 갈렸다.

흔들리던 송곳니가 부러져 입가에 피가 흐른다.

핏물이 흐른 곳에서 열기가 일렁이더니 이내 바닥이 녹아내렸고, 흙에 불이 붙었다.


"극양의 기운이 필요하다 하셨습니까?"


전신이 극양의 화기로 뒤덮인다.

눈을 감고있던 묵색의 안대가 타들어가며, 20년 넘게 봉해져있던 사내의 눈이 세상을 오시했다.


"내어드리겠습니다. 가져가십시오."


물론,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다.


"천산을 전부 태우고도 남을테니 말입니다."


평소처럼 말이다.


**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천마신교의 본산, 천산이 불타간다.

산이 생긴 이래로 단 한번도 녹지 않았던 만년설이 녹아내린다.


그 자리에는 천세아의 한설들이 내리며 자리를 대체해간다.


음양(陰陽), 열한(熱寒)

반대되는 두 개의 기운이 극한에 치솟으며 천산을 부숴간다.


결투는 사흘동안 이어졌고, 결과는 단순했다.


"..."


사내의 패배였다.

뭐...당연한 결과였다. 그녀의 경지가 경지였으니까.


마지막에 사내의 목을 꿰뚫던 천마신검의 마기가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원통해...'


죽었지만, 죽도록 원통했다.

인생이 송두리째 뽑혀나갔다.


그저 극양지체라는 것 하나때문에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졌다.

원수를 신앙했고, 무고한 사람들을 베어죽였다.

잘못없는 정파를 원망했고, 죄없는 남궁세가의 식솔들을 너무 많이 죽였다.


사내의 인생 전체가 잘못이었으며, 문제투성이였다.

그저 복수를 원하던 사내의 손에는 엄한 자들의 피가 말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벌을 받는구나.'


무고한 사람들을 수도 없이 죽인 죄.

원한에 미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은 죄.

천하를 무간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죄.


그 모든 죄들의 대가로, 사내는 이리 비참한 진실을 깨달으며 죽어가는 벌을 받았다.


'그저 공(空)이구나...'


텅빈 인생을 반추한 사내는 평소와 같은 칠흑을 감상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모든 비극이 끝났을 때, 나는 다시한번 눈을 떴다.

여전히 칠흑같은 어둠이지만, 차가운 죽음이 아닌 따스한 삶의 기운이 느껴졌다.


죽음을 맞이한 나는 일곱 살 때의 과거로 시간을 역행해서 돌아와있었다.


"..."


전신이 묶인채로 말이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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