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무림세가 데릴사위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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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거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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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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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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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DUMMY

구배지례(九拜之禮)

다섯 번 절을 하고, 네 번 고개를 조아리는 예법으로, 제자가 스승에게 보일 수 있는 가장 극진한 예를 표현한 절이다.

제자는 구배지례를 입문할 때와 스승이 작고하기 직전, 딱 두 번만 할 수 있다. 그 외에는 구배지례의 가치가 떨어질 뿐이니까 말이다.


"...스승님."

"반박은 받지 않는다. 네가 나를 스승이라 생각한다면 잠자코 행하거라."


스승님은 완고해보이셨다.


"마교의 구배지례가 아닌, 무림의 구배지례를 받겠다."


마교의 구배지례는 한 번 절을 할 때마다 머리를 땅에 박아 피를 흘려야한다.

그에 반면, 무림의 구배지례는 마음의 극진함에 따라 몇번이고 절을 요구할 수 있을 뿐, 피까지 흘리지는 않아도 된다.


마교가 피라는 수단을 통해 마음을 본다면, 무림에서는 스승이 직접 제자의 마음을 느낀다.


"...예."


이게 스승님의 마지막 부탁이라면 응당 들어드려야겠지.

그게 쓰레기같지만 엄연히 제자로써 해드릴 수 있는 효도일테니까 말이다.


"절을 받는동안 스승은 제자에게 도움이 되는 가르침을 내려야하지..."


나는 검과 도를 내려놓고 스승님의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절을 올리는 동안, 짧은 이야기를 듣거라."

"예."

"올리거라."


나는 흙바닥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고래를 조아렸다.


일배(一拜).


"한 아이가 있었다."


그와 함께 스승님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마교에서 정말 멀디 먼 동쪽 끝, 고려 출신의 아이는 무공을 사랑했다."

"..."


나는 고개를 조아린채 스승님의 말씀을 들었다.


"중원을 동경했던 아이는 약관이 되어 무림에 출두했고, 풍룡이라는 별호를 얻고, 천하제일후기지수가 되었지."


스승님의 말이 끊겼고, 나는 고개를 들어 첫 번째 절을 끝냈다.


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이셨고, 나는 또 한번 절을 올렸다.


이배(二拜).


"아이는 사내가 되었고, 이립이 되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

"웃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이었지. 무림에서는 오화(五花)중 한명일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고 절을 올린다.


삼배(三拜).


"사내는 그녀와 혼인을 하고, 아이까지 생겼다. 행복이란 이런게 아닐까 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꿈꿨지."

"..."

"정파의 검으로서 하늘을 뚫을 명성을 얻었던 사내는 그 날도 똑같이 검을 들고 임무를 나갔다."


스승님의 이야기가 누구의 서사인지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날은...참 푸른 하늘이 세상을 오시하던 날이었다."


스승님의 목소리는 서글프게 흔들렸다.

지금 내가 올리는 절이 스승님에게는 사배(四拜)로 느껴질까, 아니면 사배(死拜)느껴질까.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와 그녀의 뱃속에 있던 아이는 차게 식어있었다."

"..."

"집은 피안화를 짜낸 듯 붉게 칠해져있었고, 곳곳에는 병장기가 긁고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말씀을 잠시 끊으시던 스승님을 본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처음 봤다.

스승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은.


"검화라고 불리던 그녀를 죽일 수 있는 사파는 많지 않다. 훋날, 흑사련이라고 불리는 사파연합의 고위급 간부 정도겠지."

"..."

"사내는 분노에 미쳐 검을 들고 무림맹에 사파토벌을 하겠다 선포했다."


왜인지 다음 이야기가 예상이 갔다.


"허나, 맹에서는 그의 출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

"그가 움직이는 순간,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사파연맹과 전쟁을 했다가는 무림의 평화가 무너질테니까 말이야."


표면적으로 옳았다.

100년...아니, 50년 전까지만 해도 사파는 무림 역사상 가장 큰 세를 이뤘으니까 말이다.

그 모든게 전대 사흑련주, 패왕의 대업이었다.


"사내는 어지롭고 고통스러운 심정을 애써 억누르며 무림의 평화를 위해 감정을 삭혔다."


스승님의 눈물이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허나...맹에서는 사파와 동맹을 맺었지."


무어라 위로의 말을 드리고 싶었다.

허나 구배지례중이다. 스승의 허락이 없이는 고개를 드는 것 조차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오배(五拜).


"정을 숭상하고 협을 숭배한다는 놈들이...사파와 동맹을 맺었다."


"눈 앞에서 맹주와 손을 잡고 환히 미소짓는 사흑련주를 보면서 결국 사내는 참을 수 없었다."

"..."

"사내는 검을 뽑아 련주와 맹주를 공격했다. 허나 그 둘 모두 화경의 극에 도달한 강자들..어찌 그 둘을 모두 죽일 수 있겠는가."


오배는 끝났고, 다음은 사고두례였다.

나는 머리를 조아리는 절이 아닌,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였다.


일고두례(一叩頭禮).


"죽기 직전에 간신히 도망쳤지."

"..."

"갈 길은 잃은 사내는 분노와 함께 검을 휘둘렀다. 사내가 가지고 있던 천풍은 타락하여, 원수의 영혼을 끝까지 쫓아서 찢어버리는 바람이 되었지."


풍영추혼마검...

혼을 쫓는 바람의 그림자라는 뜻이 그래서 나온거였던건가.


나는 생각할게 점점 많아짐을 느끼며 두 번째 고개를 숙였다.

이고두례(二叩頭禮).


"그렇게 사내는 정사를 구분하지 않고 무림공적이 되었다. 무림맹과 사흑련에서는 토벌대를 만들어 사내를 죽이려고 쫓아왔고, 사내는 도망치고 도망친 끝에 천산에 도달했지."


삼고두례(三叩頭禮).


"그곳에서 새로운 신분을 얻은 사내는 천마신교의 원로가 되어 남은 수십년을 보냈다."

"..."

"그때의 나에게 마교란 몸을 쉴 수 있는 쉼터였지. 허나, 이곳도 별반 다르지 않았구나..."


나는 세 번째 고두례를 끝마친 뒤, 마지막 절을 끝마쳤다.


"그걸 너무 오래 외면했던게지."


허리를 숙인채로 예를 갖추고 있는 나를 보시며 스승님은 허탈하게 웃으셨다.


"나의 안식처가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되었겠구나."

"..."

"나의 지옥이 누군가에게는 안식처가 될 것이고 말이다."

"..."


스승님의 허락이 떨어졌고, 구배지례를 마친 나는 스승님께 말씀드렸다.


"스승님..."

"되었다."


내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스승님은 내 입을 닫아버리셨다.


"너와 나는 다르다. 얕게는 출신부터 깊게는 본심까지 다르지.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니만큼,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겠지..."


스승님은 가부좌를 푸시고는 말씀하셨다.


"...소교주님은 어찌할 생각이냐."


그 말에 나는 자동으로 한 사람의 두 모습을 떠올렸다.


'천세아...'


과거의 소교주와 현재의 천세아.

그 둘이 동일인물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다르다는걸 알고있다.


나 또한 수 백번 고민하고, 수 천번 갈등했다.

허나...결국 둘은 동일인물이었다.


그녀가 웃음을 지을 때마다 과거의 서늘한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그녀의 손길이 나에게 닿을 때마다 목을 꿰뚫었던 차가운 검을 망각할 수 없다.


칠 년동안 노력했다.


어쩌면 다르지 않을까.

다른 운명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복수따위 잊어버리고 지금의 천세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허나 결국 나는 불가능했다.

천세아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나를 영약으로 취급하던 소교주의 존재가 어제와도 같이 선명하다.

그 차가운 괴물의 모습을 나는 천세아를 볼 때마다 떠올리게 된다.


잠을 잘 때마다 악몽을 꾼다.

어느날, 천세아가 소교주의 모습으로 돌변해 내 목에 칼을 찔러넣고, 내 심장을 꺼내 극양지기를 취하는 악몽을.


그런 악몽에서 깨어날 때마다, 나는 바뀔 수 없다는걸 체감할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가 소교주의 곁에서 떠나는 겁니다."


아직 죽이지 않고, 그저 마교에서 탈교해 멀리 떨어진다.


그녀를 죽이는 순간 나는 죽게되고, 그럼 또 다른 복수의 대상인 천마신교 그 자체를 없앨 수가 없게된다.

처음에는 그딴거 상관없이 그냥 바로 소교주를 죽이는게 계획이었지만, 칠 년간의 정을 봐서 내린 내 최대한의 호의라고 치자.


"...그래. 네가 걸어야할 길이니, 책임또한 네가 지거라."

"그럴셈입니다."


스승님은 거암에서 내려오시고는 풍향고검을 꺼내셨다.

무림이 시작되기도 전, 고려의 장백산에서 도를 닦았다던 한 도인의 고검이 스승님의 손에서 빛을 발했다.


"강아."

"예."


검강이 아닌 검기를 고검에 밀어넣으시며, 스승님은 기수식을 취하셨다.


"하산하기 전, 마지막으로 너에게 선물을 주마."

"선물이라 하시면..."

"초식이다."


스승님의 말에 나는 의아함을 띄었다.

풍영추혼마검의 초식은 물론, 그 안에 담긴 심의마저 알고있다.

그런데도 선물이라 하시면...


"느껴보거라. 깨달을 수 있다면 너에게 큰 도움이 될테니."


그리 말씀하시며 스승님은 검을 펼치셨다.

풍영추혼마검의 일초식인 선풍참정의 초식이었다.


분명히 그랬는데..


"!!!"


다르다. 같은 무공에 같은 초식이지만 전혀 다르기도 하다.

풍영추혼마검처럼 사람을 죽이는 것에 초점을 둔게 아니다. 바람의 흐름 자체를 검에 담아낸 듯한 움직임.


먼 과거, 숭산에서 바라본 하늘을 보며 여래의 손바닥을 떠올린 보리달마나 물의 흐름과 유영을 보며 태극을 깨달은 장삼진인과도 같은 깨달음과 결을 같이 하는...명백하게 마(魔)보다는 정(正)에 가까운 무공이다.


"바람의 그림자(風影)가 되기 전, 이 검법으로 하늘아래의 바람(天風)을 전부 제어할 것이라 믿었다."


스승님의 풍향고검이 자신의 모습은 이런 것이라는 듯, 스승님의 손에 쥐어진채로 검무를 펼친다.


"제자야.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나의 본류, 천풍십이검법(天風十二劍法)이다."

"천풍십이검법..."


일초식부터 십이초식.

그 안에 담긴 심의가 너무나 정순하다.


풍영추혼마검을 대성했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전부 파악하지 못할 만큼 깊은 심의.

게다가 보법또한 천풍신보와 미묘하게 다르다.


선풍신장, 선풍통지, 천풍신권등...내가 아는 모든 무공이 스승님이 펼치시는 무공과 같지만 전혀 달랐다.


그리고...


-우우우우우우웅!!!


"!?"


아예 처음 본 무공또한 있었다.


지금의 나로써는 발끝도 닿지 못할 만큼 신묘한 묘리를 담고있는 신공이 스승님의 내공을 운공하며 존재를 드러냈다.


신공이라고 평가받던 풍영추혼심공보다도 더욱 심오하고 광대하다.

저 무공 하나만 배워도 천하의 모든 고수의 움직임을 바람으로 묶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스승님..."


검초를 계속 펼치시는 스승님은 보법을 멈추지 않으신채로 나에게 물으셨다.


"왜 그러느냐."

"방금 그 신공...이름이 무엇입니까?"


내 물음에 스승님은 입꼬리를 올리시며 말씀하셨다.


"천풍십이검법도 같다. 가까운 훗날, 네가 이 무공들을 대성했을 때 네가 직접 이름을 만들어주거라."


그리 말씀하시던 스승님은 발걸음을 뚝 멈추시고는 조용히 검을 세로로 휘두르셨다.

간결하고 조용한 그 검 끝에 스쳐지나간 나뭇잎이 반으로 잘렸다.


산을 반으로 가른 것도, 만년한철을 박살낸 것도 아니다.

허나 방금 스승님이 보여준 일검에서 나는 그 무엇보다도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보았느냐."

"예..."

"그럼 되었다."


스승님은 그리 말씀하시고는 풍향고검을 납검하시고는 칼집째로 허리춤에서 뽑으셨다.


"제자야. 내가 가르쳐준 무공으로 문파를 만들어도 좋다. 다른 문파에 기증을 해도 좋다."


스승님은 천천히 나에게 걸어오셨다.

그 걸음걸이에서 묘한 무게감과 함께 서글픔또한 느껴졌다.


"허나, 천하에서 이 무공들을 가장 잘 다루는 무인은 반드시 너여야만한다. 부디 그래다오."

"스승님..."


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신 스승님은 당신이 평생동안 함께하신 풍향고검을 나에게 건네셨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제자야."

"아..."

"나, 최헌중이 한때 걸으려 했으나 결국 뒤돌아갔던 길을 걸으려는 제자야."


차마 받지 못하는 내 손에 풍향고검을 쥐어주시고는, 내 손을 꼭 쥐시며 말씀하셨다.


"너의 생이 흑이든, 백이든...항상 너를 응원하마."


나는 스승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무릎을 꿇었다.


"...제자 백유강, 스승님의 말씀을 받듭니다."

"고려에 갈 일이 생기면 해동신풍사라는 새외무림의 문파에 찾아가보거라."

"예..."

"내가 전해줄 것은 전부 전해줬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으니, 그만 하산하거라."

"..."

"새벽녘의 해가 뜨겠구나. 나는 해돋이나 조금 더 보다가 가겠다."


나는 스승님의 풍향고검을 두 손으로 받들고는 고개를 숙이고는 마검봉을 하산했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음미하겠다는 듯, 나는 보이지 않는 눈을 연신 돌려가며 마검봉을 마음의 눈에 담았다.


스승님의 뒷모습이 보인다.

대법을 통한 시야지만,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스승님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계속 뒤돌아서 산을 내려갔다.


그리고 정확히 사흘 뒤, 나는 마영대원들을 데리고 광서성으로 파견을 떠났다.

떠나는 그 날까지 스승님은 마검봉에 계셨을 것이다.


천산을 내려가는 내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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